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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80화 (18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80화>

삼합회 본회 심처.

아무도 없는 이곳 대방의 집무실에서 마오안칭은 간절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싸늘하기만 한데.

- 전투가 시작한 지 겨우 하루인데, 전선은 유명무실해졌으며 전력의 절반 이상은 무력화됐다라…… 혹시 우리 쪽에서 토벌대가 간다는 소식을 전해 주지 않았나?

“……아닙니다, 위원장님. 확실히 전해 받았습니다.”

- 그치? 내가 똑똑히 전해 준 기억이 나거든.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는 말이건만, 이렇게 쉽게 뚫려? 나는 좀 이해가 안 되는구먼.

마오안칭은 위원장의 질타에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답했다.

“저 빵즈 놈들이 저희를 속였습니다.”

- 속이다니?

“빵즈 놈들은 이번 토벌, 분명히 수호자를 참여시키지 않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 그렇지, 그랬었지.

“하지만 저들은 수호자급 초인들을 대거 참여시켰습니다.”

- …….

집행부 최정예로 구성된 토벌대.

한 명 한 명이 에이전트의 에이스로 분류될 정도로 강한 이들이었다.

여기에 뜻하지 않게 백호 박민지와 산군 박수혁, 그리고 진룡가가 낳은 괴물이라 불리는 진유리와…… 세계 최고의 루키라 불리고 있는 박기혁. 문제의 그가 참여했다.

- 그래서 자네는 저들이 약속을 어겼다?

“검호와 진룡의 자제들이 다 왔습니다. 이건 명백히…….”

- 그만. 설명하지 마. 듣고 싶지 않으니까.

위원장의 입에서 기어코 짜증이 새어 나왔다.

- 이봐, 그치들이 수호자인가?

“수호자는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 근접했다…… 확실해? 자네가 장담할 수 있어?

고작 20살짜리들이 수호자? 웃기지도 않는 소리.

사실 박기혁은 수호자를 아득히 넘어 ‘수호령’이랑 놀아야 되는 수준이지만, 그걸 위원장이 알 리가 있나.

위원장을 비롯해 삼합회의 뒤를 봐주던 관료진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삼합회가 훨씬 약하구나!

- 토벌대가 온다는 정보도 미리 전해 줬어. 충분히 준비할 시간까지 벌어 줬고. 억지 논리를 펼쳐 가며 토벌대 규모도 축소시켜 줬으며, 심지어 한국의 가장 큰 전력인 ‘수호자’도 참여 못 하게 해 줬어. 그런데 그 결과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처참해.”

“……위원장님!”

- 쉿. 말 끊지 말게. 우리가 자네에게 많은 걸 요구했나? 난 분명히 말했어. 한국의 전력을 줄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버티기만 하라고. 10일만 버티면…… 아니, 최소 5일만 버티면 토벌대를 몰아내 주겠다고. 근데 하루 만에 우는 소리를 하나?

“……죄송합니다.”

- 겨우 스켈레톤일세! 겨우 스켈레톤이란 말이야! 그대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강시들로 최하급 소환물인 스켈레톤도 못 막아? 장난하는가!

“보통의 스켈레톤이 아닙니…….”

- 변명하지 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

“……죄송합니다.”

- 후…… ‘여기’에서는 자네들의 쓸모를 진지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네. 내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어.

자존심을 짓밟는 질타에 마오안칭은 입술을 짓씹었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

억울했다.

정말 피눈물이 흐를 만큼 억울했다.

박기혁이 수호자가 아니라고? 겨우 최하급 소환수인 스켈레톤이라고?

‘X같은 소리 하지 마!’

그는 괴물이다.

인간의 탈을 쓴 대항 불가의 괴물.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삼합회의 전력은 객관적으로 봐도 우수했다. 차라리 박기혁 대신 수호자가 참여했으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위원장은 마오안칭의 말을 들어 줄 생각도, 이해할 마음도 없었다.

-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4일을 막아. 하루를 막았으니 남은 시간은 3일이구만.

“위원장님!! 3일이면 저희는…….”

- 그만! 듣기 싫네! 무조건 막아. 겨우 3일도 막지 못한다면 자네들의 쓰임은 딱 거기까지일세.

명심하게, 마지막 기회야.

뚝.

전화가 끊기고.

“빌어먹을…….”

부스스, 전화기가 녹아내린다.

마오안칭의 ‘독무’가 만들어 낸 광경.

녹아 버린 전화기를 거칠게 털어 낸 그가 소리 질렀다.

“밖에 누구 없나!”

끼익.

“부르셨습니까.”

“말했던 ‘일’은 어떻게 되고 있나.”

여기서 일이란, 전선에 퍼져 있던 인원을 다시 모으는 것이었다.

원래 7개의 전선을 중심으로 병력을 유기적으로 운용, 토벌대의 진격로를 제한하는 게 삼합회의 작전이었다.

단계식으로 막아 가며, 서너 개의 전선이 무너지더라도 시간을 벌겠다는 작전이었지만…….

박기혁이 모든 걸 망쳤다.

전선이고 뭐고 무시하고 대뜸 진격하는데, 이를 막을 수 없다.

전선은 전선대로 있는데, 단 하루 만에 박기혁의 칼날은 턱밑까지 올라온 상황.

이렇게 되자 분산해 놨던 병력들이 자충수가 됐고, 삼합회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럴 바에야 최후의 한 명까지 영혼을 끌어모아 결사 항전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리샤오이와 사망회는.”

“지금쯤 이쪽으로 귀환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행이군…….”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   *   *

토벌이랍시고 출발한 지 하루.

애초에 난 이 전투를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나의 ‘신체’들을 풀가동, 앞을 가로막는 것을 모조리 부수며 진격. 삼합회의 본회가 있는 하얼빈이 사정권에 다다르게 된다.

이 말인즉, 삼합회 놈들 입장에서는 턱밑에 칼날이 겨눠진 상태란 것. 아니지, 이미 반쯤 칼날이 파고들어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맞을까나.

본디 악인일수록 생존에 대한 갈망은 강하다. 자기가 벌인 죄를 알고 사후에 어떤 대가를 받을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데.

이게 또 아주 재미있어요.

12시간 전인가…… 은은한 달빛을 이정표 삼아 스켈레톤 군단과 사이좋게 질주하던 내게, 무언가 들이닥쳤다.

캄캄한 밤하늘 저편에서 반짝이며 들이닥치는 요상한 것들. 예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집중해서 보는데.

몇 초 뒤, 내 주위로 폭발이 솟구쳤다.

그래.

포탄이었다.

탱크나 자주포 같은 기갑 부대가 쏜 포탄.

포탄 세례가 떨어지며 스켈레톤들이 폭발에 휩쓸려 튕겨나가는데,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위험을 느끼기는커녕 황당했다.

아니, 빌런이 군대를, 그것도 그럴싸한 기갑군을 운용한다고?

대체 중국은 무기 관리도 안 하는 건가?

아무리 ‘돈만 있으면 다 되는 나라’인 중국이라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잖아.

정말 칼을 갈았는지 보급도 완벽하더라.

거의 30분 내내 포탄이 떨어지던데, 매캐한 화약 냄새 때문에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그게 끝이냐고?

응, 끝이었다.

냄새가 구리고, 눈이 조금 시큰거린다는 것 빼고는 내게 포탄 세례는 의미 없는 공세였다.

이건 녀석들도 알고는 있었을 거다.

마나를 다루는 초인들에게 현대 병기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된 사실. 그 초인이 경지에 다다르면, 사실상 같은 마나 외에는 의미가 없다.

아마 내가 아닌 스켈레톤의 전진을 조금이라도 저지하기 위해 쏜 것이겠지.

세간의 인식에 스켈레톤은 여전히 최하급 소환물이니까. 만약 일반적인 스켈레톤이었다면 포탄 세례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봤을 거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그런 싸구려 깡통 스켈레톤이랑 질적으로 다르단 말씀.

포탄 세례를 씹어 먹으며 전진해 나갔다.

첫 공세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깨닫자, 삼합회는 곧장 다음 카드를 꺼냈는데.

그 카드는 강시. 정확히는 ‘실패작 강시’였다.

농담 하나 보태지 않고 허허벌판이 강시로 가득했다.

이를 처음 본 난 이제 본 게임을 시작하는 건가? 라고 오해할 만큼 그 숫자가 어마 무시했다.

그런데 스켈레톤과 강시가 격돌하는 순간.

인형처럼 튕겨져 나가는 강시가 폭탄처럼 제 몸을 터트리는데…….

그때 파악했다.

눈앞의 이 녀석들이 ‘실패작’이란 것을.

이를 알고 보자, 확실히 달랐다. 이제껏 본 철강시는 최소한 옷은 입혀 놨다. 비율도 칠등신, 팔등신 등 그럴듯한 인간의 모습을 갖춰 놨었다.

그런데 실패작들은 하나같이 발가벗겨져 있었다. 비율도 엉망진창. 팔 길이가 맞지 않는 것은 예사였고, 발이 세 개 달린 놈도 간간이 보였다.

이런 실패작 강시들이 끝도 없이 나오더라. 바퀴벌레처럼 드글드글 징그럽게 깔려 있는 강시들이 우리 쪽을 향해 몸을 던지며 폭발.

그야말로 살아 있는 지뢰였다.

결국 자폭 공격에 방어 마법을 덧씌워야 했고, 조금은 시간이 지체되게 된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려는 삼합회의 눈물겨운 노력이 마침내 성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중요한 것을 깨웠으니.

그건 나의 분노였다.

“무조건 지워야겠어.”

이 끝도 없이 보이는 실패작들이 무엇을 의미하겠나? 저만큼 무수히 많은 인간을 살해했다는 뜻이다.

세계에 일말의 득조차 없는 완벽한 악(惡). 이 세계에서 살아갈 가치가 없는 놈들이었다.

내가 직접 이 손으로 치우리라.

그리고 이런 내 다짐에 확신을 더해 주는 일이 벌어지는데.

“오지 마! 오면 죽인다!”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두꺼운 줄이 서로에게 감겨 있다. 두려움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몇몇은 눈물까지 흘린다.

개중에는 아이도 보인다. 우리 봄이 나이 또래의 아이.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꼬질꼬질한 손을 빨며 이 상황이 뭔지 몰라 고개를 도리질 쳤고,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그런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짓는다.

이런 이들이 한가득 철조망 앞으로 내몰려 있다.

내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허, 참나…….”

그렇다.

쓰레기 녀석들이 마지막으로 꺼낸 카드는.

민간인 인질이었다.

그들의 앞에서.

끝내 멈춰야만 했다.

나의 군단도.

*   *   *

해냈다!

저 저주받은 스켈레톤 군단도.

저 인간 같지 않은 괴물도.

드디어 멈췄다!

내가 멈춘 거라고!

기세를 탄 복면인이 잔뜩 고양된 표정으로 인질을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인질의 목에 겨눴던 칼날 위로 피가 흘러내린다. 인질이 신음을 흘리며 덜덜 떨지만, 시종일관 박기혁을 주시하는 복면인이 이를 알 리 없었다.

한편, 뒤에서 이 모습을 보던 삼합회 조직원들도 소리 없이 환호하는 중.

‘됐어! 멈췄다!’

‘혹시나 해서 가둬 놨는데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흐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일 줄 알았건만. 다행이군.’

사실 민간인을 인질로 세우는 건 삼합회 입장에서도 부담이었다.

중국이 아무리 무법천지에 무력 만능으로 돌아간다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법은 있고, 민간인 학살은 절대로 넘어가지 못할 극악 범죄였다.

하지만 극악 범죄고 뭐고 그딴 거 신경 쓰기에는 현재 삼합회는 너무 몰렸다.

뒷감당은 나중이다. 어떻게든 저 괴물 같은 박기혁을 막아야 한다.

이 일념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손들고 한 발짝 뒤로 가! 여기 인질을 살리고 싶다면 내 말에 따라라!”

확성 마법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박기혁 쪽에서는 반응이 없다.

복면인이 ‘어서!’라고 재촉해 보지만 박기혁은 아무런 행동 없이 이쪽을 보고만 있다.

그 무미건조한 모습에, 복면인도 당황하는 중.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해야 해?

고민하는데, 인 이어로 무전이 들려왔다.

- 계속 말을 걸어. 시간을 끌란 말이야.

대화를 이어 가며 인질을 조금씩 넘겨주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복면인은 고개를 얕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봐! 괴물, 협상을 하지.”

“…….”

어디 지껄여 보라는 식으로 박기혁이 고개를 까딱인다.

명백한 무시에 복면인이 이를 깨물었다.

눈앞의 인질을 죽이면 저 괴물의 기를 꺾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절대 자극하지 마!’라는 상부의 당부가 들려오며 애써 살심을 삭혔다.

“지정된 시간마다 인질을 풀어 주겠다. 대신 넌 그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

“…….”

박기혁이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또 한 번의 무시. 아니, 무시를 넘어 조롱이었다.

너 따위가 내게 제안해? 대화조차 하기 싫다는 거였다.

복면인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한 명을 죽이면서 관계의 우위를 보여 주겠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이제 피가 흩뿌려지며 인질이 바닥으로 쓰러질 거다.

그런데.

분명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줬는데.

“어?”

흩뿌려지는 피는 없다. 인질도 쓰러지지 않는다.

서늘한 기분에 칼날을 잡은 손을 확인하는데.

손이……

없다……?

칼을 잡고 있어야 할 손에 있는 것은 이상한 촉수.

촉수가, 팔을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복면인이 하늘로 솟구친다.

“아아아악-!!”

촉수에 매달려 하늘로 솟구친 복면인이.

모두가 보고 있는 가운데.

까득-!

촉수 내부의 톱날 같은 이빨에 조금씩 먹혀 갔다.

까드드득!

“으아아아악-!!

살을 째는 고통에 차 비명을 지른다. 살려 달라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냉소.

“쓰레기 새끼가 어디 건방지게 인간처럼 말해. 야, 심연충. 저 입 막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심연충이 행동에 나섰다.

콰득! 까드득! 뿌지지직!!

그렇게 복면인이 공개 처형되는 모습을 보던 다른 조직원들이 꿀꺽 침을 삼키고.

박기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흰 지옥도 사치야.”

순간, 돋아나는 촉수들.

일대가 촉수에 잠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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