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98화 (198/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98화>

수호자 적봉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사태는 극단적으로 변했다.

한국 정부는 그 즉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성명에서 의문의 괴조직을 ‘복수자(Revenger)’로 발표하며 극악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현재 우리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우리 국민과 영토, 우리의 자유와 가치가 악의적인 폭력에 부서지고 짓밟히고 있습니다. 테러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절대로 외부…….

- 자랑스러운 이 땅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선언합니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대화도, 협상도 없을 겁니다. 또한 경고합니다. 이 테러리스트들과 연관돼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이 시간 이후로…….

- 우리의 적입니다.

무려 37분에 걸친 대통령 성명.

이후 사태는 극단적으로 변했다.

집행부를 중심으로 모인 수호자들이 현장으로 모두 투입된다.

“여러분은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최우선은 인명 구조. 그다음은 테러리스트 제압, 혹은 사살. 이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뒷감당은 저희가 합니다.”

여태껏 수호자들이 제 힘을 못 썼던 이유는 별거 아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는 순간, 시가지가 초토화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래서 최대한 자제했지만…….

집행부장 지성철은 이런 ‘족쇄’를 풀어 버린 것이다.

수호자가 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에이전트들도 발을 벗고 나서는데.

“인원은 전부 채웠습니다. 네, 바로 부산으로 투입하겠습니다.”

“수도권 방어에 집중해 달란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그러죠.”

에이전트는 가용 인원을 박박 긁어모아 전력으로 지원에 나섰다. 누군가는 이런 광적인 분위기를 이해 못 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선배, 굳이 이래야 합니까. 말이야 지원이지 완전 무료 봉사 아닙니까.”

“맞아요, 선배. 외국에서는 에이전트끼리 협회 만들어서 정부랑 거래도 하던데.

“쉿! 닥쳐! 이 새끼들이 누구 망하게 할 생각이야? 야, 우리라고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눈치 보는 거야.”

“누구요? 정부요?”

“얌마, 우리가 정부 눈치 보겠냐? 집행부면 몰라도.”

“그럼 누구 눈치를 보는데요.”

“누구긴. 옵티멈의 마녀. 그 쌍X 눈치지.”

옵티멈의 마녀, 김연희.

사실 김연희는 마녀라는 호칭과는 달리 무척 온화한 편이다.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지도 않고, 거래를 함에도 공명정대하고, 작은 에이전트와 협력할 때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숙녀나 왕비가 어울리는 모습.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로 칭한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화가 난, 검호식으로 표현하자면 눈깔이 돌아간 김연희의 모습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인원 모았지? 잘했어. 게이트로 사람 보내서 수호자들도 호출해. 최대한 빨리 복귀하라고. 손실 보상은 내가 한다고 해.”

“비서실! 에이전트 대표들 다 집합시켜. 한 명도 빠짐없이. 1초라도 늦는 놈들은 내가 직접 본다고 해. 그리고 뭐, 아까 P.S.H가 수당으로 흥정했다고 했지? 당장 전화 걸어.”

“야, 똑바로 들어. 지금부터 10분 줄 테니까 당장 내 앞으로 기어 와. 만약 10분 뒤에 없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너희의 그, 같잖은 메이저 에이전트라는 타이틀을 직접 떼 줄 거야.”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테러가 있었다.

당시 옵티멈은 파이브 시스터즈의 일원이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전트였다. 그래서 초인 업계를 대표해 사람들의 협조를 끌어모았었는데.

이때 욕심에 눈이 멀어 시민의 생명을 흥정하는 에이전트들이 있었다.

그래,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없으니까

눈이 돌아간 김연희가 모조리 해체시켰거든.

“다 아는 얼굴이네. 점잖게 말하지는 않을게. 나 눈 돌아간 거 한 번쯤은 다 봤지?

“선을 지켜. 장사할 때 안 할 때를 구별하란 말야. 알았어?!”

내가 만들어 낸 초인 업계 이미지를 망치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마녀로 돌변한 김연희의 말을 거역할 간 큰 놈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정부라도.

“비서실장, ‘스페이스 오라’ 허가 나왔어! 뭐, 아직도야? 시간 아까워 죽겠는데 꾸물대고 지X이야. 됐다. 일단 써. 내가 책임질게. 스페이스 오라. 가동해.”

스페이스 오라.

김연희가 소유한 백여 개의 인공위성이 한국을 관측했고, 이렇게 모인 정보는 오로지 단 한 명에게 가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막둥이에게.

*   *   *

불타고 있는 산.

화마가 닿는 모든 곳이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난, 그 불꽃의 한가운데서 구제불능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다.

아니지. 불이 있으니까 소각하고 있는 거려나.

현재 버려진 쓰레기는 27.5마리.

어지간히 치웠는데도 이 정도나 남았다.

아, 왜 0.5마리냐면 아직 반쯤 죽은 놈이 있어서다.

내 발 아래서.

“사, 살려…….”

콰직-!

이제 27마리다.

“포위해!”

“죽어!!”

내가 딛고 있는 대지가 움푹 패인다. 땅 아래에서 자리 잡고 있던 식물의 뿌리가 그물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고, 그 뿌리를 타고 불꽃이 사방에서 덮쳐 왔다.

규모나 완성도는 꽤 쓸 만한 연계.

아쉬운 부분이라면, 저 불꽃을 키울 바람 마법 정도?

……라고 생각하는 순간 돌풍이 불어온다. 바람에 닿은 불꽃은 무희의 춤처럼 화려하게 춤추었다.

담백하게 말했지만, 불꽃의 열기가 살갗으로 저릿하게 전해진다.

얘들 꽤 하네.

왜 어머니가 조심하라며 몇 번을 당부하셨는지 새삼 이해가 된다.

동시에 드는 생각.

“이런 실력을 가졌으면서 왜 이렇게들 멍청한 걸까.”

용병질만 해도 먹고살 걱정은 없을 건데.

의문은 잠깐이다.

어차피 상식이 통할 녀석들이 아니다. 대화도 한 종류만 되지. 몸의 대화라고.

무릎을 살짝 굽힌다.

얼핏 보면 움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한 행동.

팽창했던 허벅지 근육이 일순간 수축, 폭발했다!

콰앙-!

지축이 흔들리는 순간.

단숨에 공간을 접어 버리고 도착한 곳은 쓰레기 앞.

“에……?”

멍청하게 눈을 뜬 쓰레기의 관자놀이에 주먹을 박았다.

펑-!

터져 버리는 머리.

피와 뇌수가 내 몸을 적신다.

오늘 전투는,

최대한 잔인하게.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아주 끔찍하게 만들어 줄 거다.

“으, 으아아악-!!”

“도망쳐!!”

동료의 죽음 때문일까,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분 침착한데 몇몇이 저렇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난 여기서 또 정보를 취한다.

‘단일 집단이 아니네.’

전투 상황에 소리를 죽이는 것은 기본이다.

왜 옛날에 이슬람 어쌔신들 경우를 봐라. 걔들은 죽어 가면서도 비명을 흘리지 않았다. 물론 이미 혀가 잘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베테랑들은 그 정도는 해야 한다.

봐라. 저기 넘실대는 불꽃 속에서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놈들. 쟤들은 닳고 닳았다는 거지.

반면 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놈들은 거기에 섞이지 못한, 그저 그런 얼뜨기라는 말.

“그럼.”

얼뜨기부터 지울까.

신성한 전장에서 기본조차 모른다면.

일단 먼저 맞고 죽어야지.

말해 뭐 해.

지면 아래 숨겨 뒀던 스켈레톤을 타고 비명을 지르는 쓰레기 뒤로 가 정수리를 한 손으로 쥐었다.

프로즌 더스트

Frozen Dust

꽈직, 꽈직!

얼음 알갱이들이 뒤덮인다.

눈, 코, 귀, 입, 신체에 있는 모든 구멍을 통해 얼음 알갱이들이 스며들고 내부부터 얼어붙는다.

그렇게 동사의 고통을 죽기 직전까지 겪던 쓰레기는.

땅으로 쓰러졌고.

파지직-!

산 채로 산산조각 났다.

“26마리.”

온전했던 얼음 조각을 즈려밟으며 비릿하게 웃자, 쓰레기들이 전부 멈칫, 몸이 굳었다.

살기가 폭발한다.

너희들은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싸워라, 저항해라, 발버둥 쳐라.

그리고…… 처절하게 무너져라.

너희들 거둔 생명처럼.

죽음의 향기가 듬뿍 묻은 살기가 쓰레기들을 덮친다. 우르르륵, 화마에 불타던 나무들이 쓰러졌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이곳은 이미 지옥이었다.

*   *   *

한편, 홀로 산불을 막던 진유리가 드래고니안의 바이저를 열고는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휴우, 끝났다.”

얼추 정리됐다.

이제 남은 건 잔불쯤. 저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체 블리자드를 몇 방을 썼는지.”

기분 탓인가, 손끝이 저릿하다.

덕분에 산맥으로 이어져 대형 산불로 번질 뻔했던 불은 막았으나…… 그럼 뭐하나, 상처뿐인 승리인걸.

진유리의 뒤에는 검은 폐허로 변한 산이 비명처럼 연기를 토해 내고 있었다.

“기혁이 말이 맞네.”

전쟁 중에서 절대 피해야 할 게 내전이라고.

이 광경을 보니 확실히 실감이 나는 진유리였다.

“정신 차려!”

감상은 이걸로 끝.

일해라 진유리! 정신 놓지 말고!

드래고니안의 뒤로 용익이 피어오르고, 진유리의 신영이 붉은 마나 선을 남기며 사라졌다.

파악-!

단숨에 거리를 주파.

박기혁의 곁으로 안착했다.

한데, 얘 뭐 하나.

반쯤 으깨져 인간의 형체보다는 고깃덩이에 가까운 시체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다.

“뭐 해?”

“분류.”

나무를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눠진 시체들.

“뭘 분류하고 있는데?”

“기억이 읽히는 놈들과 아닌 놈들.”

“아…….”

진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이 되면서부터 서로에게 숨기지 않기로 약속한 두 사람.

진유리는 박기혁이 영혼에서 기억을 뽑아낸다는 것을 익히 안다.

그리고 이 기억이 뽑히지 않는다는 의미도 잘 알고 있다.,

“광신도?”

“아니야.”

“그러면 금제네. 종류는 알겠어?”

“어, 영혼에 거는 건데. 볼래?”

“봐도 돼?”

“못 볼 게 뭐 있어.”

박기혁이 손을 내민다.

두툼한 손바닥. 손가락 끝으로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지지만, 진유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았다.

내 남자 손인데 무슨 상관이람.

서로의 손을 꽉 쥔 순간.

세계가 반전한다.

세계의 편린.

처음 왔을 때, 볼썽사납게 토했던 그곳이다.

그녀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다. 박기혁 앞에서 오바이트를 하다니.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이불을 팡팡 차는 그녀였다.

“…….”

목을 까딱이는 박기혁.

볼 준비가 됐냐고 묻는 것 같다.

끄덕끄덕.

진유리가 끄덕이고.

곧바로 박기혁이 세계의 편린 속에서 영혼을 꺼냈다.

족쇄가 채워진 영혼.

저 족쇄가 금제이리라.

금제에 대해서 공부한 진유리의 소견상, 저걸 풀면 영혼이 뿔뿔이 흩어질 거다. 그만큼 촘촘하게 영혼을 속박하고 있는 금제였다.

곧이어 다시 세계로 돌아오고, 울렁거리는 속을 억지로 삼켰다.

“저쪽에 있는 건 금제가 없고, 여기 있는 놈들은 금제가 걸려 있어.”

“연합이란 거네.”

“그래.”

추출한 기억 속을 봐도 둘은 다르다.

한쪽은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는 용병이라면, 여기 금제에 걸려 있는 놈들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진짜배기 무장 집단이다.

“목적이 있다면…….”

“위험하단 거지. 으차.”

박기혁이 반쯤 타 버린 그루터기에서 몸을 일으키고, 거인의 양손이 공간을 찢고 나와 시체들을 회수했다.

“빨리 움직여야겠다.”

“공간 이동하게?”

“하는 수 없지.”

“으으…….”

진유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속 울렁거리는데…… 그래도 시간이 없다고 했으니까 못 이기는 척 박기혁의 품에 쏙 안겼다,

그리고 마룡기 ‘전우’가 펄럭이며 둘을 감싸는 순간.

주위가 암전하고, 빛이 다시 비췄을 때.

한참을 벗어난 시내.

외딴 골목에 숨어 있던 스켈레톤 두 마리가 연기에 휩싸이며 박기혁과 진유리로 변했다.

“으으으, 니글니글.”

“엄살은. 빨리 가자.”

“알았어.”

골목을 나가자, 두 무리의 진형이 서로 대치 중이었다.

포위를 한 경찰과 소방차. 그 사이에서 집행부 요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확성 마법을 켠 채 투항하라며 소리치고 있다.

반면 복면을 쓴 습격자들은 극장을 점거한 상태로 저항 중. 인질의 목에 칼을 댄 채 듣는 것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저급한 욕을 내뱉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끝난 진유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쉽기 않겠는데.”

인질을, 그것도 대량의 인질을 잡아 놓은 상황.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인질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요란한 공격은 피해야 한다.

아무리 기혁이가 대단해도 이런 구도라면 힘을 발휘하기 힘들겠지.

이렇게 판단한 후에 박기혁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돌아선 순간.

“하나, 둘, 셋, 하면 곧바로 들어간다. 하나.”

“잠깐.”

“둘.”

“야, 잠시만.”

“셋.”

가! 라는 외침과 함께.

육망성 마법진이 전개.

극장이 떠오르고 있었다.

허공 위로.

통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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