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82화 (18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82화>

“대(大)마나의 시대. 모두가 초인이 되길 바랍니다. 농담이 아니랍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죠. 지금 이 강연회를 채우고 있는 전부가 초인이 되길 원한다에 제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여기 학생?”

김연희가 미소 지으며 무대 아래로 마이크를 내밀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꼭 되고 싶습니다!’라고 우렁차게 소리쳤고, 강연회장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옵티멈에서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무료 강연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가 초인이 된다면’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지만, 사실 이런 주제보다 앞에 있는 강연자가 ‘김연희’란 이름값에 무작정 티켓팅을 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WHO, 세계 보건 기구죠. 여기서 재미있는 조사를 했어요. ‘10세 이하 장래 희망’ 1위는…… 말해 뭐해요. 초인이었죠. 놀랍지 않은 결과입니다. 다만 100년째 1위를 지킨 것은 의미 있는 결과였죠.”

강연은 그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도록 밀도 있고, 수준 높았으며…… 현실을 일깨워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외국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초등학생 장래 희망 부동의 1위가 ‘수호자’입니다. 참고로 2위는 ‘100만 프리저’, 3위는 ‘아이돌’이에요. 음, 프리즘 대주주로서 반가운 결과네요.”

조금은 현실을 보게 되는 중학생이 되면 다를까. 다만 ‘수호자’라는 말도 안 되는 꿈에서 약간 현실과 타협했을 뿐이다.

그 타협한 결과는.

“옵티멈에 스카우트되기라…… 음, 저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다면 좋은 시도였어요. 저는 넘어가지 않을 거랍니다. 훗. 빨리 넘어갑시다.”

꿈은 점점 낮아지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중학생이 현실을 마주했다면, 고등학생은 본격적으로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되죠. 그래서 꿈도 바뀝니다. ‘제발 아카데미에 입학만 하게 해 주세요.’라고요.”

수호자에서 옵티멈, 그리고 아카데미.

초인(超人).

모두가 초인을 꿈꾼다는 것이다.

김연희는 이게 마냥 괜찮다고 보지 않는다.

“잘못됐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꿈이니까요. 그러나 알아 두세요. 꿈이 있는 곳에는 돈이 모입니다. 돈이 있는 곳에는 비정한 현실이 깃들고요.”

틱-!

“가령 이런 것들이죠.”

뒤편으로 화면들이 떠오른다.

그건 방송이었다. 여러 가지 방송들이 모자이크 된 채 재생된다.

“프리즘에서 지원받은 자료입니다. 유언비어로 사회의 무리를 줬다고 판단돼 제제를 받은 영상들이죠. 어디 한번 살펴볼까요.”

“첫 번째가 ‘나만 따라와 20대에 초인 ㅆㄱㄴ!’ 이거 쌉가능이라고 말하는 거 맞죠? 참 표현이 희한하네요. 다음은 ‘마나를 깨우는 습관 10가지.’ 하아,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들이네요.”

“더 안타까운 건, 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간절히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다는 거예요.”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고.

다른 의미로 그만큼 많은 이들이 좌절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러분, 슬픈 현실을 가르쳐 드릴게요. 초인이라는 것은, 마나를 느끼는 것은 100퍼센트 타고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숫자는 굉장히 극소수예요.”

“여기서 저희 아들이 했던 말을 인용할게요…….”

- 출발선에 서지 못한 선수는 달릴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당연히 등수를 매길 수도 없죠. 이와 같습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상 어떤 노력도 무의미합니다.

- 만약 당신의 나이가 20살이 넘었고 성장기가 완전히 지났다면. 네, 단언컨대 가능성은 없습니다. 차라리 삶에 노력하시라 말하고 싶네요.

“……한때 많은 지탄을 받았던 말이었죠. 사람들의 희망을 꺾는다고요. 근데요. 이게 현실이랍니다.”

“전문가들도 다 알아요. 성장기가 끝난 뒤에 마나를 깨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럼에도 왜 말을 하지 않을까요. 그건 이게 모두가 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죠.”

모두가 초인을 꿈꾸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초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인이 된 이들, 극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은 그게 끝일까?

일단 마나만 깨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세상이 해피해지냐면.

답은.

“NO. 절대 아니에요. 단언컨대, 이 초인 세계만큼 차별이 심한 곳이 드뭅니다.”

리모컨을 누르자.

다시 자료 화면이 바뀐다.

이번에는 기사였다.

“저는 ‘중산층’입니다.” 초인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표’

장비 대출에 허덕이는 ‘잡부’부터 아카데미 출신의 ‘성골’까지.

국내 초인 최대 포털 사이트 ‘초인 드림’ 운영자 “초인은 게임 캐릭터. 보이지 않는 랭킹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초인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 이 또한 불편한 진실이죠. 믿기지 않나요? 음, 에이전트 대표로서 감히 답해 드리자면…… 네, 이 계급이란 거 분명히 존재합니다.”

결국 초인이 인기 있는 건 ‘힘’이다.

하늘을 날고, 불꽃을 쏘아내고 만화 속 슈퍼 히어로처럼 악을 무찌르는 힘.

힘과 힘이 맞붙으면 우위가 정해진다.

승자와 패자, 초인에게는 이 승패가 곧 계급이니.

“여러분…….”

그렇기에 김연희는 여기 모인 미래들에게 현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이 세계는 여러분이 꿈꿀 만한 가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승자독식(勝者獨食).

타고난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노력과 과정보다 결과만이 인정받는.

가장 불공평한 세계.

초인의 세계란 이런 곳이었다.

*   *   *

성황리에 강연이 끝나고, 관계자 출입구로 나온 김연희에게 비서실장이 따라붙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당연히 할 일이죠.”

“절대 아닙니다. 대표님 위치에서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에이, 무슨.”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김연희이지만 비서실장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옵티멈이 어디인가. 5대 에이전트인 파이브 시스터즈의 일원이다. 가뜩이나 몇 년 전 ‘일본 사태’와 ‘삼합회 토벌’ 사건들을 해결하며 역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지금인데.

이렇게 학생들을 위한답시고 강연을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금칠은 그만하시고요. 특별한 일은 있었나요?”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리려고 했습니다. 정부에서 ‘백호’를 수호자로 임명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공식적인가요?”

“네, 확실한 것 같습니다.”

“올 게 왔네요.”

3년 전. 데뷔 때부터 수호자급이라 평가받던 산군 박수혁이 수호자급이란 수식어를 떼고 완벽한 ‘수호자’가 됐다.

그리고 작년부터 국회 내부에서 백호 박민지가 수호자로 임명돼야 한다는 말이 솔솔 들려오더니, 결국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

이대로라면 가문에서 수호자가 3명이 나온 것.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기록이었다.

실제로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옵티멈 본사 근처를 배회하고 있을 정도.

그러나 김연희는 이런 주목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모난 돌은 정 맞는 법이다. 더군다나 검호 가문에는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두 보물’도 있으니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독이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

“그이가 요청한 ‘은퇴’는 어떻게 됐나요?”

검호 박건의 수호자 은퇴. 김연희의 한 수였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묵묵부답입니다. 아마 저쪽에서는 박건 님의 요청을 뭉갤 생각일 것 같습니다.”

뭉개다.

어물쩍 시간을 끌어 없던 일로 만들겠다는 은어다.

다시 말해 은퇴는 어림도 없는 소리란 것.

“정부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한창 전성기에 올라 있는 검호를 은퇴시키기에는 부담이 클 겁니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네요.”

“대신 저쪽에서 몇 가지 특혜를 약속했습니다.”

“뭔데요.”

“박기혁. 코드네임 ‘마왕’은 절대 수호자로 거론하지 않겠답니다.”

“허…….”

특혜랍시고 내놓은 게 얼토당토않다.

김연희의 입가에 비웃음을 걸린다.

‘웃기시네. 특혜는 무슨. 다 저들 좋자고 하는 일이면서.’

그래도 굳이 뭐라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막둥이가 원치 않을 테니까.

사실 3년 전, 삼합회 토벌이 끝나고 가장 먼저 수호자로 거론된 인물은 첫째인 수혁이가 아니라 막둥이인 기혁이었다.

삼합회의 방어선을 단신으로 돌파, 누구보다 먼저 본회가 있는 하얼빈에 도착한 것도 모자라 그 하얼빈을 단신으로 삭제.

단어 그대로 ‘삭제(delete)’시켰다.

‘마왕’이란 칭호가 붙은 결정적인 전공이었다.

김연희조차도 처음 이 전공을 들었을 때 ‘이게 말이 되나?’라고 되물었을 정도.

당연히 현장 지휘관이었던 집행부장 지성철은 눈이 뒤집혀 온갖 조건을 대며 박기혁을 집행부로 끌어들이려 했다.

수호자 임명도 당시에 나온 발언.

하지만 이에 박기혁의 답은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거절합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귀찮아서였단다. 한동안 쉬면서 애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나.

만약 그때 지성철의 제의를 받았다면 3명이 아닌 4명의 수호자가 검호 가문에서 배출됐을 거다.

“다른 특혜는 뭐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네요.”

“이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정부에서 ‘용호 재능 교육관’을 정식 학교로 인가하겠다고 합니다.”

“흠, 이번에는 마음에 드네요.”

용호 재능 교육관.

올해로 건립 3주년인 신설 학교다.

용(龍)과 호(虎)라는 명칭답게, 이 학교는 ‘진룡’과 ‘검호’가 합작해서 건립한 학교.

한국 최고의 혈족이라 불리는 두 가문이 직접 관여했는지라 규모면 규모, 시설이면 시설, 교육진이며 교육 과정 모두 최고로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에는 남모르는 비사가 있었는데.

처음은 진룡가의 가주인 진도하의 발언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고양이랑 함께 만드는 학교. 아룡원에서 맡아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용아병, 운룡대와 더불어 진룡가의 한 축을 맡고 있던 아룡원이 본격적으로 일선에 나온 것이다.

이 말인즉, 진룡가에서 사활을 걸고 투자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

저쪽이 이러니까, 김연희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지금 옆에 있던 비서실장을 따로 불렀다.

“비서실장님, 지금 맡고 있던 일 모두 다른 곳에 넘기시고, 여기 이 용호 재능 교육관 건립 건에 집중해 주세요.”

옵티멈의 비서실이라면 명실공히 김연희의 최측근.

끝이 없는 김연희의 개인 자산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었고, 검호 가문의 전격적인 투자가 진행됐다.

본격 검호와 진룡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둘은 서로 경쟁하듯 마구마구 돈을 퍼부었고…….

그렇게 전교생은 고작 30명도 안 되는 학교가 무슨 산 하나를 가득 채우는, 아닌 말로 아카데미 뺨치는 규모로 지어지게 된 것이다.

그 괴랄한 규모에 건립 기념식 당일, 김연희는 진도하와 함께 서로 민망해했더랬다.

“머쓱했지.”

“네?”

“아, 건립식 날에요. 과했잖아요.”

“아아…… 그렇지요.”

비서실장도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인다.

하긴 과해도 너무 과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두 아이’에서 비롯된 거니까.

“그러고 보니, 수업 들을 시간이네요.”

우리 강세이들 잘하고 있으려나.

김연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   *

오늘 강연회에서 김연희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초인들의 계급에서 최정상, 천외천이란 표현이 걸맞은 계층이 있다.

불공평의 극치.

너무도 경이로운 재능에 아예 경쟁에서 제외시킨 계층.

초인 중 99.5퍼센트가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마나를 각성하는 데 반해, 이들 0.5퍼센트는 10대 이전에 이미 마나를 느끼고 각성한다.

보통의 초인들보다 훨씬 빨리 마나를 접한 아이들은, 보통의 초인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경지를 보여 준다.

정말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재능들.

진정한 ‘천재’들.

용호 재능 교육관은 이 선택받은 천재들이 모인 학교였다.

그리고……

……

박봄의 시선이 아이들 저편에 있는 깃발에 꽂힌다.

저걸 뺏어야 한다!

“후!”

박봄이 축 늘어진 상태로 숨을 고르더니, 보이지 않는 속도로 목검을 휘두른다.

쐐액-!

목검의 형태는 대검. 넓은 검면과 무게로 짓누르는 전형적인 대검(大劍)이었다.

이 대검으로 발검을 하다니…… 이 대목에서 관전하는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휘잉-!

단숨에 전방위를 쓸어버리는 박봄의 목검.

검을 세우며 막으려던 친구 한 명이 힘에 못 이겨 날아간다. 그것도 모자라 그 옆에 있던 친구도 대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쓰러졌다.

좋아, 분위기를 이어 가자.

아빠가 말하길 기세란 것은 변덕스러워 한번 왔을 때 잡아채야 한다고 했다.

곧바로 호랑이처럼 달려든다.

전면에서 어물쩍대는 친구를 어깨로 들이받는다.

으헉! 비명을 내지르며 종잇장처럼 날아가는 친구. 그 옆에 있는 친구는 한 손으로 멱살을 잡아 업어치기.

또 앞에 보이는 애는 발로 허리를 때리자 쓰러진다.

바닥에 쓰러져 침을 줄줄 흘리는 친구가 조금 안쓰럽다.

‘미안해. 끝나면 맛있는 거 사 줄게.’

하지만 지금 난 전사다.

전사는 전력을 다해서 전사인 법!

차례대로 친구들을 무너트렸다. 몇몇은 군중 제어기를 쓰기도 했지만 항마력 S급인 박봄에게 아이들의 마법은 아무 소용없다.

걷어 내자.

호흡을 최대치로.

배꼽 아래에 공기를 최대한 모은다.

공기 반 마나 반이 채워졌을 때.

폭발한다!

사자후

獅子吼

박봄의 사자후에 모든 마법들이 소멸한다.

그대로 발을 놀려 앗, 하고 놀라는 친구들을 모두 던져 버리고, 깃발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살기.

이건…… 헤나다!

“……!!”

곧바로 옆으로 구른다.

역시나 헤나의 창이 쏜살같이 들이닥친다.

나무로 만들어진 창.

다만 이 창은 보통 창과는 달랐는데, 창촉 부분에 도가 달린 언월도 형태였다.

헤나가 땅에 박힌 언월도를 들어 박봄을 노려봤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야.”

봄이도 대검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며 헤나를 노려봤다.

“그래.”

기다리고 있었다.

두 아이가 서로를 향해 웃길 잠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박봄과 박헤나.

박기혁의 두 딸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

용호 재능 교육관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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