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97화>
“왜 이렇게 늦지…….”
남자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영화표를 본다.
3시 40분.
영화관의 시계는 3시 21분을 가리키고 있다. 참고로 약속 시간은 3시였다.
무려 20분이나 늦은 지금, 보통이라면 짜증이 났을 거다. 그럼에도 남자의 얼굴에 담긴 감정은.
“무슨 일 있나…….”
불안.
불안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이상할 정도로 꿈자리가 나빴던 남자.
꿈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굉장히 불쾌했던 꿈이었다. 일어났을 때는 침대가 흠뻑 땀에 젖었을 정도로 말이다.
끝내 남자는 불안을 이겨 내지 못한다. 혹시 사고라도 난 건 아닌지 확인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폰을 드는데.
그때, 저 멀리에서 기다리던 얼굴이 보인다.
“오빠!!”
내가 선물해 준 프릴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 친구.
블루 그레이나 블루나 똑같은 파랑색 아니냐고, 대충 사라고 말했다가 대판 싸웠던 문제의 원피스였다.
하아, 저 원피스가 반가울 줄이야.
남자는 안도감에 힘이 탁 풀렸다.
“미안해. 많이 늦었지.”
“너는 진짜…….”
“미안 미안. 차가 엄청 막히던 거 있지! 빨리 가자. 나 추워!”
“여름인데 춥긴.”
“헤헤.”
커플이 팔짱을 끼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 뭐 볼까, 영화 보고는 전에 말한 식당에 가자…… 대화를 주고받으며 인파로 섞였다.
안내 직원이 문을 열자, 수많은 커플들이 영화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이 문 너머로 행복과 즐거움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행복과 즐거움이 아니었다.
“시간 됐다. 시작해.”
“들었지? 시작하시란다!”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불이 꺼지며 셔터가 떨어진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복면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밀치듯 몰아 2층으로 이동시켰다.
“움직여! 움직여!!”
“늦으면 책임 못 져. 킥킥.”
그리고 부순다.
쾅쾅-!!
계단을 부수고, 에스컬레이터를 완전히 뜯어낸다. 창문마저 마법으로 막아 버리자 사실상 탈출로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봉쇄된 영화관.
이곳을 찾은 수많은 인원들이.
전부 인질이 된 것이다.
“식은 죽 먹기네.”
“끝났어, 대장.”
부하들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인 복면인이 폰을 들었다.
“여기는 끝났다.”
* * *
“얘는 왜 이리 바쁘대.”
통화를 끊은 여자가 거울을 본다.
주름진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며 얼굴을 매만지는데, 그런 여자의 옆으로 얼굴 거죽이 뜯겨져 나간 시체가 쓰러졌다.
“요즘 인피면구 참 잘 만든단 말야.”
촌스러운 복면보다는 100배 낫다니까. 맘에 들어.
파팍-
양 뺨을 때린 여자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으~ 움직여 볼까.”
곧바로 허공 위로 발을 내딛는 여자.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졌다.
밑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여자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왜냐하면, 지금 여자가 떨어지는 곳은 15층, 백화점 옥상이었으니까.
여자는 아래에서 소란을 떠는 시민들을 보며 비릿하게 비웃었다.
“병X들, 지랄은.”
마음 같아선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의뢰부터.”
팡-!
떨어지던 여자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중력을 거스르고 상승한 여자가 백화점 꼭대기에 다시 오르고.
손바닥을 마주친 순간.
허리케인
Hurricane
고위급 풍 속성 마법.
허리케인이 몰아쳤다.
태풍의 눈에 갇힌 백화점.
“접수해, 얘들아.”
무전을 받은 복면인들이 순식간에 백화점을 점거한다.
“그럼 난 이제 쇼핑하러 가 볼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선 그녀의 뒤로 허리케인에 휩쓸린 차량과 인파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 *
- ……이미 포위당했습니다.
“알았다. 금방 도와주러 갈 테…….”
- 오지 마십쇼!!
“윤아!!”
- 절대 오지 마십시오. 심상치 않은 놈들입니다. 주인님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혼자서는 크윽…… 후우, 아무튼 여긴 틀렸습니다. 지금이라도 몸을 빼내십시오. 주인님이라도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내가 어찌 너를…….”
- 시간이 없습니다. 이미 적이……
“안 된다, 윤아! 이정윤!!”
-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정윤아!!”
삐- 삐-
남자가 절규해 보지만 들려오는 건 차디찬 신호음.
“으아아아악!!”
콰직-!
남자가 던진 무전기가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 났다.
분노가 치밀었다.
저 증오스러운 습격자들과 안일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본래 수호자는 로테이션에 맞춰 해당 지역에 대기한다.
일종의 지역 방어 개념이지만 사실상 ‘여행’쯤으로 여겨지는 행사였다.
아닌 말로 어떤 미친놈이 한국에 쳐들어오겠나? 현재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그렇기에 남자, 수호자 적봉 최태준은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가솔들과 제주도에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습격을 당한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한순간에 제주도를 점령한 의문의 복면인들.
그들은 곧장 공항에 있는 비행기를 무차별 습격해 발을 꽁꽁 묶었다. 동시에 군대를 습격, 방위군을 차례로 해체시켰다.
이후 도시를 습격하며 민간인들을 한데 모았다.
학살이 아니라 집결시켰다는 것은, 이들을 이용하겠다는 뜻. 이것만으로 범상치 않은 조직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습격.
굉장히 조직적이었고, 일사불란했다.
너무도 광범위하게 엄청난 인원이 투입됐기에 적봉 최태준이 이 사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울 지경이 됐던 것이다.
“죽일 거다. 죽여 버릴 거야.”
수호자 적봉 최태준이 깔려 있는 습격자의 목을 부순다.
곧이어 숨겨 뒀던 날개를 펼치는데.
콰아앙-!!
건물을 부수며 삐져나오는 거대한 날개 한 쌍.
부서진 잔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새. 적봉 최태준이 부리는 신수 ‘봉황’이었다.
“황아, 찾아.”
봉황이 몸을 낮추며 날개를 펄럭이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미 하늘 저편으로 떠올라 있는 봉황.
제주도의 푸른 하늘.
고요한 이 하늘과는 반대로 아래에는 혼돈의 파도가 몰아쳤다. 미확인 조직의 습격에 제주도 전체가 붕괴, 무차별 약탈을 당하는 중.
건물들은 불타고 매캐한 연기가 도시를 휩쓸고 있다. 피를 흘리는 사람들, 처절한 비명 소리……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가솔의 죽음에 분노로 눈이 뒤집혔던 최태준이 차갑게 정신을 차렸을 정도로.
“벌써.”
사태가 심각하다.
이건 절대 그저 그런 빌런들이 아니다.
치열한 싸움을 예감한 최태준. 이를 꽉 깨물며 국보 ‘화랑’에 화살을 메겼다.
그리고 봉황을 타고 불타는 도시 아래로 활강하는데.
그때였다.
그의 경종을 울린 것이.
“피해!!”
봉황이 활강하던 날개를 급히 펼치며 신영을 멈추는 순간, 흑색 섬광이 허공을 찢어 버렸다.
“저건.”
창(槍).
창이다.
장식이 달려 있지 않은 기본형 롱 스피어
최태준이 고개를 들자, 하늘 저편에서 박수를 치는 인영이 보인다.
금발에, 얼굴은 가면으로 확인되지 않은 남자였다.
“내 창을 피해? 인간 주제에 제법인걸.”
“……넌 누구지?”
“알 거 없다, 미개한 것아.”
가면을 쓴 남자가 귀찮다는 듯 허공에서 창을 빼 들자.
일대의 마나가 고요해졌다. 장창을 주위로 회전하는 검은 마나의 파동.
최태준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아무래도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이 될 거란 것을.
* * *
쾅-!
문을 박차며 김연희가 들어온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습격이라니. 대체 누가? 왜?!”
의문의 조직에 의한 습격.
한반도 전체가 위험하다.
이 충격적인 소식은 김연희가 예비 큰며느리를 보는 자리에서 당장 일어서게 만들었다.
흥분한 김연희를 대신해 문을 닫은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 의문의 조직이 전국적으로 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피해 상황은 여기 있습니다. 단 현재도 계속해서 피해가 추가되고 있어 이 자료는 쓸모가 없을 겁니다.”
“조사대 파견했어요?”
“네, 전 인력 투입했습니다.”
“후, 잘하셨어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은 김연희가 안경을 쓰고는 서류에 집중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습격은 총 17곳.
거의 지역마다 하나씩 일어났고, 저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유동 인구가 지나는 시내의 주요 지역을 점거. 인질을 잡고 있다.
다행이라면 그중 대부분은 얼마 안 돼 해결이 됐다고 보고서에 쓰여 있는데…….
“이거 저만 이상한가요. 아무리 봐도 던져 준 것 같은데요?”
“분석팀과 비서실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무너진 곳들과 지금까지 인질을 붙잡고 있는 곳 몇몇은 무력의 수준이 다르다.
행동 양상도 다르다.
초기에 무너진 곳은 이익을 노렸다. 다시 말해 돈. 그들은 돈을 노리다가 나중에 하는 수 없이 인질을 잡았다.
반면 아직도 대치 중인 곳은 처음부터 인간들, 더 많은 인간들을 노리고 달려들었고, 그들을 인질 삼아 아직도 대치를 하고 있던 것이다.
김연희는 특유의 직감력을 발휘, 이 종이 쪼가리에 적인 수치만으로 현장을 파악해 냈다.
이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자면.
“얘들, 근처에 있던 놈들인 것 같아요. 어중이떠중이들 모아서 대충 돈하고 장비 주고 시킨 것 같은 느낌인데.”
그리고 그녀의 예측은 정확했다.
초기에 무너진 곳은 대부분 지역에서 활동 중인 조직들. 즉, 조폭이나 건달 같은 무뢰배들이었다.
뒤를 혼란스럽게 해 달라는 습격자들의 지시였고, 든든한 지원과 성공 후 일확천금의 보상에 눈이 멀어 나선 것이다.
자신들이 그저 시선을 흐트러트릴 불나방인 줄도 모른 채.
“습격은 이제 끝인가요.”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리모컨을 누르자, 지도가 켜졌다.
“보시는 바와 같이 최대 격전지는 제주도입니다. 다음으로 부산, 울산, 남해를 중심으로 습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요?”
“네, 계속해서 말입니다.”
인질을 잡고 있는 이들은 인질의 성을 쌓아 저항 중이라면, 다른 이들은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무차별 습격 중.
타 버린 산의 사진과 무너진 건물들, 엉망이 된 항구와 도로가 지진을 맞은 것처럼 아비규환이 된 사진이 보였다.
김연희는 이 사진이 가리키는 목적을 단번에 알아챘다.
“작정하고 시선을 끌고 있네요. 집중할 수 없게.”
아무리 한 방 맞았다고 한들 대한민국이 작정하고 상황 수습에 나서면 시간이 걸린다 뿐이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테니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다는 얘기.
“제 판단에는 장기전을 노리고 있다고 보입니다.”
“후우, 골치 아프네. 집행부는요? 집행부는 이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뭘 했대요.”
“현장에 출동해 있습니다.”
“진짜, 지성철. 그 오빠는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김연희가 무능하다고 했지만, 지성철의 집행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만 습격자의 숫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을 뿐이다.
“현재 가용 수호자 전력은 다 모으는 중입니다. 이에 대한 공문은 여기 있습니다.”
“알아요. 아까 수혁이 뛰어가는 거 봤어요.”
“검호랑 백호에 대한 것도 묻고 있습니다.”
“그 둘은 자기들이 게이트에 처박았잖아요. 벌써 잊어버렸대요?”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워낙 숫자가 적으니 답답해서 말해 보는 것일 겁니다.”
“하필.”
입술을 질끈 깨무는 김연희.
하필이면 가장 게이트 공략이 활발할 이 시기를 고른 점이나, 군대가 거주하는 북부와 다수의 에이전트들이 대기 중인 수도권을 노리지 않고 집요하게 남부를 공략한 점이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진 습격이라 판단됐다.
“그리고 이건, 집행부장의 개인적인 부탁인데…….”
“괜찮아요. 말하세요.”
“마룡을 지원해 달라고 합니다.”
“유리를 왜 저한테 찾아요. 진룡산에 말해야지.”
“마왕도 지원해 달라고 합니다.”
“기혁이까지요?”
수호자가 될 수 있음에도 본인의 거부로 수호자가 되지 않은 두 사람.
마왕과 마룡.
박기혁과 진유리.
둘은 수호자가 아니기에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다. 집행부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
때문에 이 둘의 지원을 바랄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줘야 한다. 실제로 예전에 한 번 부탁한 게 있는데 그때는 애들 교육용이랍시고 ‘최상급 마석’을 뜯어 갔었다.
그래서 엄청 욕을 들어먹었지.
각설하고, 현재 지성철은 이 대가를 감수할 만큼 절박하다는 뜻.
“습격한 쪽에 무언가 이레귤러가 있다는 거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동안 고민하던 김연희가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안 되겠어요. 가 봐야겠어요.”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괜찮아요. 현장을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습격이 진행 중입니다.”
“훗. 잊으셨나 본데, 저도 초인이라고요.”
“후…… 인원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고마워요.”
하나, 김연희는 결국 현장으로 가지 못하는데.
막 결심을 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다급히 달려오는 비서실장.
“대표님!!”
그는 다짜고짜 손에 들린 패드를 내밀었다.
패드에 재생되고 있는 영상. 그 영상에는 검은 복면을 쓴 습격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그녀도 익히 아는 얼굴 ‘적봉’ 최태준이 무릎 꿇려 있었다.
- 우리는 복수를 위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을 복수자라 칭했다.
이제껏 이 나라는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해 왔고, 탄압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일으켰고.
- 우리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되돌려줄 거다.
잠시 뒤.
화면으로 보이는 피…….
주변에 있던 인질들이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혼란의 신호탄.
김연희는 이를 꽉 깨물고 폰을 손에 들었다.
“……기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