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99화>
알다시피 나는 정면 대결을 마다할 놈이 아니다.
권력, 정치…… 더럽고 추접한 이득이 오고가는 재미없는 싸움이 아닌, 힘 대 힘으로 벌이는 싸움.
태초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목숨이란 판돈을 올려놓고 벌이는, 진정한 사나이의 싸움.
이것이야말로 공명정대한 정면 대결이며, 내가 추구하는 폼 나는 싸움이다.
반면.
지금 앞에 있는 녀석들은 단언컨대,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분류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비열한 놈들.
명예도 신념도 없이, 그저 나보다 약한 자를 상처 입히고 죽이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그래서 인질을 앞세운 채 몸을 숨기는 기생충 같은 놈들.
난 이런 놈들을 혐오한다.
아니,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야지.
그래서 호칭을 따로 하는 거다.
쓰레기라고.
……
…
“살려…… 웁!!”
스켈레톤의 두툼한 손이 쓰레기의 입을 틀어막는다.
필사적으로 버둥대 보지만 딱 봐도 마법계 초인. 내 힘의 일부를 가진 스켈레톤을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질질.
쓰레기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간 스켈레톤.
눈에서 귀기가 서리더니, 등을 찢으며 척추에 손을 박는다.
그리고.
몸을 욱여넣는다.
산 채로 스켈레톤에게 몸을 뺏기게 된 것이다.
“웁-!!”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아득하게 벗어난 고통에 몸부림치던 쓰레기.
그나마 기대할 것은 죽음의 안식뿐이지만.
누구 마음대로.
아는 사람들은 알 거다.
난 쓰레기들을 절대 쉽게 죽이지 않는다.
아포칼립스
Apocalypse
쓰레기의 뒷목에 육망성이 그려지는 순간 영혼이 봉인, 분리된다.
그렇게 분리된 영혼은? 스켈레톤이 삼켜 내게 보냈다.
악취가 나는 영혼이 비명을 지른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창살을 잡고서 매달렸지만, 이미 안에 들어 있던 다른 쓰레기 영혼들이 손을 뻗는다.
참고로 얘들은 바로 전에 극장가에서 저항하던 쓰레기다.
함께 고통받자.
무슨 아귀도 아니고,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것 좀 봐라.
이래서 악인들이 재미있다.
한편, 영혼이 사라진 육체에는 스켈레톤이 들어앉는다.
우득우득-
그로테스크한 소리를 내며 재조립되는 인간.
피부 위로 뼈들이 오돌토돌 움직이는 시간이 보이고 잠시 후…… 기존에 있던 뼈들이 스켈레톤에게 모조리 삼켜졌다.
좀 전까지 이 인간은 쓰레기였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충실한 전우다.
마이크 테스트.
“아…… 아- 아!”
응, 아니오, 예, 그래…… 기본적인 응답부터 끄덕끄덕, 도리도리 같은 자주 쓰는 제스처까지.
속성 인간 강의를 마친 다음, 어둠 속에서 걸음을 내딛는 전 인간 현 스켈레톤.
복면을 푹 눌러쓴 채, 인파에 섞여 들어간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현장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인질을 앞세운 쓰레기들을 상대할 때 정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비열한 놈은 비열하게 상대해 줘야 하는 법.
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 숫자가 채워졌으면, 이제 타이밍이 만들어졌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백화점 부지 전체가 육망성에 휩싸이고.
쿵!
진동과 함께 건물 전체가 떠오른다.
리버스 그래비티
Reverse Gravity
중력 역전.
무려 십여 층의 백화점이 하늘로 떠오르는데 내부가 무사할리 있겠나.
전부 둥실둥실 떠올랐다.
“어어…….”
“떠요, 떠요!”
“자기야, 나 잡아!”
물건, 사람, 빠짐없이.
우스운 건, 심지어 ‘초인’인 쓰레기들까지도 이들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거다.
“뭐야!”
뭐긴 뭐야. 나다.
“마나 끌어올려도 안 돼.”
당연하지. 내 발톱의 때만도 못한 실력으로.
“누구야, 위에 있는 놈은 뭐 하는 거야!”
아, 말하지 않았네,
위에 있는 놈들은 유리가 상대하고 있을 거다. 걔들은 걔들 나름대로 지옥을 맛보고 있다는 말이지.
근데 나쁜 짓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머리가 텅텅 빈 놈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몇몇이 혼란 속에서도 가장 필요한 걸 찾는다.
“야! 당황하지 말고! 빨리 인질 관리해!”
저들의 방패는 뭐니 뭐니 해도 인질 아니겠나. 인질만 잡고 농성을 이어 간다면 어떻게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제법 그럴듯한 생각이다.
그러나.
어쩌나.
이미 이 백화점은 나의 제어권에 들어온 지 오래인데.
내 머릿속에는 백화점의 입체도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쓰레기와 아군, 그리고 인질이 모두 점으로 표시되고 있는 중.
쓰레기들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대화 하나까지, 지금 이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내게 전해지고 있는데.
내가 당하겠나?
“야! 문 열ㅇ…….”
쓰레기의 거죽을 뒤집어쓴 스켈레톤의 눈에 귀기가 번쩍이더니.
서걱-!
단칼에 쓰레기들을 참수한다.
중력이 작용되지 않자 뿜어져 나온 피가 몽글몽글 허공에 떠다니고, 떨어져야 할 머리도 시체와 함께 비스듬히 떠오른다.
꺄아아악-!!
비명이 들려온다.
인질들의 비명이다.
최대한 인명 피해가 없게 작전을 진행하려면 쓸데없는 소음은 재빨리 제거해야 하는 법.
공간을 격리, 실시간으로 소리를 차단한다.
이어서 할 일은? 인질들 진정시키기.
퍽!
기절한 인간은 조용한 법. 가장 시끄러운 인간을 조용히 기절시켰더니, 나머지 사람들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아주 올바른 자세다.
곧이어 쓰레기들의 거죽을 쓴 스켈레톤들이 등장.
한쪽 벽면을 부쉈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질을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저, 저기…… 으아아악!!”
다소 과격하다고?
어쩌겠나,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걸.
현재 하늘은 유리한테 장악된 상태니까 공중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그렇게 백화점 곳곳에서 인질들이 던져지고 있었다.
대기 중이던 집행부 요원들은 어이가 없을 거다.
단단하게 막혀 있던 백화점이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고, 수십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더니, 무슨 자판기처럼 인질들을 토해 내고 있는 이 상황을 보고 있자면.
“이 새끼들이! 뭐 해! 빨리 구하지 않고!”
“멍청하게 있지 말고 달려! 어서!”
“야, 이야기 못 들었어? 인질부터 구해! 전투는 저쪽에 맡기란 말이야!”
그렇게 인질은 저들에게 맡기고, 나는 쓰레기 정리를 계속하자.
본격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추는 스켈레톤.
아공간이 열리며 대검이 떨어지고, 거추장스럽게 덮여 있던 껍데기가 귀기에 불타올랐다.
백골(白骨)
죽음의 군단이 본연의 모습으로 대검을 높이 치켜들고.
가자.
쓰레기 정리하러.
* * *
한편 박기혁이 진유리와 함께 발 빠르게 테러리스트들을 처리하는 동안, 그의 형인 박수혁은 예상 밖의 저항을 맞닥트리고 있었다.
“후우.”
박수혁의 검이 황금빛 검광을 토해 낸다. 검광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나는 박수혁의 머리칼이 그의 본능 ‘군왕’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려 줬다.
군왕.
가장 이상적인 검.
그렇기에 아름답고, 그렇기에 강하다.
허공에 그어지는 금빛 궤적.
남들이 보기에는 어지럽지만, 하나하나가 검호가의 정수가 담긴 검법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챙! 챙-!!
막힌다.
착실하게 막히고 있다.
한 명이 달라붙고, 안 되면 두 명, 세 명…… 최대 다섯까지 달라붙어 검광을 막아 낸다.
방패? 성벽? 마나에서조차 단단한 느낌이 물씬 났다.
그런 가운데 낮은 자세로 달려드는 적들.
박수혁이 사정권에 들어온 적을 걷어찬다. 이때, 적을 걷어차느라 한쪽 발이 땅에 떠오른 순간, 땅 속에서 창날이 솟구친다.
이놈들은 앞서 검광을 막던 놈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앞에 놈들이 단단하다면, 이놈들은 예리하고 치명적이다. 그리고 이질적인 냄새를 품고 있는데.
‘독이네.’
극독이 발라진 창날이다.
안 그래도 맞아 줄 생각은 없었지만 절대 당하면 안 되는 공격. 춤을 추듯 한 바퀴 턴을 하며 창날을 잘라 냈다.
동시에 ‘발검술 달빛 베기’로 주변을 휩쓸며 공간을 확보하는데, 앞서 방패 같다던 놈들이 일시에 주먹을 내뻗는다. 강기의 벽이 성벽처럼 주변을 에워싸더니, 이쪽을 향해 들이닥쳤다.
황색빛 강기.
박수혁의 검광에 비하면 굉장히 탁한 빛의 강기다.
근데, 왜일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장엄하고, 일사불란하며, 고아하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데 강기의 벽이 들이닥쳤다. 당연히 피하지 않고 응수하는 박수혁.
폭발이 일어났다.
강기가 닿는 곳마다 부서지고 파편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성향이 완전히 다른, 뱀을 닮은 검기가 들이닥치고, 박수혁은 가볍게 ‘유검술 태극’으로 원을 그리며 막아 냈다.
‘흠…….’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적은 수십인데 반해, 이쪽 자신은 혼자.
다수 대 개인의 결투임에도 팽팽한 대치 상황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지금 박수혁은 그런 공치사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고작 테러리스트가, 나를 막는다고?’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자신은 강하다.
수호자며 동시에 검호. 아버지 피셜로 역대 검호 중에서도 수위권이라고 했었다.
이런 자신을 불과 테러리스트 조직 따위가 막고 있다.
그것도 제법 체계적으로, 잘 막고 있다.
뭔가 아주 이상하지 않나?
이것도 이상한데, 저기 누런 강기나, 저 이상하게 예리한 저 검기나, 모든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몇 수의 치명타를 주고받았을 때.
박수혁은 비로소 그를 괴롭혔던 간질간질한 수상함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데.
“……생각났다.”
콰앙-!!
달려드는 황색 강기를 벗겨 내며 검을 겨눴다.
“당신들 소림사 맞지?”
금강복마진.
소림의 대표 진법인 백팔나한진에 가려져 많이 언급은 안 되지만, 천년소림이란 명성에 걸맞게 그 힘은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방어적인 역량에서는 오히려 백팔나한진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현재 박수혁을 포위하고 있는 진법이 바로 그 ‘금강복마진’이었다.
“그리고 저쪽은, 크로우.”
정식 명칭은 크로우스 빅(Crow’s beak : 까마귀의 부리).
영국산 암살자 집단으로, 줄여서 크로우라 불리는 녀석들이다. 기사단 시험에 떨어진 이들 중 추리고 추려 만든 이들이었고, 그래서인지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됐다고 들었다.
공격이 멈췄다.
시선이 닿는 거리.
말은 안 했지만 두 집단의 눈에 ‘어떻게?’란 의문이 떠오른다. 자신들은 숨길 만큼 숨겼다는 것.
이에 박수혁은 친절하게 답해 줬다.
“제가 눈이 좋습니다.”
군왕의 본능이 완벽을 품을 수 있는 것이나, 가장 이상적인 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박수혁의 탁월한 눈 때문.
한 번 본 검격은 절대 잊지 않는 것은 물론, 따라 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킬 수 있는 눈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대치하는데 아무리 숨긴다고 숨긴들 정체를 파악할 수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나저나.
“허, 중국과 영국의 연합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심각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저쪽은 저쪽대로 심각했다.
본래 작전은 적당히 대치하다 시간에 맞춰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것이지만, 정체가 드러난 이상.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다.
저쪽이 죽거나, 이쪽이 죽거나.
죽음을 좋아하는 인간이 없으니 사실상, 죽이는 거 하나다.
하지만 이는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었는데.
“이제 개운해졌으니, 진짜로 놀아 보죠.”
이제껏 봐준 것은 의문 때문이라고 피력하는 듯, 박수혁의 마나가 주변을 덮친다.
그 순간.
눈부신 광채가 번쩍이며 박수혁의 머리 위로 황금빛 왕관, ‘크라운’이 내려왔다.
크라운을 쓴 박수혁.
시원하게 웃으며 법칙을 정한다.
이곳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법칙 지정
法則 指定
황금빛 벽이 링처럼 주변을 에워싼다.
격리되는 공간 속에서 박수혁은 미소 지으며 검을 뽑고 있었다.
* * *
TV에서 테러리스트 진압 영상이 나온다.
무사히 구출한 인질들의 인터뷰가 곁들여지며 인터넷은 테러리스트들을 ‘메달아.’라며 성토가 이어졌다.
테러리스트가 나타났다고 알려진 지 불과 이틀도 안 되는 시간에 거의 80퍼센트 이상의 테러가 진압된 것이다.
와인 잔을 든 금발 남자는 쓰게 웃었다.
영국에서 특별히 뽑아 온 크로우들과 중국에서 지원받은 귀영대까지 투입된 작전인데 고작 이 정도의 혼란만으로 제압되다니.
이제 그 기능을 제대로 하는 건 남자가 앉아 있는 이 땅, 제주도 한 곳뿐이다.
“과연…….”
전에 마주한 그 ‘적봉’이라는 사람도 심상치 않더니.
“확실하군. 이 나라, 저력이 있어.”
와인 잔을 든 남자가 쓰게 웃는다.
아버지가 처음에 이 나라를 주목할 때는 위그드라실이 있어서인 줄 알았다.
같은 수호자이지만 다른 길을 걷는 자, 모든 인간의 위에 올라서겠다는 아버지의 대업을 이루려면 언젠간 맞닥뜨릴 적이기에 주목하는 줄 알았지만.
겪어 보니 아니었다.
이 한국이란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특히 저놈.”
지금 TV 화면에 나오는 놈.
산군 박수혁이라고 했나.
저놈은 진짜 위험하다. 크로우와 귀영대 중에서도 최정예를 뽑아 보냈건만, 전부 제압했다. 그것도 죽이는 게 아니라 전부 살려서 생포한 것이다.
이 말인즉, 확실한 격차를 냈다는 것.
“저런 놈들이 네 놈이나 더 있다는 건데.”
시간이 없다.
원래라면 더 끌어들여 모두의 시선이 이쪽에 모였을 때, 은밀하게 목표물을 회수해서 돌아가는 것인데, 작전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이미 틀려먹었다.
“검호라는 놈들이 전부 다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면.”
작전을 실행할 수조차 없게 된다.
잔을 돌리던 남자가 찰랑이는 와인을 단숨에 들이켠다.
천천히 향을 음미하는 게 남자의 취향이지만, 때론 취향보다 중요하게 있는 법.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충동적인 건 지양하지만.”
목표를 회수하는 게 먼저다. 아버지의 명을 완수해야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
결심을 끝낸 남자가 일어섰다.
공간 도약
남자를 둘러싼 공간이 바뀐다.
탁상시계가 있던 자리에 수풀이 생겨나고, 카펫이 있었던 곳에 포장된 도로가 드러난다.
그러는 사이 남자의 몸이 이곳저곳 터졌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균열이 일어나더니, 피가 터지며 상처가 난다.
제주도에서 서울 근처까지, 너무 먼 거리를 뛰어넘었기에 벌어진 대가였다.
공간이 바뀌어 갈수록 많아지는 상처들.
그러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성장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나. 수많은 권속을 ‘삼키며’ 얻은 고통과 비교하면 이깟 상처는 생채기에 불과하다.
방에서 어느 숲으로, 완벽하게 공간이 변화되는 순간.
그제야 남자는 입을 떼었다.
“흠, 왔군.”
용호 재능 교육관
목표가 다니는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