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74화 (174/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74화>

진룡이 낳은 최고의 재능이자.

진룡이 낳은 최강의 망나니.

진유리.

그녀는 탄생부터가 평범하지 않았다.

“가주님, ‘9품’입니다. 그것도 최상위 ‘9품’입니다!!”

“……다시 확인해 보세요.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9품’이라니…… 허, 이걸 제 눈으로 볼 줄이야.”

“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 진룡의 혈족은 마법을 해석하는 ‘용의 눈’이나, 마법을 깨부수는 ‘용의 뿔(龍角)’ 따위가 아니다.

‘용’ 그 자체가 되는 것.

용의 특질을 이어받아 ‘용인’이 되는 것.

그것이 진룡 혈족의 이상향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얼마나 많은 특질을 가졌느냐에 따라 품이 정해지는데.

1품이 1할이라면 2품은 2할, 이런 식으로 1품부터 9품까지 정해지고…….

진유리는 9품.

이 9품 중에서도 최상위였다.

역대급 재능으로 손꼽히는 진도하조차 8품 상위인 것을 감안하면 진유리의 재능은 신의 실수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신은 실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평했다.

재능을 준만큼, 그에 상응하는 아픔을 준 것이다.

“이, 이건 마, 마나 드레인? 안 돼! 당장 막아!”

“너무 거셉니다. 혼자는 힘들어요!”

“‘아룡원’ 인원들, 다 부르십시오. 무조건 살려야 합니다.”

조그마한 심장이 쿵쿵거릴 때마다 마나가 요동쳤다.

아기의 옹알이에 마나들이 반응했고, 하다못해 숨을 내뱉을 때도 조심해야 했다.

모두 어린 나이에 용의 특질이 너무 많이 깨어난 탓이다.

죽어도 벌써 죽어야 될 아이.

실제로 당시 진룡가 내부에서는 진유리의 생존 확률을 1할로 잡았었고, 진도하와 유해련은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룡원의 원로들은 이런 진유리를 기어코 살렸다.

24시간 교대로 밀착 관리하며, 가문의 영약을 모조리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사들였다.

그렇게 기어코 어린 혈육을 살려냈고, 우리가 아는 망나니가 탄생한 것이다.

가장 용에 가까운 인간.

진유리 말이다.

*   *   *

추락하는 천장이 멈춘다.

허공에 떠 있는 천장.

균열이 생긴다.

우직! 우지지직-!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금이 가더니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났고, 파편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두 신수.

청룡과 적룡이 하늘로 솟구친다.

흔히 알려진 서양의 둔탁한 드래곤과는 달리 날렵한 동양의 용.

그래서 위압감 자체는 모자랄 수도 있지만, 그 안에 품은 신령함은 드래곤보다도 훨씬 위다.

청룡이 하늘을 향해 외친다.

청룡의 부름에 몰려오는 먹구름. 화창했던 오후의 하늘을 순식간에 집어 삼킨 먹구름이 잔뜩 머금은 빗물을 토해 내고, 폭우가 세상을 덮쳤다.

그리고 적룡이 눈을 빛내자, 비를 타고 낙뢰가 떨어졌다.

정확히, 복면을 쓴 조직원들을 향해.

“커허허헉-!”

“으아악!!”

“이, 이, 이게…….”

“몸이, 안 움…….”

희한한 건 어떤 번개도 직격되는 법이 없다는 것.

직격되지 않으면 약한 거 아닌가?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낙뢰가 빗물을 타고 전파, 범위를 잡아먹으며 순식간에 조직원들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물방울이 떠오르는데.

“어어?”

“이게…….”

무너지는 아울렛에서 살아 있던 생존자였다.

조직원을 제외한 생존자들이 전부 거대한 물방울에 갇혀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생존자들을 안전 지역으로 보내겠다는 의도.

당연히 현장을 최대한 어지럽게 만들려던 조직원들은 이를 막으려 했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려치는 번개.

“크어어억!!”

“제…… 엔장.”

전기 다발들이 사지의 근육을 비틀며 바닥을 기게 만들었다.

사태가 이러하니, 일정 수준 이하의 조직원들은 짐 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 상황.

그 숫자가 절반이 훨씬 넘는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몸을 빼야 한다.

하지만 ‘알라’를 믿는 그들은 절대 이성적이지 않았다. 쓰러진 동료를 무시하고 목표인 ‘헤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너지는 잔해들 사이로 새까맣게 몰려오는 인영들.

그 모습을 수십 개의 ‘매직 아이’로 보던 진유리가 차갑게 웃었다

“기회를 줬는데, 버리네.”

애들 때문이라도 가급적 피 보기 싫었는데.

이렇게 죽겠다고 달려들면.

“어쩔 수 없지.”

진유리의 눈이 파충류의 눈처럼 바뀌고.

그 순간.

진룡 7식

용각(龍角)

원뿔형 가시들이 쏟아졌다.

진유리의 등 뒤에서 한 뭉텅이가 쏟아지고, 발밑에서도 일어나고,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신수 적룡과 청룡에게서도 쏟아졌다.

진도하의 용각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

이게 진유리가 가진 재능의 크기였다.

목표 설정

진유리가 바닥을 향해 발을 구르자 물결처럼 지축이 흔들리더니, 그녀의 시야가 일순간 뒤집혔다.

마나의 선으로 이뤄진 세계.

용의 눈으로 본 세계가 펼쳐진다.

마나로 이뤄진 세계. 그렇기에 마나를 사용한다면 절대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유리는 차갑게 웃으며 타깃을 확정한다.

손가락으로 지휘를 하듯 선을 그으면 끝.

“지워.”

쉬익-

목표가 지정된 용각들이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졌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와 먼지 속에 교묘히 숨은 적들을 향해 날아드는 용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각의 본신이 탁한 검은색이라 떨어지는 폭우와 낙뢰도 좋은 엄폐물이 되었다.

이러자 용각의 첫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조직원들.

그들이 용각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선두에 선 동료들의 심장이 뚫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커헉-!”

“뭐야?!”

“조심해!!”

크기는 성인 팔뚝만 한 가시.

말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가시가 기이한 각도로 이쪽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조직원들이 무기를 들어 막아 낸다.

이미 수준 낮은 실력자들은 낙뢰에 마비된 상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됐다는 뜻이고, 용각의 공격에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하나, 단지 그뿐이다.

허무하게 당하지 않을 뿐이지 이미 발은 묶였다.

은밀하게 목표를 납치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였지만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고, 그나마 빠르게 목표를 납치하려 했지만 그 또한 용각의 출현으로 방금 막혔다.

모두 진유리 하나 때문에 어그러진 일.

위기를 느낀 네프티스가 근처에 있던 동료의 수신기를 빼앗아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년을 죽여야 해! 당장!!”

이대로 시간을 끌면 안 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네프티스의 절규에 이슬람 조직원들의 진형이 바뀌었다. 여기저기 흩어졌던 인원들이 모이며 ‘용각’을 견제했다.

그리고 이렇게 용각의 공세를 막는 가운데, 몇몇 인원들이 탄환처럼 튀어 나갔다.

조직원들 중에서도 최정예인 특작대, ‘압둘라 여단(AB)’이었다.

“알라를 위하여.”

“알라만이 유일하다.”

은은한 황토빛 오라를 두른 압둘라 여단이 순식간에 용각의 사정권을 통과했다.

이에 진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내 새끼를 건드렸는데 이 정도도 준비하지 않았으면 되나.

손가락을 튕기자.

하늘에서 아래를 오시하던 청룡과 적룡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콰아앙-!

잔해를 짓밟으며 꼬리를 살랑이는 적룡과 청룡.

그들의 목적은 눈앞의 건방진 인간들.

압둘라 여단이었다.

“막아.”

쿠오오오오-!

적룡과 청룡이 꼬리를 내려치며 주변을 부숴 갔다.

이 이상 망가질 것이 없어 보이던 잔해들이 용의 몸부림에 아예 가루로 변해 갔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사실.

용의 주력은 절대 물리력이 아니다. 마법, 자연력이라고도 말하는 속성 공격이 용의 주력이었다.

적룡이 꼬리를 내려칠 때면 불꽃이 터지고, 번개가 사방에 깔린다.

청룡이 땅을 쓸면 땅들이 기이한 형태로 솟구치고, 물의 사슬이 주변을 휘저었다.

뚫을 테면 뚫어 봐라.

두 신수의 무력시위에 압둘라 여단이 막힌 것은 당연지사.

“진입로가…… 보이지 않아.”

“꿀꺽.”

그들이 아무리 알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아닌 말로 뭐가 보여야 몸을 던지든 버리든 할 것 아닌가.

두 신수가 온갖 무기를 써 가며 휘젓자, 손톱만큼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특작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저 멀리서 위이잉- 위이잉-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과 소방관들이다.

약속과 다르다.

원래라면 오면 안 되는 이들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뇌물을 줬고 오늘의 일을 침묵하기로 입을 맞췄는데.

그들이 왔다는 건.

또 다른 변수가 개입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 수단을 썼다.

“어쩔 수 없군. 결국 꺼내야겠다.”

“이거 꺼내면 저희 정체가 노출될 건데…….”

“시간이 없다.”

“하아…… 일이 개같이 꼬여서.”

탈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아공간에서 활을 꺼냈다. 무채색 활이 아공간에서 나오자 찬란한 빛을 머금는다.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활.

그 이름도 ‘태양신의 활’이다.

한편 배르노트도 무기를 꺼내는데, 목제 하프였다.

일견 조잡해 보이는 목제 하프. 하지만 이 무기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숨을 죽이는데…… 일명 ‘망자의 하프’.

죽은 자를 제어하는 ‘신기’였다.

둘 다 아프리카 연합의 ‘신기’였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신기는 아프리카 연합을 대표하는 인물들에게만 주어지는 무기.

이 무기를 썼다는 것은 두 인물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말하지 않아도 알아…….”

‘요’를 뱉는 대신 탈리아가 태양신의 활을 놓는다.

눈부신 섬광과 함께 쏘아진 화살.

솨악-

빛이 일직선으로 쏘아지며 섬광이 허공에 그어졌고…… 신수, 청룡의 몸통이 뚫려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망자의 하프가 불러낸 망자들이 적룡의 몸에 들러붙었다.

적룡이 자신의 몸에 불꽃을 불러 망자들을 털어 내는 데 성공했지만, 곧이어 또 한 번 섬광이 번쩍이더니 태양의 화살이 적룡의 꼬리를 관통했다.

상처 입은 신수.

하지만 그들은 흔한 비명도 지르지 않고, 고고하게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의 눈에 깃든 감정은 흥미로움.

마치 ‘인간, 제법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두 용의 눈은 탈리아와 배르노트를 듬뿍 담았다.

그 불가해적인 위압감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두 사람.

하지만 그때.

“이만하면 됐어. 돌아와.”

주인의 부름에 아쉬운 눈빛으로 몸을 돌리는 두 신수.

탈리아와 배르노트가 사라지는 두 신수를 향해 공격을 퍼부어 봤지만, 둘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두 신수가 사라지자, 쏟아졌던 폭우가 멈췄다. 돌풍도 잠잠해졌고, 먹구름이 걷히며 태양도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3류 재난 영화의 엔딩처럼, ‘불행한 사고가 있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우리는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같은 연출 같았다.

그러나 탈리아와 배르노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앞에 있는 인간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건방진…….”

“애송이가.”

까득!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돌덩이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진유리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제 왔어?”

“헤나는 어디 있지?”

“아이만 내놓으면 조용히 갈게요.”

말을 하며 조금씩 걸음을 옮기는 탈리아와 배르노트.

거리를 조정하려는 거였다.

한편 진유리는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손에 들린 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만, 나 뭐 좀 보고 말할게.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어, 여기 있네.

진유리는 폰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나, 너희들 알 것 같아. 이거 맞지?”

폰에 보이는 사진들.

태양신의 활을 가진 탈리아와 망자의 하프를 들고 있는 배르노트였다.

신기를 부여받을 때 찍었던 사진.

역시나…… 정체가 탄로 난 둘은 잔인하게 웃었다.

“넌 방금, 최악의 선택을 했다.”

“맞아요. 정체를 몰랐으면 살 수도 있었을 건데.”

“뭐? 살 수도 있어?”

그 순간.

“푸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진 진유리.

진심으로 웃긴지, 기침까지 섞어 가며 웃어댔다.

“아, 진짜. 너희들 유머가 보통 아닌데?”

여기까지 오기까지도 힘겨웠으면서, 나한테 덤벼?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설마, 너희들 그 알량한 신기를 믿고 까부는 거야?”

태양신의 활과 망자의 하프.

아프리카 연합에서 발굴된 유물과 결합해 만든 신기로, 한국의 국보랑 비견될 만하지만.

무기는 무기다.

“결국, 더 좋은 무기한테 발리는 법이야.”

“죽어!!”

참지 못하고 태양신의 활이 진유리에게 쏘아졌다.

그 순간.

일어나는 비늘.

온몸에 검붉은색 비늘이 동시에 일어나더니 결합.

진유리의 몸을 완전히 감싼다.

마룡기

드래고니안

그리고 드래고니안의 꼬리가 화살을 그대로 튕겨 냈다.

콰아앙!!

“……!!”

튕겨나간 화살이 근처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둘은 드래고니안을 장착한 진유리를 멍한 눈으로 쳐다봤고, 진유리는 바이저가 내려온 상태로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 너희들 정체 안 까발릴 테니까.”

누구 좋으라고 까발리겠나.

쟤들이 실종되면 신기도 실종되는 거고, 그러면 저 신기는 내 거겠네?

애들 줘야지.

그러니까

“죽어.”

용언(龍言)

사망선고(死亡先姑)

네 글자 용언이 발동.

잠시 바람이 휘날리고.

풀썩.

둘이 쓰러졌다.

심장이 터진 채로.

*   *   *

그리고 그 시각.

진유리가 만들어 준 퇴로로 도망 나온 아이들이 박기혁과 조우하고.

“아, 아빠! 이상한 아줌마가……!”

“아줌마가 아니라 네피!”

“네피라는 아줌마가! 헤나하고 봄이하고 데려가려 했어!”

정신없이 쏘아 내는 이야기지만.

포인트는 간단하다.

결국은 내 새끼들을 납치하려 든 것.

“그렇구나.”

너희들이 돌았구나.

아이들을 품은 박기혁이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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