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96화 (19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96화>

어스름이 내린 밤.

모두가 잠들 시간이다.

검호가에도 밤이 찾아왔다.

“웅냐, 웅냐.”

“푸르르르.”

이 층 침대를 사 줬는데 굳이 1층에서 서로 뒤엉켜 있는 박봄과 헤나.

“잘 자네, 내 새끼들.”

박기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누가 미소 짓지 않을까.

좋은 꿈꿔라.

박기혁은 두 아이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는 혹시나 깰까 살금살금 방을 나갔다.

그리고.

“…….”

“…….”

“……갔어?”

“……응.”

번쩍.

두 악동이 눈을 뜬다.

“시작하자.”

“그래.”

“마나는 쓰면 안 돼.”

“내가 넌 줄 알아?”

날 뭘로 보고.

헤나가 코웃음치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테라포밍

개미집

헤나의 머릿속에 집의 조감도가 출력됐다.

아빠는 피곤한지 씻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는 누우셨다. 곧이어 들리는 코 고는 소리.

평소 아빠는 자는 것도 재능이라고 말했다. 공략대에 가면 어디서 잠을 잘지 모른다고…… 이 말처럼 아빠는 정말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주무셨다.

“아빠 방금 잤어.”

“조아써. 엘은?”

“잠깐만.”

다른 방을 살펴보자, 이스마일도 슬슬 눈을 뜨고 준비 중이다.

“이스마일도 준비 중.”

“2층에서 합류하기로 했지?”

“엉.”

박봄이 소리없이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인형 두 개를 들고온다. 오늘을 대비해 준비한 딱 봄이와 헤나 사이즈의 인형이다.

침대에 인형들을 쑤셔 넣고.

이제 흔적을 입혀 볼까.

“머리카락 하나 뽑는다. 에잇!”

“악!”

스스슥.

박봄은 손을 비비며 혈족을 깨웠다.

혈마술

허수아비

뿅뿅-!

침대에 몸을 눕히고 있던 인형이 박봄과 박헤나로 변했다.

“빨리 포즈 잡아. 빨리, 빨리.”

“너나 잘해.”

샤샤샥.

모습이 변한 인형의 포즈를 잡아 놓는다. 엉망진창 뒤엉키게 만들면 끝! 평소에 자는 모습 그대로다.

좋아, 이제는 변신해야 할 시간.

무릇 전투의 시작은 옷의 착장부터다.

두 아이는 전투적인 기세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다퉈 달려가 옷장을 열어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다.

뭘 입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미 며칠 전부터 정해 놨거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두 아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 두 천사가 악동이 되어 오밤중에 이런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올리버’ 때문이다.

무려 우리에게서 아빠의 사랑을 빼앗아 간 간악한 막내!

하지만.

그건 그거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무릇 큰 사람이 되려면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하셨다.

박봄은 차기 회장을 노리는 야심가.

공과 사는 철저히 한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한밤중에 소란을 피우는 것은 바로 바로!

올리버의 환영식!

짜잔!

“과자 확인해.”

“다 챙겼어.”

아공간 주머니에 과자를 몽땅 챙겼다. 초코초코, 딸기딸기, 각종 크림이 들어간 달콤한 과자. 반면 단 것을 싫어하는 헤나는 감자칩부터 챙긴다.

기다려라, 건방진 막내.

과자로 혼구멍을 내 줄 테다.

“여기가 3층. 우리는 지하 2층 아빠 연구실까지 가야 해.”

“엘리베이터 타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연하지! 흔적이 남잖아. 너도 탐지 마법 잘 피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물론. ‘개미집’ 계속 켜 놨어. 스켈레톤 아저씨들은 어쩌지?”

“걱정 마. 내가 스켈레톤 아저씨들이랑 친하잖아. 잘 말해 놨어.”

박기혁이 설치한 마법을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

상대의 마법을 해제한다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라는 말인데, 현재 이 세계에 마왕 박기혁보다 마법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

아빠는 최고야.

누구보다 두 아이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괜히 마법을 해제한다는 무모한 짓을 할 리 없다.

최선은 피하는 것!

때문에 일주일 간 봄이와 헤나는 어떻게 하면 아빠의 마법을 피할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성과를 낸 것은 며칠 전.

박봄이 아빠의 방에 숨어들었을 때, 바로 그때였다.

키득키득.

둘은 키득대며 체육복의 지퍼를 목까지 꾸욱, 올린다. 체육복의 왼쪽 가슴에는 캡틴 타이거와 자이언트 버그의 문양이 반짝였다.

“내가 길 안내할게.”

“조심해.”

“걱정 말아. 가자!”

“고고!”

문을 열고 우다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일이 꼬이는데!

헤나의 ‘개미집’에 걸린 감각.

이거 아빠 마나!

“잠깐!!”

헤나가 급히 멈추며 계단을 내려가려는 박봄의 잠옷을 잡아당겼다.

“어어어~!”

발끝이 계단에 닿기 직전, 몸이 들린 박봄이 손을 파닥거렸다.

“왜-!”

“함정이야.”

“응?”

함정이라구?

그 순간, 박봄의 눈이 야수의 눈처럼 세로로 쪼개졌다. 어둠이 내리깔린 집 안이 흑백 사진처럼 흑과 백으로 나뉜다.

곧이어 계단에 보이는 묘한 문양의 얼룩.

“에?! 아빠다.”

들켰나?!

어떡하지!

박봄의 땡그란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는데, 헤나가 그런 박봄을 진정시켰다.

“아냐, 주무셔.”

“그럼 마법은. 어제는 분명히 없었어.”

“로테이션으로 돌아가겠지.”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긴, 보안 마법이 옮겨 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지. 둘은 납득하고 계단을 뛰어 다른 칸을 밟았다.

“긴장해야 해, 봄아. 정보가 달라졌어.”

“응, 헤나도 계속 말해 줘.”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층 더 조심스럽게 잠행에 나섰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넘어 마법을 피한다. 허공에 실선들이 있을 때면 벽에 붙어서 공중 곡예를 부리기도 했다.

도중에 합류한 이스마일.

“안ㄴ…….”

“엘!”

“약골.”

“우리 뒤만 따라와.”

“쓸데없는 곳 밟지 말고. 할 수 있지?”

“녀엉…….”

인사는 폼인가.

이게 예절의 나라 한국?

이스마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둘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세 아이는 보통이면 10초도 안 될 거리를 무려 30분에 걸쳐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고, 마침내 지하로 진입하게 된다.

스켈레톤들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

사실 여기는 무슨 수를 써도 방법이 없다. 저거 하나하나가 박기혁의 감각이니까.

“왔다.”

“……여기 어떻게 통과할 거야?”

“다 방법이 있어.”

“봄이가 알아서 할 거야.”

하지만 박봄과 박헤나는 박기혁의 딸.

주인의 딸이므로, 대화라는 게 통하는 몇 안 되는 생명체였다.

“저기요, 스켈레톤 아저씨들. 저희 좀 지나갈 테니까,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요. 알았죠?”

“저도 부탁할게요.”

박봄이 몸을 배배 꼬며 필살 애교를 부린다. 헤나도 그 옆에서 본의 아니게 혀 짧은 소리를 하는데.

늘 그렇듯 스켈레톤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렇다고 두 아이의 애교가 실패했냐면 그건 또 아니다. 박봄의 눈에는, 어두웠던 복도에 한 줄기 길이 생긴 것이 보인 것.

“고마워요, 아저씨들.”

“고맙습니다.”

“이렇게 쉽게?”

“쉿. 아저씨들 자극하지 마.”

“조용해, 멍청아.”

이후는 간단하다.

그냥 길을 따라 걸어가면 연구실에 도착!

이미 신이 난 박봄이 문을 와락 열었다.

“올리버, 우리 왔어!!”

“안녕, 약골 투.”

“안, 안녕!…… 하세요.”

그리고.

차단벽 안에 있던 올리버가 웃으며 하는 말.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게 한밤중에 펼쳐진 환영회.

지하 연구실에서는 밤늦도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주말 아침.

나는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바로 근처에 있는 진룡산.

진유리를 보러 가는 것은 아니다. 걔는 아직도 내 침대에서 쿨쿨 자고 있거든.

개인적으로 도하 아저씨랑 공동 연구하는 게 있다.

그것 때문에 격주마다 찾아가는 곳이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진룡산에 오르자 내 차를 향해 인사하는 가문 사람들이 보인다. 인사를 90도로 하는 것은 예사고 몇몇은 기도하는 것처럼 양손을 비비며 허리를 굽힌다.

내가 불상도 아니고.

정상에 오르자, 오늘도 도하 아저씨와 해련 아줌마가 날 반겼다.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매번 이러시네.

잽싸게 차에서 내려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줌마.”

“어서 와요. 오는 데 불편함 없었고?”

“불편함은요. 바로 옆인데.”

“하하. 그렇지.”

점잖게 인사하는 도하 아저씨. 반면 해련 아줌마의 애정은 좀 더 진하다.

“기혁아!!

“네?”

“기혁이, 얼굴이 왜 이래.”

“왜, 왜요?”

“얼굴이 반쪽이잖아. 아줌마 손으로 가려지겠어.”

음, 좀 피로한 것은 맞는데 반쪽은 아니다. 아줌마 손으로 가리지도 못한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침 먹어야지. 아줌마가 인삼 듬뿍 넣어서 삼계탕 해 놨어. 한 그릇 들면 힘이 날 거야.”

“그래요. 아침부터 들고 이야기해요.”

이렇듯 진룡산 전체가 나에 대한 애정이 과하다. 아마 진유리라는 망나니를 거둬 간 고마움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괜히 슬프네.

“그래, 애들은 잘 있고? 봄이하고 헤나, 둘 다.”

“네, 잘 있어요.”

“휴, 다행이야. 아줌마가 걱정했거든. 왜, 제자들이 늘었다고 했잖아. 혹시 애들이랑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하하. 걱정 마세요. 얼마나 잘 지낸다고요. 며칠 전에는 애들끼리 밤중에 저 몰래 파티도 하더라고요.”

“밤에?”

“네, 제 연구실에 숨어들어서요.”

“호오, 기혁 군의 연구실에 숨어들었어?”

“대단하죠?”

“대단하군요.”

감탄하는 진도하.

역시 마법사답게 내 말의 진의를 곧장 알아챘다.

마법사에게 연구 성과란 목숨과도 같은 것. 그래서 마법사들은 자신의 침실보다 연구실에 더 철저한 보안을 깔아 둔다.

근데 이 연구실 침투에 성공했다는 말은 보안을 뚫었다는 것.

그만큼 애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물론 중간에 제가 알아채긴 했는데, 그래도 절반 이상은 통과했으니까요.”

“학교를 세운 보람이 있군요.”

그렇게 아이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서, 나와 진도하는 진도하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무거운 분위기가 내리깔리는데.

“……저번에 말한 거 알아봤습니다.”

“벌써요?”

“생각보다 빨랐죠? 기혁 군이 보내 준 그 남자의 도움을 받아 일이 빨리 끝났습니다.”

며칠 전. 그러니까, 존 도가 올리버를 데리고 온 날 나는 진도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마나 암 환자들을 모으는 곳을 알아봐 달라.

일단 영국이란 말은 뺐다. 혹시나 다른 곳에서도 이런 짓거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역시는 역시였다.

“현재 마나 암 환자를 적극적으로 받고 있는 곳은 두 곳입니다. 한 곳은 기혁 군도 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셰이드 엘 왕실 병원’.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혹시 영국인가요.”

“네, 맞습니다. 영국. 영국에서 현재 마나 암 환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병원이라고 특정 짓지 않는 이유는, 영국 전역에 있는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 겁니다.”

“역시나네요.”

몇 번을 말하지만, 권속의 계약은 인간이 다룰 수 없는 거다. 냉정히 말하면 휘둘리며 당하는 입장인 거지.

그렇다면 이 계약의 ‘상위 존재’는 하나다.

수호령.

그래서 수호령이 있는 나라를 주시했다.

다행히 미국에 있는 둘은 아무 상관없더라. 이건 내가 직접 확인받은 내용이다.

“응? 뭐? 권속의 계약? 그런 거 왜 써. 만들면 되는데. 이상한 말하지 말고 미국으로 와! 저번처럼 재미있게 놀자. 나 심심해.”

이건 기간트의 이야기.

역시나 해맑아서 반갑다.

반면, 레드 드래곤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했는데.

“권속의 계약…… 먼저 말하겠다. 이 몸은 모르는 일이다. 다만 들어는 본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뭐랄까, 알면서도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여기서 알았지.

나는 이 마나 암에 수호령, 정확히는 레드 드래곤과 같은 ‘개입파’ 수호령이 관련돼 있다는 걸.

그래서 다음은 위그드라실을 찾았다.

“음, 이 마나 암이란 질병이 사실은 그 권속이란 것을 만드는 계약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게 수호령의 짓이다. 하, 머리가 복잡하네요.”

그렇다고 위그드라실이 도와주지는 않았다.

명확한 증거가 없을뿐더러, 만약 여기에 위그드라실이 가담하면 그때부터는 전쟁의 시작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알아본 것이고, 그 결과가 이렇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태사자, 이 자식만 연루된 것 같은데.’

근데 감이 안 좋다. 나는 오히려 유력한 용의자가 황룡이라고 생각했거든.

이유? 없다. 그냥 감이 그랬다.

그리고, 내 감은 꽤 잘 맞는다.

*   *   *

뒷짐을 진 채 바다를 보는 황룡의 뒤로 한 무리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님.”

“말하라.”

“사자의 ‘귀인’이 한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준비는?”

“숨겨 두었던 분파들을 보냈습니다. 최대한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끔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다른 건.”

“역시 준비는 끝났습니다. 귀인이 휘젓는 즉시, 저희는 ‘분신’을 확보하겠습니다.”

“실패한다면.”

“그때는 최대한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해 뒀습니다.”

황룡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상대는 검호다. 너희가 직접 가라.”

존명!

무인들이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지고, 황룡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평선 저편의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 준비가 끝나 간다.

“신이여.”

기대하라.

네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이 세계를.

이 세계에서 숨 쉬는 인간 전부를.

“모두 부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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