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77화>
박기혁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일본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갔는데.
산산조각 난 도쿄. 졸지에 난민이 되어 버린 국민들.
“내 집을 돌려 달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병원은 마비.
침상은 부족.
과도한 업무에 도망가는 의료 종사자들.
행정 수도인 도쿄가 박살 나며 모든 행정 업무가 마비됐다. 졸지에 집을 잃은 국민들은 난민처럼 떠돌았고, 노동력의 근본인 20대와 30대는 셀루티스가 남긴 상처로 대부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절망에 절망이 더해진 상황.
그러나 더욱 웃픈 사실. 위에서 말한 저런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日임시 내각. 과연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임시 총리 “믿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지도 못했어요!”
외신들 ‘믿을 수 없다. 국가 재난 상황에 자기들끼리 싸운다고?’ 외면하는 일본의 국민성 꼬집다.
도쿄를 둘러싼 ‘레드 게이트’를 없애는 게 급선무.
업계 전문가들 “일본은 폭탄 위에 떠 있다!!”
레드 게이트(Red Gate).
현재 일본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것이었다.
셀루티스가 저주받은 성물로 오염시켜 놓은 게이트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상황.
도쿄 인근에서 발견된 ‘퍼플 게이트’만 32개. 그중 고(高)위험도가 절반 이상.
日임시 내각 ‘도쿄만이 아니다!’ 긴급 사태 발표.
전국적으로 집계된 레드 게이트와 퍼플 게이트 집계 불가.
日게이트 조사관 “너무 많아서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
더 비참한 현실은, 정작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희망의 빛이 떠오르니…….
7레벨 레드 게이트 클리어
* * *
7레벨 레드 게이트, ‘빙하 산맥.’
설원을 내달리던 박수혁이 검을 뿌린다.
차륵-!
황금빛 궤적이 눈발을 가르는 순간, 트윈 예티의 발목이 깔끔하게 절단됐고 예티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설산을 뒤덮었다.
하지만 예티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섬광을 번쩍이며 쇄도하는 박민지의 검이 남아 있던 한쪽 다리를 가른다. 오빠처럼 깔끔하게 절단하지는 못했지만, 애초에 끊을 생각도 없었다.
발목을 타고 무릎, 허벅지, 허리, 가슴, 목덜미까지.
박민지는 한 줄기 섬광이 되어 트윈 예티의 몸을 타고 질주했고, 섬광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핏줄기가 솟구쳤다.
결국, 트윈 예티의 거구가 눈밭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은 박수혁이었다.
박수혁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우아한 궤적을 따라 황금빛의 찬란한 파도가 몰아치며 썩둑, 트윈 예티의 목이 잘려 나갔다.
두 사람이 트윈 예티를 제거하는 사이.
저편에서도 전투가 치열했는데.
까강-!
우워어어어!!
방패와 실드로 방벽을 세운 인간들과, 눈을 닮은 하얀 털을 두른 ‘설원 빅풋’이 충돌하는 중.
설원 빅풋은 트윈 예티의 노예로 주인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인간을 죽이려 드는 것.
반면 이쪽은 설산 위에 있는 ‘Boss. 아도니아’를 처리할 때까지 저들을 막아야 한다.
“막아. 자리 지켜!”
“더럽게 많구만. 퉤!”
설산 전역에서 일어나는 인간과 빅풋의 격돌.
그 치열한 격돌 사이로 박수혁과 박민지는 파고들며 트윈 예티들을 정리해 나갔다.
황금빛 검기가 번쩍이면 예티의 신체가 잘려 나가고,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피가 몰아쳤다.
혹시나 대치 구도가 부서질까 싶으면 마룡기 ‘탈라리아’를 신은 박민지가 공간을 뚫고 틀어막았고, 때로는 마룡기 ‘크라운’을 쓴 박수혁이 아예 한쪽 영역을 도맡기도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을 비롯한 전 인원이 한마음으로 철벽이 되어 설산을 막는 동안.
설산의 정상에서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크기는 약 100미터.
웬만한 빌딩보다도 큰 몸집의 드래곤.
7레벨 레드 게이트. 빙하 산맥의 주인 Boss. 화이트 드래곤 아도니아가 포효하고 있었다.
이런 아도니아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건 진룡 진도하와 운룡대 전원. 그들은 마룡기 ‘용’을 소환해 아도니아를 압박해 나갔다.
서양의 드래곤과 동양의 용.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 위압감만은 둘 다 진짜였다.
그리고 인간임에도, 이 인외의 존재들 사이에서도 절대 존재감이 꺾이지 않는 존재.
바로 검호 박건이었다.
“후우-.”
벌써 반나절 동안 이어 온 전투.
그 치열한 전투 속에 찾아온 찰나의 평화.
하지만 둘 다 안다. 이 평화도 잠깐이라는 사실을.
드래곤 아도니아가 눈을 빤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그런 아도니아를 주시하며 주위를 뱅뱅 도는 진도하와 운룡대의 용들.
이런 대치에서 먼저 손을 뻗은 건 이번에도 박건이었다.
하얀 입김이 냉기에 얼어붙어 아래로 추락하는 순간, 양손에 단검 흑아(黑牙)와 백아(白牙)가 들리고…….
이미 박건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망토를 휘날리며 전진.
드래곤 아도니아의 정면을 틀어막았다.
인간이 자신보다 수백 배는 더 큰 드래곤을 틀어막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지만.
박건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흑아와 망토가 함께 휘날리자, 족히 30미터가 넘는 흑색 검기가 드래곤 아도니아를 베어 갔다. 백아와 망토가 함께 휘날리면, 역시나 30미터는 넘는 검기가 창날처럼 아도니아를 찔러 갔다.
박건이 신들린 듯 춤을 추자 허공에 흑과 백, 수십 가닥의 검기들이 끝도 없이 몰아쳤다.
이처럼 박건이 정면에서 ‘탱커’ 역할을 맡는 사이, 진룡 진도하도 본인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촤륵!
진도하의 파초선이 허공을 휘젓자 그의 마룡기 ‘용’이 공명, 같이 하늘을 향해 울고.
그 순간, 구름을 뚫고 내려치는 두 줄기 불꽃.
메테오
Meteor
두 발의 메테오가 화이트 드래곤 아도니아를 내리쳤다.
그사이 운룡대는 전원 고위 불꽃 마법을 뿌리며 아도니아를 압박, 역시나 그들이 가진 보급형 마룡기 ‘용’도 입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푸아아악-!
일순간 설산의 얼음이 녹을 정도의 위력.
사방에서 덮쳐오는 불꽃에 드래곤 아도니아도 대응해 나갔다.
얼음들이 허리케인처럼 휘몰아치며 불꽃을 상쇄, 메테오는 그에 상응하는 빙하를 쏴 하늘에서 폭파.
하지만 항상 문제는 앞에 있는 조그마한 인간, 박건이었다.
얼음 쇠사슬로 봉쇄해 보려고 했지만 옷자락도 잡지 못했고, 대규모 범위 마법으로 봉쇄해 보기도 했지만 이것도 단숨에 범위를 통과해 버렸다.
그래서 나중에는 필살의 브레스까지 쏘아 봤지만.
망토가 한 번 번쩍이더니 그림자를 타고 오히려 역공까지 당했다.
그렇다고 이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려 하늘을 날려고 했다가는, 그때는 이미 한 번 공격당한 날갯죽지도 날아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시작된 지겨운 소모전.
불꽃이 얼음을 녹이고, 얼음이 불꽃을 먹고.
용(龍)이 용(Dragon)을 공격하고 막는 인외의 전장.
설산의 얼음이 녹고 얼고를 반복하며 얼음은 더욱 단단해지고, 공기는 더욱 답답해져 갔다.
그렇게 다시 반나절.
거의 12시간을 밀고 당기며, 치열하게 싸웠지만.
전황이 달라지는 건 일순간이었다.
구궁-!!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치는 황금의 빛줄기.
검호류 군왕
태평성대(太平聖代)
황금의 검이 금빛 낙뢰로 변해 떨어진다.
정확히 드래곤 아도니아의 정수리를 향해.
깜짝 놀란 아도니아가 실드로 대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악수 중의 악수였다.
황금의 왕관, 마룡기 크라운을 쓴 박수혁이 손짓하자, 황금빛 검기가 수십 가닥으로 분산, 실드와 충돌하는 대신 주변을 휘감았다.
거의 손톱만 한 간격을 두고 감옥으로 변한 박수혁의 검기.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컨트롤이었다.
이 황금의 감옥이 드래곤 아도니아를 옭아맸고, 그 혼란 속에서 공간을 뚫고 등장한 박민지가 섬광을 흩뿌렸다.
검호류 신속
북두칠성(北斗七星)
일곱 줄기의 섬광이 모조리 날갯죽지로 날아들었다.
정확히는 박건에게 한차례 당한 그 날갯죽지로.
줄기가 선이 되고…… 선이 점이 되고…… 그렇게 한 점이 된 박민지의 검기가 기어코 아도니아의 마지막 남은 날개를 끊어 냈다.
거대한 날개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키아아아아아-!!
처음으로 듣게 된 아도니아의 비명.
전황이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박건과 진도하가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진도하가 운룡대와 눈빛을 교환한다.
지금이다.
끝내자.
그 순간 운룡대가 전력으로 불꽃을 뿜어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
전황을 유지하기 위해 펼쳤던 마나 드레인을 모조리 거두고 정말 밑바닥에 있던 모든 것을 긁어 만든 불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급형 마룡기 ‘용’이 전부 일제히 빛을 내며 전신을 불꽃으로 감싸더니 드래곤 아도니아를 향해 돌격.
불꽃에 휩싸인 용들이 기어코 아도니아의 거죽을 물어뜯었다.
키아아아?!
이제껏 본 적 없는 무식한 패턴.
놀란 아도니아가 몸부림을 쳐 보려 했지만 지금 아도니아는 박수혁의 검기에 속박되어 있는 상황.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다.
운룡대의 분투에 방점을 찍는 것은 진도하.
진도하가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그 순간 진도하의 마룡기 ‘용’이 무섭게 날아가 그것을 낚아채고.
그 순간.
용이 몸집을 부풀렸다.
여의주(如意珠)
국보 여의주를 얻은 용이 완성체로 변하고.
진룡 9식
역린(逆鱗)
용의 격노가 강림한다.
콰가가가가강-!!
번쩍번쩍, 끊임없이 번쩍이는 번개. 검붉은 마나를 머금은 성 속성의 낙뢰가 드래곤 아도니아의 정수리에 중첩해서 떨어졌다.
그 순간.
“이쯤이면 되겠지.”
대망의 방점을 찍으려 박건이 발을 내딛는다.
그의 막둥이, 박기혁이 만들어 준 마룡기를 꺼낸다.
박기혁이 만든 마룡기 중 파괴력만큼은 단연 최고의 무기. 심지어 박기혁조차도 ‘이런 게 나올 수 있구나.’라며 감탄한 마룡기.
흑아를 쥔 손이 어둠에 휩싸인다.
백아를 쥔 손이 빛에 뒤덮인다.
흑백의 마나가 박건의 몸을 잠식하고, 약속한 듯 정확히 절반씩 차지했을 때.
‘백아’를 깨워 ‘심상 세계’로 파고든다.
누군가는 절대자의 공간이라 말하는 이곳에서, 정확히 아도니아의 가슴을 향해 조준했을 때.
흑백으로 뒤집힌 박건의 신체가 사라지며, 드래곤 아도니아의 가슴 정중앙이 ‘퍽!’ 하고 터졌다.
격이 떨어지는 상대는 이유 불문 절멸시키는.
가장 검호다운 마룡기.
그 이름.
마룡기
프레데터(Predator)
심장을 잃은 드래곤 아도니아가 쓰러졌다.
Boss. 화이트 드래곤 아도니아 사살
7레벨 레드 게이트 ‘빙하 산맥’ 클리어
* * *
가장 강했던 레드 게이트인 ‘빙하 산맥’이 클리어되고, 얼마 뒤 자연스럽게 다른 레드 게이트도 클리어됐다.
이제 남은 건 퍼플 게이트였고 그것은 굳이 검호 박건이나 진룡 진도하, 산군과 백호, 운룡대 등 최정예 인원들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게이트의 위협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일본 내각은 어떻게든 그들을 눌러앉게 하고 싶었지만, 김연희가 눈을 서슬이 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
결국 모두가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전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게이트 앞을 지키고 있다. 당연히 김연희도 그들 틈에 섞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다쳤겠지, 모두 무사할 거야. 그럼, 걔들이 누군데.
누구보다 강한 내 새끼들이다. 걱정은 한쪽 귀퉁이에 숨기고 저녁을 함께할 식당을 예약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시간 비워 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집행부 쪽에서 ‘삼합회 토벌’ 건으로 할 말이 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집행부와 군대가 연계한 프로젝트.
요즘 기승을 부리는 삼합회를 섬멸하겠다는 건데, 원래라면 너희들끼리 하라며 무시했을 테지만.
이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부지런하신 막둥이 님 때문에.
“기혁이 때문인가요.”
“그런 거 같습니다. 도련님이 단독 행동권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럼 주면 되잖아요.”
“집행부는 주겠다는데, 사령부가 용납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하아…… 이런저런 일로 머리 아픈데.”
일본 문제도 그렇고, 봄이 초등학교 입학에, 갑자기 찾아온 헤나라는 아이도 같은 학교로 입학시켜야 하고.
박기혁의 제자인 송새벽이나, 이번에 아카데미에 차석으로 입학한 권용준도 신경 써야 하고.
‘잠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부 막둥이가 연관돼 있네?
까득, 처음으로 분노를 느끼는 김연희였다.
“귀국했으면 좀 얌전히 있지!!”
괜히 움직여서 엄마를 또 피곤하게 만드니. 응!!
돌아오면 따끔하게 혼내 주겠다고 결심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전화한다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길 얼마 뒤, 게이트 문이 열린다.
사선에서 귀환한 요원들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게이트 문을 나와 각자의 가족들을 향해 달려갔다.
“여보!”
“고생했어요, 당신.”
“연주야!”
“아빠아아-!!”
김연희도 조금 전의 분노는 잠시 잊고 가족들을 기다리는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왜 게이트로 나오는 인간은 남편뿐일까?
“푸하하하! 연희! 오랜만이야!!”
“잠깐, 잠깐만…… 애들은? 왜 혼자 와?”
“어? 애들? 저기 위에 간다던데.”
“위…… 에……?”
위에라면, 위에라면…… 설마?!
김연희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위에.
서울의 위쪽, 북쪽에 있는 것은 바로.
사령부였다.
“이놈의 자식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