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87화>
인류가 이 땅에 문명을 꽃피웠을 때부터 질병은 인류를 괴롭혀 왔다.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앗아 갔다는 ‘흑사병’이나 세상을 뒤흔들었던 전염병 ‘콜레라’ 등등 인류는 질병과 싸우며 생존해 왔고, 곧 수많은 질병들을 정복하며 성과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한순간이었다.
인간의 발전과 함께 질병도 함께 진화해 갔다.
그 대표적 사례가 ‘마나 암’이다.
마나를 받아들이는 기관이 변이, 혹은 오염되며 제 기능을 상실, 마나가 내부 기관을 공격하는 암.
중국에서는 ‘절맥’으로도 불리는 질병.
발병과 동시에 불치병으로 여겨지며 약도 없고 수술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치료 마법조차 불가능.
아니, 오히려 독이다. 치료 마법도 결국은 마나이기에 시전 자체가 불가능한 불치병인 것이다.
불치병.
치료가 불가능한 병.
이런 답이 없는 난제를 지금…….
“치료해 보라고요? 제가요?”
뜬금없는 제안에 한창 당황하는 중인데, 어머니는 내 당황이 무색하게도 심할 정도로 태연하시다.
“기술의 발전, 마법의 대두. 현대에 들어서 많은 질병들이 정복됐어. 많은 이들이 고통에서 해방됐지. 근데 재미있는 게, 수치로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해. 이상하지 않니?”
분명히 치료 기술이 발전했는데도 병원을 찾는 이는 줄지 않는다. 치료 마법의 도입으로 수술의 성공률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여전히 병실은 만석이고 응급실은 도떼기시장이다.
“이는 수치가 말해 줘. 10년 전과 현재의 암 발생률은 거의 비슷해. 사망률은? 역시 대동소이하지.”
“이상하네요. 분명히 마법이 도입되며 수술 성공률이 높아졌다면서요.”
“맞아. 정확해.”
“그럼 당연히 사망률이 줄어야 되잖아요.”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신다. 씁쓸함이 가득한 미소였다.
“재미있는 거 하나 말해 줄게. TV에서는 공공연히 암을 정복했다고 말해. 너도 봤을걸? 건강 방송에서는 요상한 버섯을 올려 두고 무슨 신이 내려 준 묘약인 것처럼 ‘이거 하나면 암 원천 차단!’이라도 나불대잖아.”
기억난다. 며칠 전에 애들이랑 같이 봤다.
버섯을 좋아하는 봄이는 ‘버섯!’이라고 하며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고, 반면 버섯을 싫어하는 헤나는 ‘버섯?’ 하며 우웩, 혀를 내밀었지.
“다 헛소리야. 겨우 그딴 버섯을 먹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암은 단 한 번도 정복된 적이 없어.”
의료계에 마법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인이 수술실에 함께 들어간 것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말 다한 셈.
여기에는 각종 이권을 둘러싼 어른의 사정이 있지만, 이건 넘어가자.
아무튼 이 시기부터 암 수술 성공률은 꽤 가파르게 상승했단다. 아무리 전이가 많이 되도, 일단 다 도려내고 치료 마법으로 출혈을 틀어막을 수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모두가 즐거운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상하게 마나를 사용한 수술은 재발률이 높다고 한다.
“의사 협회랑 초인 협회랑 매번 이걸로 싸우는데…… 하아…… 여하튼, 서론이 길었지만 여전히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고 싶었어. 엄마는.”
“그래서 마나 암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응, 이건 ‘이제’ 온전히 우리의 영역이니까.”
여기서 우리란 ‘초인’들의 영역이라는 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건 아니야. 우리 나름대로 연구 중이었거든. 수원에 있는 연구소 가 봤지? 거기 가면 자료 열람 가능할 거야.”
“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 어디까지나 엄마로서의 부탁이니까. 아니지, 이 경우에는 바람이라고 해야 하나.”
“네……?”
“엄마는 사람들이 우리 아들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데뷔부터 여러 가지 사고랑 얽혀서일까. 박기혁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흉흉하다.
나쁜 것은 아닌데 무섭다고 해야 하나?
그게 어머니는 못내 아쉬우셨나 보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내 머리를 어루만진다.
“이렇게 똑똑한 아들인데, 좋은 아빠고. 좀 있으면 좋은 남편도 될 건데…… 엄마는 기혁이가 존경받는 어른이길 바란단다.”
엄마의 욕심이라시는데 내가 뭐라 하겠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답했다.
“일단 보고 말씀드려도 되죠?”
일단 봐야겠다.
뭘 봐야 결정하든 말든 하지.
그나저나.
‘존경받는 어른이라…….’
문득 잊어버린 초심이 기억난다.
지난 생, 악명으로 점철된 생을 산 만큼 이번 생, 존경받는 마왕이 되기로 했는데…….
애들 보는 행복에 젖어 안주만 했던 것 같다.
초심을 되새겨 본다.
내 초심.
‘폼 나게 살자.’
다시 나를 본다.
현재의 난, 멈춰 있다.
구리다. 모양이 빠진다.
이게 맞나?
다음 날, 나는 일찌감치 연구소가 있는 수원으로 향했다.
* * *
수원 연구소.
정식 명칭은 ‘옵티멈 생체 분석 센터’.
나는 흰 가운을 입은 채, 내 또래의 연구원과 함께 이곳을 거닐고 있었다.
“세계 보건 협회에서는 마나 암의 발병 원인을 대략 세 가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전, 두 번째는 기형, 세 번째는 무작위.”
유전이라면 날 때부터 병을 타고날 운명인 것이고, 기형은 아예 기관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
그렇다면 무작위는 뭐지?
“무작위는 뭔가요?”
“말 그대로 무작위예요. 랜덤으로 걸린다고 보는 거예요.”
“무책임하네요.”
“네, 무책임하죠. 근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거 있죠. 10년째 마나 암을 연구한 제가 보기에도 이 병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현재 국내에서 마나 암 환자는 약 5천 명 정도.
전체 인구 대비로 보면 일견 작은 숫자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봤는데, 이거 생존자 숫자다.
살아서 투병 생활 중인 환자의 숫자.
대부분 마나 암에 걸리면 최소 3일, 최대 2주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예외가 있다면, 어린 나이에 거의 날 때부터 마나 암에 걸린 아이들은 마나를 차단하면 제법 오래도록 산다는 것.
다시 말해, 저기 5천 명은 대부분 5세에서 10세 이하의 아이들이란 것이다.
푸쉭-!
연기와 함께 차단 문이 열리고, 우리는 흰 가운에서 방호복으로 환복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연구원이 나름 진지한 표정을 하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체는 많이 보셨죠?”
“제가 누구로 보이십니까?”
“우문(愚問)이네요. 바로 꺼낼게요.”
연구원이 버튼을 누르자 끼익! 차가운 냉기와 함께 시신이 밀려 나온다.
마나 암으로 사망한 성인 남성의 시신.
시신 특유의 창백한 얼굴이.
나는 설명을 하려던 연구원의 입을 손을 들어 막으며 시신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뭐가 기분이 싸하다.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한층 더 진지하게 살핀다.
눈을 들춰 동공을 확인하고 입을 열어 혀와 치아 상태를 확인한다. 목 아래로 척추를 따라 내려가며 몸을 샅샅이 더듬다, 뒤집어서 확인한다.
뭐지, 대체 뭐지?
간질간질한 이 기분.
나는 지금 뭔가 놓치고 있다.
“좀 째 봐도 됩니까?”
절차를 밟은 뒤 수술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스를 건네주는 연구원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손가락 끝에 마나를 압축, 정교한 칼날을 만들어 배를 갈랐다.
위장의 매끄러운 표면에 푸른 반점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곰팡이처럼 생긴 반점.
“장기를 직접 공격해서 생긴 거예요. 이분처럼 급성으로 마나 암이 발병한 경우에는 그 징후가 더 확실하게 보이죠.”
“흠…….”
불안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 간다.
설마, 설마, 하며 장기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것도 모자라 마나로 전신 스캔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곰팡이처럼 생긴 반점을 적출해 내…….
“야.”
정령화되어 작아진 ‘거인’을 소환해 먹여 본다.
그리고 내린 결론.
‘뭔지 알겠다.’
이것저것 이상한 형태로 변화돼서 긴가민가했는데, 이제야 확신이 든다.
지난 생, 악룡을 멸하기 위해 나섰던 원정에서 원정대를 끈질기게 괴롭힌 존재들이 있다.
계약을 통해 악룡에게 영혼을 저당 잡혀, 인간임을 포기한 존재들.
“권속…….”
‘권속의 계약’
이게 바로 이 마나 암의 정체였다.
* * *
“응……?”
묘한 감각에 황룡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군.”
태사자가 동그란 눈으로 황룡을 보다 파핫,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곳은 ‘사념 세계’ 아닙니까. 여기에 우리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만약 농담이었다면 꽤 괜찮은 센스였습니다. 제법 웃겼어요.”
“…….”
태사자의 말마따나 이곳 사념 세계는 신이 수호령에게 만들어 준 곳.
오직 수호령만이 허락된 공간이었다.
황룡도 자신이 했던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줄 깨닫고는 쯧, 혀를 찼다.
“피차 바쁠 텐데,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에우리아가 ‘분신’을 만든 것은 확실해 보이나?”
“오늘도 바로 들어오십니다.”
태사자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녀의 힘,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졌더군요. 만약 수호령이 아니었다면 인간에게 잡아먹혀도 벌써 잡아먹혔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 에우리아의 분신에 대한 정보는?”
“모르겠습니다. 꽤 열심히 살핀다고 자부하는데, 에우리아가 자신의 권역 바깥으로 나오지를 않습니다.”
“시끄러워서가 아닌가.”
“네, 이슬람이란 종교를 믿는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시끄럽죠. 아무튼 나오질 않으니 정보를 얻을 곳이 없습니다. 다만…….”
뜸을 들이던 태사자. 골치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린다.
“3년 전쯤 접촉한 인간들이 있긴 했습니다.”
“누구?”
“박기혁이라고, 한국, 위그드라실 쪽 인간입니다.”
황룡은 태사자의 미간이 왜 찌푸려졌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위그드라실이라면 자신들과는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종자. 조사는커녕, 한국에 발길을 들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어쩌긴. 내가 나서마.”
나서야 한다.
자신들의 비원을 위해 움직이는 것 아닌가.
설령 위그드라실과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에우리아의 분신이 어떠한지, 확실한 정보를 캐내야 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을 육아하면 되겠습니다.”
“순조롭게 성장 중인가.
“글쎄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왜?”
“이미 예상했던 문제입니다. 인간은 너무 나약하더군요. 손도 많이 가고요.”
태사자가 말하는 ‘아이들’은 태사자의 힘을 받은 분신들이었다.
에우리아는 수호령이 자식, 즉 분신을 가지는 것을 자신이 최초로 시도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이미 그녀가 헤나를 만들기 전부터 여기 두 수호령은 자신의 분신을 세계에 꺼내 놓는 것을 연구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이다.
“그래서 말입니다. 황룡이 폐기한 그 프로젝트, 제가 써도 되겠습니까?”
“무얼 말인가.”
“그 있잖습니까. ‘권속’.”
“아아…….”
분신을 만들기 전, 황룡은 세상에 자신의 ‘권속’을 보내려고 했다.
추종자가 아닌 진짜 ‘권속’.
하지만 신은 이런 황룡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인간 세계에 과도하게 침범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황룡은 분노했다.
자유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손발까지 묶겠다는 건가.
이런 신을 향한 분노는 점차 인간을 향해 갔다.
나는 신에 근접한 힘을 가졌음에도 너희들 때문에 갇혀 있구나.
그에게 인간은 족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분노의 결과가 변형된 ‘권속의 계약’, 현재는 마나 암이라 불리는 질병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꽤 신선했습니다. 계약서에서 이름을 살짝 지웠더니 그런 효과를 발휘할 줄을 말입니다.”
인간의 질병에 ‘권속의 계약’을 숨겨 놓는다.
이 질병에 걸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계약서의 ‘을’이 된다.
문제는 여기 갑의 자리에 ‘황룡’이 들어가면 계약이 완성되겠지만, 있어야 할 ‘황룡’이 빠지며 계약이 불완전해진다. 일종의 깡통 계약이라고나 할까.
그 결과 권속의 계약이 ‘부정’되며 을이 죽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권속’은 어떻게 쓰려는가.”
“아! 그것이 말입니다.”
결국 신이 개입한 것은 ‘수호령’이 권속을 부리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신할 ‘인간’을 만들면 되지.
“제 분신을 거기에다가 놔두면 되지 않을까요?”
태사자가 방긋 웃었다.
느려 터진 인간의 성장을 촉진할 해결책은 의외로 먼 곳에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