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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75화 (17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75화>

내가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비운 이유는 어머니의 심부름 때문이었다.

이집트에 간 김에 ‘호루스의 눈’에 들러 달라고 하시더라고. 협조할 일이 있다며, 간 김에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하셨었다.

파이브 시스터즈의 한 축인 호루스의 눈.

여기는 다른 에이전트랑 태생부터가 다르다. 민간 초인들이 모여 만든 게 아닌 이집트 왕조가 직접 세운 에이전트.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과거 이집트는 강력한 왕권이 세워진 군주국이었다.

그러다 점차 세계의 주요 군주국들이 권력을 국민에게 이양하는,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의 돌풍이 불며 이집트도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때 왕족이 스스로 권력을 국민에게 이양하게 된다.

하지만 뭔가 거래가 있었는지 ‘초인’과 ‘마나 산업’을 관리하는 기관만은 왕족이 쥐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이조차도 국민 정부에게 넘어가게 되지만, 그 시간 동안 관리했던 노하우로 각종 초인 단체들을 설립하게 되고.

그 최종 진화판이 여기 ‘호루스의 눈’인 것이다.

그래서 ‘호루스의 눈’의 대표는 대대로 이집트 왕족이 하며 이름도 ‘파라오’라 불리고 있다네.

내 기준에서도 꽤 참신한 역사를 가진 호루스의 눈.

나는 이곳에서 파라오를 만나게 된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기혁이라 합니다.”

“환영하오. 나는 이곳의 주인 파라오요.”

솔직히 편지를 건네주는 것 외에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었다.

파라오는 음미하듯 어머니의 편지를 몇 번 곱씹더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소.”

이 한마디로 어머니의 심부름은 끝났다.

하지만 이대로는 섭섭하지. 이제 내 용무를 해결할 차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 어디, 한번 얘기해 보시오. 김연희 씨의 아드님이니, 그럴 자격은 충분하지.”

“아이를 한 명 데려가고 싶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아이는 헤나다.

관련 기관에 요청하지 않고 왜 에이전트에다 이 말을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세상물정 모르는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기 호루스의 눈은 이집트의 왕이 세운 에이전트.

분명 원칙상으로는 권력이 없어야 하고, 그게 맞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 자르듯 싹둑 잘라지나?

왕이란 자리가 가진 권위는 아직도 정재계 곳곳에 입김을 불기에 충분했고, 적어도 여기 이집트 내부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 갑자기 웬 아이를 말하시오?”

“네, 한 여자아이를 거뒀는데 딱해 보여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얘가 빈민가의 아이인지 출생 신고가 돼 있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렇군. 이해했소.”

당연한 말이지만 헤나는 출생 신고가 돼 있지 않다.

존재 자체가 어떤 폭풍을 몰고 올지 모르기에 최대한 기밀을 유지했고, 그에 따라 정부 기관에 등록 자체가 안 되어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 무턱대고 수속을 밟았다가는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

감추는 게 불가능하냐고?

가능은 하지. 은신 마법으로 전용기에 태워 한국에 떨어뜨려 놓는다.

충분히 가능하다.

근데 이후가 문제다.

평범한 민간인이었다면 그냥저냥 한국에서 살아가면 그만이지만, 헤나는 특별하다. 얘는 커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름을 날린 거란 말이지.

그러면 타국에서 헤나의 뒷조사를 하지 않겠나?

이때 과거 자체가 아예 삭제돼 있으면 여러모로 헤나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파라오에게 부탁한 거였다.

권력의 중추가 도와준다면 간단하니까.

지금처럼.

“끝났군. 이제 그 아이는 그대의 책임이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사소한 것을 내주고 검호의 호의를 얻다니. 좋군. 기대하겠소. 언젠가 내 신세를 지도록 하지.”

“근데, 이거 과자 뭔가요. 너무 맛있는데.”

“여러모로 특이한 검호군. 충분히 챙겨 주지.”

단번에 헤나 문제를 해결. 애들한테 줄 과자까지 챙기고.

실로 완벽한 일 처리였다.

그렇게 상쾌한 기분으로 식구들에게 돌아가는데.

그때.

도시가 웅성대고 있지 않은가.

저 멀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내 기억이 맞다면 저곳은 대형 아울렛이었다. 명품관에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과 유리네 선물을 샀던 곳이었다.

아울렛 위로 솟구치는 연기.

먼지인지 불이 난 건지 탁한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데,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폭우가 연기를 사르르 녹아 없앴다.

거기에 낙뢰는 어찌나 수시로 치던지, 희미하게 보이는 여기서도 번쩍번쩍, 무슨 사이킥처럼 아주 요란하게 쳐 댔다.

대낮에.

저기 저곳에만 먹구름이 끼고, 폭풍우가 몰아치며, 낙뢰가 떨어진다?

기상 이변이 아니라면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하나다.

진유리.

그 순간 찌릿, 불쾌한 감각이 내 등골을 스쳐 갔고…… 난 주변의 시선을 무시한 채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아울렛이 있는 방향으로 쏘아졌고, 가장 먼저 감각을 펼쳐 봄이와 헤나를 찾았는데.

천만다행으로 아이들은 무사했다.

진유리가 어떻게 빼돌렸는지, 아울렛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 손을 잡고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얘들아.”

“아빠!”

“아저씨이!”

그렇게 마주한 우리 가족.

“아, 아빠! 이상한 아줌마가!”

“아줌마가 아니라 네피!”

“네피라는 아줌마가! 헤나하고 봄이하고 데려가려 했어!”

“네피가 그럴 리 없어…… 우리가 오해한 게 아닐까?”

“그럴 리 없어. 헤나도 봤잖아. 그 못된 아줌마가 버튼 누르니까 콰강! 지붕 떨어졌잖아. 확실해.”

“네피는 친구잖아. 친구가 왜 그런 짓을…… 난 잘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괜찮아. 헤나는 잘못 없어. 모두 나쁜 어른이 잘못한 거야.”

“그런 걸까?”

“그러엄.”

경험자(?)답게 의연하게 대처하는 봄이와 혼란스러워하는 헤나.

얼핏 보면 웃긴 대화였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저 어린것들이 말은 안 하지만 얼마나 놀랬을까.

나는 두 아이를 말없이 그저 토닥여 줬다.

괜찮다고,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그렇게 내 품에서 곤히 잠들 때까지 내 손은 아이들의 등을 쓸어 줬다.

그리고 아이들을 에우리아의 침대에 눕혀 놓았을 때.

그제야 난 비로소 깨어났다.

“어이, 에우리아. 너 이슬람 걔들, 골치 아프다고 했지.”

“기혁…… 당신.”

“내가 해결해 줄게.”

그렇게 내가 궁금하다면.

좋다. 보여 주마.

내가 왜 마왕이었는지.

온몸으로 경험해 봐라.

*   *   *

어둠이 내리깔린 방.

창문에 비친 달빛으로 한쪽 벽을 장식하는 그림들이 비친다. 한 점만으로도 웬만한 집 몇 채는 거뜬히 살 수 있는 명작들.

명작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 사치품이다.

부를 과시하는 사치품.

개인의 집에 이 정도의 사치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다는 것은 하나다.

힘을 가졌다는 것.

그게 금력이든, 권력이든, 무력이든.

종류야 어쨌든, 이를 지킬 힘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했다.

이 저택의 주인 이름은 알하지르 호스니 엘사이예드 사다트.

이집트의 정당 형제당의 당주이며, 이집트 내 친이슬람 세력의 대표자로 ‘이슬람 아저씨’로 불리고 있는 권력자였다.

그리고 이 유명한 권력자는 지금.

묶여 있다.

의자에.

“웁웁-!”

속옷 하나 없이 발가벗겨져 굴욕적으로 묶여 있는 사다트.

끈 사이로 지저분하게 엉켜 있는 털과 삐져나온 뱃살이 그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현재 꼴이 이래도 사다트는 이집트 권력 서열 3위다. 이 정도 권력자가 그렇듯 사다트의 집도 이중, 삼중…… 과할 정도의 보안을 유지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이 꼴이 난 거다.

사다트의 입장에서는 눈뜨자마자 봉변을 당한 상황.

제발 누구라도 설명해 줬으면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방 안에서 그의 소리 없는 메아리를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한 명 있다.

그를 속박한 범인이자 이 사태의 원흉.

박기혁 말이다.

“알하지르 호스니 엘사이예드 사다트.”

“웁웁!”

“형제당 당주. 슬하에 1남 1녀. 소문난 애처가로 알려져 있으며, 청렴한 성격과 훌륭한 인품으로 이슬람 아저씨라 불릴 만큼 존경받고 있다…….”

……라고 하는데,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박기혁이 스윽 페이지를 넘기자…… 그럼 그렇지. 온갖 비리들이 기록돼 있다.

“각종 뇌물에 청탁은 기본. 반대 세력 암살은 옵션. 국가 예산에도 손댔고 확인된 첩만 다섯. 혼외자는 몇인지 셀 수도 없음…….”

이건 뭐 살아 있는 부정부패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것도 부족한지 테러리스트까지 양성했네?

“비밀 결사 ‘압둘라 여단’의 최대 후원자이자, 실제 단주.”

“웁웁웁-!!”

박기혁의 마지막 발언에 눈을 크게 뜨고 몸부림치는 사다트.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봐. 그런데 어쩌나, 나는 듣고 싶은 게 없는걸.”

셀루티스 같은 일류(?) 광신도가 아니라서 그런가, 정신 금제 같은 게 걸려 있진 않았다. 그래서 정보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추출’해 낸 상태.

굳이 이 녀석의 머리까지 가를 필요는 없었다.

박기혁이 의자를 드르륵 끌어와 사다트 앞에 앉았다.

흠칫 놀라는 사다트.

그는 아는 것이다. 상대가 얼굴을 보여 준다는 의미를.

죽는다. 절대로 죽는다.

죽음의 공포가 사다트의 안면을 찌그러트렸다.

하지만 그도 포커로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곧 의연한 눈빛으로 박기혁을 마주했다.

“이야, 죽음을 각오했다는 거야? 멋지네. 과연 권력자의 풍모야. 그런데 어쩌나,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는데?”

“……?!”

“여기서 널 죽이면 넌 거룩한 순교자, 뭐 이딴 식으로 포장돼서 영웅이 될 건데.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박기혁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이야, 너 같은 부류를 잘 알아요.”

이런 인간은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꽁꽁 숨어 신을 외쳐 댄다.

신을 위하여. 신을 위해서.

신의 이름으로!

온갖 방법으로 신을 들먹이며 순수한 사람들을 오염시키다, 나중에는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도 된 양 믿음의 방향을 지정한다.

“논리가 부족해도 신을 외치면 그만. 문제가 생겨도 신이 내린 시련이라고 말하면 그만. 손만 벌리면 믿음이란 지폐가 수북이 쌓여. 멋져. 기가 막히게 편리하잖아.”

이 돼지 새끼는 셀루티스 같은 광신도가 아니다.

입맛대로 신을 가지고 노는 장사꾼이며, 원하는 바를 신이란 이름 뒤에 숨어 속삭이는 비겁한 선동가였다.

그러니 벌을 내리는 방식도 그에 맞춰야겠지.

광신도를 주먹으로 때려 그들이 미치도록 바라는 신의 곁으로 보내 줬다면, 장사꾼에게는 장사꾼에 맞게 비즈니스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방을 나가는 순간부터 난, 네 밑의 조직들을 갈가리 찢어 놓을 거야.”

“……!!”

“방법은 많아. 이인자를 부추겨 배신을 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아들을 떠밀어 아비의 등에 칼을 꽂는 것도 좋고. 아, 맞다. 이간질도 빼놓을 수 없지. 효과가 끝내주거든. 물론 적당히 솎아 주는 것도 잊지 않을 거고…….”

“웁! 웁!”

“네가 생각해도 괜찮지?”

싹 다 죽여 봤자, 어차피 그 자리에 이 녀석 같은 돼지새끼가 앉을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네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놔두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과거 제국 시절 귀족들을 절단 낼 때 많이 사용했던 방법.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죽도록 미워하게 만드는 것.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정신이 팔려, 반대로 주위가 평온해진다는 거다.

동시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도 박기혁의 사정에 안성맞춤이고.

분노로 눈이 붉게 물든 사다트.

대체 왜 이런 악마 같은 짓을 하냐고, 차라리 죽여 달라며 격렬히 몸부림쳐 보지만.

박기혁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억울해? 그러게 왜 날 건드려.”

날 깨운 건 너희잖아.

그러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

촉수들이 사다트의 머리에 박힌다. 꿀렁꿀렁, 기괴하게 꿈틀대는 촉수들.

잠시 뒤, 박기혁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히히…… 히히…….”

바보가 된 사다트가 대소변을 지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걸로 신호탄은 쐈고.”

작전 이름은 뭘로 붙일까.

그래, 이게 좋겠다.

“서로 죽여라.”

끝내주네.

손을 털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박기혁.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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