<검술 명가의 마왕님 206화>
“빌어먹을! 입만 산 놈들이!!”
흥분한 가디언 테우타테스가 욕설을 뱉으며 신문을 내팽개쳤다. 폭급한 성격답게 과격한 모습이었지만 평소라면 이를 말려야 할 동료 가디언들도 가만히 있다.
그만큼 바닥에 구르는 신문의 기사는 굴욕적이었으니까.
피쉬 앤 칩스를 먹고 있는 가디언.
피쉬 앤 칩스가 이렇게 맛있습니다.
도시보다 티 타임. <사진>
복수자라는 테러리스트가 나라를 짓밟고 있는데도 가디언이란 작자들은 한가하게 피쉬 앤 칩스를 먹고 있다는 기사다.
“Fu**!! 우리는 밥도 먹지 말라는 거야!”
“하…… 그러게. 고작 저녁 한 끼 먹은 걸로 이렇게 욕을 들어먹을 줄이야.”
“봐라. 내가 홍차는 좀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너도 잘 마셨으면서…….”
영국의 극성스러운 타블로이드가 유명하다지만, 이건 선을 넘었지…… 또 다른 가디언 디안케트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화를 참았다.
이에 거한의 사내, 가디언 아르티오는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다. 피해가 크고, 우리는 적을 못 막고 있다.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필연적.”
“시발!”
영국의 수호 기사, 가디언.
당연한 말이지만 가디언은 수호 기사답게 ‘복수자’란 이름의 테러리스트에게서 영국을 지키려 노력했다.
24시간 대기하며 도시가 쑥대밭이 될 때면 누구보다 먼저 도착. 전 가디언이 전투태세에 돌입했고, 각 도시에서 초인들을 소집, 포위망을 구성했다.
당시만 해도 가디언들을 자신 있었다.
영국이 어느 나라인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기사도의 영광이 찬란한 EU의 제일 기둥 아닌가. 게다가 자신들은 그런 EU를 대표하는 수호 기사다.
테러리스트 한 명 따윈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첫 교전에서 삼사자 군단 전멸.
가디언이 참여한 두 번째 교전에서마저 대량의 손실과 함께 가디언 두 명이 사망하며 사실상 참패를 당하게 된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패배, 패배, 패배……
일방적인 패배의 연속이었고, 가디언은 깨닫게 된다.
자신들의 오만을,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사실상 가디언의 수장인 마나난 맥 리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르티오의 말대로 어쩔 수 없다. 우리 가디언의 역할은 이 땅을 수호하는 것. 현재 우리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지.”
“우리는 놀고 있어? 놀고 있냐고?!”
쾅-!
테우타테스의 손이 거칠게 테이블을 내려친다. 그런데 손이 이상하다. 말캉한 살갗이 있어야 할 곳에는 은빛 색깔을 한 차가운 금속만이 있었다.
“내 팔 봐. 시발, 그 새끼랑 싸우다가 이렇게 됐다고.”
이들은 ‘데스나이트’로 오해하고 있는 스켈레톤 군단을 뚫고 들어가 복수자를 요격하려다 절단된 팔이었다.
이런 상처는 테우타테스뿐이 아니다. 디안케트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얼굴에 흉한 상처가 생겼다. 아르티오의 우람한 상체에도 힐링 팩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베르베이아의 기다란 머리칼도 불타 단발이 되었다.
그나마 마나난 맥 리르가 가장 멀쩡해 보였지만 겉만 봐서 그렇다. 내부는 엉망인 지 오래.
이렇듯, 현재 이 자리에 모인 가디언들은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었다.
말이 상처지 당장이라도 요양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
달리 말하면 그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증명하는 상처일 것이다.
그런데, 격려는 해 주지 못할망정 욕이나 하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억울할 만도 했다.
“징징대 봤자 소용없다. 지금 필요한 건 불평이 아니라 대책이지. 베르베이아, 부탁한 건.”
마나난 맥 리르의 말에 베르베이아가 입을 연다.
“인간이 맞아. 틀림없어.”
“믿기지 않는군.”
“사실이야, 맥 리르. 네가 생각했던 ‘수호령’은 아니야.”
“인간이 그렇게 강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경이롭군.”
신수를 가진 베르베이아에게 했던 부탁. 복수자의 자세한 정보였다.
솔직히 맥 리르는 복수자가 인간인 걸 믿지 못했다.
도시 하나를 가볍게 초토화시키며, 가디언을 앞세운 수만의 초인 부대를 단신으로 감당한다.
그야말로 일개 개인이 홀로 한 나라와 대적한다는 건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래서 나중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태사자 님과 같은 ‘수호령’이 아닐까, 하고.
한데 아니라니…….
“……냉정을 찾으세요, 맥 리르. 제가 말했잖아요. 수호령은 영역에서 나올 수 없다니까요.”
“디안케트의 말대로다. 수호령일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영역에서 벗어날수록 약해진다.”
“멀리 갈 필요도 없어. 스승님의 행동 방경도 런던 근처잖아.”
“쯧, 다 아는 거 아니야. 맥 리르 너도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 보네. 나만큼이나 무식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동료들의 말에 맥 리르가 쓰게 웃는다.
누가 몰라서 이러겠나. 현실적으로 대적할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생각해 본 거다.
저쪽이 수호령이라면 같은 수호령인 태사자 님이 나설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인간이면 태사자 님께 부탁하기도 애매하다.
“후, 그렇다면 스승님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건가…….”
맥 리르가 무력하게 한숨을 내쉬는데.
그때였다.
“아니.”
“……?!”
날개를 펼친 페가수스가 대지로 내려앉고, 페가수스에서 뛰듯 내린 사내.
루 라바다.
또 한 명의 가디언이었다.
“스승님의 지원이 도착했다.”
잠시 뒤.
허공을 부수며 등장하는 여섯의 인영.
키, 성별, 나이…… 모두 달라 보이지만 딱 하나,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기이할 정도로 태사자를 닮은 외모.
‘태사자의 아이들’이 도착한 것이다.
* * *
검은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정확히 목표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섬광이 폭발.
어둠의 영역이 주변을 잠식한다.
저 무의 원형에 잠식되면 모두 허무 세계로 날아가게 되니, 사실상 ‘소멸’이었다.
내가 새롭게 만든 신기 ‘허무’가 만들어 낸 광경이었는데…….
이게 처음으로 막혔다.
“호!”
감탄이 일어난다.
드디어 내 ‘허무’가 막혔네?
여섯 인간…… 아니, 인간인지 모를 이상한 놈들이 기묘한 진영을 이루더니 허무를 정면으로 막아 냈다.
그 틈으로 사방에서 가디언이 조여든다. 전부 다 아는 얼굴들이다. 매번 내 앞길을 막다가 도망갔던 놈들이다.
녀석들이 용맹하게 앞장서자, 초인들이 뒤따른다. 전원 나이트 아머를 착용한 기사들. 평소보다 숫자가 많은 걸 보니, 저 여섯 놈을 믿고 승부수를 띄운 것 같다.
“이야…….”
영국이라고 했지? 여기 꽤 한다니까.
내 스켈레톤 군단이 붕괴되고 있다. 이제와는 다르게 아주 빠른 속도로.
평소처럼 마법 지원을 해 줬다.
하늘에서 검은 뇌우가 빗발친다. 땅에서는 균열과 함께 용암이 들끓는다. 여기저기서 검은 돌풍이 몰아친다.
분명히 전과 같은 대응이었다.
다만 적들의 대처는 이를 상회하는 것.
한층 더 정교하게, 더욱 견고하게.
단체로 레벨 업을 한 것처럼 내 스켈레톤 군단을 분쇄하며 전진 중이었다.
“음…….”
왜일까.
의문에는 곧장 답이 나왔다.
내 시야에 보이는 저 여섯 존재.
쟤들 때문이다. 내가 뿌리는 마법들을 손짓 한 번으로 지워 버린다.
디스펠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식한 방법.
마법의 격으로 찍어 눌러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힘의 소모가 많을 테지만 저 여섯은 적절하게 자기들끼리 공명하며 힘을 분배하고 있다.
조금 신경 쓴 마법은 두 명이, 약간 더 신경 쓴 마법은 세 명이.
방금 전과 같이 신기 ‘허무’의 공격 같은 경우는 여섯이 함께 뭉쳐 공명하더니, 마법을 소멸시켰다.
“거참 없는 줄 알았더니, 여기서 보네.”
이 세계에도 있었잖아? ‘고유 마법’.
그래, 이상하다고 했다.
이 세계가 지닌 역사가 얼마인가.
기록된 역사만 해도 수십 세기, 기원전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다. 이렇게 오랜 세월 발전해 왔는데 불세출의 천재가 나오지 않았을까?
나 정도는 안 되더라도, 내 절반 정도만 돼도 ‘진리’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저기, 지금 저기서 싸우고 있는 치료하는 주술사 쟤. 쟤는 내가 봐도 꽤 실력이 좋거든? 쟤도 성실하게 정진하면 고유 마법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호령들이 제자 구하는 것도 이것 때문인가.”
싹수가 있는 애들을 일찌감치 통제하려고?
이거 점점 앞뒤가 맞춰지네. 어쨌든 수호령이 인간의 성장을 조절한 건 입증된 것 같다.
여러모로 호기심은 해결됐고.
이제 눈앞의 전투에 집중해 볼까나.
일단 내가 바란 전투 양상은 이뤄졌다.
“녀석. 슬슬 개입하는 건가.”
여기서 말하는 녀석은 태사자다.
내가 원하는 목표이자, 이 수고를 떨고 있는 원흉.
이제껏 한발 떨어져 관망하더니, 영국 북부가 거의 초토화되자 나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나 보다. 저런 분신 쪼가리를 보낸 것 보니까.
어쨌든, 태사자가 직접 개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첫 단추가 끼워졌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가 볼까나.
“적당히 빠져 줘야 하는데.”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승리를 확신하도록.
그래서 태사자 녀석이 무거운 궁둥짝을 들고 나오도록.
“어디, 연기를 해 볼까.”
때마침 저편에서 날아드는 한 줄기 섬광.
딱 맞게 태양의 힘을 품은 창날이다. 성 속성과 화 속성의 결합. 이쪽과 완전히 대비되는 속성.
고로 저 창에 당하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는 말.
판단 끝.
행동에 들어간다.
교묘하게 실드를 약화시킨다. 딱 뚫릴 수 있을 만큼.
적당히 틈을 줬고.
태양의 힘을 품은 창날이 내 ‘다크 쉘’을 파고든다.
지지직,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나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푸쉭-
어깨가 뚫렸다.
난 침음성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고, 저 편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가 들려왔다.
“드디어 뚫었다!!”
“우와아아아!”
저들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이뤄 낸 승리였다.
이제는 도망갈 시간, 영화 속 악역처럼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저쪽에서는 용기백배해 나를 추격했다.
시나리오 완성.
자, 나라는 미끼를 던졌다.
이제 너만 오면 된다.
태사자여.
* * *
신은 영국을 버리지 않았다.
가디언, 스스로를 증명하다.
태양창 루 라바다, 마침내 복수자의 심장을 도려내다.
첫 번째 승리 이후, 태사자의 아이들을 앞세운 가디언군은 계속해서 복수자를 몰아붙이게 된다.
기세가 꺾인 복수자는 시종일관 뒤로 후퇴했고, 이에 사기가 충천한 영국의 초인들은 속속 합류해 대군을 이룬다.
그리고 두 번째 전투, 영국의 예상대로 또다시 승리한다.
이빨 빠진 복수자, 이제 응징의 시간이다.
태사자의 제1검, 마나난 맥 리르가 악적을 베다.
기습에 성공한 마나난 맥 리르가 복수자를 베었고,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은 복수자는 이번에도 등을 보였다.
약간의 틈을 보인 것이 천추의 한.
마나난 맥 리르는 간발의 차로 복수자를 놓친 것에 분해하며 더욱 맹렬하게 추격했다.
그렇게 세 번째 전투도 승리.
네 번째 전투도 승리.
승리, 승리, 그리고 승리.
사람들은 완전히 전세가 역전됐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코앞에 다가온 승리.
사법부, ‘복수자’에 대한 형벌 추진
뉴캐슬에서 시작된 추격전은, 에든버러를 지나 스코틀랜드 북부, 영국의 끝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막다른 길목에 막힌 복수자.
그때였다.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
우드드득-!
피와 살, 근육으로 이뤄진, 실로 끔찍한 생명체가 복수자를 에워싸며 증식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가디언들은 재빨리 총공격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서는 태사자의 아이들.
그들은 태사자의 권능과 고유 마법으로 살덩이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마치 고치처럼 복수자를 감싼 살덩이는 어떠한 공격에도 흠집이 나지 않고 오히려 몸을 부풀려 갔다.
다 잡은 적이다. 실제로 눈앞에 적이 있다.
그럼에도 잡을 수 없다니.
영국의 입장에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렇게 3일, 살덩이는 무슨 짓을 해도 몸집만 불려 갔고, 끝내 런던의 어느 게이트에서 태사자가 모습을 보이게 된다.
“공간 도약.”
* * *
그리고 잠시 뒤.
태사자가 사라진 자리, 박기혁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기였네.”
나와라.
그 순간 공간이 부서지며 거인 소환.
게이트를 짓밟는다.
콰지지지직-
부서지는 게이트.
이제 태사자가 돌아갈 곳은 없다.
“어디 제대로 붙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