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204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연희와 진유리가 검정색 정장을 입고서 장례식장을 찾았다.
‘프로토’에게 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
둘은 유족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슬픔에 탈색된 유족들.
힘없이 마주 인사한다.
안타깝다.
다들 누군가의 배우자였고 자식이었을 것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한 날이 마지막이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준비되지 않는 죽음.
끝이 없는 슬픔이 장례식장을 잠식했다.
하늘이 무너지듯 통곡하다가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가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내 딸이 아니야!’라며 고래고래 외치며 현실을 부정한다.
몇몇은 용호 재능 교육관의 최고 책임자 중 한 명인 김연희를 붙잡고 욕을 하기도 했다.
“살려 내! 살려 내!!”
“너희가 우리 아들을 죽였어!”
상실감에 이성을 잃은 유족들.
김연희는 아무런 변명 없이 그들의 갈 길 잃은 분노를 묵묵히 감내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변명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소중한 이를 하루아침에 잃었으니 그 상실감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나.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리라.
그들이 욕하고, 탓하고, 매도하며 분노가 사그라들 수 있다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김연희는 기꺼이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책임지는 자의 의무니까.
그렇게 김연희와 진유리는 오전 내내 유족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키고서, 점심이 되어서야 에이전트로 향했다.
차량에 탄 두 사람.
시동이 걸리자마자, 진유리가 부스럭부스럭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무언가를 내민다.
“수고하셨어요, 어머님. 여기, 이거 한잔 드셔요.”
“응? 이건 뭐니?”
“보약이에요. 어머니 요즘 신경 많이 쓰시잖아요.”
“어쩜, 고마워라. 잘 마실게.”
빨대가 꽂힌 보약 팩을 들고서 김연희가 빙그레 웃는다. 진유리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해서.
따지고 보면 진유리가 오전부터 김연희를 따라 장례식장에 올 이유는 없었다.
아닌 말로 막둥이와 식을 올린 것도 아니고 겨우 연인 관계잖나. 온갖 욕을 들을 수밖에 없는 힘겨운 자리에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늘 함께해 줬다.
심지어 봄이와 헤나까지 봐주면서.
정작 애 아빠란 놈은 한마디 말도 없이 지 멋대로 사라졌는데 이렇게 자리를 지켜 주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힘들 때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게 가족이라면, 김연희 입장에서 진유리는 이미 가족이었다.
“녀석은, 아직도 연락 없어?”
“헤헤…… 바쁜가 보죠.”
“하, 이 녀석이. 정말 실망시키네.”
하루아침에 우리 막둥이에서 ‘녀석’으로 격하된 박기혁.
“실망하지 마세요. 아마 기혁이도 생각이 있을 거예요.”
“내가 뭐라니! 그 생각을 말하고 없어져야 할 거 아니야!”
“헤헤. 그, 그렇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유리 너는 기혁이 어디 있는 줄 몰라?”
“모, 모르는데요.”
“내 눈 보고 말해 봐. 아줌마 거짓말 싫어하는 거 알지? 기혁이 녀석, 어디 있는지 알아, 몰라.”
“몰라요. 정말. 진짜로요.”
“휴우…… 유리야. 혹시나 말이야. 기혁이 녀석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면 곧바로 말해야 해? 사고라는 게 그렇다? 모르고 당하는 거랑, 알고 당하는 거랑 수습하는 건 천지 차이야.”
학교가 습격당한 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은 시간. 제 딸들을 끔찍이 아끼는 박기혁이 이 시점에 의미 없이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무언가 사고를 치겠지.
김연희도 짐작하는 부분.
다만, 이 엄마한테도 비밀로 한다는 게 불안했다.
대체 얼마나 어마 무시한 스케일의 사고를 칠 생각이기에 나한테도 비밀로 하는 건데!
그러나, 이런 김연희의 설득에도 진유리는 난처한 얼굴로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헤헤…… 알면 벌써 말했죠. 제가 어머님한테 비밀 같은 거 키우던가요?”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하늘에 맹세코 모릅니다!”
진유리가 당당하게 말했지만.
고백하자면, 짐작 가는 바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너 잠입 잘하잖아. 몰래 영국으로 가져다만 놔. 아무 데나 상관없어. 영국이면 돼.”
“조사? 그딴 거 필요 없어. 어차피 닥치는 대로 다 부술 거니까. 괜히 쓸데없는 짓해서 꼬리 잡히지 말고, 넌 일 끝나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사고가 나고 며칠 뒤에 들은 전화 내용.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가 꾹꾹 눌러 담겨 있던 게 이제껏 박기혁을 본 이래 가장 열 받은 모습이었다.
통화가 끝나고 잠든 척 기다렸다 몰래 폰을 살펴보니, 폰에 쓰여 있는 이름은 ‘올리버 아빠 놈’.
올리버 아빠라면 그때 한 번 본 수상한 남자가 맞을 거다. 농담으로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관있나 뭐.’
이 타이밍에 박기혁이 화낼 일이라면 틀림없이 이번 습격과 연관이 있을 터.
눈 돌아간 건 이쪽도 마찬가지란 말이야.
내 새끼들을 위협했음에도 웃어넘길 정도로 진유리는 너그럽지 못하다.
‘될 대로 되라지.’
진유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혁이가 나섰다면, 그게 누구든 지옥 끝까지 쫓아가 당한 것에 곱절을 갚아 주리라.
그리고 이는 정확했다.
아니, 생각보다 빨랐다고 말해야 할 거다.
“대표님! 대표님!!”
본사에 도착하자, 비서실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그러며 패드를 건네는데.
그 순간 화들짝 놀라는 김연희와 진유리.
거기에는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저들은…….”
검은 복면을 쓴 무리들. 그 가운데에 의문의 가면을 쓴 남자. 그리고 무릎 꿇려 있는 금발의 남자.
굉장히 익숙한 구도였다. 불과 며칠 전 김연희가 본 영상과 판에 박힌 듯 흡사했으니까.
이제 이렇게 말하겠지.
“우리는 복수를 위해…….”
- 우리는 복수를 위해 왔다.
역시나 기분 탓이 아니었다.
단지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만 있을 뿐, 대사부터 구도까지 모든 게 일치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을 휩쓸었던 테러리스트 ‘복수자’와 말이다.
- 우리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되돌려 줄 거다.
모두가 평등하게.
말을 마친 가면인이 검을 들어 내려쳤고, 잠시 뒤 카메라는 붉은 피로 가려지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죠?”
“영국입니다.”
“……!!”
“……!!”
* * *
같은 시간, 바다 건너 영국에서 이 영상을 보던 태사자가 와락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크윽.”
신체 일부를 자르는 고통이 엄습한다. 자신의 분신인 ‘프로토’의 목이 날아가며 발생한 고통이다.
태사자가 수호령이 된 뒤에 이 정도로 고통받은 적이 있던가. 아니, 고통이란 단어를 잊고 살았다는 게 맞을 거다.
“제기랄!!”
한바탕 욕을 퍼부으며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든다.
“가디언들 불러!! 지금 당장!”
잠시 뒤, 영국의 수호기사라 불리는 가디언들이 태사자의 궁전으로 들어섰다.
테우타테스, 디안케트, 마나난 맥 리르, 아르티오, 베르베이아……
거기에 태양창 ‘브류나크’의 주인인 ‘루 라바다’도 함께였다.
1년에 한 번도 모이기 힘든 이들이, 태사자의 명령 한마디에 모였다.
현재 태사자의 권위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모습이리라.
모두가 모인 자리.
태사자가 평소처럼 제일 마지막에 들어섰고, 가디언 전체가 일제히 일어서 예의를 갖췄다.
“왜 너희를 불렀는지는 알 거다.”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이미 아니까.
복수자란 이름의 테러리스트가 공개적으로 목을 자른 사내는.
프로토.
태사자의 첫 번째 분신이니까.
“이곳은 나의 영토이며, 오롯이 나의 제어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의 분신이 죽었다.
그것도 나의 권역 안에서.
이것은 모욕이며 조롱일지니.
“두말하지 않겠다.”
태사자가 검을 내리치며 소리친다.
“놈을 잡아라. 내게 바쳐라. 산 채로 무릎 꿇려라.”
그리고 내 명예를 회복해라.
“Yes, my lord!!”
가디언이 군례를 외치며 스승이 내린 ‘투구’를 썼다. 이제 그들이 투구를 벗는 경우는 둘 중 하나리라.
명령을 완수하거나, 죽음에 이르거나.
* * *
카메라가 꺼지고, 나는 가면을 벗었다. 동시에 내 뒤에 시립해 있던 검은 복면인들, 스켈레톤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잘 나왔겠지.”
하라는 대로 했으니 잘 나왔을 거다.
지금쯤 태사자 녀석이 방방 뛰고 있겠지, 쿡쿡 비웃으며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목을 든다.
프로토란 녀석.
수호령의 분신답게 기억을 뜯어보는 것은 힘들었지만, 시공간의 공간에서 한 만 년쯤 푹 삭히니까 정신이 붕괴됐는지 젖 먹던 기억까지 불더라.
“힘을 회수하려는 모양이네.”
시체에 담겨져 있던 마나가 흩어지며 어딘가로 사라지려 한다. 아마도 본래의 주인인 태사자에게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본데.
누구 마음대로.
피식 웃으며 잡고 있던 머리를 휙 뒤로 던진다. 순간 허공이 부서지며 등장하는 거인.
거인이 입을 벌린다.
심연의 입속으로 쏙 빠져드는 프로토의 머리.
태사자에게 돌아가려던 힘이 거인에게 흡수된다. 꼴에 수호령의 분신이라고 꽤 저돌적인 마나다. 아마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시도조차 못하고 몸이 터졌으리라.
하지만.
우리 거인이는 편식하지 않는 아이.
소화된 힘이 내게로 전해져 오는데.
“괜찮네.”
양이 꽤 된다.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쓸데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돌아가 볼까.”
생각해 보면 내가 추억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제국 시절이라며, 마왕이라며,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때는 이랬는데, 나 때는 저랬는데.
라떼 찾으면 꼰대라는데, 생각보다 더 꼰대 같았던 것 같다.
그래서 행동으로 보여 주려고.
입만 산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행동으로 증명을 해야 되겠지?
육망성 마법진이 내 몸을 감싼다. 몸 전체에 새겨지는 육망성.
그 순간 시공간이 멈추고.
내 몸의 육망성이 옥죄어 온다.
단순히 얼굴만이 아닌 몸 전체가 변형되는 고위 변형 마법.
폴리모프 발현.
폴리모프
Polymorph
우드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충격이 전해 온다.
뒤따르는 고통…… 뼈마디가 분리되는 고통이 이어진다. 실제로도 두개골, 척추, 갈비뼈, 팔, 다리, 신체의 모든 뼛조각이 변형되는 중.
그렇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내 신체 곳곳에서 움푹움푹 패이고 차이고를 반복했고.
잠시 뒤 나는 박기혁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아그네스 리차드.
마왕이라 불렸던 시절의 나로.
“음, 오랜만이네.”
박기혁과 비교하면 심히 비루한 몸이다.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
박기혁의 육체가 워낙에 완벽해서인지 더욱 비교되는 ‘리차드’의 몸뚱이었다.
“대체 이 몸뚱이를 가지고 어떻게 마왕이 됐지.”
과거의 나여, 넌 대체 무슨 싸움을 한 거냐.
그나마 볼만한 건 얼굴이려나. 다크서클이 살짝 비치는, 소위 퇴폐미가 얼굴에 가득하다.
이걸로 제국 시절 많이 날렸지.
물론 제대로 쓴 적은 없지만.
이만하면 적당히 추억을 되새겼으니, 움직여 볼까나.
걸음을 옮긴다.
내 뒤로 검은 망토가 휘날린다.
내 마룡기 ‘전우’. 원래는 망토로만 사용하던 녀석이지만, 이번만큼은 용도 변경.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내 몸에는 로브가 입혀져 있었다.
시선이 모인다.
“미친 거 아니야? 이 날씨에 로브?”
“코스프레인가?”
“마법사 지망생인가 보지.”
“엄마, 저 아저씨 이상해.”
“보지 마, 지지야.”
하긴 복장이 워낙에 특이해야지. 마치 ‘나 마법사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은 복장 아닌가. 지금 길가를 지나다니는 저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우스꽝스러운 의상일 것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곧 그 웃음이 비명이 될지니.
“나와라.”
마나가 꿈틀대더니, 순식간에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어둠이…… 어둠이 내게로 온다.
음차원 마나가 흡수되고 있는 것.
일반인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양의 음차원 마나.
시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꺄아아아아-!”
“도망쳐!!”
나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공포.
이 공포의 비명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게로 전해 오는 음차원 마나는 더욱 농밀하고 아찔하다.
오랜만에 맡은 음차원 마나라서 그런가.
“끝내주잖아.”
씨익, 웃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
내 경험상, 도시를 무너뜨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세 가지다.
물(water).
길(road).
성(castle).
사람은 왜 없냐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제일 하책이니까. 잘못하면 적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빌미만 주거든.
저 세 가지만 없애면 난민들이 넘쳐 날 것이고, 오히려 사람들은 적들의 족쇄가 될 것이다.
‘여기는 성은 없으니까, 대신 차로 할까.’
음차원 마나를 한 움큼 잡아 땅으로 내리꽂았다.
검은 연기가 헤일처럼 솟구쳐 도시를 집어 삼키고, 검은 복면을 쓴 스켈레톤 군단이 연기를 타고 도시 전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워라.”
스켈레톤들이 수로로 몸을 던졌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메말라 가는 물. 사람들은 사라지는 강을 보며 머리를 움켜잡았다.
스켈레톤들이 길을 부순다.
잘 정돈된 길이 엉망이 되기까지는 한순간이었다. 그 옆에서 차량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스켈레톤 군단.
내가 농담으로 부순다고 말한 게 아니다.
“깡그리 부숴라.”
그때 그 시절, 만인의 공포였고.
제국의 재앙이었던 시절의 나.
진짜 마왕을 보여 주마.
“하하하하!!”
그날, 영국의 이름 모를 도시 하나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