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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201화 (20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01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우리를 안고서 해 주셨던 말씀이 있었다.

“너희는 특별하단다.”

봄이는 저 하늘에 떠 있는 해님보다 찬란하다고 했다. 헤나는 밤을 비추는 달님보다 화려하다고 했다.

햇님과 달님이라니!

낯의 주인과 밤의 주인이다!

박봄과 박헤나는 할머니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다.

근데 정작 이 말을 해 주시던 할머니는 안색이 어두워지셨다.

왜 그러세요, 할머니? 이렇게 묻자 할머니는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미 나이가 되면 세상 굴러가는 게 보여요. 사람은 말이야, 대부분은 자신의 그릇을 타고난단다. 그 그릇만큼의 행복을 누리고, 그 그릇만큼 아파. 할미는 성장하는 만큼 고통을 받는다고 여기는 편이란다.”

시련, 고난, 역경……

이야기 속 주인공이 겪는 성장의 고통들.

“특별함에는 대가가 따른단다. 그게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련일 수도, 견디기 힘들 만큼 무거운 책임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 할미는 걱정이구나. 우리 강새이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할머니는 괜한 걱정이라며 손을 휘저었지만, 박봄은 똑똑히 기억한다. 자신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할머니의 얼굴을 말이다.

사실 어렸을 때라기보다 불과 몇 년 전 이야기지만, 박봄은 항상 생각했다.

특별함의 무게에 대해……

그렇게 아이의 시간이 흘렀다.

박봄은 더 이상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지 않게 됐다.

호냥이 이모가 사실은 ‘고모’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으며, 헤나가 아빠를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박봄한테는 언니라 부르지 않는 것에 화를 내기도 했다.

장래 희망 칸에 ‘옵티멈 대표’라는 다섯 글자를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됐을 때.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귀염둥이 아가 박봄에서, 어느새 언니 박봄이 되고, 누나 박봄이 됐으며, 골목대장 박봄에서 전교회장 박봄이 돼 있었다.

이제 박봄은 안다.

할머니가 말한 특별함의 의미를.

“우린 특별해.”

남들과는 다르기에 겪는 시련과 무게.

그 책임을.

“그러니까…….”

가자.

우리가 지켜야 해.

두 아이가 깨달은 특별함의 의미.

그것은 지키는 것이었다.

*   *   *

“이얍!!”

박봄이 작은 체구를 비틀며 대검을 휘둘렀다.

자기 몸보다 커다란 대검.

체구보다 큰 무기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자세가 무너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특히나 그 사용자가 겨우 10살배기 어린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눈앞의 박봄은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소녀다.

검호류 발검술

달빛 베기

한 줄기 달빛이 번쩍이더니.

쐐액-!

깨끗한 검격.

절단되는 적.

다리가 잘린 권속이 바닥을 뒹굴었다.

실드 밖에서 이 모습을 본 프로토는 경악했다.

“어떻게 권속이!”

권속이 무엇인가.

한 톨의 마나도 가지지 않은, 질서를 벗어난 존재다. 마나를 사용하는 모든 기술에 면역인 만큼, 마나의 노예인 인간들에게는 가히 재앙과도 같은 것인데!

왜 권속이 베이는 것인가! 땅바닥을 구르는 거냐고!

이유는 명확하다.

눈앞의 이 소녀는 인간의 격을 벗어났으니까.

프로토가 태사자와 인간 사이에 걸쳐 있다면, 박봄 또한 다혈족과 박기혁의 일부를 융합하며 인간을 초월했다.

그러니 박봄에게 권속은 조금 빠르고, 조금 센 좀비나 다름없는 수준.

팡-!

박봄은 혹시나 다리를 다시 붙일까, 잘려 나간 다리를 운동장 멀리 차며 다음 적을 향해 도약했다.

‘아직 많아.’,

여전히 권속들은 선생님들을 노리는 중.

숫자가 많다. 영화 속 좀비처럼 우르르 모여 달려드는 게 역겹고 무서웠다.

그래도 지켜야 돼.

지킬 수 있어.

어지러운 전장에서 대검을 휘둘렀다. 사방팔방으로 몸을 비틀며 검격을 뿜어낸다.

‘우선 선생님부터 보호해야 해.’

이쪽을 노려보며 마법을 쏴 대고 있는 저기 뱀눈 아저씨가 방어 마법을 뚫고 들어오면 그 길로 끝이다.

저 아저씨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나도 막기 힘들어.

기회는 지금뿐.

‘전력으로!’,

판단이 섰으니 행동은 빨랐다.

감춰 뒀던 힘을 모두 개방한다.

‘날개.’

우리엘 & 라파엘

전개

박봄의 등 뒤로 하얀 빛무리와 함께 날개 ‘우리엘’과 날개 ‘라파엘’이 펼쳐졌다.

옛날 깜찍한 큐피트를 연상케 했던 날개는 없었다. 눈앞의 날개는 우리엘과 라파엘이라는 대천사의 위용을 보여 주듯, 우람하고 신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날개가 펄럭이며 마나를 흡수한다. 박기혁의 ‘신체’를 이용한 멀티 코어 기능.

이제 마나 걱정은 끝.

모아진 마나로 또 하나의 힘, ‘혈족’을 끌어올렸다.

“포실아!”

마룡기

박포실

포실포실.

허공을 찢으며 떨어지는 슬라임 포실이.

박봄이 그 순간 손바닥을 마주쳤다.

혈마술

혈족 소환

허공에서 떨어지는 박포실이 조각조각 분열된다.

정확히 16조각으로 분리된 박포실.

조각난 슬라임 개체가 땅에 닿는 그때, 슬라임이 변형하며 형체를 갖춘다.

다리가 만들어지고, 허리가 생기고, 몸통에 팔이 붙고, 종국에는 인간 형태를 갖췄을 때.

16마리의 슬라임 인형들이 무기를 뽑아 든다.

“막아!”

전력으로 달려가 권속들의 앞을 막아섰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소용없다!’란 고함이 들려온다. 이미 시간을 벌려고 소환물을 소환해 봤지만 권속들에게는 단방에 쓰러진 것.

소환물은 마나로 만들어진 구성체. 반대로 권속은 마나가 전무(全無)한 전력.

때문에 권속의 손짓 한 번에 소환물이 찢겨 나갔고.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캉-!!

“……!!”

막았다.

슬라임 인형들은 권속들의 전진을 막아섰다.

‘마나가 안 되면 혈족으로.’

무희, 악묘, 숙수…….

순수한 혈족으로만 이뤄진 소환물. 최초의 다혈족 계승자, 박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소환물이었다.

무희의 인형은 감각을 비튼다. 악묘의 인형은 눈에 잡히지 않는 속도로 적을 걷어차고, 숙수는 고기의 결을 찾아 적을 찔러 갔다.

여기에 박봄 본인까지 대검을 들고 난입.

“여기는 내가 막을 수 있어! 헤나야, 거기는!”

박봄의 외침에 반대편에 있던 박헤나가 피식 웃었다.

“나를 뭘로 보고.”

이쪽도 인간의 격을 뛰어넘은 소녀. 힘만 세고 멍청한 놈한테 당할 만큼, 나 박헤나는 나약하지 않다.

처음은 밑 준비부터.

“얘들아.”

쿠웅!!

허공이 찢어진다.

매캐한 어둠 속에서, 네 줄기 균열을 만들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포메트?

박기혁의 오른팔, 바포메트의 머리였다.

그 옆으로 왼팔 아수라의 머리가 같이 모습을 드러냈고, 다리에는 차례로 키메라와 펜릴이 모습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박기혁한테 받은 ‘팔, 다리’들.

헤나의 팔다리에 대악마를 가리키는 문양이 그려졌고.

멀티 코어 가동.

대기의 마나가 출렁이며 흡수된다.

그 순간.

테라포밍 완전체

아버지는 그랬다.

힘과 기술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힘을 택하라고.

왜냐하면.

‘그게 폼 나니까!’

압도적인 힘!

그거야말로 모든 전사의 꿈이자, 로망.

한 명의 당당한 전사인 헤나도 마찬가지다.

머리 부분만 빼고 검청색 곤충의 외피가 뒤덮인다.

외피 안에서 섬유질이 빼곡이 들어차며 박헤나의 어린 근육들을 보조 및 강화,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손을 뻗는다.

충술

무기 구현

허공을 찢고 날아든 날벌레들이 모여 응집.

마치 마나라도 되는 양 형체를 갖췄고, 그것은 한 자루의 ‘창’으로 변했다.

창을 던져 꿰뚫는다.

푸쉭-!

가슴이 꿰뚫린 권속.

힘에 못 이겨 꿰뚫린 채 몇 바퀴를 구르더니, 잠시 뒤 땅을 기며 경련을 일으켰다. 신체 내부로 침투한 ‘기생충’에게 공격당한 것이다.

다시 도끼를 던져 찍는다.

콰직!

근처에 오는 놈에게는 철퇴를.

쿠웅!!

그때,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

성인 남성의 형체를 띤 권속을 비롯해 대여섯 마리가 온몸을 날려 헤나를 덮치는데, 헤나는 그쪽을 보지도 않은 채 발을 굴렀고.

바닥에서 뻗어 온 수십 자루의 창날.

고슴도치처럼 헤나 주위로 돋아난 창날에 난자당하는 권속들.

푹- 푹- 푸욱-!!

걸레짝이 된 권속들이 땅바닥을 뒹굴었으며, 잠시 뒤…… 벌레에 중독된 권속들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저 멀리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대충 들어보니 저기 마법사부터 처리하라는 말.

“그건 안 되지.”

시간을 벌어야 되거든.

헤나가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고.

곧 모습을 드러낸 곳은 또 다른 권속의 등 뒤. 곧바로 다리를 걷어찬 뒤, 무릎을 부숴 버렸다.

박봄과 박헤나.

두 천재의 등장으로, 권속의 발이 묶였다. 자연히 진성재와 노선생들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고, 잠깐이지만 흔들렸던 방어 마법은 다시 빛을 내뿜으며 제자리를 찾았다.

“젠장! 죽어! 죽으라고!”

흥분한 프로토가 펄쩍펄쩍 뛰며 온갖 마법들을 쏟아 냈다.

권속들도 주인의 마나에 반응하며 힘을 바득바득 짜내 두 아이를 무너트리려고 했다.

처절한 혈투.

아찔한 격돌.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두 아이는 눈빛을 교환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지금쯤이면.

‘엘이.’

‘멍청이가.’

갔을 거다!

두 아이가 무기를 휘둘렀다.

*   *   *

한편 혼란스러운 전장이 펼쳐진 본관을 뒤로한 채, 이스마일이 숲 아래로 달리고 있었다.

봄이랑 헤나랑 함께 싸우고 싶었지만 둘은 이스마일을 만류했다.

“부탁해, 엘. 너만큼 기척을 지울 수 있는 아이가 없어.”

“나약한 게 괜히 다치지 말고, 아버지나 불러. 어서!”

이미 산 전역이 습격자의 마법으로 장악된 상태.

이 상태에서 아무런 조치 없이 탈출한다면 곧바로 잡혀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그래서 박봄과 박헤나는 이스마일을 보낸 것이다.

이스마일은 ‘성운’의 힘을 가진 아이.

‘변화’의 정수를 익힌 이스마일이라면 얼마든지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마나의 격류가 출렁인다.

프로토가 깔아 놓은 은폐, 탐지 마법들.

이스마일의 이마에서 별이 빛난다. 그가 두 손으로 꽉 쥐고 있는 검집도 그에 맞춰 반짝였고.

마나의 격류가 이스마일을 빗겨 나갔다.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존재를 지운 이스마일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짜내 신체까지 강화해 가며 전력 질주.

곧이어 산 초입, 학교의 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도착하는데.

“헉헉…….”

부서진 정문.

현판이 불쌍하게 쪼개져 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처음으로 다닌 학교인데, 이렇게 부서지다니.

그래도 마음을 굳세게 먹으며 걸어갔다. 뽀얀 마나막이 있는 곳까지.

외부의 출입을 막기 위한 마나벽.

이스마일은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 순간, 이스마일의 이마에 있던 성운이 반짝이고.

변화의 묘

조각 변화

우유색 차단벽이 조각난다.

얼음처럼 균열이 이르더니 서로 다른 빛을 뿜어내고, 마지막에는 조각난 마나벽이 부스러기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뚫었다!

뻥, 동굴처럼 구멍이 뚫린 마나벽.

이스마일은 재빨리 구멍으로 나가 아공간을 열었다.

“빨리, 빨리.”

떨리는 손을 급히 아공간에 넣고는 끙차, 힘을 내어 꺼내 놓는다.

무언가 아공간에서 불쑥 나온다.

이스마일의 체구보다 족히 두 배는 큰, 하얀 무언가.

그것은.

스켈레톤이었다.

“스승님.”

이스마일이 스켈레톤의 두개골에 손가락을 대고 성운의 힘을 끌어올렸다.

친구들이 위험해요.

도와주세요.

간절히 빌며 있는 힘껏 마나를 들이부었고.

이런 소년의 기도에 응답하듯.

잠시 뒤.

스켈레톤은 어둠에 휩싸이고 있었다.

*   *   *

어느 순간이 지나자, 팽팽하던 전황애 점차 균열이 갔다.

당연히 우위에 서고 있는 건 프로토였다.

애초에 태사자의 힘을 이어받은 분신이다. 물론 봄이나 헤나도 상위 존재의 힘을 이어받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쪽은 ‘권속’을 집어삼키며 힘을 강화시킨 지 오래.

숙련도나 힘의 총량에서 차이가 났다.

점점 밀리는 전장.

진성재와 노선생들은 마나벽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에 달했는지 입술이 퍼래졌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박봄과 박헤나도 처음의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지는 못했다.

이제 시간문제다.

누구 한 명만 쓰러지면 이 아슬아슬한 대치도 끝나리라.

그러면…….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프로토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바뀌었다.

고작 노예 주제에 감히 나의 발목을 잡다니, 그 대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줄 거다.

저 노인네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잡아먹고.

저 아이들은 실험체로 가져갈 거다.

특히 저기서 온갖 무기를 들고 설치는 저 꼬맹이는 아마도 목표일 거다. 힘에서 이쪽과 흡사한 기류가 풍기니까.

저 아이는 아버지에게 넘기고.

나머지 한 아이는 이쪽에서 꿀꺽.

‘좋은 양분이 되겠지.’

흐흐. 프로토가 웃는 사이 마침내, 방어막에 균열이 간다.

다시 보니, 첫 번째 권속의 일격에 어깨가 뜯겨져 나갔던 노인이 바닥에 쓰러진 것.

이제 끝이다.

쩌저적…… 유리창에 금이 가듯, 이제껏 학교를 지켜 온 방어막이 몇 갈래로 찢어지고 있었다.

방어 마법을 때리던 수천 자루의 검이 한곳에 모여 집요하게 균열을 때렸고.

자그마한 균열이 삽시간에 번지더니.

끝내, 마법 전체를 붕괴시켰다.

와장창창-!

“끝났다, 이 버러지들아.”

내가 받은 수모를 배로 돌려주겠다.

끔찍한 살기가 전 지역을 덮쳤다.

설쳐 대던 저 꼬맹이부터…… 단숨에 몸을 날려 꼬맹이의 머리채를 잡아채려 했다.

그래.

분명히 박봄의 머리채를 잡아채려고 시도했다.

근데……

“어억?!”

왜 자신의 머리채가 들어 올려지나.

갑자기 뒤로 몸이 쏠리더니, 두피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뒤로 쏠리는 프로토.

그렇게 머리가 쏠린 프로토의 눈에 비친 건, 기이한 음영에 가려진 거구의 남자, 박기혁이었다.

“다시 지껄여 봐.”

우드득-

머리카락이 모조리 뜯겨져 나갔다.

관절이 빗겨 나가고 근육이 끊긴다. 뼈가 가루가 되고, 내장이 팽창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

“끄아아아악-!!”

“엄살 피우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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