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71화>
“너, 쟤랑 무슨 관계야.”
“……!!”
내 물음에 에우리아의 동공이 파르르 흔들린다.
반사적으로 몸이 굳은 에우리아. 나는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주시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진유리는 나와 에우리아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기…… 기혁아?”
“쉿. 나 얘랑 할 말 있어.”
“저는 모르…….”
“아닌 척하지 마. 난 다 보이니까.”
봄이랑 뒹굴고 있는 아이, 헤나라고 했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헤나란 아이는 에우리아의 힘을 품고 있다. 단순히 흉내 정도가 아니라, 진짜 순도 100퍼센트 에우리아의 것을 말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머릿속에 수많은 가정들이 스쳐 간다. 그것들 대부분은 유쾌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그, 그……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눈에 띄게 당황하는 에우리아.
수호령이라는 녀석이 식은땀까지 흘린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지 입은 연신 뻐끔거리는데, 안타까워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더 추궁했다간 진짜 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정작 울음이 터진 곳은 다른 곳이었다.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던 아이들이 엉망이 되어 눈물을 터트린 것.
씨익, 씨익, 이이익…….
너어! 너어어어-!!
으아아아앙-!!
깜짝 놀라 몸을 스캔해 보니…… 몸은 괜찮다. 봄이나 헤나나, 둘 다 심하게 멀쩡하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제 풀에 지쳐 우는 거였다.
“봄아……!!”
봄이의 울음에 진유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이쪽도 만만치 않다.
헤나의 울음에 어깨가 들썩이는 에우리아.
“후…… 진유리, 네가 애들 좀 봐줘라.”
“응! 얘들아!!”
“저도…….”
“넌 어디 가. 나랑 이야기 좀 해.”
“이따가 할게요. 헤나 좀 보고 있다가…….”
당장 뛰쳐나가려는 에우리아. 그런 그녀의 귓가에 속삭여 줬다.
“너, 잃어버린 그 힘, 쟤가 들고 있는 거 맞지?”
“……?!”
역시나 맞는가 보다. 이제는 표정 관리도 못 하겠든지 대놓고 동요하고 있다.
“좋은 말할 때 따라와. 애들은 유리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성격대로라면 당장 멱살 잡고 ‘아이한테 무슨 짓을 했냐.’며 추궁했겠지만, 위그드라실의 평가도 그렇지만 내가 본 에우리아의 첫인상도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저 아이한테 끔찍한 짓을 저지를 정도는 아니라 생각한다.
일단은 믿어 본다.
만약 아니라면, 다소 과격한 대화를 나눠야겠지.
* * *
수호령의 기원은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본인들조차도.
다만 목적만은 확실했다.
신이 그들의 머리에 심어 둔 하나의 명제.
인류를 지켜라
그들은 이 명제를 충실히 지켜야만 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이 흘러, 인류의 문명은 나날이 발전해 나간다.
하루 온종일 불을 지켜야만 했던 인류는, 이제 버튼 하나로 불을 붙인다.
생의 대부분을 태어난 곳에서 살았던 인류는, 이제 돈만 있으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으며, 우주까지 넘보고 있다.
교육, 철학, 문화, 과학, 마나학…… 모든 분야에서 발전하며 인류는 강해져 갔다.
반면 수호령의 역할은 축소되어 갔다. 보호해야 했던 인류가 강해지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향력’을 축소시키지 않았다면 말이다.
역할과 영향력은 다르다.
역할은 그냥 안 하면 그만이지만, 영향력은 력(力). 근원적인 힘을 건든다.
신은 인간의 발전에 맞춰 점차 수호령의 영향력을 축소시켜 갔다.
각자의 영역을 떠나지 못하게 했던 것도.
인간 세계에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것도.
인간을 상대로 본신의 힘을 모두 발휘할 수 없는 것도.
모두 신의 안배였고, 현재까지도 착실히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에 수호령들이 불만을 품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나마 위그드라실처럼 자신들을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균형파’ 같은 경우 비교적 불만이 적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을 원하는 ‘개입파’ 같은 경우는 불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잊힐 것이다.
개입파는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당연히 에우리아도 개입파로서 이 연구에 한몫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개입파의 연구는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늦었습니다, 황룡.”
“미안하다. 무림맹의 아해들이 실수를 해서.”
“쯧, 인간에게 무엇을 바랍니까. 차라리 ‘세뇌’로 전체를 컨트롤하는 것이 효율이 좋습니다.”
“세뇌? 이봐요, 태사자.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이런…… 박애주의자 에우리아가 있었군요. 제가 실례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에우리아는 한 가지 성과를 거둔다.
‘혈족 계승’
대를 이어 힘을 계승하는 현상.
모든 것을 아는 수호령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 미스터리한 현상을 파헤치던 와중.
인류 발전의 근원.
유전(遺傳)의 비밀에 접근한 것이다.
“……내가 자식을 가진다고?”
수호령은 기본적으로 생식 능력이 전무하다.
하나 에우리아는 한 가지 권능을 가졌는데, 그것은 자신의 곁을 지키는 권속들. 곤충 사역마를 만드는 능력 ‘산란(産卵)’이었다.
인간의 수정란을 알로 품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알에 에우리아가 힘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면 인간의 연약한 염색체는 모두 에우리아의 인자로 변이된다.
인간임에도 에우리아의 힘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에우리아 2세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아이가.
헤나였다.
* * *
“……이렇게 된 거예요.”
“…….”
똑똑.
나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치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헤나가 에우리아의 자식인 게 놀라워서? 신기하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이미 해 봤으니까.
“역시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하구나.”
“네?”
“쉿. 조용히 있어 봐.”
과정이야 복잡하지만, 봄이가 내 딸이 될 때 거친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저쪽은 수정란이고 여기는 아이라는 차이뿐이지, 솔직히 생명의 근원에 ‘나’를 쪼개서 주입한다는 핵심 원리는 똑같단 뜻이었다.
어쩐지 우리 봄이가 처음 만나는 애한테 저 정도로 과격할 리가 없는데,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다.
오케이.
생각 끝.
짝짝.
박수를 치며 에우리아를 주시했다.
내게 헤나의 탄생 과정은 흥미롭지만 딱 거기까지다.
중요한 건…….
“그래서 헤나를 가지고 뭘 하려고 했는데.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목적이 무엇인가.
단순히 권속을 늘리려고?
그러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
본신의 힘이 저렇게 깎여 나갔는데 무슨 권속인가. 솔직히 헤나가 대단하긴 해도 즉시 전력감은 아니잖아.
에우리아는 어떻게 답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다, 체념한 듯 눈을 감고는 말했다.
“원래는 단순히 연구가 목적이었어요. 알고 지내던 인간의 핏줄이라 동정심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딱 그 정도였습니다.”
“근데.”
“점점 마음이 바뀌었죠.”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냥 흔한 연구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나, 알 속에서 꿈틀대는 헤나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순간, 에우리아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두근두근했죠. 그건 호기심이나 흥미로움과는 다른 감정이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되죠. 저의 모든 신경은 알에 쏠려 있었다는 것을요.”
이 순간부터 에우리아에게 헤나는 실험물이 아니었다.
자식이었다.
내 새끼였다.
사랑 중에서 가장 애절하면서도 열렬한 사랑.
모성애(母性愛).
에우리아가 모성애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알 속의 헤나는 불안전했어요.”
“어쩔 수 없지. 첫 연구라며.”
당연했다.
첫 연구. 다른 말로는 시험용 연구물이잖나. 연구를 해 본 입장에서 첫 연구가 성공할 확률은 로또를 맞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이에 에우리아는 힘을 들이붓게 된다.
“헤나의 상태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저를 쪼개 넣었죠.”
“그럼, 지금 비어 있는 힘이…….”
“좀 많이 비어 있죠.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헤나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헤나가 알에서 부화할 때가 되자, 에우리아의 힘은 거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딴 건 에우리아에게 중요치 않았다.
품에 헤나를 안은 에우리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시나요? 그건 정말…… 기적이에요. 나를 닮은 나의 분신이 있다는 건.”
“알아. 내가 봄이를 안을 때가 그러니까.”
“그쵸?!
자신이 조금 깎여 나간 게 대수인가.
이렇게 헤나가 건강한데.
에우리아의 세계는 헤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헤나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갔고 에우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그녀의 삶에 이 정도로 행복했던 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없이 행복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해한다.
헤나가 과연 내 곁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에우리아는 수호령이다. 특히나 에우리아가 만든 아프리카 연합은 수많은 이해관계로 하루하루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이었다.
“이대로 헤나가 성장한다면…….”
“확실히 이용당하지.”
“네.”
더군다나 현재 에우리아는 헤나에게 힘을 준 터라 많이 약화된 상태. 이전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론은.
“위그드라실에게 부탁한 거구나.”
“제가 친한 수호령이 몇 없어요. 대부분 인간 세계에 관심이 없으니, 그나마 위그드라실밖에 남지 않죠.”
“위그드라실도 인간에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야.”
흔히들 위그드라실이 인간에게 자애롭다고 생각하는데, 곁에서 내가 본 위그드라실은 인간 사회에 철저한 선을 그어 놓고 있다.
마치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처럼.
인간의 성장을 선 밖에서 구경하는 관중.
이 관중이 위그드라실인 것이다.
“저도 알아요. 그걸 감안해도 다른 수호령들보다는 나으니까 보내는 거죠. 위그드라실은 자신의 흥미를 끄는 인간에게는 품을 내주니까요. 저는 헤나가 충분히 위그드라실의 흥미를 끌 거라고 생각해요. 기혁 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하긴, 헤나 정도면…….
“그리고.”
에우리아의 표정이 안타까워졌다.
“헤나는 미래를 위해서도 제 곁을 떠나야 해요.”
“왜?”
“인간이니까요.”
인간이니까.
이 짧은 답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절대 홀로 살 수 없는 생명체다.
지금이야 어리니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겠지만, 나중에 크면? 과연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정적이지…….
완전히 이해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균형파로의 전향은?”
“그것도 헤나와 연관됐어요. 헤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자식이 부모를 보고 배우듯, 부모도 자식을 보고 배운다.
에우리아는 하루하루 커 가는 헤나의 키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했다.
“여전히 저는 인간의 평화를 위해서 개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리고 에우리아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현재 개입파의 방향은 잘못됐어요. 그건 인간을 지켜 주는 게 아니에요. 그건 정말…… ‘지키는’ 것만이에요.”
지킨다.
이건 많은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킨다.’라면 외부의 억압에서 보호하는 것이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스스로 인간을 지배해, 인간이란 종 자체를 ‘보존’하는 것도 지키는 게 아닌가.
내가 생각하기로 현재 개입파는 명백히 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그것뿐이야? 정말?”
“헤, 넘어가려 했는데 집요하시네요. 맞아요. 사실은 힘에 부쳐요.”
개입에는 마땅히 힘이 필요한 법인데, 지금 에우리아에게는 이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옛날에는 한 번씩 바깥 구경도 다녔는데, 지금은 함부로 밖에 나갈 수도 없는 형편이죠. 수호령은 영역 안에서는 절대 죽지 않거든요.”
“알아. 레드 드래곤이랑 붙어 봤어.”
“우와! 레드 드래곤이면 정말 강할 건데.”
“강하긴.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지.”
“풋. 하긴, 레드 드래곤이 조금 애 같긴 하죠.”
이걸로 난 모든 진실을 알게 됐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보호해야 할 인간은 헤나. 맞아?”
“맞아요.”
“헤나를 보호해서 위그드라실에게 데려다주면 되지?”
“그럴 생각이었는데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때, 에우리아가 내 눈을 응시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눈빛. 진짜 수호령 에우리아가 나를 들여다본다.
눈에 비친 내가 쪼개진다.
곤충의 눈처럼 겹겹이 증식하는 시선 속에…… 나는 똑바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뒤.
에우리아는 충격적인 말을 뱉는데.
“기혁 님이 헤나를 맡아 주세요.”
“……뭐라고?”
“기혁 님이 우리 헤나를 맡아 달라고요. 기혁 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탁할게요. 대가는 뭐라도 드릴 테니.”
정중히 허리를 굽히는 에우리아.
“허…….”
나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 * *
한편 그 시각.
카이로 외곽. 어느 가정집.
터번을 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신원 파악 끝났나.”
“역시나 드러난 게 없습니다.”
“아프리카 연합 모든 나라를 뒤져도 그 아이는 없었습니다.”
“정말…… 에우리아 님의 딸인가…….”
수호령이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하지만 상석에 있던 남자가 ‘쾅!’ 하고 테이블을 내려쳤다.
“정신 차리세요. 그 아이의 정체가 뭐가 중요합니까? 오히려 딸이라면 더 좋습니다.”
“하긴, 본래 계획대로 에우리아를 더욱 억제할 수 있겠죠.”
“맞습니다. 우리가 초점을 두어야 할 건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 연합을 온전히 알라의 품으로 끌어들일지입니다. 여러분은 그것만 생각하십시오.”
오직 알라만을 위한 땅.
그 땅에 에우리아는 더 이상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