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89화>
진유리가 처음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차에서였다.
백화점으로 가는 길.
서울 시내답게 당연히 막혔고, 두런두런 애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박! 언니! 엘이 한국으로 온대!”
“엘이라면, 이스마일 왕자? 갑자기 걔가 왜 한국에 와?”
“그 까무잡잡하고 여리여리 한 남자애 맞지? 걔 그냥 놀러 오는 거 아니야? 방학마다 오잖아.”
“아냐아냐, 완전히 넘어온대. 우리 학교로 오려고!”
“정말? 언니가 몰랐네. 봄이는 좋겠다. 친구 오고.”
“응응!! 좋아, 신나라.”
이스마일과 절친인 박봄은 어깨춤을 추며 기뻐했다. 반면 이스마일과 사이가 데면데면한 헤나는 관심 없다는 듯 차창 밖만 보고 있었다,
“난 걔 별로야. 한 대 치면 쓰러질 것 같아서 싫어.”
“어허! 헤나, 아줌마가 매번 말하지. 폭력은 나쁜 거야. 알았지?”
“폭력 아냐. ‘몸의 대화’야. 아버지가 그랬어. 몸의 대화만큼 진솔한 건 없다 했어.”
“……그러니까, 왜 입을 놔두고 몸을 써.”
“그야,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
“으득, 박기혁. 내가 못 살아.”
진유리가 박기혁을 으득으득 씹으며 헤나에게 참된 지식을 심어 주고자 입을 열려고 한 그때.
바로 그때였다.
“저 차 또 보네.”
“헤나, 말 돌리지 말고. 아줌마가 전에도 그랬지…….”
“아냐, 아냐. 아줌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거 봐봐. 나 저 차 벌써 네 번이나 봤어.”
“……네 번?”
쥐색 준중형 승용차.
K사를 대표하는 모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었다.
“응! 수상해!”
“수상할 게 뭐 있어. 우리랑 같은 곳에 가나 보지. 언니, 신경 쓰지 마. 헤나는 맨날 저래. 그저께도 시내에 나갔는데 자꾸 누가 엿본다고 했어.”
“정말?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내가 가서 물어봤지. 왜 계속 저희 쫓아와요! 근데, 보니까 연예 기획사였어. 헤나랑 나랑 데뷔할 생각 없냐고 물어봤잖아.”
“그거 뻥이야. 엿보는 게 맞다니까.”
“헤나, 넌 매사에 너무 부정적이야!”
“봄이 너야말로 너무 안일한 거야!”
“눼~눼~.”
“흥, 수상해. 수상하다구. 저 번호판 딱 기억해 놓을 거야.”
사실 문제가 될 건 없다.
앞서 말한 듯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고, 비슷한 차량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또한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인가. 백화점이다. 주말 점심에 백화점으로 가는 차량은 좀 많나?
박봄의 말대로 헤나의 의심병이 도진 것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진유리는 헤나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며칠 전에 이 주제로 박기혁과 대화한 적이 있었으니까.
“헤나의 의심병? 그거 의심병 아니야. 성장하면서 점점 에우리아의 ‘집단 지성’에 눈을 뜨고 있는 거지.”
양이 질을 만든다.
다수 개체들의 협력, 또는 협업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적 능력.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미미하지만, 군집하여 높은 지능 체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헤나의 눈에는 세상이 전부 요지경처럼 보일 거야. 예를 들면 여기, 이 빨간색 종이도 헤나가 보기에는 수천 가지로 비춰지거든.”
“이런 집단 지성이 발전하면? 나중에는 남들과 똑같이 1시간을 훈련해도 수천, 수만 시간을 반복한 효율을 낼 수 있어. 요즘 말로 지리는 거지.”
지린다는 표현에서 등짝을 때려 줬지만.
진유리도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헤나도 봄이처럼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때부터 그녀는 신경을 바싹 곤두세웠다.
하나 그 차량은 백화점 주차장으로 향했고, 그 차에서 아기를 안은 부부가 나오는 것을 보며 ‘에이, 괜히 예민했던 거야.’라고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박봄도 잔뜩 우쭐해했다.
“봐! 내 말이 맞지!”
“아닌데…… 수상한데…….”
“수상하긴. 저 천사 같은 아기를 봐. 네가 예민한 거야!”
그렇게 박봄의 승리로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보였으나.
이상했다. 백화점을 돌아다니는데 시선이 느껴지는 거 아닌가.
“……뭐지.”
이 또한 과민 반응일 수도 있다.
봄꽃처럼 화사한 봄이에, 장미처럼 매력적인 헤나. 거기에 진유리는 배우 뺨칠 만큼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어딜 가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조합.
주목받는 게 한두 번은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진유리의 감은 이성이 틀렸다, 라고 말했고…… 그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나씩 ‘마킹’하기에 이르렀다.
이 공간, 백화점 내부에 있는 모두를 말이다.
“응? 언니?”
“아줌마, 마나…….”
누구보다 진유리의 마나에 민감했던 두 아이는 금새 눈치챘지만.
“쉿.”
비밀이야.
당연히 이는 불법이다. 일단 할 수 있는지를 떠나, 해서는 안 될 행동이란 말이다.
근데, 그래서 뭐.
그딴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진룡가의 망나니 진유리겠나.
더군다나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일. 이 부분에서 이미 진유리의 브레이크는 망가졌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걸리지만 않으면.’
이제 마나 장악력만큼은 아버지인 진룡 진도하와 견줄 수 있는 그녀답게, 얼마 안 돼 백화점 전체를 자신의 마나로 물들였다.
그런 가운데 애들의 옷도 봐줬고, 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먹었으며, 장난감도 잔뜩 안겨 줬다.
그렇게 알찬 시간을 보내고서 어느새 저녁 시간, 예약해 놨던 소고기 집으로 가려고 차량에 오르려는데.
“…….”
“언니……?”
“아줌마, 안 타?”
“언니 볼일 좀 보고 갈게.”
덜컥-!
차량의 문을 닫는다.
거짓말처럼 바뀌는 표정.
곧이어 차량을 둘러싸는 실드, 겹겹이 중첩되는 방어 마법, 고유 마법인 용언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철옹성이 구축된다.
곧이어 시야까지 차단되고.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을 때.
“뭐…… 커헉!!”
한 남자가 허공을 날아 진유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까 전, 그 차량에서 나온 부부 중 남편 쪽이었다.
“너 뭐니?”
“무, 무슨…….”
생사람을 잡는다, 라고 말하려는 남자의 뺨을.
짜아악!!
“커헉!”
후려쳤다.
피와 함께 이가 바닥을 굴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너는 뭐고, 쟤들은 뭐니?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십 대의 차량에 일제히 시동이 걸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그 순간, 진유리의 ‘용의 눈’이 개안(開眼).
마나의 세계선에서 선을 잡아당긴다.
두둑, 두둑-.
허공에 떠오른 차량들.
차량의 바퀴가 허공에서 맹렬히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야. 3초 줄게.”
이 기회를 저버리면.
“하나씩 지울 거야.”
일단 하나.
가장 가까이 떠 있던 차량이 통째로 우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일단의 무리가 검호가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 * *
복면인이 은신을 한 채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는다.
정확히 카메라의 사각에 위치한 담벼락. 아래에서 보니 높이가 어마무시하다. 예전에 봤던 만리장성을 보는 것 같다.
복면인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마나 반응 전무.
안전하다.
그 즉시 수신호를 보낸다.
- 진입.
은신하고 있는 복면인이 일제히 담벼락을 향해 달렸다.
빨판처럼 생긴 기구를 장착한 그들은 도마뱀처럼 벽을 기어올랐다.
담벼락 위에 안착한 복면인들 중 몇몇이 하얀 오브를 내부로 던졌는데, 전자기 차단 마법이 담긴 오브였다.
하얀 오브가 반짝이는 순간, 이제 이곳에 있던 전자 장치는 모두 깡통이 됐다.
선두에 선 복면인이 손짓하자, 전부 아무런 담벼락에서 몸을 던졌다.
거의 3층 높이를 아무런 장비 없이 떨어지고, 가볍게 안착한다. 흔한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은 완벽한 착지였다.
그 즉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스슥-
들숨에 오른발, 날숨에 왼발.
족히 스물이 넘는 인원이 달리는데 한 사람이 움직이듯 완전히 똑같다.
발소리도 없다.
먼지도 나지 않는다.
발자국은커녕 인영마저도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이 프로라는 사실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곧 궁전 같은 저택이 보였다.
바로 엎어지듯 몸을 숙이는 복면인 무리.
- 대기.
아까 전 담벼락에 먼저 붙었던 이가 선두로 나온다.
곧이어 귀를 바닥에 대고 눈을 감는데.
시각이 없어진다.
눈을 감아 없어지는 게 아니라, 시각 자체가 완전히 삭제됐다.
이어서 후각이 없어진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코에서 완전히 느낌이 사라진다.
차례대로 미각, 촉각마저 사라졌을 때, 이제껏 사라졌던 감각이 ‘청각’ 하나에 집중됐다.
미세한 진동이 귓가를 때리고 있다.
현재의 복면인은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마저 들을 수 있다.
인간이 있나? 인간의 움직임이 들리나? 다른 생명체가 있나? 몇 번을 되물으며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고.
결론.
- 없음.
다행히 아무도 없다.
감각을 돌이킨 복면인이 손을 들자, 대기 중이던 인원이 한 마리 야수처럼 네 발로 도약해 저택 안으로 침입했다.
- 잊지 마라. 우리의 목적은 정보 수집이다. 혹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대로 철…… 아니, 검호를 발견하는 즉시 철수다.
목적을 되새기며 장치 설치에 들어갔다.
옷걸이 끝에 카메라를 설치. 책장 끄트머리, 빈틈 사이에도 설치. 화장실, 거울 뒤, 시계 내부를 뜯고 녹음기를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 이상한 걸 보는 이도 있었다.
‘해골은 왜 여기 있을까.’
어느 집에 들어서자 유독 많은 해골들이 있었다.
거의 2미터쯤 되는 키를 가진 해골. 대체 이건 왜 세워져 있을까.
의문이 들었음에도 손과 발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만 골라 기술적으로 설치하는 이들.
- 완료.
- 완료.
- 임무 끝.
5분도 안 되는 시간, 복면인들은 저택 전체를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는 데 성공하게 됐다.
이제 탈출만 하면 끝이다.
복면인이 한결 편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동료가 보인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다시 문을 열었다.
또 동료가 보인다.
그렇게 또 문을 열자 다시 동료가…… 있어……?
“……!!”
복면인이 다급히 걸음을 옮겨 문을 열자.
저쪽에서도 문을 열려고 했었는지 문 앞에 동료 넷이 사이좋게 모여 있다.
한방에 여덟이 모여 있다.
프로인 그들에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다시 문을 열자, 이번에도 동료가 보인다.
이제는 열둘.
이번에는 문 대신 창문으로 달려가 열어 봤다. 그러자 열린 창문으로 등장하는 건 또 다른 방.
거기에도 역시나 동료가 있었다. 동시에 뒤쪽의 창문이 열리며 또 다른 동료들이 이 방으로 들어섰다.
“……!!”
결국 한방에 모두 모인 복면인 무리.
복면인의 등줄기로 또르륵,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당했다.
그것도 완벽히.
최악인 건, 당했음에도 어떻게 당했는지 짐작조차 못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때였다.
그들이 모여 있던 방의 벽이 일제히 허물어지더니, 빛이 번쩍인다.
사방이 거울로 만들어진 공간.
양쪽의 거울이 빛을 반사하며 그 사이에 있던 인간들이 늘어난다.
오른쪽으로 주르륵, 왼쪽으로 주르륵…… 무한대로 쪼개지는 인간들.
그 순간, 반사된 인파들 사이로 박기혁이 걷고 있었다.
“상상도 못 했어. 이 집에 도둑놈이 들어올 줄이야.”
손안에 든 카메라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거참,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잘 안 나온다.
한창 라면 끓이고 있는데, 구릿한 애들이 기어 들어와서 이것저것 설치하더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딴 걸 설치했을까.
하나는 분명하네.
“요즘 애들은 간도 커요.
말을 뱉는 순간.
거울 속 복면인의 팔을 꺾었다. 동시에 거울 밖 복면인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인다.
커억!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을 뒹구는 복면인.
분명히 당한 건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인데, 진짜가 당한다.
이게 뭔가. 환영인가? 아니면 마법?
복면인들을 더 미치게 하는 부분은, 이게 대체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거다. 온갖 훈련을 받았지만 단언컨대 이런 걸 배운 적은 없었다.
당황하는 그 모습에 박기혁은 피식 웃었다.
“대가리 굴리지 마. 고작 너희 수준으로는 벗어날 수 없으니까.”
됐고.
라면 다 식겠다.
빨리빨리 처리하자.
“기회를 줄게. 누가 시킨 거냐?”
3.
2.
1.
땡.
“그럴 줄 알았어.”
서걱-.
발목이 일제히 잘려 나갔다.
* * *
걸음을 걸으며 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어, 자기.
“어디야?”
- 고깃집 도착했어? 어쩌지? 아직 백화점인데 잠시 일이 생겨서…….
“혹시 그 일이라는 게 희한한 놈들이 따라붙든?”
- 응? 어떻게 알았어?
“방금 전에 봤다. 우리 집에도 왔더라.”
- 풋. 아이고야, 자살 방법도 가지가지야…… 그나저나 우리 자기, 내가 걱정됐구나.
“걱정은 무슨, 무사하면 됐다. 오늘은 빨리 집에 들어가. 애들 좀 부탁할게.”
- 고기 안 먹을 거야?
“어, 갑자기 볼일이 생겼네.”
- 무슨 볼일?
“뭐겠어?”
- ……너무 사고 치지 마. 어머님 화내.
“알았다.”
뚝-!
통화를 끊고는 폰을 아공간에 던지며 앞을 본다.
붉은 계통의 문. 한국인에게는 약간은 낯선 중국풍의 거리가 펼쳐져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나는 이곳 앞에서 복면을 꺼냈다.
어머니, 죄송해요. 다시는 쓰지 않으려고 다짐했는데.
붉은 복면을 머리까지 올려 쓰자,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에 망토가 펄럭였다.
“가 볼까.”
캡틴 타이거 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