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94화>
예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제국 시절 나 마왕은 절대자였다.
제국 제1검 검성이 내게 무릎 꿇었고, 용병왕은 내게 도전했다가 한 달을 요양할 만큼 얻어 터졌다.
이종족은 달랐겠나?
세계수에게 초대받은 날, 어느 덜떨어진 하이엘프가 ‘인간 주제에 건방지다.’라고 헛소리를 했다. 그래서 진짜 건방진 게 뭔지 가르쳐 준다는 의미로 요정의 숲 절반을 불태웠다.
세계수 한 그루만 빼고.
모두가 내게 무릎 꿇었다.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 했다.
황제조차도 나의 분노를 두려워했다.
아, 맞다.
성녀 빼고.
걔가 그나마 유일하게 나랑 비벼 볼 만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성녀가 대단했네.
아무튼, 절대자의 자리에 다다르자, 난 고독해졌다.
홀로 남겨졌다는 뜨뜻미지근한 고독 따위가 아니다. 더 이상 다다를 곳이 없다는, 정상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이었다.
알다시피 나의 인생은 노력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빈민가의 개만도 못한 인간에서, 칠흑 마탑의 대공자를 거쳐, 제국의 절대자인 마왕까지.
매일 같이 성취하며 살아왔다. 멈춰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절대자에 오른 난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성취감을 자극할 무언가가 상실됐다.
지루한 나날. 상실의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재미있는 짓을 좀 했지.
“황제시여, 황궁 서고 좀 갑시다.”
“황궁 서고는 왜…….”
“음, ‘적수’를 찾아보려고.”
현생에서 더 이상 적수가 없다면, 과거에서 적수를 찾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엘더 퀸, 불가사의, 검왕.
영감이 말했던 전대 절대자들를 찾아 나섰다.
참고로 당시는 나의 전성기였다.
영감은 내 품에서 ‘독한 놈,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유언을 남기며 눈을 감으셨지.
마지막까지 걸작인 양반이라니까.
여하튼 돌아와, 죽은 절대자를 살릴 수는 없으니 절대자들이 어떤지 정보를 수집해 나갔다.
검왕의 기록을 보려고 다짜고짜 황궁을 드나들고, 엘더 퀸의 정보를 얻으려 세계수를 찾기도 했다.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하자, 제국 전체가 긴장했다.
알잖나. 내가 또 한기행 하는 거.
이유야 어쨌든, 나라는 재해에 휩쓸리면 X되는 거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제국 귀족들이 집안 단속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제국민들이 나를 찬양하느라 바빴지.
불만은 쌓였지만 감히 내게 대놓고 불만을 표할 간 큰 놈은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입니까, 마왕. 당신이 기행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냥 조사할 게 있어서야.”
“후…… 몇 번을 말하나요. 당신은 이제 절대자예요. 절대자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는 자리라고요.”
“알았어, 알았어. 안 그래도 잘 왔다, 성녀야. 너희 교단 도서관 좀 쓰자.”
그 짓을 몇 년이나 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고, 결국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다.
어느 정도냐면, 이제는 존재하지 않던 그들을 나의 내면세계에 ‘투영(投影)’할 수 있을 정도.
“나는 엘더 퀸. 그대는 누구인가.”
“마왕? 나는 검왕이오.”
나는 내면세계에서 엘더 퀸과 치열하게 싸웠다.
나의 스켈레톤 군단과 정령 군단이 부딪쳤다.
선두에 선 나를 가로막은 건 엘더 퀸이 불러낸 물의 정령왕. 전투보다는 보조 속성으로 여겨지는 물 속성이 그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
검왕은 검을 든 대마법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내였다.
‘성운’의 힘은 무한에 가까운 변화를 만들어 냈으며, 극에 다다른 검격은 마법만큼이나 신비로웠다.
내게 마법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줬던 시간이지.
근데 하나가 빠졌지 않나?
맞아.
불가사의.
얘는…… 음…….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봐, 내기 어때? 내가 이기면 네 소중한 것을 뺏을 거야. 대신 네가 이기면 넌 소원을 이룰 수 있어. 흥미롭지? 재미있지?”
“벌써 흥분된다야. 흐흐. 그럼 종목을 뭘로 할까. 카드? 주사위 던지기?”
불가사의를 정의하자면,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노인인지.
그가 사용하는 능력이 ‘마법’이 맞기나 한 건지 당시의 나조차도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셋 중 가장 많은 정보가 있음에도 가장 불완전한 투영체였다.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다뤘던 투영체이기도 했다.
앞선 엘더 퀸과 검왕은 완벽히 압도한 뒤부터 맡은 바 역할을 다한 것처럼 내 투영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반면 불가사의는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다.
나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불가사의를 끝없이 탐구했다.
“네 힘은 ‘현상’이구나.”
현상(現象).
실제로 드러나 있는 것.
볼 수도 있으며 느낄 수도 있는 것.
자연, 집, 거리, 마을, 들판, 산, 나무…….
전체, 변화, 관찰되는 모든 사실.
불가사의는 이 ‘현상’을 다루는 절대자였다. 쉽게 말해…… 소망하는 모든 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거다.
소망을 실현시킨다니, 마법의 상위 개념이다.
이 얼마나 사기적인 능력인가.
그야말로 신의 권능.
그래.
이건 실제로 마법보다는 성녀의 ‘기적’에 가깝다.
다만.
이 대목에서 중요한 오류가 발생한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절대 신이 될 수 없다는 거다.
“……알겠네. 너의 정체가 왜 미궁에 빠졌는지.”
왜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노인인지 몰랐냐면…… 이 녀석이 죽었기 때문이다.
한차례 태풍이 몰아치고 사라지는 것처럼, 현상을 사용한 뒤 녀석의 존재도 하나의 현상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거다.
진정한 재해라고 표현해야 하나.
그때였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투영됐던 불가사의가 갑자기 통제를 벗어났다.
“맞아. 나는 현상이야.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내기를 하고 있겠지.”
“……어디서?”
“글쎄, 나도 몰라.”
‘몰라.’ 한마디를 남기고는 내면세계에서 바람처럼 사라지는 불가사의.
그때 알았다.
내가 내면세계에서 상상으로 만들었던 불가사의가 사실은 진짜 불가사의라는 것을. 잠시나마 이 수수께끼 같은 존재에 닿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것을 ‘불가사의의 근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 *
“저…… 제가, 그…… 불가사의의 근원이라는 건가요? 현상을 일으키는 그 괴물요.”
“그래.”
올리버의 물음에 박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근거로요?”
“한 번 겪어 봤으니까.”
물론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제국 시절의 경지를 초월한 박기혁.
특히나 ‘거인’의 힘을 완벽히 소화하며 세계의 질서에서 벗어났다는 게 주요했다.
“그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게 간극이었어.”
“간극……?”
“응, 간극.”
세계의 질서. 이 한 줄의 선을 넘느냐, 넘지 못 하느냐.
그 차이였다.
당시의 마왕은 넘지 못했고, 현재의 박기혁은 이걸 넘었다.
“불가사의는 이 간극에 걸쳐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난 그게 기묘한 느낌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고.”
“콜롬버스네요.”
“응? 무슨 말일까?”
박기혁이 궁금한 얼굴을 하자, 올리버는 의젓하게 말을 이었다.
“책에서 봤는데, 콜롬버스는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알았대요. 아메리카라는 대륙을 몰랐으니까요.”
“오호…… 흥미로운데?”
“나중에는 그 대륙이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라고 불렸겠지만, 죽을 때까지 몰랐던 콜롬버스에게 아메리카는 인도인 거죠.”
닿아 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 올리버는 이 사실을 콜롬버스를 비유로 들어 말하고 있었다.
박기혁은 ‘와우.’ 탄성을 지르며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이거 물건이네?’
자신이 한 이야기는 가공되지 않은 사실. 막말로 그냥 주절주절 옛 기억을 회상하며 내뱉었던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기준에서는 다소 어려운 이야기. 아니, 어른이라도 경지에 다다르지 않은 이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한데 얘는 이해한 것 같단 말야?’
11살이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나?
박기혁은 팔짱을 끼며 차단벽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올리버는 그런 박기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봤다.
어른이, 그것도 박기혁처럼 위압적인 외모의 어른이 보면 눈을 피하는 게 보통의 아이인데, 올리버는 그렇지 않았다.
박기혁은 올리버가 아이의 거죽을 쓴 닳고 닳은 노인처럼 보였다.
“너 혹시 회귀했냐?”
“네에?”
“아니면 환생?”
“음…… 한국식 조크인가요? 아니면 통역기가 잘못됐나?”
살짝 떠봤는데, 역시나 아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오롯이 이 아이가 특별한 것.
“너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런 말 종종 듣죠.”
“아까 아빠랑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더니.”
“아이의 처세라고 해 주세요.”
“얼씨구, 기가 막히네.”
박기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기아기한 봄이와 시니컬한 헤나랑은 또 다른 캐릭터다. 이래서 아이들은 재미있다니까. 항상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때 올리버가 창백한 손을 들며 질문했다.
“그런데요, 아저씨. 질문이요.”
“말해.”
“제가 그 불가사의란 거죠.”
“그렇지.”
“그럼, 결국 저는 죽는 거네요.”
“음?”
“불가사의란 게 현상을 다룬다면서요. 현상은 신의 힘. 인간은 신의 힘을 다루지 못한다. 따라서 현상을 사용하되 함께 사라진다. 저는 사라질 운명이란 말이잖아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올리버는 무서울 정도로 표정 변화 없이 자신의 ‘죽음’을 언급했다. 또한 납득했다.
삶에 미련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
대체 저 어린것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렇게 됐을까.
박기혁이 쓰게 웃었다.
그도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봄이 또래의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고 싶지 않아?”
“글쎄요.”
“꼬마야, 이럴 때는 살고 싶다고 매달리는 거야.”
“매달리면 달라지나요.”
올리버가 히죽 웃는다.
병마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나을 수 있다, 라는 막연한 희망을 쫓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조각난다. 나중에는 그나마 남겨진 마음을 지키기 위해 희망을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면 편하다.
올리버는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눈앞의 박기혁은 말한다.
“매달려.”
“……네?”
“살려 달라고 매달려 봐.”
“……아저씨.”
아프다고 포기하고, 절망이 무서워 희망의 끈을 놓으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매달려 봐.”
올리버가 이를 악물고는 박기혁을 노려본다.
“아저씨가… 아저씨가 뭔데요……”
네가 뭘 아는데,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지껄여.
세상을 자각했을 때부터 병원에 있었다. 고작 새장에 갇힌 새처럼 차단벽에 갇혀 한 줌의 세상을 보며 살았다.
밖에서 뛰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곧 낫겠지, 내년이면 낫겠지.
의사도 그랬다.
곧 낫는다. 내년에는 퇴원할 수 있다.
그렇게 7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차가운 차단벽 안에서 보냈단 말이다.
그런데, 네가 뭔데 희망을 가지라 말하는 건가.
“네가 뭔데!!”
이에 박기혁이 자신을 손가락을 가리킨다.
“나?”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희망.”
그날, 박기혁은 세 번째 제자를 맞이했다.
이름은 올리버.
똑똑하지만, 상처 많은 아이였다.
* * *
한편…….
“왕자님, 왕자님.”
“음?”
누워 있던 이스마일이 수면 안대를 슬쩍 들며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메리 누님의 아카데미 생활을 뒷바라지했던 집사분이었다.
“할아범, 왜요?”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벌써요?”
하으으음-!
기지개를 켜며 버튼을 누르자, 좌석이 세워졌다.
“할아범, 나 밖을 좀 볼래요.”
“네, 알겠습니다.”
할아범이 운전기사에게 말하자, 스르르…… 투명색 유리창이 드러난다.
창문 너머로 지나쳐 가는 숲과 나무들.
이스마일은 조금은 신기한 듯 어지럽게 이어져 있는 산을 바라봤다.
“한국은 정말 산이 많네요. 뭔가 따뜻해요.”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대체로 정이 많지요.”
“정, 정이라…… 한국어 공부할 때 들어 봤어요.”
“잘 배우셨습니다. 발음이 훌륭하십니다.”
“헤헤.”
할아범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곧이어 차량이 멈추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스승님의 집!
박기혁의 두 번째 제자가 한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