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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03화 (20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03화>

지금 와서 말하는데, 이 세계는 분명히 이상하다.

“일단 이 마나부터 말이 안 돼.”

말이 안 될 정도로 마나가 많다.

제국에 비하면 몇 배 이상의 마나 분포도. 이 정도면 이 세계가 마나의 바다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더 기도 안 차는 사실은, 이렇게 차고 넘치는 마나들이 하나같이 착해 빠졌다는 거다.

본디 마나는 자아를 가지고 있고,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술자에게 다가가는데, 여기는 자아란 게 있기나 한 만큼 희미하다.

약간의 마나 감응력만 있으면 마나를 느끼는 건 일도 아니란 말.

이로 인한 결과는 극적으로 나타났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초인들.

뭐, 어떤 뉴스에서는 어딜 가나 초인이 부족하다고 떠드는데,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자격 미달의 초인들이 마법을 사용하고 칼을 잡고 설치고 있는 게 이 세계의 현실이었다.

“게이트는 또 어떻고. 그거도 웃겨.”

다른 차원으로 이뤄진 문이라니…… 세계의 룰이 독립적으로 설정된 여기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별계의 차원이다.

즉, 여기 사람들은 ‘차원 이동’이라는 고차원적인 마법 현상을 마치 정수기에서 물 따라 먹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정작 ‘공간 이동’에 대해서는 감도 못 잡았으면서 말이다.

“이게 말이 안 되거든? 차원 이동이란 게 공간 이동보다 훨씬 상위 개념인데, 워프는 시도조차 못 하면서 게이트 공략은 자연스럽게 해. 더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면서 곱하기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냐. 설명도 힘들다.”

저주받은 아티팩트는 또 어떻고.

아직도 경매장에는 ‘저주받은 아티팩트’가 헐값에 올라온다.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것 같은데, 아무리 물건에 걸린 저주가 해주하기 어렵다고 해도, 저주 하나 풀지 못해 저 보물들을 헐값에 내놓는 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

기술이 없다고?

마법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자, 그런 면으로 따지면 ‘스킬 북’은 어떻게 설명하는데.

스킬 북이나 무공서처럼 사용하기만 하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엑티브형 아티팩트는 나날이 발전해, 이제는 어느 정도 시세가 안정되고 있다.

시세가 안정됐다는 말은 뭐겠나. 공급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는 말과 똑같다. 이게 무슨 말이겠나. 사냥 따위가 아니라 인간이 직접 제작하고 있다는 거다.

“저주에 대한 이해도는 땅바닥을 기면서, 머리에 기술의 묘리를 강제로 때려 박는 일종의 ‘각인’ 버프 기술은 발전했어.”

해주와 각인.

누가 봐도 명백히 후자가 훨씬 어려운 기술이다. 한데 이 세계에서는 전자가 훨씬 어려운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아무리 환경이 달라졌지만 마나의 개념과 마법의 발전이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이뤄질 수 있나?”

좋아.

마법은 뭐 그럴 수 있다 친다.

백번 양보해 공간 마법이란 게 워낙 난이도가 극악하니까. 마나 밀집도가 높다 보니 그만큼 좌표 설정이 훨씬 더 힘들어졌을 테고.

저주도 굳이 번거롭게 해주할 필요보다는 새로운 아티팩트를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스킬 북’도 시대가 변해 갈수록 편리함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발전했다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변명, 혹은 이유를 갖다 대려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이게 이제껏 내가 그냥저냥 잠자코 넘어간 이유였고.

아닌 말로 저걸로 내가 손해 본 건 없잖나. 오히려 이득을 봤으면 봤지.

내가 손해를 본 것도 아니거니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데 굳이 나서서 이 불균형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어.”

내 손이 허공을 벌렸고.

곧이어 거인의 손바닥이 우악스럽게 실드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잡아

찢는다.

콰드드드드- 콰직-!

초록빛의 거대한 마나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지고, 찢어진 마나 벽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

“너.”

수호령 위그드라실.

“너희 수호령이야말로 이 문제의 근원이다.”

*   *   *

“문제의 근원이라니…….”

그렇게 심한 말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그드라실에게 불평할 시간은 없다.

코앞까지 다가온 박기혁의 주먹 때문.

거의 순간 이동하듯 거리를 좁힌 박기혁과 육망성이 그려진 주먹. 넘실대는 마나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저 주먹에 맞으면 아무리 수호령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한다.

입술을 질끈 깨문 위그드라실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초록빛 마나 벽이 생성. 돔 형태의 보호막이 그녀를 보호했다.

박기혁의 주먹과 위그드라실의 보호막이 충돌!

꽝-!

일격에 보호막이 한 겹 벗겨졌다.

순식간에 새롭게 완성되는 보호막. 식물이 보호막을 겹겹이 쌓아 대미지를 분산하는 위그드라실만의 기술이었다.

박기혁은 벗겨지는 보호막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어디,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자.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뻗었고, 위그드라실은 공격을 막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해예요, 기혁 군!”

“아니야?”

“아니죠. 전혀 아니에요. 저희가 무슨 문제죠?”

“문제…… 많지. 아주 많아. 너희는 존재 자체가 문제야.”

주먹이 떨어진다.

꽝!

“너도 알 건데. 너희가 이 세계에 필요 없다는 거.”

와락, 위그드라실이 내면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린다.

“말이…… 심해요! 저희가 왜 필요 없나요.”

“아니, 필요 없어. 너희는 명백히, 이 세계에 불청객이다.”

“불청객이라니요. 저희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전해 줬는데요.”

다시 주먹이 떨어지고.

꽝-!!

“이거 얌체였네. 준 것만 생각하냐? 빼앗은 건 쏙 빼네.”

“무슨 말인가요. 뺏긴 뭘 빼앗았다는 말이죠?”

“모르는 척은. 너도 알 건데.”

흩어지는 위그드라실의 실드를 향해 얼굴을 바짝 들이미는 박기혁.

그러고는 비웃는다.

“자유.”

“……!!”

“너희가 인간의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하고 있잖아.”

비정상적인 인식과 기이할 정도로 조화롭지 못한 발전.

왜인지는 모른다. 무슨 의도인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저들이, 수호령이.

인류를 입맛에 맞게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이에 위그드라실이 억울함을 담아 소리 지른다.

“아녜요!”

“아니다?”

“네! 저희의 간섭은 모두 인간을 위해서였어요. 저희가 제한한 기술은 인간에게 해가 되면 해가 됐지, 전혀 좋지 못한 것들이었어요.”

공간 마법만 봐도 그렇다.

공간을 뛰어넘는 마법.

단순히 공간을 뛰어넘는 용도일 뿐이지만, 이게 현대 사회에 퍼지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치안부터 망가지겠지.

범죄를 저지르고 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나라로 건너가면 잡을 방법이 없다. 힘을 가진 이가 멋대로 활개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종국에 나라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 것이며, 인류의 불안 요소가 될 터. 장기적으로 보면 인류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다.

위그드라실은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주먹이다.

“지랄!”

콰앙-!!

“-큭!”

부서지는 보호막.

박기혁이 주먹을 내리쳐 위그드라실의 입을 막는다.

위그드라실이 충격에 뒤로 튕겨 나가며 빠르게 다시 실드를 전개했다.

“뭐? 인류에 도움이 되지 못해?”

하…… 이 새끼 봐라. 같잖은 소리를 정도껏 해야지.

박기혁은 차갑게 식은 얼굴로 위그드라실을 노려봤다.

“그렇게 인류를 위한다면서 마나 암은 잘도 놔뒀다?”

“…나 암이 갑자기…….”

“다 아는데 무슨 모른 척이야. 눈치껏 행동하자. 내 입에서 ‘권속의 계약’이란 말이 나오길 원하는 거야?”

“……!!”

찔끔!

부르르 몸을 떠는 위그드라실.

어, 어떻게…… 경악한 듯 입을 벌렸고, 박기혁은 냉소했다.

“킥. 알긴 아는가 보네.”

그가 요즘 살피고 있는 게 뭔가.

마나 암이다.

정확히는 권속의 계약.

상위 존재가 하위 존재를 권속으로 삼는 불평등 계약.

박기혁은 지금도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이유야 몇 번을 말했다시피 너무도 오랜 기간에 걸쳐 자생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기혁이 내놓은 최선의 방법. 이 권속의 계약에 접근, 세계에 접촉해 무작정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 마나 암, 너희 수호령이 만든 건 일찌감치 알았어. 권속의 계약 자체가 상위 존재만 할 수 있는 건데, 이 세계에 인간보다 상위 존재가 너희 말고 또 있냐.”

“…….”

“나는 여덟 놈 중 누가 이 미친 짓을 벌였는지, 그게 궁금했다. 한 놈인지 두 놈인지, 아니면 너희 전부가 함께 만들어 낸 건지.”

“아니에요!! 절대!”

“닥쳐! 아직 말 안 끝났으니까.”

그렇게 연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마나 암이 퍼지는 것을, 너희 수호령 전체가 암묵적으로 모른 체했다는 거야.”

애초에 모를 수가 없다.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지는 권속의 계약을 모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진짜 몰랐으면 무능의 증명이고, 알면서 방치했으면 부패의 고백이네. 무능과 부패. 이게 어디가 인간을 위한다는 거지?”

“후…… 진정해요, 기혁 군. 제가, 제가 설명할 수 있어요.”

“됐어. 설명 필요 없어. 직접 알아낼 테니까.”

직접 이 두 손으로.

박기혁의 두 손에 육망성이 깃들길 잠시, 박기혁의 뒤에서 자리를 지키던 구름이 떠나가라 포효하더니, 몸을 줄인다.

거추장스럽게 큰 크기는 전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법.

거인화

압축

줄여라.

작게, 더 작게.

구름 끝까지 솟아 있던 거인이 줄어들고, 그럴수록 위그드라실의 표정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또르르-

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위험해.’

본능이 맹렬하게 경종을 울린다. 그것은 생존 본능이었다.

본디 인간에게는 죽지 않는 수호령이지만 저 힘은, 지금 박기혁이 압축하고 있는 저 거인의 힘은.

아득히 법칙을 초월했다.

진짜 죽는다.

‘검’을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진심으로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검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위그드라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돼요.’

마나의 기류가 휘몰아치고.

그 순간.

위그드라실의 등 뒤로 세계수가 솟아올랐다.

뿌리에서 줄기가 자란다. 줄기가 구름을 뚫고 나간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종국에는 태양마저 가렸다.

위그드라실의 본체

세계수 강림

世界樹 降臨

위그드라실의 주위로 휘몰아치는 초록빛 구체들.

곧이어 초록빛 구체들이 광체를 내뿜는다. 씨앗에서 생명이 발아하듯, 광체와 함께 식물의 줄기들이 어지럽게 뻗어 갔다.

순식간에 확장하는 식물들.

동시에 하늘에서는 약화가 담긴 빗물이, 땅에서는 정체불명의 식물이, 환상은 지속적으로 정신을 교란하며, 가시덩굴이 소용돌이치며 박기혁을 압박해 나갔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마법 세례.

그사이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던 식물 더미는 기어코 박기혁까지 닿았고,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듯 식물의 파도가 박기혁을 집어삼켰다.

눈 깜짝할 새 매몰되어 가는 박기혁.

하지만.

그때였다.

식물이 박기혁을 덮친 순간, 그때 박기혁의 거인이 드디어 그의 신체 안에 갈무리되는 게.

다시 마나를 끌어올린다.

전혀 다른 종류의 힘.

아포칼립스

Apocalypse

육망성 마법진이 박기혁의 몸 주위로 수십 개 떠오른다.

그러더니 마치 링처럼 박기혁의 사지를 옥죄어 갔다. 거인의 힘이 갈무리된 신체를 잠그는 방법.

여기에 검호까지 깨우면 완전체겠지만.

‘일단 죽일 생각은 없으니 여기까지만.’

이걸로도 충분하다.

닿기만 해도 존재 자체가 지워질 위력.

“후…….”

마음에 든다.

박기혁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이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주먹을 뻗는다.

거인의 힘이 담긴 주먹을.

파앙-!!

분쇄되는 식물 더미.

모든 마법이 일격에 흔적도 없이 삭제됐다.

다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발이다. 허공을 부술 것처럼 박기혁이 발을 올려 찼다.

파앙-!!

발차기 한 방에 공기가 터지며 구름이 흩어졌다. 그 여파에 휩쓸린 세계수도 무사하지 못했다. 잎사귀들이 허공에서 그대로 삭제됐고, 나뭇가지들은 조각나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다.

쾅-! 깨지고.

콰직-! 뜯기고.

까아앙-! 부서졌다.

신들리듯 움직이는 박기혁.

그럴수록 처참하게 부서지고 있는 세계수.

아니, 이 공간 전체가 진동하며 사라지고 있다.

이건 정당한 결투가 아니다.

압도적인 힘을 앞세운 일방적인 폭력일 뿐이었다.

카드드득!

그렇게 박기혁이 부서진 파편 사이를 돌진해 위그드라실을 노리고.

주먹이 닿는 순간.

지직-지직-

끝내.

파즈즉- 와장창-!!

부서졌다.

위그드라실 최후의 실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는 녹색 보호막.

여덟 수호령 중에서 방어만큼은 가장 탁월하다고 알려진, 위그드라실의 방어가 지금 이 순간 부서진 것이다.

그리고, 박기혁의 팔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마나의 파편에 긁히며 생채기가 남에도 억지로 쑤셔 넣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잡아챈 손.

꽈악.

있는 힘껏 손아귀에 힘을 쥐어 당겼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

위그드라실.

멱살이 잡힌 위그드라실이었다.

“이 꽉 깨물어라.”

딱 죽기 직전까지 패 주마.

박기혁이 사납게 웃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   *   *

얼마 뒤 지혜의 숲.

사실 이제 이곳은 숲이라는 말도 아깝다. 풀과 꽃, 나무…… 숲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그야말로 폐허가 된 이곳에 널브러져 있는 위그드라실. 그리고 그 뒤로, 그녀의 본체인 세계수가 두 동강 나 초라하게 쓰러져 있었다.

내게 흠씬 두들겨 맞아 성한 곳이 없는 그녀.

시퍼렇게 멍이 든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보던 위그드라실이 입을 열었다.

“완전히 졌네요.”

“그럼 이기려고 했냐.”

“필사적으로 막는다면, 막을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죠.”

“소감은?”

고개를 휘휘 젓는 위그드라실.

“못 당하겠네요. 당신이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에요.”

“다른 수호령도 그렇겠지.”

“틀림없이요.”

“그럼 됐어.”

볼일 끝.

탁탁, 손을 털며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너니까 이 정도만 한 거다. 다른 놈이었으면 정말로 끝까지 갔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봄이한테 고마워해. 요정 이모만 아니었으면 진심으로 소멸시켰을 거니까.”

아, 그리고.

“옛정을 생각해서 말하는데 당분간 수호령들과 엮이지 마. 중국하고 영국 쪽은 특히.”

“……어떻게 할 건가요.

“어떻게 하긴.”

난 찢어진 옷을 벗어 던지고는 아공간에서 새 셔츠를 꺼내 입으며.

“당한만큼 돌려줘야지.”

게이트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검은 망토가 휘리릭 내 몸을 감싸고.

시야가 점멸하더니.

곧이어 찾아온 어둠.

눈을 뜬다.

앞, 뒤, 양옆……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 관처럼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직 화물칸인가?’

주먹을 뻗었다.

우지끈.

굉음과 함께 판자가 뜯겨져 나가고, 몸을 일으키자…… 역시나 화물로 가득 찬 공간.

그래.

이곳은 영국.

어느 공항인지는 모른다.

대충 보내 달라고 했으니까.

“그럼 어디, 놀아 보자고.”

먼저 손을 뻗은 건 너희다.

너희가 내 영역을 침범했으니.

이제 나도 너희의 영역을 부숴 버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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