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85화 (18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85화>

권용준은 부모의 얼굴을 모른다.

젖먹이, 태어난 지 고작 한 달조차 안 된 상태에서 권용준의 부모는 그를 보육원 앞에 버려두고 도망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지어 준 것도 수녀님이다.

얼굴 용(容) 뛰어날 준(儁).

아기임에도 숨길 수 없는 미모에 지어 준 이름이었다.

권용준은 그렇게 자신이 버려졌다는 자각조차 못 할 나이에 혼자 남겨졌다. 그래서인지 용준이는 부모를 그리워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수녀님이었고, 집은 보육원이었으니까.

동생들이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부모를 그리워할 때 다 괜찮다며 보듬어 줬지만, 당시에 그는 공감하지 못했다.

왜 울지? 왜 그리워하지?

가끔씩 봉사 활동으로 봉사자들이 와서 자신들을 측은한 눈길로 볼 때도 공감하지 못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따뜻함을 몰랐던 아이.

그래서 안타깝고 측은한 시선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

그게 권용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용준은 한 남자를 마주한다. 이제껏 그가 봤던 사람 중 가장 크고 강한 사내.

박기혁.

그는 자신을, 보육원의 동생들을 정말 가족처럼 대해 줬다. 함께 웃고 떠들고, 가끔은 잘못이 있으면 나무랐다.

“이리 와. 형이랑 이야기 좀 하자.”

“왜 때렸어? 걔가 엄마 없다고 놀렸어? ……손 내려. 잘 팼다. 되바라진 것들이 어디서 패드립이야. 다음번에는 턱을 뭉개 버려.”

다른 봉사자들은 무슨 잘못이 있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며 넘어갔지만 박기혁은 나무랄 땐 나무라고, 이야기를 들어 줄 때는 끝까지 들어 줬다.

“용준이, 강백고 다니지?”

“월요일에 형이랑 학교 같이 가자.”

따뜻했다.

든든했다.

형이 있으면 정말 이렇지 않을까.

처음 느껴 보는 생경한 따뜻함이 권용준의 얼어붙은 감정을 녹였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나도 형처럼 되고 싶다.

결심한 것이.

……

쏘아지는 검기를 간발의 차로 피한 권용준이 재빨리 땅에 박혀 있는 창을 잡았다.

‘…….’

호흡을 들이마심과 동시에 시야를 넓힌다.

표적은 ‘리자드맨 킹’.

그 순간.

굳건히 박히는 다리.

단련된 등이 수축한다.

승모근을 따라 광배 상부에서 하부, 허리에서 엉덩이까지 후면의 근육이 요동치며 비틀리고.

내던진다!

푸슉-!

푸른 섬광이 일직선으로 쏘아지고, 리자드맨 킹 ‘사우르원’의 방패를 강타했다.

투쾅-!

창과 방패가 충돌하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권용준은 이미 다른 창이 박힌 곳에 다다랐다.

다시 투창!

콰앙!!

달리고 던지고…….

집요할 정도로 동일한 패턴.

이 단순한 과정을 반복한다.

리자드맨 킹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나.

인간 한 마리가 자신을 중심으로 뱅뱅 돌며 창을 던져 대는데 자신은 멍청하게 막고만 있으니.

결국 참지 못한 리자드맨 킹이 투레질하며 권용준을 향해 도약했다.

범위 스턴 패턴.

이 패턴에 가격당하면 일정 시간 발이 멈추게 된다. 발이 멈추면 권용준의 최대 장점인 발이 묶이는 것.

그 말인즉, 탱킹이 불가능해지고 후열이 위험해진다.

뛰어오른 리자드맨 킹의 모습을 보며 권용준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보다 넓게, 보다 정확히.

시야를 확장한다.

‘할 수 있나?’

그리고 판단한다.

‘할 수 있다!’

그 순간 권용준이 있는 힘껏 호흡을 들이마셨고, 움직임이 흐릿하게 흐려지더니,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남겨진 잔상 위로 떨어지는 리자드맨 킹.

대지가 흔들리며 폭탄이 터진 것처럼 먼지의 고리 주변으로 퍼지는데.

그 먼지의 고리가 멈춘 곳은, 정확히 권용준 5센티미터 앞.

넓은 시야, 빠른 발, 정확한 분석으로 완벽히 보스의 패턴을 파훼한 권용준.

안도의 한숨을 쉴 시간도 없다.

대지에 꽂혀 있는 창을 잡아챘다.

나의 싸움은.

발을 쉬지 않아야 하며.

창을 계속 내던져야 한다.

일정 범위 안에서 창은 무한으로 생산되고, 푸른 섬광은 쉼 없이 쏘아졌다.

결과적으로 리자드맨 킹 ‘사우르원’은 끝내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권용준이 허락한 위치에서 말이다.

디펜시브.

공격을 막아야 한다고 해서 굳이 방패로 버틸 필요는 없다.

피해도 되고, 방어를 강요해도 된다.

빠른 발과 넓은 시야, 이 두 가지를 극한으로 연마한 탱킹.

이게 권용준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

“권용준, 제대로 안 할래?”

박기혁.

형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쓴소리가 꽂힌다.

“유효타가 하나도 안 났잖아! 허리를 쓰라고 몇 번을 말해. 설마 탱커라고 해서 대충 공격하는 거야? 장난해!”

그 쓴소리에 도리어 긴장이 풀리는 권용준.

‘보여 줘야지.’

틈틈이 연습했던 비장의 한 수를.

창을 내딛는 순간, 권용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긁힌다.

그러자 권용준의 손을 떠난 창이 푸른 마나에 휩싸여 완곡한 곡선을 그리는데.

지금이 중요하다.

곧바로 창을 쥔다.

평소와는 다르게 양손에 차례로 창을 쥔 권용준이 몸을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창을 뿌렸다.

본래는 다수의 창을 여러 궤도로 때려 박아 사각을 지우는 기술이지만, 아직 이 기술을 실현하기에는 무리.

그래도 셋 중 하나는 맞겠지, 라고 생각하며 냅다 던졌고.

이게 또 기가 막히게 성공한다.

푸욱-!

크아아아아!!

드디어 첫 유효타가 터졌다.

그리고 기다리던 형의 칭찬도.

“잘했어!! 그거야!”

권용준이 해맑게 웃으며 다시 리자드맨 킹의 뒤를 잡고 있었다.

*   *   *

짝짝짝!

언제 저렇게 성장했나.

리자드맨 킹을 요리하고 있는 용준이를 보고 있자니, 박수가 절로 나온다.

“기대 이상이네.”

용준이는 분명 재능 있는 아이다.

일단 ‘눈’이 좋잖나.

눈은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인체의 모든 감각 수용 기관들 중 7할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눈이 좋다는 것은 뭘 해도 기본 이상은 될 수 있다.

내 경험상으로도 눈이 좋은 아이를 가르치는 것만큼 쉬운 게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게 힘들지, 그 반대는 일도 아니거든.

여기에 용준이는 머리도 좋았다. 시각 정보 분석까지 가능한 거다.

또 플러스알파.

다리까지 가졌네?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파훼할 발까지 가지고 있는 거다.

게임 끝난 거지.

“굉장히 리드미컬한 전투 스타일입니다.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겁니까?”

“맞아. 볼 맛나지?”

“네, 확실히.”

내가 권용준을 가르칠 때의 원칙은 단순했다.

넓은 시야, 명석한 두뇌, 빠른 발.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자.

권용준의 전투는 ‘범위’를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타깃팅이 된 적을 중심으로 범위를 지정. 현재 용준이의 실력으로는 대략 50미터 정도의 반지름을 가진 원형의 범위.

이 안에서 창이 생성된다.

물론 생성이라고 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무리.

연결된 아공간에 쌓아 둔 창이 생성된다. 내가 옛날에 썼던 ‘아공간 주머니 100호’. 100평짜리 공간을 전부 창으로 가득 채워 놓은 거다.

다시 돌아와, 무작위로 생성된 창을 투창한다.

그리고.

던져진 창이 적을 ‘가격’하는 행위에서 버프를 얻는다. 공격력, 치명타 등등. 그리고 이 버프는 계속해서 중첩되는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 주목할 건 ‘가격’이라는 거다.

유효타가 아니라 가격!

설사 공격이 막힌다 하더라도, 일단은 타깃을 가격한 것이기에 버프가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면 의문이 들 수 있다.

마나는 유한한 법인데, 저런 전투를 유지할 수 있는 마나는 어디서 공급받는가.

그건 말이야…….

발.

저 발에서 나온다.

범위 내에서 뛰는 거리에 비례해 마나를 공급받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해질 수 있는 구조.

권용준은 이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리자드맨 킹의 몸에 꽂힌 창이 점점 늘어 간다. 치명타는 아니겠지만 가볍게 무시할 정도는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용준이를 완전히 바꿔 놓으셨군요.”

“재료가 좋아서야. 나는 그냥 잘 섞은 거고.”

“용준이가 이번 교내 랭킹전에서 2위로 입상했다기에 놀랐는데, 지금 보니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흐, 당연한 결과야. 누구한테 배웠는데.”

1:1에서 특화된 스타일이다.

랭킹전의 특성상 한정된 링 안에서 싸워야 하는데, 그러면 버프가 끊길 리도 없고.

“그래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교내 랭킹전이라면 유명 ‘혈족’들의 놀이터라고 불리는데, 거기서 다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거잖습니까.”

“풋. 혈족 하나 믿고 까부는 애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물론 내가 극찬한다고 해서 용준이에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다수 대 다수가 펼치는 난전에서는 이동 거리 확보하기가 용의치 않은 만큼 위력이 급감하고, 또한 1:1 보스전이라고 해도 대형 이상의 보스전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뭐, 이 또한 성장할수록 점점 해결될 문제겠지만.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극복할 수 있겠지.”

이만하면 용준이는 다 본 것 같고, 이제 이쪽을 볼 차례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때맞춰 리자드맨 킹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격노’ 상태가 발동된다.

이 상태가 발동되면 리자드맨 킹의 각종 방어력과 저항력이 대폭 하락하는 대신, 전반적인 스텟치가 대폭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보완할 패턴이 등장하는데.

필드 전역에 ‘권속’들이 생성.

이 권속들을 다 잡기 전까지 리자드맨 킹은 모든 대미지가 무효화되는 무적 모드가 될 거다.

“이제 용준이 혼자는 힘들겠다.

“제 차례입니까?”

“그래.”

가 봐.

말을 뱉으며 녀석의 등을 툭 쳐 줬다.

그 순간.

송새벽이 다리를 굽히길 잠시, ‘쾅!’ 소리와 함께 탄환처럼 쏘아졌다.

그리고 내려쳐지는 리자드맨 킹의 대도를 방패로 막아 낸다.

카앙-!!

리자드맨 킹의 핏발이 선 눈이 송새벽을 응시하고, 이에 질세라 송새벽도 리자드맨 킹을 노려봤다.

쿠아아아!

몇 차례 격돌이 이어지고, 리자드맨 킹이 포효하며 검기를 두르는데.

그 순간.

송새벽의 검은 동공 속 심연이 회전했다.

요안(妖眼)

개방(開放)

요안이 리자드맨 킹의 검기를 흡수한다.

이제 보통의 오니족이라면 최대한 빨리 ‘삼라만상’ 같은 기술로 방출한다.

왜냐하면 다른 존재의 마나를 체내에 흡수하는 만큼 대미지를 입기 때문이다. 일종의 거부 반응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오니 가문의 원로들은 다들 늘그막에 눈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눈에 대미지가 꾸준히 축적되는 거다.

이게 바로 오니 가문이 생긴 이래 쭉 그들을 괴롭혀 온 고질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송새벽은 내 제자다.

내가 문제 있는 걸 그대로 가르쳤을까.

단번에 눈치챘다. 저거 흡수한 ‘마나’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서 벌어진 문제였다. 그래서 찌꺼기로 남은 잔존 마력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거다.

그러면 찌꺼기마저 소화시킬 ‘소화 기관’을 만들어 주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

내가 송새벽의 몸을 짼 이유다.

피부를 째고 뼈에 강선처럼 뽑아낸 마석으로 마법진을 구축, 소화 기관을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오니 가문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가문의 천형(天刑)이 고쳐졌으니까.

그러나 문제만 해결했다고 만족하면 그건 하수다. 진정한 고수는 이 문제 요소를 도리어 강점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난 당연히 고수다.

“후우.”

송새벽의 어깨가 들썩인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잠시 뒤, 어깨를 타고 흐르는 노란빛 신기(神器).

또 하나의 혈족인 ‘신장(神將)’이다.

무구의 혼을 끌어내어 빙의하고, 그 혼이 가진 경험과 힘을 그대로 전승시키는 능력.

여기서 문제 하나 낼까?

뼈는 무기일까, 아닐까?

길가에 있는 돌멩이도 무기인데, 뼈가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뼈로 때려도 사람 하나는 거뜬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안다. 다소 무리가 있는 논리란 거.

근데, 본디 마법사란 이 무리가 있는 논리를 실현시킬 줄 알아야 마법사다.

“뼈가 무기가 된다면…….”

신장의 기운을 몸으로 직접 받아들일 수 있다.

신기가 형체를 이룬다.

송새벽의 몸 위로 신기가 꿈틀대더니, 곧이어 웬 근육질 노인이 덧입혀졌다.

합일

대장군

大將軍

대장군 모드로 변한 송새벽.

송새벽이 눈을 빛내며 자신의 정수리를 노리고 떨어지는 리자드맨 킹의 대도를 빗겨 친다. 깔끔하게 빗겨 낸 공격.

이어서 리자드맨 킹의 손목을 잡아…….

메쳤다!

콰앙!!

리자드맨 킹이 보스 몬스터치고는 작다지만, 일단은 중형 몬스터다.

보통 인간의 세 배. 나나 새벽이보다는 두 배 이상 크지만 그냥 냅다 힘으로 밀어붙였다.

바닥을 구르는 리자드맨 킹.

내팽개쳐진 것이 자존심 상한지 리자드맨 킹이 포효하며 전력으로 돌진하고, 이에 응수라도 하듯 송새벽도 무식하게 방패를 앞세우며 돌진했다.

쾅! 콰앙-!

흡사 중장비가 부딪치는 굉음이 터졌다.

격렬히 번쩍이는 마나의 파장. 무기가 마주칠 때마다 흩날리는 핏줄기.

아직 권속을 모두 죽이지 않았기에 바닥을 가득 매운 핏물은 모두 송새벽의 것이었다.

그러자 다시 요안이 심연에 휩싸이고, 회복된다.

우지직!

섬유질이 이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벌어져 있던 상처들이 회복됐다.

순식간에 멀쩡해진 송새벽.

다리로 바닥을 밀치며 노려본다.

때맞춰 뒤에서 권속을 잡았다는 소리가 들리며 무적 모드가 풀렸고, 송새벽이 콧김을 씩씩 뱉어 내며 방패를 내다 버리고는 양쪽에서 도끼를 꺼내 들었다.

“제대로 붙어 보자.”

이번에는 리자드맨 킹의 보호 마법을 훔친 뒤.

지하여장군

地下女將軍

천하대장군

天下大將軍

송새벽의 뒤쪽으로 두 개의 장승이 솟구친다.

토템 발동.

버프로 신체가 강화되자, 송새벽은 무소의 뿔처럼 정면으로 돌격했다.

보스랑 1:1로 맞짱 뜨는 탱커라니…… 뭔가 말이 안 되는 거 같지만 쟤는 가능하다.

공격을 막는 디펜시브?

아군을 지키는 세이프티?

라인을 유지하는 라인배커?

공격을 막다 못해 때리고, 아군에게 피해가 가기 전에 부순다.

라인이란 게 필요 없을 정도로 패 버리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탱커가 아닐까?

송색벽은 그 모습을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여기에 용준이의 창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꽂히고 있으니.

“내가 가르쳤지만 조합이…….”

너무 훌륭하잖아!!

둘 다 거의 근접 딜러급의 공격을 가지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보스 때려잡는 탱커가 아니고 뭔가.

뿌듯하다.

입꼬리가 경망스럽게 올라간다.

“더 볼 것도 없겠네.”

혹시나 해서 따라 왔으나 내 차례는 없을 것 같다.

뜬금없지만 영감이 왜 날 보며 매번 웃었는지 알겠다.

둘 다 내 제자 아닌가. 제자를 키워 보니까, 제자의 성장은 나의 성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난 몸을 돌려 전장을 벗어났다.

Boss. 에이션트 리자드맨 킹, ‘사우르원’ 침묵.

퍼블 게이트 클리어.

*   *   *

한편, 박기혁이 제자들의 성장에 뿌듯해하던 사이.

지구 반대편 영국의 어느 산으로 차량이 들어섰다.

으스스한 어둠이 내리깔린 산길. 타이어가 비포장도로를 굴러가며 거친 소음이 들려왔다.

병원에서 출발한 차량이 대체 이 산에는 왜 왔을까.

누가 봐도 수상한 정황이다.

그래서일까? 한 남자가 몰래 뒤쫓고 있었는데.

“…….”

남자의 이름은 샘 스미스다. 가브리엘 베스일 때도 있었으며, 찰리 밀리오일 때도 있다.

이밖에도 그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서른 개가 넘는 이름을 가진 남자.

그는 자신을 존 도(John Doe:신원 미상)라 지칭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이름조차 필요 없었는데.

빌런 집단 TA(The top of Arena) 간부였던 시절 그는 쓰리(Three)라는 숫자가 이름을 대신했으니까…….

덜컥!

추격전을 치르길 얼마가 지났을까.

차량이 산 중턱에 멈춰 섰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한때 ‘피의 공포’라 불리던 존 도는 확신했다.

저 허허벌판 뒤에 환영 마법이 있다는 것을.

그때, 마나가 꿈틀대더니 마법이 발현된다.

전 방위 수색 마법.

수색 마법이 존 도를 옥죄어 온다. 저거에 걸리면 환영 마법 안에 있던 요원들이 튀어나오리라.

그래서는 안 되지.

순간.

푸쉭-!

존 도가 땅으로 꺼졌다. 한 움큼의 피 웅덩이만 남기고서.

수색 마법이 스윽 스쳐 가는 가운데, 피 웅덩이는 슬금슬금 흘러가 차량의 내부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존 도가 무사히 내부로 들어간다.

수많은 사자상이 기괴하게 세워져 있는 길을 지나, 산 중턱의 내부를 진입해 도착한 곳은.

저택이었다.

고즈넉한 풍경의 저택.

그리고.

존 도의 본능이 경고했다.

이곳 위험하다! 당장 벗어나야 한다!

코끝을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

그것은, 죽음의 향기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