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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81화 (18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81화>

과거 마왕 시절.

나는 막무가내로 인간을 죽이는 학살자는 아니었다.

다만 가장 많은 목숨을 거둔 것만큼은…….

맞다. 진실이다.

“이봐. 자네, 너무 손속이 과한 거 아닌가. 어떻게 연관된 사람은 모조리 죽이나?”

“아니! 관련자들을 모조리 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적당히 융통성 있게 하셨어야죠!”

나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다만, 일단 나섰으면 관련된 자들은 모조리 청소한다.

이유 불문, 지위 불문.

전부 말이다.

“제발, 부탁이오. 이 아이만큼은 봐주면 안 되겠나. 이 아이는 우리 공작가의 삼대 독자일세, 차기 계승자란 말이야.”

“……선배님, 이번 사건에 저희 칠흑 마탑의 일부가 관련돼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손속이 과하다고 말하지만.

글쎄,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이는 정도면 굉장히 자비로운 벌 아닌가.

폭행, 사기, 살인 등등.

가해자의 입장에서야 하나의 범죄겠지만 피해자는…… 아니, 피해자와 관련된 모두는 평생을 고통받는다.

단순 계산으로도 그들의 죗값은 1인분이 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저 아무짝에도 쓰잘머리 없는 목숨만으로 죄를 삭감해 준다면, 이것만큼 자비로운 일이 또 어디 있나?

물론 거의 대부분이 이 논리에 혀를 내둘렀지. 역시 마왕은 피도 눈물도 없다며 나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 공감한 인물도 있긴 했다.

정말 의외의 인물.

성녀.

“인정하기 싫지만…… 일리 있어요. 네, 죽음으로 끝내기에는 그들이 준 고통이 너무 크나크죠.”

“다만 신이 내려 주신 목숨을 인간이 판결하고 거둔다는 게…… 슬프네요.”

아무튼 내게, 죽이는 것은 최고의 자비이자 최약의 형벌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받기 힘든 죄를 저지른 쓰레기 놈들은.

죗값이 자신의 목숨을 아득히 초과해, 목숨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놈들은 어쩔까.

살려야지.

어떻게든 살려서 두고두고 죗값을 치러야지.

그게 나 마왕의 계산법이니.

살아라.

살아서 죗값을 치러라.

영원히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라.

*   *   *

하얼빈 본회.

“놈이 왔군.”

도시의 중심. 우람하게 세워진 마천루 정상에서 마오안칭은 허망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의 저편으로 호수를 감싼 댐처럼 촉수들이 세워져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 촉수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다시 말해, 저건 이곳을 지키는 성벽이 아닌 이곳을 가둔 창살이란 말이었다.

“젠장…….”

괴물을 막는 것까지는 좋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민간인들을 앞세워서 효과를 봤다고 들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부터 이상해졌다.

괴물은, 박기혁은, 이때부터 달라졌다.

이전의 박기혁이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전선을 지웠다면, 이제는 고통을 짜내고 있었다.

최대한 괴롭게.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나중에는 죽여 달라며 피눈물을 흘릴 때까지 한 방울의 생명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의 고통을 짜내고 짜냈다.

그 참혹한 현장이 기록된 게 여기 이 구슬들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탁한 형태의 구슬. 영상용 오브였다.

여기에는 자신이 가꾸어 놓은 삼합회가 최악의 형태로 무너지는 게 기록돼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받았냐면…….

직접 전해 받았다.

하나씩 무너질 때마다 뼈의 새가 날아와 오브를 던져 놓고 소멸됐다.

대체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의문이 꼬리를 물며 마오안칭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이후로도 오브는 계속해서 전해졌다.

뼈의 동물들은 그가 어디를 가든 찾아와, 삼합회가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 줬다.

그제야 알았다.

이 행위에 숨겨진 메시지를.

내게서 절대로 못 벗어난다.

괴물은 자신을 살려 둘 생각이 없는 것이다.

비행기와 철도, 도로를 비롯해 이곳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지운 것도 그 때문이리라.

마오안칭은 옥죄어 오는 압박감에 현기증이 나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이 며칠 사이에 폭삭 늙어 보인다. 말은 안 했지만 점차 부서지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생각해 내야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어쩌면 리샤오이와 사망회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전원 생강시를 다루는 사망회라면.

무려 ‘황룡’의 비전을 전수받은 무공을 쓰는 리샤오이라면.

“가능할 거야. 맞아. 들인 돈이 얼마인데.”

중얼중얼, 머릿속 생각들을 두서없이 내뱉는 마오안칭.

이쯤 되면 희망사항을 내뱉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설령 거짓된 희망이라도 잠시나마 마오안칭의 눈에 총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도 처참하게 부서지는데.

똑똑.

“……!!”

창문을 부리로 때리고 있는 뼈의 새.

이번에는 독수리였다.

커다란 체구답게 강력했는지 이내 창을 억지로 부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툭.

보자기를 떨구고는 뼛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

그가 떨리는 손으로 보자기를 들추자.

후두둑-

떨어지는 물체들

구슬을 닮은 오브가 아니었다.

머리.

하얗게 탈색한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리샤오이의 머리였다.

“아, 안 돼-!!”

마오안칭의 마지막 희망이 꺾인 순간이며, 잠시 뒤 있을 삼합회의 멸망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   *   *

허공 한복판, 물결처럼 찰랑이는 마나장으로 무릎 꿇고 오열하는 마오안칭을 보다 치웠다.

완전히 맛이 갔다.

원래라면 마지막 가는 길, 그럴듯한 인사라도 해 줄 셈이었는데.

왜, 그런 거 있잖나.

영웅들이 악당을 쓰러트리며 폼 나게, ‘다음 생에는 착하게 살아라.’ 뭐 그런 거.

나도 제법 고생했으니 오랜만에 옛날로 돌아가 폼이라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

선을 넘어 버린 것을. 난 선을 넘은 종자들이랑은 대화라는 걸 하지 않는다.

“흠.”

깔끔한 전장 한복판.

그나마 대지를 붉게 물든 저 피가 방금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를 가늠케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뼈로 만든 의자에 앉아, 팔뚝에 그어진 상처를 보고 있다.

방금 전 전투에서 얻은 상처.

이름이 뭐더라, 리샤오이라고 했던가.

걔가 자기 딸을 살려내라며 고래고래 소리치더니, 최후의 생명력까지 태우며 날린 검격에 당한 상처였다.

치명상도 아니고, 겨우 팔뚝에 조금 그어진 상처인데 왜 신경 쓰냐고 묻는다면.

이 상처가 ‘거인’의 마나를 비집고 들어와 상처를 낸 것이다.

“신기하네.”

내가 두르고 있는 ‘거인’은 세계의 질서를 벗어난 힘이다.

인간의 격을 한참은 뛰어넘었다는 말. 이게 뭘 뜻하느냐. 인간의 거죽을 쓴 채 이 ‘거인’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비슷한 예로, 인간이 수호령을 죽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단순히 무력의 우위가 아닌 격의 차이.

상위의 격을 지우려면 그보다 높거나, 최소한 그와 동일한 격을 지녀야 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뚫렸다.

상처가 났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도, 고작 한 뼘도 안 되는 검상이지만, 거인의 힘이 뚫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설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당장 이 미스테리한 현상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꾹 참는다.

지금은 분리수거가 먼저니까.

“…….”

차가운 눈동자로 눈앞의 도시를 바라본다. 삼합회 본회가 있는 하얼빈이다. 확실히 이제껏 지나온 도시 중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현재 허무 심연충이 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상황. 도주로는 막아 놨으니, 어떻게 요리할지만 결정하면 된다.

아포칼립스를 써 도시째로 소멸시키는 방법이 제일 간단하지만, 녀석들은 죽음의 자비를 제 발로 걷어찬 놈들.

응당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뭘로 할까.”

과거, 마왕 시절부터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처음은 지금 내 뒤에서 촉수를 살랑이고 있는 ‘허무 심연충’.

이 녀석을 활용하면 고통도 짜내며 깔끔하게 존재 자체를 말살할 수 있기에, 쓰기에도 쉽고 뒤처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다음이 얼마 전에 꺼낸 ‘어보미네이션’.

얘의 장점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차후에 많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시체에다 영혼까지 있으니 당장에 제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껏 꺼내지 않은 게 하나가 있는데.

앞의 두 개가 기존의 있던 흑마법이라면, 지금부터 말할 흑마법은 완전히 내가 만든 마법이다.

‘에고 웨폰’이라는 자아가 있는 무기를 만들려다 과하게 헛발질하며 만들어 낸 것인데, 그 결과가 너무 극악해 나조차도 두 번 정도밖에 쓴 적이 없는 마법이다.

“결정했다.”

이놈으로 한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 보겠나.

딱-!

손가락을 튕기자.

도시 전체를 육망성 마법진이 감싸더니.

분열(分列).

원형의 육망성 마법진이 수십 갈래로 분열되며 거대한 원기둥처럼 변했고, 마법진 중간에 손톱만 한 보석이 생성된다.

흑마법 고통

결정화(Crystallization)

범위 내의 모든 존재들을 분해해 하나의 결정으로 만들어 버리는 흑마법.

허무 심연충은 고통으로 대상을 붕괴시켜 점차 심연충으로 만들고, 어보미네이션은 상대를 먹어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면.

‘결정화’는 훨씬 심플하다.

저 작디작은 결정 속에 갇힌다.

자아도 있다.

고통도 실존한다.

그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영혼도, 육체도 모두 봉인당한다.

영원히.

저 작은 보석에.

파스스슥!!

분해되는 도시.

전봇대, 빌딩, 자동차…… 심지어 살아 있는 인간도 모조리 분해되며 보석으로 흡수되어 간다.

산 채로 분해되는 고통에 도시 전체가 비명을 질러 대지만 그 비명마저 ‘결정화’에 흡수되어 보석의 일부가 되어 갔다.

원망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왜 이렇게 하냐고.

꼭 이렇게 했어야만 하냐고.

그래, 저들의 입장에서 좀 너무하다 느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니들 입장이고 난 내 입장이 있거든.

“우리 애들이 이제 초등학교에 가요.”

부모로서 내 자식들한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너희들을 없앨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날, 하얼빈이라는 도시가 사라진다.

돌 한 조각도, 풀 한 포기도 남기지 않고 전부 송두리째 사라졌고.

이후 삼합회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   *   *

한편 삼합회가 사라지는 그 시각.

영국의 어느 저택으로 차량이 들어섰다.

삼엄한 경비 속에 정문으로 들어서는 차량. 문에 들어서도 한참 도로를 달려간다.

차가 지나가는 도로마다 놓여 있는 기괴한 모양의 동상들.

날개 달린 사자와 뱀의 꼬리를 달고 있는 사자. 머리가 세 개 달린 사자도 있고, 사자의 머리를 한 인간도 있다.

실제로 살아 있는 생명체를 굳힌 것처럼 하나같이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굳어 있는 동상들이었다.

그렇게 기괴한 동상들을 지나 차량은 산의 내부로 진입한다.

내부로 진입하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차량 앞을 가렸다. 우주를 옮겨 놓은 것처럼 미지의 공간 위를 미끄러지는 차량.

어느 순간 차량의 운전기사는 손을 놓는다. 액셀에서 발도 뗀다. 차의 통제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태.

그렇게 얼마를 질주했을까.

차량이 멈추고, 운전기사가 재빨리 나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곧이어 내린 금발의 귀공자.

모든 기사들의 어머니이자 어버이.

기사도의 창시자이자 구도자.

영국을 대표하는 기사왕이며 동시에 수호령으로 불리는 존재.

태사자.

바로 그였다.

“결과는?”

“성공했습니다.”

“멋지군.”

태사자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 아이들’을 보러 가 볼까.”

대혼란의 씨앗.

그 씨앗이 이곳에서 발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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