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68화 (168/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68화>

리야드 시내.

부의 도시답게, 기라성처럼 솟은 마천루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타워가 있었다.

그 이름 ‘셰이드 알 킹덤 타워.’

이 땅의 지도자, 셰이드 왕가를 상징하는 타워였다.

“오늘도 날씨가 좋군.”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국왕 칼리파는 킹덤 타워를 찾는다.

이곳의 정상에서 보는 전경은 꽤 특별하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구름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옆을 스쳐 가고, 태양은 여느 때처럼 찬란하게 빛나면서 ‘또 왔냐며.’ 그를 향해 인사한다.

‘오늘도 안녕하신가.’

칼리파는 이곳에서 태양을 마주할 때면 항상 생각한다.

왕이란 무엇인가.

왕이 필요한 것일까.

태양이야말로 이 땅의 왕이 아닐까.

세상은 발전해 가고 인간의 지성은 풍부해진다.

이제 인간은 저마다 주관을 가졌으며 추구하는 바가 분명해졌다.

각자의 신념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걸 같은 인간인 자신이 ‘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꺾어도 되는가.

대체 무슨 권리로.

어렸을 적 칼리파는 ‘왕’의 존재 의의에 진심으로 의문을 가졌고, 이는 현재의 칼리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행복왕

현재 칼리파를 부르는 말이다.

늘 웃고 다녀서 붙은 별명인데,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는 무능함을 비꼬는 별명이었다.

의도야 어쨌든 칼리파는 이 별명을 좋아한다.

“평화롭도다.”

아래로 시선을 돌린다.

한눈에 보이는 리야드의 전경.

깨끗한 도시, 잘 정돈된 도로, 저기 지나가고 있는 나의 국민들은 웃고 있으려나.

도시에 평화가 너울너울 흘렀다.

봐라.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해도 세상은 이렇듯 평화롭잖나?

칼리파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깃든다.

“그렇지 않나?”

“나쁘지 않지…….”

왕의 물음에 거구의 남자가 그의 옆에 나란히 선다.

“능력 없는 왕이 사사건건 참견하면 그것만큼 고욕이 없으니까.”

“허허허. 맞도다, 맞아. 자네 말이 맞아.”

그렇다.

남자의 정체는 박기혁.

대체 어째서 왕과 박기혁이 한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둘의 첫 만남은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

박봄이 습격받았던 날, 현장에 있던 삼합회를 단숨에 제압, 지옥이 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고 있던 그때.

누군가 찾아온다.

“……너도 한패?”

“박기혁 님…… 전하가 찾으십니다.”

국왕 칼리파였다.

박기혁이 국왕과 처음 대면한 자리. 칼리파는 국왕임에도 불구하고 초면에 허리를 굽혔다.

“딸이 불미스러운 일에 휩쓸린 것에 대해, 가문의 웃어른으로서 이렇게 사과하네.”

“사과라…… 하나 묻자. 너, 알면서도 방관한 거냐?”

“짐의 명예를 걸고 말하지. 절대 아니네.”

“그럼 네가 연관돼 있어?”

“그 또한 절대 아니네.”

“그럼 네가 왜 나한테 사과해?”

“가문의 웃어른으로서…….”

“잠깐, 괜히 말 돌리지 마라. 나 지금 화나 미치겠거든. 그러니까 본론만. 간단히. 이해했어?”

“알겠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짐은 이번 왕위 계승전을 지켜보고 있었다네. 이를 이용해 가문을 정리할 생각으로…….”

가문을 정리한다.

한 단어로.

숙청(肅淸).

사람들은 칼리파를 그저 사람 좋은 ‘행복왕’ 정도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는 절대 바보가 아니다. 단지 나서지 않는 거였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서는 것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용의주도한 쪽일 것이다.

“고인물은 썩는다. 뭐, 이딴 거야?”

“아닐세. 이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짐이 그런 말을 거론하는 것은 기만 아니겠나. 그저 짐의 동생이나, 짐의 작은아이보다 1왕자 무함마드의 왕제가 탁월하다 본 걸세.”

“무함마드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동생하고 아들을 없앤다? 듣기보다 냉철한데?”

“동양에 이런 말이 있다더군. 필부에게는 필부의 도가 있고, 왕에게는 왕의 도가 있다고. 왕좌에 앉은 이상, 짐은 왕일세. 셰이드 칼리파가 아니라. 자네의 국가에도 이런 역사는 많지 않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숙청한다.

칼리파는 자신의 다음 대 왕을 무함마드로 이미 정했고, 은밀하게 자식의 앞길을 닦고 있었던 거다.

“앞뒤가 안 맞는데? 무함마드 걔, 대리인 다 잃어버렸잖아. 근데 뭘 닦아 줘.”

“반대로 보면 이제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무함마드의 혐의는 없는 거 아닌가.”

“……너 이 자식…… 다 처리할 셈이었구나.”

“모든 게 왕실과 이 나라를 위한 일이네.”

칼리파는 일찌감치 무함마드를 뒤로 젖혀 두고, 살만파와 대공파 간의 양패구상으로 시나리오를 짠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의혹도.

한 점의 더러움도 없는 왕좌.

이대로라면 무함마드에게는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왕좌에 올릴 수 있다.

“다만 짐의 실책은, 4왕비의 욕심이 도를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걸세. 아무리 권력에 취했어도 저 족보도 없는 중공 놈들에게 영혼을 팔 줄이야. 쯧.”

칼리파는 사우디 왕가의 일에, 전혀 무관한 우리 가족이 말려든 게 상당히 미안한 눈치였다.

물론 미안해해야지. 책임도 져야 하고.

“삼합회는 몰랐다?”

“아예 모르지는 않았네. 그저 거래 정도인 줄 알았지. 이권을 내줄 줄은 몰랐네.”

“……좋아, 이해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너희 싸움에 우리 딸내미가 휩쓸렸어. 나는 보는 것처럼 몹시 화가 났고, 참을 생각이 전혀 없다.”

어쩔 건가? 막을 건가?

박기혁의 물음에 왕은 늘 그렇듯 미소 지으며 답했다.

“전혀. 난 막을 생각 없네. 본래라면 책임을 진 자로서 내가 나서야 하겠지만, 자네는 그럴 생각이 없겠지?”

“물론.”

“그렇다면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주인 된 자로서, 정식으로 의뢰하겠네. 명명백백하게, 관련된 모두를 징치해 주시게. 대가도 확실히 지불하겠네.”

박기혁이 마음 놓고 깽판을 친 데에는 이런 왕의 약속이 뒷받침돼 있었던 것이다.

……

‘맹탕은 아닌 줄 알았지만.’

박기혁은 곁눈질로 왕을 봤다.

리야드의 전경을 보며 ‘허허허.’ 미소 짓고 있는 왕이 보인다. 행복왕이라는 별명대로 정말 근심 걱정 하나 없는 속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막을 아는 박기혁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뭐? 행복왕?

웃기고 있네.

자신이 날뛸 동안 무함마드의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해 흔적도 없이 지운 사람이 바로 이 행복왕이란 작자다.

“역시 사람은 함부로 봐서는 안 된다니까.”

“허허허. 짐을 말하는 건가?”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어.”

“그 말도 맞구만. 짐이 어리석었어. 사죄하겠네.”

왕임에도 사죄란 말을 입버릇처럼 담는다. 제국 시절 온갖 귀족들을 봐 왔던 박기혁 입장에서, 이 남자는 제법 돌연변이였다.

“너도 알겠지만, 4왕비랑 대공도 이 일에 관여돼 있어.”

“알고 있으이. 직접 벌을 내리고 싶은가?”

웃으면서 이쪽을 올려다보는 칼리파.

박기혁은 웃고 있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됐어. 나보다 그쪽이 더 철저할 거 같네.”

“흘흘. 걱정 말게,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

“계산은 어머니랑 하고, 난 간다.”

“벌써 가나? 저녁이라도 함께하는 게 어떠한가.”

“사양할게. 저녁은 되도록 딸내미랑 같이 먹기로 되어 있어서.”

“부럽구만. 나도 어서 손녀를 보고 싶으이.”

고생했네.

한마디를 덧붙이고는 다시 리야드 전경을 내려다보는 칼리파.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Reigns but does not govern

칼리파는 군림하는 왕이었다.

*   *   *

칼리파의 말대로였다.

왕위 계승전은 유명무실해졌다.

싸울 상대들이 전부 백기를 올렸는데 싸움이란 게 성립할 수 없지.

그 덕에 뻘쭘하게 된 것은 준우였다.

처가댁에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어 식단 조절까지 하며 필사적으로 수련에 임했는데, 정작 결전의 날에 그의 앞에 있는 것은 공기뿐.

“빌어먹을…….”

“저기 준우, 그냥 들어와요.”

“맞아. 좋은 게 좋은 거잖아.”

“푸하하!! 쟤 표정 좀 봐! 푸헬헬헬.”

참고로 웃은 건 나다.

그러게 왜 오바야. 준우 정도 실력이면 적당히 해도 웬만한 실력자는 씹어 먹을 거다.

그렇게 왕위 계승전이 허무하게 마무리되며, 무함마드가 왕세자의 자리에 올랐다. 길어야 내년이면 왕위를 계승받을 거라나 뭐라나.

대공과 4왕비가 사라진 것은 이때쯤일 거다.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뉴스. 대공이 셰이드 가문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다 검거됐다는 소식과, 4왕비가 정신 질환으로 요양을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이후로도 둘의 스캔들이 뉴스에 쉴 새 없이 떠오른다.

이게 공개 처형이 아니고 또 뭔가.

그래도 자신의 동생과 아내인데 살아생전 명예까지 난도질하다니.

“……독하네, 독해.”

칼리파 그 양반, 맹탕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맹독 같은 인간이었다.

다만 약간 불편한 점은 칼리파 이 녀석이, 무함마드에게 뭐라고 했나 보다.

어느 날부터인가 괜히 불편하게 하더라.

“감사합니다.”

“누구? 나한테 한 말이야?”

“네.”

“나한테 왜 감사해.”

“그냥,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됐어. 나한테 잘하지 말고, 메리한테나 잘해. 준우도 잘 봐주고.”

“걱정 마십시오. 이제 준우도 저의 형제입니다.”

나보고 셰이드 가문의 손님이라나?

참나, 이상하게도 엮네.

불편해도 어쩌겠나. 메리의 오빠인 것을. 준우한테는 형님이려나. 오며 가며 얼굴 볼 사이이니 손님이란 말도 아예 틀린 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무함마드랑 오래 볼 것 같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바로 이 꼬맹이.

셰이드 이스마일.

성운을 품은 아이였다.

처음에는 봄이의 일로 미안했던지, 우리 눈치만 보며 근처를 알짱거리더라.

그래서 내가 괜한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했지.

애초에 우리 봄이를 노린 습격이다. 따지고 보면 이스마일은 피해자란 뜻이다.

“어른의 사정에 너희가 눈치 볼 필요 없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렇게 다시 전처럼 봄이와 이스마일은 달라붙어 떡볶이를 먹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짝을 뜯어내는 나날이 지난다.

그리고 문제의 발언이 나오는데.

“……저기, 아저씨. 저 검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그…… 혼자 해 보려는데, 잘 못하겠어요.”

발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후에 있을 행동이 문제가 된다.

이 모자란 녀석……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마구잡이.

“엘, 진짜 못한다. 그치, 아빠.”

“그러네.”

그렇다.

이스마일은 지독한 몸치였던 거다.

하하하…… 내가 말해도 웃기는데, 실제로 그렇다. 이 녀석만큼 신체적 재능이 바닥인 놈도 드물었다.

그런데, 반대로 ‘성운’의 재능은 기대 이상…… 아니, 상식을 초월했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삼합회를 정리하느라 못 본 며칠 만에 마나를 깨우치고 얼핏 ‘변화’의 묘를 보여 줬으니까,

“이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

“아빠, 엘부터 멈춰 줘. 봄이, 부끄러워서 못 보겠어.”

“그러게…… 봄이가 멈춰 주라.”

“엘! 엘 그만해!”

“헥, 헥, 헥.”

“전에 말했잖아. 칼춤 그렇게 추는 거 아니라니까아!”

솔직히 영감이 하도 ‘검왕, 검왕’ 노래를 불러서 내 손으로 검왕을 만들 수 있을까 기대도 했는데, 이건 검왕이 문제가 아니라 저 대책 없는 몸뚱이부터 교정하는 게 먼저였다.

“자, 받아.”

“이건…….”

“명상책이다. 거기에 적힌 대로 명상해 봐.”

“중국의 무공심법 같은 건가요?”

“그딴 싸구려랑 비교하지 마라. 그거 잘 익혀서 한국에 들러 봐. 그때 한번 다시 보자.”

“같이 갈 수 있어요!”

“안 돼. 나 봄이랑 여행 갈 거거든.”

“저도 여행…….”

“쓰읍! 어딜!”

“네에…….”

“어쨌든 고거 열심히 익혀서 한 반년 뒤에 한국 와 봐. 그때 네가 날 놀라게 하면 네 스승, 내가 해 준다.”

“꼭 놀라게 해 드릴게요.”

“그래, 기대하마. 엘.”

이스마일의 애칭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렇게, 사우디에서의 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   *   *

공항.

메리와 진유리가 포옹한다.

“잘 가요, 유리.”

“너도 조심하구. 훌쩍.”

“걱정 마세요. 몸 하나는 튼튼하잖아요.”

“그래두우, 몸조심해야 해. 아가도 있잖아.”

“유리도 ‘노력’해 봐요. 파이팅!”

“그렇지, ‘노력’해야지.”

메리가 아이를 가지고선 부쩍 친해진 두 사람이다. 근데 왜 노력이라고 말하며 나를 보는지 모르겠다.

그 옆으로는 봄이와 엘이 양손을 잡고 흔들고 있다.

“정말 한국 오는 거야?”

“확정은 안 됐는데, 그럴 것 같아. 아바마마도 형님도 허락했어.”

“우와아아아!! 한국 오면 내가 친구 소개시켜 줄게. 현지라고, 너도 좋아할 거야!”

“그래.”

“햐~ 너무 좋아. 같이 떡볶이 먹을 생각하니까 벌써 신나는 것 같아. 그치?”

“그, 그래.”

엘의 몸뚱이가 지금 상태라면 한국 왔다가 여행이나 하고 돌아가야겠지만, 아마 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을까 싶다.

저 정도 성운의 재능이라면 저 몸뚱이의 재능마저 ‘변형’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되거든.

나는 봄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칼리파를 바라봤다.

“여러모로 폐를 끼치고 신세도 졌네.”

“내가 원해서 한 일이야. 그리고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허허허. 걱정 말게. 봄이도 있고, 우리 엘의 일도 있고 하니, 내 듬뿍듬뿍 챙겨 줌세. 기대하게.”

“그래, 담에 또 보자고.”

“그러세.”

왕한테 반말하는 나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는 쟤나.

둘 다 정상이 아니다.

근데, 난 정상이 아닌 게 좋더라.

그렇게 우리를 태운 전용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진유리가 외치자.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봄이가 팔을 뻗으며 고함쳤다.

“이집트으!!”

이집트.

그래, 우리는 아프리카 연합이 있는 이집트로 향한다.

그건 그렇고.

‘개자식들은 잘 받았나.’

*   *   *

삼합회 본회.

정확히 대방에게로 배달된 상자.

“이건가.”

“내, 대방님.”

누가 보냈는지, 무엇인지도 모를 물건. 본래라면 여기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 이 상자를 보내온 곳이 걸렸다.

사우디아라비아.

삼합회가 중동의 교두보로 삼았던 곳이었다.

“반 리밍은,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

“……그렇습니다.”

“죽었다고 봐야겠군.”

“…….”

부하는 침묵으로 반 리밍의 죽음에 동의한다.

대방은 ‘리샤오이한테는 딸의 죽음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생각하며 상자 앞에 섰다.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조사는 해 봤을 거 아닌가.”

“아무것도 걸리지 않습니다.”

“허…….”

그냥 상자를 줬을 리는 없고, 삼합회의 마법으로는 여기에 걸린 마법을 해제할 수 없다는 것인데.

“저주는 아닐 겁니다.”

“어떻게 아는가?”

“‘성수’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음…….”

성수라면 믿을 만하지……

그 말을 들은 대방이 거침없이 상자를 부쉈다.

콰직-!

그리고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냄새였다. 살이 썩는 냄세.

“헙!”

“…….”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신체의 일부였다.

박기혁에게 죽은…… 아니, 죽음보다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부하들의 신체 조각.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충격은 지금부터.

- 경고했을 텐데.

신체 조각들의 틈에 있던 ‘입’이 움직인 게.

- 관심 끄라고.

경고는 한 번이다.

- 너희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이대로 끝날 줄 알았는가.

- 기다려. 내가 찾아간다.

움직이던 입이 비릿하게 웃는 채로 멈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