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73화>
“아프리카 연합은 처음 구상부터 잘못된 거였습니다. 솔직히 말할까요? 구상이란 게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이건…… 그냥 마구잡이로 엮어 놓은 다음 ‘연합’이라는 딱지를 붙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거대한 땅.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저 미국에 견줘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진짜는 끝을 알 수 없는 방대한 지하자원이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득이 있는 곳에 충돌은 필연적이란 것을요. 굳이 충돌이 아니더라도 갖가지 파리가 꼬이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이 지하자원을 둘러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죠.”
“인구 문제, 식량 문제, 복지 문제, 정치, 사회. 이 밖에도 문제는 산더미지만…… 됐습니다. 집어치우죠. 왜냐하면 지금 말할 문제에 비하면 세 발의 피니까요. 제가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했었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종교. 이 종교야말로 아프리카 연합의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아프리카에 퍼져 있는 민속 신앙. 이제는 샤머니즘으로 통칭하는 것들을 전부 품은 것. 여기까지는 상관없습니다. 문제는요. 여기에 이슬람이 포함되면서부터입니다.”
“이슬람이란 종교는…… 보자고요. 그들은 기본적으로 유일신을 믿습니다. 신은 오직 알라만이라고. 그런데 그들이 염소나 사자, 강을 믿는 샤머니즘을 인정할 것이라 봅니까? 웃기는 소리죠. 차라리 개가 고양이를 낳는 게 빠를 겁니다.”
“이슬람 문화권…… 그냥 말하죠. 터키, 이란을 비롯해 중동 전부가 연합 내에서 아프리카를 축출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오직 이슬람만이 숨 쉬는 ‘알라 연합’을 원합니다. 믿겨지십니까?”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에우리아 님의 숭고한 정신은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에우리아 님은 실수했습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을 모두 품었으면 안 됐어요! 하다못해 연합의 이름을 ‘아프리카’로 못 박지만 않았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겁니다!!”
“에우리아 님은 인간을 높이 평가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감히 말합니다.”
“인간은 절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 * *
네프티스가 헤나를 처음 본 것은 8년 전이었다.
에우리아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던 아기. 아기의 정체를 묻는 물음에 당시의 에우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옛 인연의 아이에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동안 제가 봐주기로 했어요.”
그럴듯한 변명이었지만, 네프티스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에우리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묘한 느낌.
그리고 네프티스의 감은 맞았다. 반년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난 뒤에도 헤나는 에우리아 곁에 있었다.
더욱이 헤나는 시간이 갈수록 놀랍도록 에우리아 님과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해 나갔다.
이제는 바보가 아닌 이상, 에우리아와 헤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에 네프티스와 더불어 에우리아를 곁에서 모시던 또 한 명, 아시스는 그녀에게 당부했다.
“네프티스, 잠깐 나랑 이야기하지.”
“헤나 아가씨의 정보는 절대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된다. 이게 외부로 알려지면 계파를 떠나, 아프리카 연합 모두에게 좋지 않다.”
아프리카계를 대변하는 아시스.
이슬람계를 대변하는 네프티스.
둘은 에우리아에게 충성하면서 계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함께한다.
그렇기에 네프티스 또한 아시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헤나의 정체가 드러나면 이슬람계에도 좋을 게 전혀 없으니까.
그러나, 몇 년 뒤 문제의 발언이 나온다.
이제껏 한 번도 ‘종교’나 ‘신’에 관해 발언하지 않던 에우리아가 처음으로 신을 입에 올린 것이다.
“여러분, 신을 가지고 싸우지 마세요. 신은 여러분이 생각가는 것처럼 유일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아요. 여러분이 믿고 싶은 걸 믿으세요. 남의 믿음을 존중해 주세요. 정말 안타까워서 그래요.”
에우리아는 진심으로 안타까워서 뱉은 말이었고, 많은 이들은 에우리아 님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랬겠나,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저 멀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이단을 지지하는 발언이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라니, 이 어찌 불경한 소리인가!”
무엇보다 ‘유일’하지 않다는 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고, 곧이어 의심으로 변질된다.
“에우리아가 아프리카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닌가?”
“이 모든 게 이슬람을 몰아내려는 계획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이슬람 온건파로 분류되는 사우디의 몇몇 인사들이 연합의 중요 위치에 오르면서.
그들의 의심은 확신이 된다.
“봐라! 우리의 힘을 약화시킬 속셈이다!”
“나중에는 이 땅에서 알라를 지울 생각이겠지.”
물론 전부 망상이다.
에우리아는 이슬람에 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온건파의 인사들이 올라온 것은 순전히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서였다.
하지만 이미 혐오에 절어 버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잃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알라 외의 신은 없다.”
“오직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다.”
“우리의 손으로 알라의 땅을 되찾자.”
이른바 ‘성지 탈환’ 작전.
그리고 이 작전의 선봉장이 바로 이 사람 네프티스였다.
“오랜만이에요. 헤나.”
* * *
“오랜만이에요. 헤나.”
“어? 어어어?! 네피이이~~!”
놀고 있던 헤나가 폴짝폴짝 뛰어 네프티스에게 와락 안겼다.
“늦었어! 빨리 온다며!”
“미안해요. 일이 많아서요.”
헤나가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어리광을 부리고, 네프티스는 너무도 익숙하게 헤나를 안아 들었다.
저런 모습도 있었네.
봄이는 헤나의 새로운 모습에 신기한 듯 둘을 쳐다봤다.
“그런데 헤나, 저분은?”
“아! 맞다. 너무 반가워서 깜빡했잖아.”
기분이 잔뜩 업(UP)된 헤나가 통통 튀어 봄이 앞에 섰다.
“소개할게. 박봄. 내 새로운 친구야!”
“안녕하세요, 박봄입니다. 세상에서 젤 멋진 아빠 딸이에요. 나이는 8살. 곧 있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요.”
“아…… 안녕하세요.”
배꼽 인사를 하는 봄이에게 정중하게 답하는 네프티스.
“봄이는 내 친구야! 찐찐 친구!”
“친…… 구요?”
“응! 진짜 친구! 우정의 상징인 떡볶이도 같이 먹었어. 그치?”
“응, 우리는 떡볶이가 맺어 준 친구야.”
“아…… 친구군요.”
그 순간, 박봄은 똑똑히 봤다
네프티스의 얼굴에 일어나는 균열을.
급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분명 저 아줌마 이상해졌었다.
‘봄이를 싫어하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박봄은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 급 우울해졌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봄이는 언니니까.
마음이 바다 같잖아.
이해해 줘야 한다.
세상 모두가 봄이를 좋아하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저 아줌마도 자신의 취향이 있겠지.
한편 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네프티스는 헤나와 한창 이야기꽃을, 정확히는 이 불특정 변수에 대한 정보를 취하는 중이었다.
“그러면 이곳에 봄이란 분 말고 두 분이 더 계시다는 말이죠.”
“응! 딸기 언니하고, 봄이 아빠야.”
“신기하네요. 왜 저는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잘 모르겠어. 잠깐만, 봄이는 알 거야. 봄이가 바보인데, 똑똑할 땐 무지 똑똑하거든. 봄아!!”
“듣고 있었어. 으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벌레 이모가 초대했다는 말만 들었어. 그거랑 상관있을까…… 요?
“아하…… 개인적인 초대라면야……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죠.”
실수였다.
아시스를 떨어뜨리기 위해, 에우리아의 측근 전부를 뿔뿔이 찢어 놓은 것이 이런 변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손님이 왔다고 해도 셋이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의 허리에도 닿지 않는 꼬마 아이. 일이 꼬인다고 한들 이 아이도 함께 ‘회수’하면 그뿐.
그렇게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가는 네프티스였는데, 중간중간 대화가 이상했다.
대화에 유독 ‘봄이네’라는 말이 많이 들어갔다.
결정적으로, 평소처럼 가져온 만화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데.
“네피, 이제 만화 구해 올 필요 없어. 봄이네 가서 많이 보기로 했거든. 그치?”
“걱정 마. 울 집에 캡틴 타이거 시리즈 다 있어. 티비도 어어어엄청 커.”
“어어어엄청?”
“응! 이따만 해.”
“우와아아.”
이때, 네프티스는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봄이네 가서? 어디를 간단 말인가.
“저기 헤나. 봄이네를 간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아! 네피한테 말하지 않았구나. 나 잠시 동안 봄이네 가서 지내기로 했어. 거기서 초등학교도 다니고, 중학교도 다닐 거야. 그치?”
“응응! 울 아빠가 수속 밟으러 갔어요. 내일 모래면 슈우웅 한국 가요.”
“기대된다. 뭐 할까?”
“놀이공원 갔다가 떡볶이 먹고 바다 가기로 했잖아.”
“우와, 벌써 신나.”
“봄이도 신나.”
두 아이가 손을 맞잡고 방방 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네프티스는 패닉 상태.
맙소사…….
네프티스는 당황을 숨길 수가 없었다.
헤나를 인질로 이용해 에우리아를 제어 혹은 제거할 셈이었는데, 뭐라고? 한국을 간다고? 이 무슨 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작전이 어그러졌다.
원래는 상황을 파악한 뒤, 시간을 들여 최적의 타이밍을 만들 생각이었다.
이틀이나 사흘 뒤, 평소처럼 에우리아 몰래 시내로 외출하면 끝이었다. 네프티스는 시간이 날 때면 헤나를 데리고 외출했고, 에우리아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손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한 변수의 출현으로 모든 게 어그러졌다.
더욱이 타임 리미트까지 걸린 상황.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을 찾아야 된다.
복잡한 감정을 담은 네프티스의 눈이 두 아이에게로 향했다.
“아줌마, 표정이 안 좋아.”
“네피는 내 친구니까. 나랑 헤어지려니까 슬퍼서 그래.”
“마, 맞아요. 갑자기 이별이라니, 어지럽네요.”
“괜찮아, 네피. 전화 자주 할 수 있고, 방학 때면 놀러 올 수도 있어. 맞쥐, 봄아?”
“응, 그러엄.”
그렇게 잠시 뒤.
네프티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수를 짜내는 데 성공하는데.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기에는 제가 너무 힘들어요. 옷도 사 주고 싶고, 선물도 사 주고 싶고, 함께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강행 돌파.
두 아이 모두 납치해, 인질로 삼겠다.
네프티스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얘들 보호자예요.”
“딸기 언니, 같이 가려고?”
“언니도 갈 거야?”
“당연하지. 아빠 없으면 언니가 너희 보호자인걸.”
진유리가 눈웃음을 지으며 네프티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같이 가도 되죠?”
“……그럼요.”
강행한 작전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었다.
* * *
네프티스가 헤나를 데리고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이를 본 조직원들이 당황했다.
“오늘은 상황부터 파악한다고 하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알아. 바로 실행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그런데 저 뒤에 달고 오는 두 사람은 뭐야. 아는 사람이야?”
“파악 중이야.”
어쨌든 목표물을 데리고 나왔다.
바짝 긴장하는 조직원.
작전 시작은 갈림길에서다. 왼쪽 공원 방향으로 가면 ‘보류’, 오른쪽 아울렛으로 가면 ‘실행’이다.
보류면 그냥 없는 일이 되는 것이고, 실행이면 그때부터 조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어디로 갈까.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작전실.
곧이어 갈림길에 도착한 네프티스가 발을 내딛는다.
오른쪽, 아울렛 방향이었다.
작전 실행!
“모두 작전대로 움직여!”
“바로 인원 풀고, 탈리아 님과 배르노트 님한테 연락해!”
“얼타지 마, 이 새꺄. 빨리 특작대한테 전화해!”
조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사이, 네프티스를 따라 이동하는 일행이 식료품 코너에 들르는데.
“여기는 처음 오는데, 뭐가 많네. 저기, 네프티스라고 했나요. 여기 혹시 떡은 있나요?”
“라이스 케이크? 쌀로 만든 케이크요? 그런 끔찍한 음식이 있나요?”
“쌀로 만든 케이크가 아니라, 쌀을 이렇게 뭉쳐서 만든 말랑말랑한 거…… 하, 통역기가 이래서 안 좋다니까. 그냥 조금 둘러보다 가요. 그래도 되죠?”
“아니, 그게…… 여기 두 분이 피곤하지 않을까요.”
“걱정 마세요. 얘들아, 언니한테 안겨. 봄이는 목마 타고, 헤나는 여기 언니 팔에. 옳지.”
식료품 코너는 잠시 스쳐 가는 정도였는데, 여기서 시간을 잡아먹혔다.
당연히 이를 알지 못하는 조직원들은 당황한다.
‘왜 안 와?’
‘어디 있는 거야?’
‘언제 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진유리의 돌발 행동은 계속되는데.
의류 코너에서 애들의 옷을 고르느라 한참을 낭비하거나,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가려던 일행을 몸에 안 좋다며 막아 세운 것이나.
조그마한 것들을 시작으로 작전이 어그러지기 시작.
이를 보다 못한 네프티스가 아이들이 간 사이 진유리에게 자제해 달라 말하려 했지만.
“주제 넘는 이야기이지만…….”
“어머, 주제 넘는 이야기면 하지 마세요.”
“……!!”
“애들 오네요. 웃어요. 웃으라고요. 얘들아, 여기야~!”
진유리가 누구인가. 요즘은 박기혁 덕분에 많이 좋아졌지만 원래는 진룡가에서도 내놓은 망나니다. 그녀는 누구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웃고 있는 셋을 보자 네프티스는 점점 피가 말라 갔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느낌이 이런 것일까.
충동적으로 실행한 작전이 첫 단추부터 어긋나더니, 점점 벗어나 이제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결국 초조해진 네프티스는 최후의 ‘버튼’을 누르는데.
딱, 버튼을 누르는 순간.
쿠구구구궁-!!
아울렛이 무너지고 있었다.
동시에 대기 중이던 조직원들이 주변의 시민들을 베어 갔고.
“알라를 위하여.”
“커헉-!”
탈리아와 배르노트를 비롯한 특작대 전원이 무너지는 아울렛으로 몸을 던졌다.
“왜 이렇게 급하게 한대?
“모른다. 우리는 목표만 회수한다.”
그리고.
혼란 속에서 놀란 두 아이를 지킨 진유리가 눈을 뜨는데.
“어쩐지 하는 짓이 께름칙하더니.”
그래서 일부러 사람 많은 곳으로 다녔는데, 이딴식으로 막 나온다 이거지.
진유리가 한쪽 손을 펼친다.
불꽃과 뇌전이 결합했다.
다른 쪽 손을 펼친다.
물길과 땅이 진동했다.
신수 적룡(赤龍)
신수 청룡(靑龍)
강림(降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