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83화>
하루하루가 다른 아이답게, 지난 3년 사이 박봄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변화에는 하나의 서사가 있었는데.
시작은 ‘가족’이었다.
“야, 박봄! 빨리 일어나! 학교 갈 시간이야!”
“우웅…… 헤나야. 좀만 더…….”
“좀은 무슨 좀!”
“악! 때리지 마!”
수호령 에우리아의 분신인 헤나. 그 아이가 검호가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이름도 정식으로 호적에 올리면서 ‘박헤나’가 되었다. 맡아 달라고 했는데 왜 입양까지 하는가, 과한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김연희가 내린 결정이었다.
“저 아이가…… 그…… 그…… 에우리아 님 딸이라고? 네가 맡아 주기로 했다고? 아니, 일단 그게 가능해?!”
“후우…… 기혁아. 에우리아 님은 단순히 맡아 달라고 하신 거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수호령이 신성시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제일 큰 건 인간과 동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신을 만들 수 있다.
자체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양산할 수 있다는 거다.
뭐 언제는 세력을 양산하지 않았나? 라고 반박이 나오겠지만 그건 추종자들이잖나. 그들도 인간이고 자신의 이득으로 움직인다.
반면 분신은 다르다. 이건 완전히 수호령의 권속이다. 심지어 수호령 본인의 힘까지 나눠 줄 수 있다.
아닌 말로 수호령이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수호령이 아닌, 자신만의 세력을 가진 침략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헤나란 존재가 그 ‘혼란의 씨앗’이 되는 거고.”
“그러니 맡는다, 정도는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할 수 있게 항상 곁에 놔둬야 해.”
그래서 책임졌다.
박기혁의 방식으로.
“오, 드디어 나왔네.”
“아빠, 그게 뭐야?
“이게 뭐냐면, 여기 헤나가 우리 가족이 됐다는 증거야. 여기 아빠 이름 밑에 ‘박헤나’라고 써 있지?”
“……진짜네?”
“……아저씨가 아빠?”
솔직히 말하면, 원래부터 이러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는 많지만 구질구질하니 집어치우고, 헤나가 박봄처럼 ‘세계에서 어긋난 존재’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신이 받아 주지 않으면 누가 받아 주겠나.
“헤나가 봄이 동생?”
“잠깐, 내가 왜 네 동생이야.”
“그야 봄이는 언니니까……?”
“누구 마음대로!”
“그치만 봄이는 언니인걸. 그치, 버찌야?”
“냐아아옹.”
하나의 서사라고 말한 듯 변화는 이어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애가 두 명으로 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
더욱 케어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교육 과정으로 이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무리.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사립 영재 학교에 보내려고 했는데.
이게 시작부터 삐끗한다.
“네? 헤나는 안 된다고요? 왜요.”
“그게, 신청 기간이 마감이 돼서…….”
최소 6개월 전부터 입학 신청을 해야 하는데, 헤나는 이것저것 수속을 밟느라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박기혁이 부산스럽게 발품을 팔아 봤지만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
결국 두 아이는 서로 다른 학교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건 또 싫단다.
“싫어! 봄이는 헤나랑 같이 갈 거야!”
“나도 봄이랑 아니면 싫어요.”
그렇다고 일반 학교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봄이는 괜찮지만 헤나는 아직 ‘힘 조절’을 잘 못했고, 괜히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놨다간 무슨 사고가 벌어질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밤을 지새우던 박기혁은 결국 결심하게 되는데.
“됐다. 내가 가르치련다.”
가르치는 것은 자신 있다.
그냥 내가 가르치고 만다. 왜, 홈스쿨링(Home Schooling:재택 교육)이란 것도 있다지 않나.
하지만 박기혁이 이 결정을 말한 날, 그날 그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뭐? 네가 가르쳐? 미쳤어, 미쳤어. 틀림없이 미친 거야.”
“오바야. 최악이라고! 누가 누굴 가르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렇게 못 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보낼 거야!”
이건 흥분한 진유리였고.
“……하, 그럼 그렇지. 오래 참았다, 우리 기혁이. 이제 빠져. 애들은 엄마가 알아서 할게.”
이건 한숨을 푹푹 쉬는 김연희.
“박 서…… 큼, 큼. 기혁아, 아이들도 저들만의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법이에요. 또래끼리 소통하며 사회를 배워야, 성격도 모나지 않아.”
“유리를 봐. 내 딸이지만 망나니도 이런 망나니가 없어. 난 어린 나이에 애들이랑 섞이지 못한 게 영향이 크다고 봐.”
끔찍할 정도로 설득력 있는 유해련의 당부까지.
다소 어조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녀들의 결론은 같았다.
넌 빠져!
그렇게 박기혁은 안주인분들의 지탄을 받고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게 되는데.
그때는 몰랐지.
홈스쿨링을 말리던 사람들이 아예 학교를 세울 줄은.
“용호 재능 교육관……? 엄마…… 이게 뭐예요?”
“요즘 교육 과정이 글쎄, 너무 별로여야지.”
“진유리, 오바하지 말라며.”
“하, 하하…… 이게 하나하나 추가하다 보니…… 아예 짓는 게 싸게 치더라고! 그치, 엄마?!”
“그, 그러엄! 박 서방 애들이 좀 뛰어나! 특별한 애들한테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잖아. 호호…….”
“박…… 서방?”
“……호호. 어머, 요 입이 왜 이런다니…….”
그렇게 세워진 용호 재능 교육관.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大)성공이었다.
봄이와 헤나가 방방 뛰며 좋아하더라. 적은 숫자지만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고.
“헤나야, 이 글자가 용이고 이 글자가 호야. 용과 호랑이. 히히. 봄이가 좋아하는 게 다 있어. 여기가 우리가 다닐 곳이야. 대단하지!”
“이 산이?”
“산 아니야. 학교야! 학, 교!”
“학교…….”
“그래! 학교! 봄이 어떡해. 벌써 가슴이 콩닥거려.”
“콩닥?”
“응! 콩닥콩닥.”
여기서 마지막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대가족이 된 검호가.
안 그래도 김연희는 부쩍 집이 좁아지는 것을 느꼈는데, 애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하니 이사를 결심하게 되는데.
마지막 변화 ‘이사’는 이렇게 이뤄지게 된다.
“조용조용. 으흠! 지금부터 가문 회의를 개최한다. 연희.”
“회의는 무슨. 거창한 건 아니고 이사를 하려고 해. 각자 원하는 조건 말해 봐. 엄마가 최대한 수용해 볼 테니까.”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 박건은 해먹을 설치할 수 있는 마당을.
의외로 영화를 좋아하는 박수혁은 빔 프로젝트를 설치할 수 있는 큰 거실을.
목욕을 좋아하는 박민지는 큰 목욕탕이 있길 원했고, 박기혁은 개인 연구실.
이처럼 많은 조건이 붙었지만 단 하나, 공통적인 점이 있었는데.
“대련용 게이트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마음껏 싸울 수 있게.”
“함부로 싸우면…… 다 부서질걸요.”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는 곳은 당연히 없었고.
결국 옵티멈 관할 게이트가 있는 산을 밀고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집에서.
이제 박봄은 더 이상 자신을 ‘봄이’라 칭하지 않게 됐다.
통통했던 다리도 훌쩍 자랐다. 아빠를 닮아 반에서 제일 크다!
구구단도 잘 외우고, 여전히 시금치는 가리지만 당근을 먹을 줄 알게 됐다.
3년.
아이가 소녀로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
그렇게 봄이는 어엿한 소녀가 되었다.
* * *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오늘도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봄아,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
“아냐, 봄이는 우리 집에 가기로 했어.”
“아니거든! 우리랑 놀 거야!”
앉아 있음에도 아이들 틈에서 확 띄는 키.
살짝 처진 눈초리에 오뚝한 콧날. 붉은 입술이며,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 여기에 아직은 젖살이 다소 남아 있음에도 갸름한 턱선.
여기 이 착해 보이는 인상의 아이가 바로.
소녀가 된 봄이었다.
때맞춰 수업을 마친 저학년들이 창문으로 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나아!! 오늘은 우리랑 놀아요!”
“언니이이이이!!”
“너희는 빠져.”
“싫어요! 저희도 봄이 누나랑 놀 거예요!”
보다시피 박봄은 학교의 인기인이다.
총원이 50명도 되지 않는 학교. 그러나 이들 한 명이 한 명이 어린 나이에 벌써 마나를 각성한 진짜 ‘천재’들이다.
박봄은 이런 천재들 사이에서도 규격 외의 재능을 자랑했다.
그래서인지 박봄이 회장 선거에 나서자 다른 후보가 없을 정도였다.
모두의 주목을 받던 박봄.
“좋아, 그러엄…….”
그녀가 ‘캡틴 타이거’가 그려진 책가방을 야무지게 매더니.
“떡볶이 먹으러 가자!”
출출할 때는 떡볶이!
1일 1떡볶이는 기본이죠!
박봄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아이들이 환호를 지으며 뒤따랐다.
그때 여느 때처럼 오른쪽에 위치하는 박헤나.
박봄이 한없이 무해해 보이는 인상이라면 박헤나는 차가운 인상의, 소위 말하는 ‘냉미녀’ 스타일의 소녀.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봄이랑 비슷한 키를 가진 헤나였다.
“또야? 언제까지 떡볶이야.”
“넌 다른 거 먹어.”
“안 그래도 그럴 거야.”
왼쪽에는 유치원 때부터 짝꿍인 임현지가 따라붙는다.
임현지도 많이 달라졌다. 유치원 때는 그저 왈가닥 소녀였던 아이는 이제 제법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봄이야, ‘새벽이네’로 갈 거지? 예약해 놓는다.”
“응! 고마워 현지야.”
박봄, 박헤나, 임현지.
첫 만남부터 평생 친구가 되기로 결의한 이들은, 이제 이 학교를 대표하는 트리오가 됐다.
박봄을 앞세운 아이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학교가 산 한가운데 세워진 터라 공기도 좋고 하늘도 맑았다.
봄이는 이 풍경을 볼 때면 항상 ‘후우~.’ 하고 배가 볼록해질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쉰다.
‘깨끗해!’
상쾌한 차가움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역시 기분 최고!
빠른 걸음으로 애들을 몰고 아래로 내려갔다.
가는 길에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가 그러길 대화를 끊지 않는 것은 ‘대표’의 기본 소양이라고 했다. 박봄은 대표를 꿈꾸는 아이. 방실방실 미소 지으며 살갑게 말을 이어 나가자, 아이들은 저마다 활짝 웃었다.
이를 한 발짝 뒤에서 보는 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난 도저히 못 하겠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지?”
타고난 사교성이 그다지인 헤나에게 봄이의 사교성은 미스터리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임현지가 달라붙는다.
“너도 한번 해 보는 게 어때.”
“으~ 무리야. 난 소름 끼쳐서 못 해. 웃는 것도 어울리지 않고.”
“아닌데. 헤나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웃음도 엄청 매력 있어.”
“됐다 그래.”
“힛. 헤나 부끄러워해. 귀여워.”
“저리 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헤나의 볼이 붉어진다.
사실 헤나는 칭찬에 약하다. 그래서 임현지는 헤나를 놀리는 걸 좋아했다. 여간 귀여운 게 아니란 말이지.
이야기를 하며 학교를 내려오자, 넓디넓은 잔디 위에 세워진 멋들어진 기와 건물이 보인다.
새벽이네
정면에 멋들어지게 걸린 간판. 이곳이 학교의 유일한 구내식당인 새벽이네였다.
“자, 얘들아. 들어가기 전에 뭐해야 할지 알지?”
발 털고!
챱챱. 카펫에 신발의 바닥을 털고.
인사!
문에 들어가서 전부 배꼽에 손을 올린 체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우렁찬 인사에 인상 좋은 아저씨, 아줌마가 흐뭇하게 웃는다.
“어서 오세요, 꼬마 천사님들.”
“앉으렴. 아저씨가 떡볶이 맛있게 해 놨어.”
그렇다.
두 사람은 박기혁의 제자, 송새벽의 부모님이었다.
박기혁이 졸업한 뒤, 박기혁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의 최강자로 군림한 송새벽은 이제 어엿한 옵티멈의 팀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사실상 두 사람은 수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때맞춰 김연희의 권유로 이곳 ‘새벽이네’에서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만들어 주게 된 것이다.
발이 불편한 아저씨와 눈이 보이지 않는 아줌마 대신 박봄과 헤나가 음식 서빙을 한다. 아저씨는 괜찮다며 앉아서 먹으라 했지만, 둘은 오히려 괜찮다며 언제나 서빙을 한다.
새벽 삼촌은 아빠의 제자.
더욱이 할머니의 옵티멈 팀장이다.
결론적으로 ‘식구’란 말씀!
우리 식구에게는 아낌없이! 봄이와 헤나는 아빠에게 그렇게 배웠다.
한편 현지는.
“여기요, 아저씨. 전부 다 계산해 주세요.”
계산을 하는 중.
어렸을 때부터 계산이 밝았던 임현지이기에 항상 총무 역할을 하는 그녀. 그래서인가 박기혁은 개인 카드를 만들어 현지에게 줬다.
놀고먹는 것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까 얼마든지 쓰라는 박기혁의 배려였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자리를 잡은 세 사람이 지금에서야 떡볶이를 먹는다.
“흐아아아. 그래, 이 맛이야.”
“똑같구만.”
“아는 맛이 무서운 거야.”
떡볶이에 오뎅을 함께 찍어 한 입에 음뇸뇸!
칼칼한 오뎅 국물을 들이켜면 키야-!
오징어 튀김, 고추 튀김, 김말이, 전부 빨간 양념에 찍어 먹으면!
이곳이 극락!
“하으…….”
“봄이 너, 그 표정 짓지 말라고 했지.”
“어쩔 수 없어. 너무 맛있는 걸.”
그렇게 떡볶이를 먹고, 아이들과 뜀박질 좀 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이 돼서야 애들을 데리러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이 나이에 마나를 깨운 천재들.
그 말인즉, 이곳의 절반 이상이 유명 ‘혈족’이었고, 혈족이 아니더라도 꽤 유명한 집안이 많았다.
물론 진짜 재능만으로 온 아이도 있지만, 그런 아이는 학교에서 많은 배려를 해 줬고 차량 정도는 배려의 수준에도 못 미쳤다.
마지막 아이를 차에 태워 보내고 학교 정문에 덩그러니 남겨진 세 사람.
시끄럽던 주위가 고요해졌다.
“오늘도 즐거웠어.”
“뭐, 그럭저럭.”
“재미있었지.”
“빨리 내일 왔으면 좋겠다.”
오늘도 하루가 간다.
내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하루가 있을까.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쉽고, 한편으로는 내일이 빨리 오길 바라는 이 오묘한 기분이 박봄은 참 좋았다.
“근데 얘들아. 기혁 아저씨는 어디 갔어? 요즘 통 보이질 않네.”
“아아, 아빠?”
“아버지?”
봄이와 헤나가 눈을 마주치더니 배시시 웃는다.
“아빠는-.”
* * *
……깼다.
“…….”
피곤하다.
눈을 감은 채 손을 저었다.
뒤적뒤적.
폰이, 폰을 어디 놔뒀더라.
여기저기 잡는데 말랑한 것이 잡힌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게…….
음, 잘못 잡은 거 같은데.
역시나.
“우리 기혁이, 아침부터 기운도 좋아요. 아니, 아침이라서인가.”
“……폰 찾는 거였다.”
“웃기시네. 빨리 일어나. 애들 기다려.”
찰싹 가슴을 때리는 손에 벌떡 몸을 일으켰고.
나와 진유리는 한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음……
뭐,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