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90화 (19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90화>

제작사 픽쳐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캡틴 타이거’라는 어린이용 특촬물을 제작하던 중소 제작사는 이제 세계에 ‘K-장르’를 알린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눈부신 성장의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 공룡 투자자의 출현.

“야, 야. 특종! 특종! 픽쳐스 올해 인센티브, 3백 프로 받는단다.”

“시X. 지리네…… 걔들 야근에 특근 수당도 꼬박꼬박 받잖아.”

“퇴근도 칼 퇴근이란다. 작품 끝나면 휴가도 주고. 이번에 강남에 따로 사옥도 지어 주잖아.”

“우리는 기본급이 달랑이데.”

“하, 서럽다. 서러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픽쳐스에 들어가는 건데…….”

“누가 알았냐. 픽쳐스 투자자가 ‘옵티멈의 마녀’일 줄은.”

“솔직히 사기 아니냐? 돈이 화수분처럼 나오는데 뭘 못 만들어!”

긴 말 필요 있나.

김연희다.

자금력 하나만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김연희가 뒤를 봐주고 있는데 투자가 부족할 리 없는 것이다.

다음, 두 번째로는 ‘일본 사태’

“그래도 픽처스가 때깔 하나는 죽이잖아요.”

“인정. ‘인천항’ 때 좀비 못 봤어? 지금도 그 정도 퀄 나오는 곳 거의 없다.”

“이번에 N플릭스에서 방송한 ‘왕조’만 봐도 그래요. 거기 좀비, 저희 팀장님이 그거 보더니 욕하던데요. 죽었다 깨나도 저렇게 못 만들겠다면서요.”

“그게 다, 일본 사태 때문이야.”

“네? 일본요?”

“후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특수 촬영이나 애니메이션 기술 하면 일본이었거든. 근데 걔들 개박살 났잖아.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거야. 걔들 입에 풀이라도 붙이려면 어디로 오겠냐.”

“아…… 전부 픽쳐스로 갔네요.”

“옵티멈의 마녀가 일본인 구제로 돈 무진장 뿌렸잖냐. 그때 일자리 만든다며 엄청나게 투자했다더라. 픽쳐스가 그 대표적인 예고.”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픽쳐스 걔들이 분장이나 특수 촬영, CG하고 마법 연출 같은 건 세계 탑이야.”

일본의 전문 인력을 흡수하며 몸집을 부풀린 픽쳐스.

체급이 커지자 영상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때맞춰 불어온 한류 붐을 타고 단숨에 세계적인 제작사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인데.

사실 관계자들은 픽쳐스의 성공 요인에 앞선 두 가지 이유보다도 이 세 번째 이유를 더 꼽는다.

그게 뭐냐면.

박기혁.

마왕이다.

“잊을 만하면 마왕이 쫄쫄이 입고 ‘I am 캡틴 타이거.’ 하고 지랄하는데 누가 이겨.”

2년 전에는 연쇄 살인범을 잡았다. 그로부터 6개월 뒤에는 폭력 조직을 참교육했고, 그로부터 다시 3개월 뒤에 보이스 피싱 일당을 모조리 병원으로 보냈다.

이에 어떤 범죄자는 과잉 진압을 빌미로 박기혁을 고소했지만, 박기혁 본인은 ‘캡틴 타이거요? 그게 뭡니까?’라며 모르쇠로 일관.

실제로 현장에서는 박기혁이 캡틴 타이거라는 어떤 증거도 없었기에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가슴이 뻥 뚫릴 징벌.

공권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인간 사이다.

만화를 찢고 나온 현실판 캡틴 타이거.

박기혁.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가 있는 이상.

적어도 ‘캡틴 타이거’ 시리즈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이 사실에 뒷목을 잡겠지만.

어쩌겠나, 사실이 그런 것을.

*   *   *

촤륵…… 차륵…….

철퇴를 휘휘 돌리며 길거리를 거닌다.

차이나타운이라 그런가, 아니면 저녁이라 그런가.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음침하다. 분명히 점포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는데도 이런 분위기라니.

아주, 아주.

‘옳지 않아.’

자, 청소 시간이다.

촤륵-!

철퇴를 회수해 정면을 향해 내던졌다.

참고로 이 철퇴는 캡틴 타이거 속 신 캐릭터인 ‘자이언트 버그’의 주 무기 중 하나다. 자이언트 버그라는 캐릭터는 헤나가 좋아하는 걸 모조리 때려 넣어 만든 캐릭터.

당연히 헤나의 최애캐이며 사용하는 무장도 아주 비슷하다.

당연히 이걸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나.

콰아앙-!!

던져진 철퇴가 갑자기 수직으로 올라간다.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철퇴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건물을 향해 쏘아졌다.

우르르르르, 콰아앙!!

건물이 ‘파쇄’됐다.

물리에 마법 대미지가 결합된 복합 속성의 공격이었고, 충돌한 3층짜리 건물이 모래성처럼 폭삭 무너져 버렸다.

말도 없이 대뜸 건물부터 무너트릴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잔해들 속에서 꽤 많은 쓰레기가 몸을 꺼내 들었다.

“他妈的(씨X)! 공격하라우!!”

“쏴!!”

두다다다다다.

실드가 걷히자 총부터 갈기는 쓰레기 자식들.

거참, 총이라니.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뒤에 멀쩡히 가게들이 영업하고 있는데도 거침없이 쏴 댄다. 이딴 총알로 나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아닐 거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다.

물론.

기다려 줄 생각은 없다.

도약한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던져! 막아! 막으라고!!”

대가리로 보이는 쓰레기의 외침에, 품에서 뭔가를 꺼내는 새끼 쓰레기들.

주먹만 한 크기의 공처럼 동그란…….

아, 폭탄인가?

어이구야……

콰아아앙!!

폭발 속에서 코웃음쳤다.

어이가 없어서.

조금 전에는 총이더니, 이제는 폭탄?

얘들은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여기가 차이나타운이래도 어엿한 한국 땅이다. 한국은 총기는 물론 저런 흉악한 무기를 개인이 소지할 수 없다.

근데, 잘도 사용하고 있네?

펑펑!! 펑-!!

수류탄인지, 아니면 사제 폭탄인지 계속해서 날아오고 폭발이 연이어 이어진다. 주변은 파편에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 조금 전까지 가게를 지키던 사람들도 없어졌다.

“던져! 모조리 던져! 버티면 돼! 조금만 버티면 지원이 온다!”

아니, 안 온다.

쟤가 말한 지원군은 모두 제 살 길 찾아 도망가려다가, 현재 내 스켈레톤 군단에 막혀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다.

다시 말해, 이 차이나타운은 내 허락 없이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말.

‘밑에 있는 놈들은 다리 하나씩 하고.’

저기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나불대는 놈은 특별히 내가 직접 집도한다.

쥐고 있는 철퇴의 사슬에 마나를 불러일으키자.

그 순간.

촤르르륵, 사슬이 몸을 떨더니 무너진 잔해 속에서 철퇴가 떠올랐다.

정확히 쓰레기들의 진형 위에 떠 있는 철퇴.

철퇴가 변형, 분리, 증식의 과정을 거치며 수백 자루의 단검으로 변했다.

잠시 뒤, 쓰레기들은 눈 깜짝할 새에 단검들로 가득 찬 하늘을 본다. 저 중 몇몇은 곧이어 닥칠 미래를 예견했는지 눈빛이 빠르게 죽어 갔다.

“썩을…… 이래서 초인들 사이에는 끼지 말아야 하는 건데…….”

그게 끝이었다.

단검들이 떨어지며 정확히 다리만 절단했다.

잘려진 다리를 잡은 채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을 기고 있는 쓰레기들, 그 사이에서 대장은 자신만 멀쩡하다는 사실에 안도함과 동시에 불안해하고 있다.

돌아서는 녀석의 앞에 섰다.

놀란 녀석이 엉덩방아를 찧더니 뒤쪽으로 도망가려 한다.

“자, 잠깐만. 무엇이든 말할 테니까, 제발 목숨만…….”

음…….

이건 확실히 해야 하는데, 캡틴 타이거는 목숨은 거두지 않는다

다만, 징벌을 내릴 뿐.

‘야.’

내 부름에 답하는 존재, 거인이다.

녀석은 공간의 문을 스스로 열더니, 팔을 뻗어 쓰레기를 집었다.

살려 달라 절규하는 녀석의 운명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기억을 뽑힌 뒤, 씹다 버린 껌처럼 너덜너덜해진 채로 뱉어 내는 거였다.

‘다행히 제조해서 만든 폭탄이네.’

혹시나 군대에서 비리가 있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그 외에는 뭐, 건질 정보는 없다.

생각대로다. 아마 가장 윗줄에 있는 대가리가 의뢰를 받은 것일 터. 밑에 있는 얘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다음은.”

망토가 펄럭인다.

마룡기 ‘전우’가 나를 감싸고 시야가 점멸하더니, 다음 목표가 나온다.

7층짜리 빌딩.

여기도 쓰레기들의 근거지다. 아까가 전초 기지라면 여기는 그래도 본관에 가까운 곳이다.

일단 인사부터 할까.

휘휘 휘둘러 대던 철퇴가 내리쳐졌다.

이번에도 폭삭 무너지는 빌딩.

상확 파악 못 하는 쓰레기들이 잔해 속에서 뭐라 뭐라 중국말을 뱉으며 모습을 드러내고, 이번에도 공평하게 발 하나씩 접수한다.

당연히 대가리는 기억이 뽑히는 거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휘저었을까.

그럴듯한 건축물이 잔해로 변했을 때쯤, 잔챙이들은 끝났고 이제 진짜 쓰레기들을 상대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망토가 다시 나를 감싸고, 시야가 드러나자 나랑 눈을 마주치는 녀석.

한창 내 스켈레톤이랑 싸우는 중이었나 보다. 녀석의 동공이 나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커지는데…… 나는 씨익, 웃음으로 답하며 그대로 머리를 잡아 벽에 박았다.

쾅-!!

손을 탈탈 털며 주위를 보니, 치열한 접전 중이다.

아니지, 치열하다는 건 좀 그런가. 처절하다고 정정해야겠다.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쓰레기들과 이를 막으려는 스켈레톤 군단.

우세는 당연히 내 스켈레톤 군단이다.

성벽처럼 대검을 든 채 자리를 지키는 스켈레톤 군단.

이를 뚫으려 몸을 부딪쳐 보지만 헛수고다. 마룡기 ‘전우’로 ‘나’와 이어진 스켈레톤이다. 당연히 힘도, 기술도 저딴 놈들한테 질 리가 없다.

얼핏 보기에 싸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내가 ‘개미 한 마리도 벗어날 수 없게 막아.’라고 명령했기에 그런 거지, 녀석들을 해치우라고 명령했다면 애초에 이 전투는 성립될 수도 없었을 거다.

과장이라고?

보여 줘야겠군.

짝짝, 박수를 치자.

스켈레톤 군단의 눈에서 푸른 귀기가 번뜩였다.

전투 태세.

이제껏 자리를 지키던 스켈레톤이 일제히 대검을 들었고, 진정한 징벌의 시간이다.

“마, 말도 안ㄷ…… 커헉!”

“으으…… 으악!”

상대의 공격을 반격, 상대를 제압해 배에 검을 꽂아 넣는다.

절규를 토해 내는 쓰레기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마나 홀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뒤섞인 마지막 절규였다.

그 후, 두 다리를 잘라 내는 스켈레톤.

아까 내가 처리한 놈들은 일반인이니 다리 하나로 끝났지만, 얘들은 초인이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공평한 거 아니겠나.

그렇게 징벌이 계속되는 동안, 난 목표물 앞에 도착했다.

막다른 골목.

쓰레기 봉투가 가득한 벽면을 보고 비웃었다.

“참, 가지가지 하네.”

대가리란 놈이 쥐 죽은 듯 숨어 있다. 내가 알아챈 것을 알면서도 무슨 타조처럼 필사적으로 머리를 박고 현실을 도피하고 있다.

제 딴에는 나름 마법 장치를 한 것 같은데, 저딴 허접한 것에 당할 나겠나.

구질구질 말하지 않는다.

딱 한마디만 했다.

“3초 센다.”

3초 안에 나오지 않으면 네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주겠다, 라고 다짐하며 숫자를 셌다.

3.

2.

1을 세려는 순간.

“나, 나가겠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몸을 비집고 나오는 쓰레기.

참 잘 어울린다.

“한 번만 봐주…….”

어울릴 생각 없다.

곧바로 말을 듣지 않고 목을 날려 버렸다.

서걱-!

데굴데굴 구르는 목.

육체에서 영혼이 새어 나온다. 그 즉시 거인을 이용해 이 영혼을 삼켰다.

‘이 녀석이라면 무언가 알겠지.’

머리가 없는 집단은 없고 한 놈이 안다면 이놈일 수밖에 없다.

평소처럼 기억을 추출하려는데.

바로 그때였다.

파지지직-!

영혼에 균열이 생긴다.

거미줄처럼 찢어지려는 영혼. 영혼은 비명을 지르며 거인에게 매달린다.

죽여 달라고, 제발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지만 붕괴는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건지, 영혼을 존재째로 소멸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소멸한 영혼.

나는 텅 빈 손을 본다. 오랜만에 움직였는데 빈손이 돼 버렸다.

“허…….”

금제라니.

그것도 영혼의 금제(禁制).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나 분명한 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틀림없다.

“어디, 그러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것은 없고, 그건 영혼도 마찬가지다. 설사 그게 소멸됐다고 하더라도.

*   *   *

무림맹 난초관.

이름대로 난초로 뒤덮인 정자.

난초를 애정하는 무림맹주의 취향을 반영해 만든 공간이다.

썩뚝, 난을 치고 있던 무림맹주 난설이 부하의 말에 가위를 멈췄다.

“명하신 일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근거는?”

“……잎사귀가 떨어졌습니다.”

“저런…… 안타깝군.”

잎사귀라면 ‘스승님’의 명에 따라 정보를 모을 목적으로 한국에 보내 놓은 것들이다.

난설의 눈초리가 슬프게 축, 늘어졌다.

부하의 죽음 따위가 슬픈 건 절대 아니다.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는데…….”

스승님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

심혈을 기울여서 움직이라고 했는데 바보 같이 걸려서 ‘스승님’의 명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이 얼마나 불충한 일인가

“비선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나?”

“차이나타운 전체가 괴멸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뿌리내렸던 잡초들마저 모두 제거당했습니다.”

“흠…….”

부지불식간에 이뤄진 습격임에도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오랜 시간 뿌리내렸던 잡초마저 뽑았다면 이건 단순히 즉흥적으로 이뤄진 일은 아닐 터.

정보가 차단된 것도 이해가 갔다.

무림맹주는 골똘히 생각하다,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을 움직여서 한국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라.”

차이나타운에 있던 사람들은 엄연히 중국의 국민. 걸고넘어지면 충분히 걸고넘어질 수 있는 부분이리라.

부하가 허리를 굽히고는 나가고, 난설은 닫히는 문을 확인하고는 거울 앞에 앉았다.

“…….”

거울 속에는 발그레 볼을 붉힌 여인이 있었다.

조금 전 부하의 보고에 냉기를 풀풀 풍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비록 나쁜 소식이지만 스승님을 뵈러 가는 길…….’

난설은 배를 쓰다듬으며 화장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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