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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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게시판>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직딩 주부입니다.
제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딸 둘에 막둥이 아들 하나요.
지금 말하는 건 막둥이 아들 이야기입니다.
이 애가 어려서부터 별났어요. 엄청 활동적이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죠. 그러다 한 달 전쯤일 거예요. 애가 이상한 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요.
덜컥, 놀란 저는 부랴부랴 검사했습니다. 다행히 ‘아동 신체 검사’로 무료로 해 주더군요.
병원에 가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앉아 있는데, 의사가 저를 찾더군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검사에 체내 마나 수치가 특출하게 높다고(또래 중에서 두 번째라네요ㅎ;;) 나왔더군요.
의사 선생님께서 이른 나이에 각성을 할 수 있다며, 제게 교육에 각별히 주의하라 당부했어요. 할 수만 있다면 ‘영재 학교’에 입학하라고 했을 정도랍니다. ㅎㅎ;;
바로 집에 와서 제가 큰 마음먹고 영재 학교를 이곳저곳 알아봤는데요.
이번에 새로 건립한 ‘용호 재능 교육관’이라는 곳이라는 곳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검호랑 진룡이 합작했다는데, 참을 수 있어야 말이죠. ㅎㅎ;;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용호 재능 교육관에 어떻게 입학할 수 있나요?
혹시 이 학교에 관계자가 있다면 부디 메일 좀 보내 주세요.
학비는 상관없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나 애 아빠나 남부럽지 않게 벌고 있거든요. ㅎㅎ;
여기가 초인에 대한 정보 교류가 제일 활발하다 써봅니다.
└ 우와, 아드님이 대단하네요. ㅊㅊㅊ추추춫ㅊㅊㅊ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 부럽네요;; 우리 딸도 같은 검사했는데. 하……
└ 부러워할 필요 없음. 체내 마나 수치가 높다고 다 초인되는 거 아님. ㅋㅋ
└ 이게 맞다. 정신 차리셈, 아줌마. 초인 뽕 오지게 드셨음.
└ ;; 왜 그렇게 말해요. 너무하시네.
└ 축하드립니다. 체내 마나 수치가 초인이 되는 결정적 지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자리 순위라면 충분히 유의미한 수치입니다. 다만 질문하신 ‘용호 재능 교육관’의 입학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 내가 알기로 용호 교육관은 초인으로 각성해야 받아 주는 걸로 아는데?
└ 맞습니다. 덧붙이자면 용호 재능 교육관은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 모두 있으며 현재는 초등반만 받고 있습니다. 또한 학비는 전액 무료이며 사정이 어려운 가정의 경우, 최저 금리 대출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 차라리 그냥 일반 영재 학교 보내는 건 어때요. 거기도 각성한 애들 간간이 보이는데……
└ 마즘, 시설 차이 별로 없음.
└ 근데, 솔직히 나라도 용호 교육관 보내고 싶겠다. 일단 진룡하고 검호가 세웠잖아.
└ ㅁㅊ;; 대출도 가능함? 팔자 피는 거네?
└ 생각 좀 하고 말하셈, 대출 된다고 무슨 팔자임.
└ 또 학교 물어보는 거임 ;; 형님들 요즘 초인드림에 이런 글 왜 이렇게 많아?
└ 용호 교육관 때문이죠. 요즘 맘들 사이에서 저기 입학하는 게 꿈이에요.
└ ㄹㅇㅋㅋ 강남 학군에서 유명하다. 브로커까지 있는걸ㅋㅋ
└ 브로커는 무슨 전부 사기꾼이다. 초인으로 각성한 애들만 뽑잖아. 브로커가 초인 만들어 주냐.
└ 그냥 꿈꾸는 거지.
└ 엄마니까. 제 자식 좋은데 보내고 싶은 거야. 이해하자.
└ 소문에는 ‘마왕’의 딸이 다닌다고 하더라. 걔 때문에 가끔 마왕이 개인 교습해 준다 하더라고.
└ 유리 아줌마도 같이 해 줘요.
└ 유리면 진유리 아니야? ‘마룡’ 맞지?
└ 선생님? 거기 관계자이신가요?
└ 학생인데요. 봄이 친구인데, 가끔 아저씨가 와서 가르쳐 줘요.
└ 저기 학생 아줌마가 물어……
└ 거기 입학 기준이……
……
…
* * *
내 공식적인 직함은 ‘옵티멈 특임 교육관’이다.
대표 직속으로 교육관이라는 직위답게 고위급 게이트 공략 노하우와 마법 활용, 나날이 진화하는 적의 전략에 맞서 새로운 전략 및 대응법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게 된다.
뭔가 대단한 것 같지 않나?
무지 바쁠 것 같지 않나?
말만 들으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역할 같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가타부타 이유를 들 필요도 없다.
옵티멈 내 특임 교육관의 숫자는 달랑 둘.
나랑 진유리.
이게 끝이다.
어때, 감이 잡히나?
맞다.
이 특임 교육관이란 직위는 우리 김연희 여사님의 불안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중임을 맡기자니 항상 폭주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냅두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겠고. 우리 기혁이를 어떻게 하니…….”
“하는 수 없다. 엄마 옆에 둬야겠어. 곁에 두고 살필 수라도 있게.”
조금 충격이었다. 내 신용이 이렇게까지 바닥일 줄이야……. 역시 하얼빈을 지운 게 화근인가?
아무튼 특임 교육관은 신설된 직위답게 정말 한가했다. 아니, 한가하단 말도 잘못됐다. 일정 자체가 없으니까.
연구를 하고 싶으면 연구를 해도 되고, 훈련을 하고 싶으면 훈련을 하면 된다. 조금 오버하자면 매일 출근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대표 직속이라는 게 무슨 뜻이겠나. 내 위로 명령자가 어머니 외에 없다는 말이고, 속된 말로 꼴리는 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진짜 꼴리는 대로 했겠나.
나 박기혁이다. 다 큰 성인이 부모님 등골을 뽑아먹는 것은 쪽팔리는 법.
당연히 뭐라도 했지.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게 ‘옵티멈 프로텍터’다.
“완성. 겉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진유리! 여기 이거 한번 입어 봐봐.”
“알았어.”
“쓰읍-! 여기서 벗지 말고. 저기 가서 갈아입고 와 봐. 어서.”
“칫.”
“……꽉 끼는데? 조금 답답해.”
“시제품이라 그런 거야. 이거 입어 봐. 이건 좀 나을 거야.”
“알았어. 잠깐…….”
“경고하는데 여기서 벗을 생각하지 마라. 저기 가서 갈아입고 와. 얼른.”
“……칫.”
알파 기어, 인공 정령, 마룡기 등등 내로라하는 기술들의 정수를 녹여 만든 전신 슈트였다.
그렇다고 저 위의 것들만큼 대단한 건 아니고, 체온 보정에 항마력과 물리 저항력, 약간의 보조 마법이 딸린 슈트였다.
범용성이 높아 쓰기 편하고, 결정적으로 이게 중요한데.
싸.
같은 기능의 아티팩트보다 훨씬 싸다.
“아들…… 엄마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겨우 이 가격으로 이 기능이 다 들어 있다고?”
“조금씩 들어 있는 거죠. 체감될 정도는 되지만 전투의 판도를 바꾸기에는 많이 어중간해요.”
“그거야, 마왕이신 우리 아드님 기준이시죠. 엄마가 보기에는 딱 됐어. 이 단가에 이 성능이 말이 되니? 좋아, 마음에 쏙 들어. 으이구! 우리 아드님 고생했어요~.”
그날 어머니는 정말 기뻐하셨다. 다 커서 어머니께 궁디 팡팡을 당했을 정도.
솔직히 민망했다.
내가 보기에는 하자가 많은 물품이었거든.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셨다. 비즈니스에서 어머니는 나보다 몇 수는 위였고, 내 눈에 어설프기만 했던 슈트를 옵티멈의 상징으로 만드시더라.
옵티멈 초인들이 착용한 의문의 슈트, 과연 그 정체는?
‘옵티멈’ 에이전트 전용 무장이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나?
착용자 인터뷰 “성능이 말도 안 된다.” 극찬이 이어지다.
옵티멈 대변인 “본 슈트는 현재 시범 운용되고 있으며, 빠르면 올해 안에 전격 도입 예정.”
B모 관계자 “아무래도 옵티멈이 미친 것 같다.” 아티팩트를 무료로 나눠 주는 에이전트가 있다?
김연희 대표 “무료 맞다. 막내가 준 선물. 소속 초인들을 위해 지원.”
이렇게 어머니는 내 어설프기 그지없는 물건으로 옵티멈이란 브랜드 파워를 올려 갔고, 그동안 난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보냈다.
평소처럼 애들 등교시키고, 연구하고, 훈련이나 하며, 저녁에는 애들이랑 진유리랑 밥 먹는 잔잔한 일상을 즐겨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봄이가 ‘봄이는~.’이란 3인칭 화법을 버리고 있을 때쯤이고, 헤나가 쑥스럽게 ‘아…… 버지.’라고 말하며 나를 가슴 벅차게 했을 때였을 거다.
그날도 평소처럼 고기를 잔뜩 굽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대뜸 내 다리를 꽉 잡는 거 아닌가.
“아빠! 아빠가 세상에서 젤루 세지?!”
“애들이 우리 말 안 믿어!”
“아빠. 미안한데, 우리 반 와 주면 안 돼? 아빠가 짜잔 나타나 줘.”
“부탁해, 아버징~.”
뭐, 있잖나.
누구 아빠가 더 세다.
이맘때 애들의 말싸움에 본의 아니게 낀 것 같았다. 그래서 애들 기 한번 살려 주는 셈치고 학교에 갔는데.
이때는 몰랐지.
한 달에 두 번씩 정기 수업을 할 줄은.
특임 교육관의 ‘교육관’이 엉뚱한 데서 역할을 했다.
* * *
용호 재능 교육관.
박기혁이 오는 날이면 그의 수업을 들으려고 학교의 전 인원이 모인다.
50명도 되지 않는 전교생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교육진들 마저도 강당 한구석,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에 앉아 있다.
그럴 수밖에.
마법을 장착한 검호, 검을 장착한 대마법사.
무려 ‘마왕(魔王)’의 수업이니까.
“아저씨가 항상 하는 말, 기억하니? 마나는 세계의 어디에도 있다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내리쬐는 햇빛에도, 지금 이 공간에도 마나는 있다고 말했지.”
“마나는 우리 주위에 항상 있단다. 우리 인간은 마나의 바다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자, 그럼 의문이 생겨. 우리는 분명히 마나에 빠져 있는데, 왜 이 마나를 사용할 수 없을까?”
“그건 그 마나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오늘은 마나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 거야. 자, 아저씨 근처로 모여.”
다닥다닥, 아이들이 모인다.
특별한 자리가 없는 바닥. 박기혁과 함께 퍼질러 앉은 아이들. 마치 할아버지가 추운 겨울, 벽난로 앞에서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 다정한 모습에 베테랑 선생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수업한다고 했을 때는, 화라도 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애 아빠는 다른가 봐요. 애들을 들었나 놨다.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에요. 배우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이제는 인정해야겠어요. 기혁 씨, 정말로 잘 가르치네요.”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박기혁이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교육진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실력과 가르침이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은 이미 오랜 세월 검증된 사실이 아닌가.
게다가 그건 둘째치더라도 박기혁이란 사람의 과거가 워낙 흉흉해야 말이지!
그가 아카데미 입학 당시 조원을 뽑는답시고 보호 장비 씌워 두들겨 팬 에피소드는 아직도 두고두고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박기혁과 아카데미 동기였던 현역 초인들은 ‘박기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
설마 애들을 스파링 코트에 올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한 우려였다.
박기혁은 의외로 애들을 잘 다뤘다. 또한 수업도 아주 훌륭하게 잘했다.
박기혁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칠 걱정이다.
그가 누구인가. 한때 칠흑 마탑의 대공자였던 남자다.
내가 가르친 마법사만 따져도 이 강당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데, 누가 누굴 걱정해?
게다가 전생, 현생을 다 합쳐 고아원에서 돌본 아이들만 한 트럭이었다.
저 봐라. 애들이 깔깔대며 행복해하는 거.
몇몇 1학년 학생들은 박기혁의 어깨에 올라 수업이고 뭐고 꺄르르, 좋아 죽었다.
보통의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을 나무라겠지만, 박기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정쩡하게 매달려 있는 아이를 번쩍 들어 목에 얹어 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양쪽 어깨에 하나씩 아이들을 올리고, 여기에 두 아이를 양 허벅지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마나의 속성이 자유로운 것처럼 마나를 쌓는 방법도 자유롭단다. 편하게 입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다면, 특이하지만 피부를 통해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어.”
자고로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에게 맞춰 가르쳐야 하는 법.
즐겁게! 재미있게! 자유롭게!
당연히 질문도 자유롭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중국에서는 머리, 가슴, 배에 마나를 쌓는대요. 그게 선생님이 말하는 거예요?”
“음, 맞아. 대신 차이가 있지.”
그리고 질문한 학생에게는 절대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르다.’라고, 차이를 가르쳐 준다.
“연우의 말대로 마나를 쌓는 곳으로 보편적인 데는 머리, 가슴, 배지. 중국에서는 이걸 각각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라고 해.”
“머리에는 뭐가 있지? 그렇지, 뇌가 있어. 뇌는 무슨 이미지가 그려져? 똑똑해. 맞아. 이곳에 마나를 쌓으면 술식을 더 똑똑하게 그릴 수 있어.”
가슴은 심장, 심장은 쿵쾅쿵쾅 죽을 때까지 띈다. 따라서 부지런하다. 그래서 마나를 보다 빨리, 많이 쌓을 수 있다.
배는 가슴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안정적이다. 음식물이 꾸르륵, 소화되며 살이 되는 것처럼, 살이 되어 내 몸에 가장 알맞게 변한다.
똑똑, 쿵쾅쿵쾅, 꾸르륵-
다소 유아틱한 설명이지만 아이들은 이런 걸 원했다. 전문적인 설명보다 편하고 즐거운 설명 말이다.
“복잡하지? 근데 말이야, 이거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저씨가 보기에는 다 똑같거든.”
배에 마나를 쌓는다곡 해서 마법을 못 쓰는 것도 아니다.
머리에 쌓는다고 해서 모두 심장보다 마나를 빨리 못 쌓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 쌓아도, 뭐라고 불려도 마나는 마나야. 이건 절대로 변치 않는 ‘진리’야.”
“진리를 탐구하는 건 마법사로서의 의무지만 아직 너희는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 자기한테 맞는 방식으로 마나를 이해하면 되는 거야.”
이때 아이가 또 손을 든다.
“선생님! 선생님! 마나를 쌓는 방법은 자유롭다 그랬잖아요. 근데요, 저희 아빠는 다르게 말했어요. 마나를 쌓는 위치마다 방법이 따로 있다고 했어요!”
“음, 뭔지 알겠어. 연우는 혈족이잖아. 연우 아버지가 말한 마나를 쌓는 방법은 아마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방법일 거야.”
“맞아요!”
“하지만 여기에는 혈족이 아닌 친구들도 있잖아. 그 친구들과 연우는 다르겠지? 그리고 말이야…… 이건 비밀인데.”
무슨 대단한 비밀인 양 애들 앞에서 소곤댔다.
“혈족이라고 해서 굳이 가문의 방법으로만 마나를 쌓을 필요는 없어.”
혈족들은 가문마다 내려오는 마나 연공법이 있다. 그걸 무슨 비기(秘技)랍시고 숨기는데…….
박기혁이 보기에 그거 다 허세다.
“이미 말했지만 자기한테 맞는 방식으로! 마나를 쌓는 것도 똑같아. 네가 가장 편하고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쌓는 게 최고야.”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100명이 있으면 100명이 모두 다르다. 마나를 쌓는 것도 똑같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는 거다.
“이제부터 아저씨가 너희에게 ‘맞는’ 방식을 가르쳐 줄 거야.”
이제 지루한 수업은 끝. 아저씨랑 놀아 보자.
일어서는 박기혁을 따라, 아이들이 번쩍 일어서고.
박기혁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육망성 마법진이 주변을 감싸며 아이들이 떠오른다.
둥실둥실, 우주에 온 것처럼 무중력 상태로 변한 공간.
“모두 눈을 감고 마나를 느껴 봐. 너희는 지금 마나의 공간에 빠져 있어.”
눈을 꼭 감고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천천히, 마나를 조금씩 아이들에게 투입시켰다.
그러자 고요하던 마나가 회전하고…… 그 순간,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빛에 휩싸인다.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색은 없다. 설령 같은 빨강이더라도 누구는 더 진하고, 누구는 더 연하다.
전부 다른 색을 띤 아이들.
각자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리라.
그 경이로운 장면에 교육진들은 할 말을 잃는다.
타인의 몸에 마나를 주입한다고?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동시에? 그것도 아무런 부작용 없이?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마나 컨트롤.
이게 ‘마왕’이다.
마법의 왕.
세상에서 오직 박기혁만이 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 * *
같은 시간. 버밍엄의 대학 병원.
병원 복도를 지나가는 남자, 존 도를 향해 간호사가 달려왔다.
“스미스 씨!”
주황색 머리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간호사.
평소 눈치 없이 추파를 던져 귀찮아했던 여자였다. 존 도는 침착하게 표정을 풀며 인공적인 미소를 짓는다.
“간호사님, 무슨 일이신지?”
“아, 그게요. 그게 ‘올리버’ 일로 할 말도 있고요…….”
얼굴이 벌게진 여자가 ‘점심 어때요?’라고 말하며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감정이 뻔히 드러난 표정. 그러나 존 도는 그런 여자의 표정을 보면서도 ‘올리버’란 이름만 떠올랐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본 수상했던 저택이 찝찝했는데, 잘됐다.
‘이 여자를 이용하면 되겠어.’
그 즉시 점심 약속이 잡히고, 몇 시간 뒤 식당에 앉은 두 사람.
영국에서 꽤 유명한 커리 집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존 도는 세상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은근슬쩍 정보를 캐낸다.
“그런데 엘라 간호사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요? 올리버 상태요? 아니면 병실에 대한 건가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다른 건 아니고, 며칠 전에 옆방 환자 한 분이 응급 차량을 타고 어디로 가는 것을 봤습니다.”
“응급 차량이라면…… 아!!”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친 간호사가 말을 잇는다.
“그건가 보네요. 연구소에 가는 걸 거예요.”
“연구소라면?”
“올리버만 봐도 아시다시피, ‘희귀병’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뭘 해 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그래서 연구소에서 진료를 보기도 해요.”
희귀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 및 치료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소에 갔다 오면 환자들이 몹시 ‘건강’해진다고.
“그렇지 않아도 이 건에 대해 스미스 씨한테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올리버도 한번 신청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혹시 알아요? 올리버의 상태가 좋아질지.”
마치 제 자식인 양 말하는 간호사를 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하고는 얼마 뒤 자리를 파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존 도는 생각해 본다.
치료를 한다라…….
실제로 경과가 좋아졌고…….
만약 자신이 그곳을 가 보지 못했다면, 혹할 만한 제안이다. 자신의 아들 올리버는 그만큼 위태로웠으니까.
하지만 그의 두 눈으로 본 그곳은 절대 치료하는 곳이 아니었다.
‘차라리 공동묘지라면 모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11층, 특수 병동에 들어선 존 도.
클린 마법을 받고 방호복을 입은 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눈앞에 유리벽이 보인다.
외부의 마나가 체내에 쌓일 때 기형적인 형태로 변형, 각종 장기를 공격하는 병인 ‘마나종’ 혹은 ‘마나암’이라는 질환에서 버틸 수 있는 특수 장치였다.
그리고 이 유리벽 안에서 그를 향해 웃고 있는 소년.
“아버지, 오셨어요?”
올리버, 존 도의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