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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70화 (17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70화>

시간을 잠시 되돌리자.

사우디행이 확정된 순간. 그러니까 봄이와 진유리가 하루 종일 ‘어디 어디 갈까?’ 하며 사우디 날씨를 검색하고 쇼핑이 한창일 때.

그 시간에 난, 위그드라실을 만나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기혁 군. 앉아요. 일본 일로 걱정이 많았는데, 멋지게 해결하셨더군요. 역시나 기혁 군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답니다. 후훗.”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죠? 본론부터 말할게요. 중동으로 간다고 들었어요. 가는 김에 제 부탁 좀 들어주실 수 있나요?”

이에 내 대답은.

일단 들어 보고.

근데 이 양반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잘됐어요.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의 기혁 군이라면 말이 통하겠네요.”

“수호령이란 뭘까요. 마나의 전파자, 마법의 안내원, 인류의 스승, 이 세상의 균형자…… 네, 이게 저 밖의 사람들이 저희를 보는 시선이에요.”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형체가 있는 신이나 다름없어요. 완전무결하고, 가치중립적인…… 뭐, 그런 거요. 하지만 맞나요? 기혁 군은 봤잖아요. 저희 수호령이 그렇던가요?”

전혀.

일단 욕망이 있잖나.

예를 들면 기간트.

얘는 ‘호기심’이라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집착은 곧 욕망의 다른 형태.

레드 드래곤은 또 어떠하던가.

얘는 소유욕.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지만, 그냥 모든 게 지 거라 우기는 7살짜리 철부지 꼬맹이나 다를 바 없다.

고로 수호령은 저기 위에 있는 신보다는 여기 아래에서 뒹굴고 있는 인간에 가깝다.

이게 내 판단이었다.

“인간에 가깝다라…… 후훗. 가차 없네요. 그렇지만 부정할 수 없네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지극히 인간적이니까요.”

여덟의 수호령 사이에는 파벌이 있다.

이 세계는 인간들의 세계이며, 수호령은 수호령답게 세계의 뒤에서 균형자로 남아야 한다는 ‘균형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것이 곧 균형자의 의무라고 말하는 ‘개입파’.

“균형파에는 자유의 깃발과 야수왕, 그리고 당신이 잘 아는 기간트와 바로 저 위그드라실이 있죠.”

“반면 개입파는 음흉한 태사자와 욕심 많은 레드 드래곤. 그리고 과격한 황룡. 여기에 에우리아가 포함돼요.”

“보면 볼수록 믿기지 않아요. 순수하고 착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저런 과격 분자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게.”

어쨌든 4:4.

균형파와 개입파는 그림처럼 균형을 이뤘고, 이렇게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라고 했으면 내가 여기까지 안 왔겠지.

“균형파와 개입파의 대립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가 나쁜 것과, 한국과 중국의 사이가 나쁜 것도 이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죠.”

“다만 저희 균형파는 이런 지지부진한 대치 상황을 나쁘지 않게 봐요. 어쨌든 이것도 나름대로 균형이니까요. 만족하는 거예요.”

“하지만 개입파는 어떨까요. 네, 그들은 이 상황이 못마땅할 거예요.”

결국 개입파는 극단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혼란은 필수불가결이니까.

그리고 개입파임에도 이렇게 극단적인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에우리아였다.

“에우리아는 정말로 착하고 순수한 존재예요. 그녀가 개입파가 된 것도 인간들을 너무도 사랑해, 아끼고 보듬어 주기 위해서였죠.”

나일강을 확장해 아프리카 전역에 수로를 뚫은 것도.

아프리카의 샤머니즘과 중동의 과격한 종교적 색채를 뺀 것도.

제국주의의 군홧발에 짓밟히던 소수 부족과 약소국들을 끌어모아 연합을 만든 것도.

에우리아는 정말로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사랑했다.

그래서 개입파의 과격 행동에 실망했고, 끝내 결단을 내리는데.

“에우리아가 제게 말했죠. 균형파로 전향하겠다고요. 단. 하나의 부탁을 들어주면요.”

그렇게만 된다면 4:4가 5:3이 된다.

무너지는 균형.

예고된 지각변동.

이 조건은 단 하나.

부탁, 한 명의 인간을 보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인간을 제게 데려와 주세요. 대가는 원하는 걸 드리죠.”

의뢰 접수.

그렇게 며칠 뒤, 나는 한국을 떠났었다.

*   *   *

이상하다.

현재 난 눈앞에 있는 이 존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이요? 두 분은 아직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에이, 아니에요. 결혼이라니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에요.”

“몰랐어요. 너무 잘 어울려서 당연히 결혼했을 줄 알았어요. 그럼 아까 봄이란 아이는……?”

“아, 그건 사정이 있는데, 그냥 저희 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어머나! 어머나! 어쩐지, 너무 잘 어울렸어요.”

진유리와 에우리아가 서로 좋아 죽는다.

진지한 이야기 좀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에우리아 님, 입술 컬러 뭐예요?”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이렇게 됐다.

하지만 내 신경이 집중된 것은 에우리아, 그녀의 이상한 점들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위그드라실이 착하다, 순수하다…… 라고 얘기를 하긴 했다.

근데 이건 정도가 심하다. 착한 건 주관적이라 제쳐두더라도, 영혼이 저렇게 맑을 수 있는 건가?

힘이란 곧 갈등의 시작이다.

힘을 가진 존재의 영혼이 맑기란 절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에우리아의 대책 없는 ‘착함’은 분명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지만.’

그래, 기간트도 그렇고 수호령이 나사 하나 빠진 게 처음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이상한 건.

‘수호령치고는 너무 약한데?’

내가 여러모로 수호령 많이 만나 봤잖나. 위그드라실에, 기간트, 레드 드래곤.

에우리아는 이들에 비해 거의 두 수 정도는 약하다.

이 정도 격차라면 균형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다.

애초에 균형이란 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에우리아는 그 최소한의 견제도 힘들어 보였다.

각종 의문이 꼬리를 무는 사이, 저 멀리서 에우리아의 하수인이 다가온다. 하수인은 곤충과 인간을 묘하게 섞어 놓은 형태.

그냥 쉽게 이족 보행하는 장수풍뎅이로 보면 된다.

“드디어 오네요.”

“뭔가요?”

“음료예요. 특별한 손님에게만 드리는 건데요, 몸에 아주 좋은 거랍니다. 일단 마시고 이야기해요.”

에우리아가 미소 지으며 무언가를 내민다.

거대한 물방울. 정말 물방울 형태였다.

걸어 다니는 곤충에, 이제는 물방울 음료인가. 거참, 특이한 거 많이 보네.

진유리는 물방울을 손에 들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이거 어떻게 마시나요?”

“훗. 잘 보고 따라 해 보세요.”

물방울에 입술을 대고 쪼롭, 마시니 물방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다.

“쉽죠. 한번 해 보실래요?”

진유리가 입을 대고, 나도 입을 덴댄.

확실히 음료가 맞다. 입술에 액체가 들어오는 순간 상큼한 향이 확 느껴졌다.

“우와~! 맛있어요!”

“그쵸?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톡톡 튀는 건 뭐예요? 버블티 같아요.”

“아, 그거. 에지노프라는 누에알이에요. 마력 회복에 특효약이죠.”

푸훕-!!

웃고 있던 진유리가 경기를 일으키며 뿜어 대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에우리아는 ‘쿡쿡’ 장난스럽게 웃고는 이쪽을 본다.

그러고는 눈을 찡긋하며 하는 소리가.

“남자한테도 좋아요.”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이놈의 수호령들은 정상이 없다니까.

잠시 소란이 있은 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이집트에 대해 이야기했나요.”

“그건 했고. 아프리카 연합의 결속이 약해지고 있다고 했어.”

“중동계와 아프리카계가 갈라지고 있다고도 말했고요.”

“어쩜, 슬픈 이야기 중이었네요.”

에우리아의 표정에서 잠깐 씁쓸함이 스쳐 가더니, 입을 열었다.

“언제나 종교가 문제였어요.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과 샤머니즘이 주류인 아프리카는 항상 부딪혔죠. 저는 서로 믿음이 다를 뿐이라며 둘을 화해시켰지만, 그때뿐이었어요.”

“길고 긴 시간,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죠. 저도 조금 지쳤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말리기에 서로 더 싸우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손을 놔 봤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의 실수였어요. 제가 힘들더라도 그들을 놓으면 안 됐어요. 이제는…… 하, 정말 저도 손을 쓰기 힘들 만큼 골이 깊어진 상태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만.

사실 들어 볼 필요도 없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전쟁이 있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종교’가 개입된 전쟁이다.

극단적으로 제삼자 입장에서는 ‘대체 저 둘이 왜 싸우는 거야?’ ‘별것도 아닌데 그냥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게 곧 신앙이며 믿음이다.

아무런 가치 없는 땅이 ‘성지’로 탈바꿈되고, 이 성지를 차지하기 위해 몇백 년간 피가 마르지 않는 게 이 종교란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현재 아프리카 연합은 연합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상태예요. 아카데미마저 아프리카계와 중동계가 분리해서 쓰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어떡해…… 많이 힘드셨겠다…….”

“힘든 건 둘과는 관계없는 일반인들이죠. 오히려 저는 벌을 받아야 해요. 잠시 나태해져서, 둘의 싸움을 외면했으니까요.”

난 여전히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일단은 침묵하고 물었다.

“그게 균형파로 전향하는 이유야?”

에우리아가 다시 쓰게 웃는다.

“일이 이렇게 돼 버리니까 위그드라실의 말이 생각나는 거 있죠. 어차피 이 땅은 인간들이 사는 곳이란 말이요.”

갈등이 생겨 피를 흘린다면 그건 마땅한 자연의 순리고 조화다.

“제가 제 욕심에 사사건건 간섭해서 일이 이렇게 악화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위그드라실의 말처럼 한번 손을 놓고 세계의 뒤에서 관조해 보려고요.”

“음…….”

나는 안타까워하는 에우리아의 눈을 뚫어지게 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

“……네에?”

“너 지금 거짓말하고 있다고.”

“그게 무슨…….”

그때였다.

내가 입을 막 열려는 그 순간,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고개를 돌리자.

쿠우웅-!!

저 멀리, 숲이 함몰됐다.

“……봄이!”

“……헤나!”

나도 모르게 난 소리. 에우리아도 그런가 보다.

우리는 약속처럼 서로를 보고는 함몰된 숲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먼지 구덩이 속에서 내가 마주한 건.

날개를 각성한 봄이와.

“아아! 머리! 놔! 안 놔아-!”

거미 다리에, 전갈의 꼬리까지 신체 위로 각종 곤충의 신체들을 불러낸 봄이 또래의 아이.

“네가 먼저 놔!”

두 아이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너어어!!”

“주거써!”

……이게 무슨 일이래.

*   *   *

박봄은 생각했다.

‘말도 안 돼!’

봄이하고 이렇게 싸울 수 있는 아이가 있다고?

현재 봄이는 ‘날개’까지 각성된 상태다. 그것도 모자라 혈족까지 끌어내 쓰고 있는 상태다.

웬만한 성인 초인조차도 이길 무력이다.

그런데, 나를 막아?

웃기게도 이런 생각은 헤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리 없어!’

내 꼬리를 막았다구? 그것도 내 또래 애가?

헤나의 등 뒤에 돋아난 거미 다리는 하나하나가 마나 덩어리다. 집게발은 철근도 종잇장처럼 찢으며, 벌의 꼬리는 마나를 분해하는 특성까지 있는 무기였다.

사실상 인간 흉기인 그녀.

그런데 봄이는 이 모든 걸 막아 냈다. 심지어 집게발은 맨손으로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너어!”

“해보자는 거지!”

박봄이 날렵하게 일어서 다리를 뻗는다.

혈족 ‘악묘’의 힘을 빌어 날린 발차기. 검사의 발도처럼 빛살이 되어 날아갔다.

이에 헤나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쇄도해 이마를 갖다 댔다.

‘풍뎅이의 껍질’이 돋아난 이마와 혈족 ‘악묘’의 힘을 실린 킥이 충돌!

까앙-!!

마치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마나가 진동했다.

“악!”

“끅!”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튕겨 나가는 봄이와 헤나.

하지만 둘은 몇 바퀴 바닥에 구르더니 벌떡 일어나 서로를 노려봤다.

“제법인데…….”

“너도야.”

둘이 서로를 보며 씨익 웃더니, 박봄의 눈이 짐승의 그것처럼 세로로 찢어진다.

헤나의 눈이 곤충의 그것처럼 균열이 일어난다.

박봄의 날개가 몸집을 키우고.

헤나의 몸 곳곳에서도 곤충의 신체들이 튀어나온다.

“얼굴은 때리지 말자. 아빠 걱정해.”

“합의. 나도 아줌마 걱정하는 거 싫어.”

“3초 세면 싸우는 거야.”

“좋아.”

1.

두 아이가 일제히 자세를 낮춘다.

2.

주먹을 서로에게 겨눴고.

3.

땅을 박찼다.

두 아이의 주먹이 충돌한다.

흙바닥이 폭발한다.

흐릿한 잔상과 함께 사라지고, 이내 허공에서 발을 차는 두 아이.

숲이 분쇄된다.

용호상박.

막상막하.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승부가 절정에 이르렀고, 둘은 가진 걸 다 쏟아 내기로 한다.

박봄이 나무를 밟으며 기수식을 취한다.

박봄의 손에 들린 건, 나뭇가지.

그 순간.

박봄의 머리칼이 하얗게 변했다. 입술 밖으로 뻗어 나온 송곳니. 검호로 각성한 것이다.

헤나도 역시나다.

목 아래에 있는 신체가 전부 껍질로 뒤덮이고, 관절 사이로 나온 초록빛 진액이 결합, 한 자루의 창으로 완성된다.

“나 몰라!”

“나도 몰라!”

둘은 이를 악물고는 가진 것을 전력으로 토해 낸다.

검호류 조화

세계수의 뿌리

테라포밍 궁극체

‘뿌리’와 ‘뿔’이 충돌했다.

꽈아아아앙-!!

충격을 버티지 못한 숲이 허물어진다. 바닥은 이미 엉망진창. 마치 짐승이 할퀴고 간 상처처럼 긴 크레이터가 남겨지고,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때쯤 화들짝 놀란 박기혁과 진유리, 에우리아가 현장으로 오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두 아이를 본 것이다.

“아아! 머리! 놔! 안 놔아-!”

“네가 먼저 놔!”

“너어어!!”

“주거써!”

그리고 박기혁은 알았다.

이제껏 에우리아를 보고 느낀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너, 쟤랑 무슨 관계야.”

“……!!”

헤나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그것은 에우리아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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