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67화>
모든 결정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반 리밍이 생각하기에 이번 작전은 특히나 리스크가 컸다.
성공한다면야 박기혁의 명성을 업고서 단숨에 삼합회란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
가만히 있어야 하나.
움직여야 하나.
이 갈림길에서 반 리밍의 결정은 작전 강행이었다.
작전명 ‘새끼 호랑이 죽이기’가 실행됐고, 모두가 알다시피 박봄과 버찌의 활약으로 처참하게 실패한다.
“결국 실패했네…….”
실패가 충격적인 건 아니었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란 말처럼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뒤바뀔 수 있는 법이다.
오히려 반 리밍이 충격을 받은 건 다른 쪽이었다.
“……박기혁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끝났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뭐? 고양이? 슬라임? 날개? 알아듣기 쉽게……!!”
박봄.
고작 8살 아이다.
“좋아, 박봄이라는 꼬맹이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고 하자.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어! 사우디에 투입한 강시 부대 대부분을 보냈어. 근데 다치지도 않았다고? 멀쩡히 호텔로 들어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제 허리에도 못 미치는 꼬맹이 말이다.
그에 반해 이쪽은 100여 구가 넘는 철강시에 삼합회의 정예 행동대까지 보냈다.
죽이지 못했다면 불구, 아니면 최소한 몇 년은 운신도 못 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한데, 진유리의 품에 안겨 찍힌 사진.
사진 속의 박봄은 약간 우울해 보이긴 했지만 팔, 다리…… 하다못해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멀쩡했다.
습격을 받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래서야, 우리가 일을 벌였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
하다못해 병원에라도 실려 가게 만들었으면 ‘이번 일의 배후는 우리요!’라고 알릴 수야 있겠건만…… 이렇게 멀쩡하니 삼합회 입장에서도 움직이기가 우스워진 상황.
얻은 게 없다.
반면 대가는 컸다.
제 자식이 공격받아 눈이 뒤집힌 박기혁의 분노를, 이제 반 리밍은 홀로 감당해야 했다.
“후, 하는 수 없지. 조직들 전부 산개해. 당분간 어떠한 외부활동도 하지 마. 외부 출입도 최대한 자제하라고 전해.”
고백하자면, 반 리밍은 이때까지만 해도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박기혁이 세계의 강자로 떠올라도, 그는 겨우 20대 초반이다.
이성보다는 본능, 침착보다는 패기가 어울리는 나이.
“한국이라면 옵티멈의 마녀인 김연희가 이를 보조해 줬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지. 만리타국(萬里他國). 필연적으로 정보라는 게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절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이쪽이 납작 엎드린 채, 숨을 죽이면 제 풀에 꺾일 거야.”
반 리밍의 판단이었고, 그녀는 조직을 최대한 찢어서 사우디 곳곳에 숨기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이건 최악의 판단이었다.
그녀가 이 사실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시간.
4시간 만에……
“다시 한 번 말해 봐. 리야드 쪽 하부 조직이 반토막 났다고?”
조직의 밑바닥, 최전선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하부 조직 절반이 사라졌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실종.
사실상 조직의 눈과 귀가 사라진 꼴.
반 리밍은 믿기지가 않았다.
실종된 하부 조직을 살펴보면 거의 도시의 끝에서 끝인데…….
리야드가 어디 시골 촌 동네도 아니고 일국의 수도다. 여기서 저기까지 날아다녀도 4시간은 말이 안 된단 말이다.
거기에 명색이 삼합회다. 하부 조직이라고 해도 작전 지역이니만큼 철강시들이 배급된 실정이다.
즉 박기혁이란 존재가 이 거리와 물리력을 모조리 뛰어넘는다는 건데.
이건 상식선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 한 짓일 리가 없어. 상식적, 물리적으로 말이 안 돼. 아니, 여행은 그저 명분이고 애초에 우리가 목표였던 건가?”
반 리밍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재 그녀에게는 이런 고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다시 4시간 뒤.
4시간 전만 해도 남아 있던 삼합회 하부 조직 반이 전멸했다.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고? 뭐라도 건진 게 있어야지!”
다시 4시간 뒤.
몸을 숨기고 있던 행동대가 연락이 끊겼고.
“모이지 마세요! 전부 흩어지세요!”
다시 4시간 뒤.
접촉하고 있던 귀족들의 저택이 모조리 제압당한다.
“이…… 이게.”
수도인 리야드가 청소됐지만, 박기혁은 이것도 모자랐던지 지방 곳곳에 안착한 삼합회 세력까지 말끔히 청소했다.
시시각각 사라지는 부하들.
박기혁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반 리밍의 목을 옥죄여 오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삼합회란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이 지워지고 있다. 작전이고 뭐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모든 게 반 리밍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결국, 그녀는 최후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살만의 대리인으로 숨겨 두었던 삼합회의 최정예였다.
“박기혁? 박기혁이라…… 생각났다. 걔 검호잖아? 우리 형제보고 걔를 막아 달라고? 에이, 농담하지 마.”
“형아, 어쩔?”
“……약속과는 다릅니다. 저희 형제들이 계약하기를, 왕위 계승전의 대리인으로 참여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한데, 갑자기 박기혁을 막으라니요.”
금지된 마공인 ‘흡귀술’을 익힌 3형제.
3형제는 산서성 주변의 중소 문파들을 모조리 도륙하며 성장, 소림의 타격대까지 전멸시키며 무림 공적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붙여진 별호, 섬서삼귀.
반 리밍은 주저하는 섬서삼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거래를 제시했다.
“생강시 6구에, 철강시 211구. 마석은 어…… 응? 정말? 그 정도로 준다고? 나머지는 우리 가져도 되는 거지?”
“죽이는 것도 아니고 막기만 한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형아 생각은 어때?”
“조건이 좋으니 움직이오만, 이건 알고 있으시오. 우리가 온 목적은 왕위 계승전까지요. 여기서 우리가 움직이면 왕위 계승전은 참여할 수 없소.”
저 말인즉 ‘계산은 왕위 계승전까지잖아? 여기서 우리가 움직이면 추가금 붙는다?’라는 거다.
공동체라는 자각이 쥐똥만큼도 없는 발언이다. 한편으로는 돈으로 움직이는 삼합회답다고나 할까.
반 리밍은 이에 동의하고는 은밀하게 준비했다
몸을 뺄 준비를.
* * *
누구나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끄어억!!”
“우웩!”
“흐어억!!”
분명히 한 놈만 때렸는데, 비명을 지르는 건 세 명이다.
한창 쓰레기 수거 중인 내 앞에 희한하게 생긴 삼형제가 나타났다.
뭐라 했더라? 시간을 벌겠다고 하던가.
주제도 모르고 나를 막아선 놈들인데, 바로 죽이기에는 제법 재미나서 조금 구경하고 있는 중이다.
휘익-!!
멀대 같이 큰 놈이 휘파람을 불자, 셋이 동시에 달려든다. 서로 겹치지 않게 전방위로 달려드는 놈들.
구도가 기가 막히다.
눈이 머리 뒤에 달려 있지 않는 이상 무조건 사각이 생길 수밖에 없는 포메이션이다.
호흡도 훌륭.
동선도 깔끔.
소통도 완벽.
‘이 정도면 하나라고 봐도 되겠는데.’
‘하나’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모든 게 정리된다. 동시에 흥미가 팍 식어 버린다.
호기심은 채워졌다.
이제 저들의 효용 가치는 없어졌다.
발을 구른다.
쿵-!!
지면에 발이 닿는 순간.
마나의 격류가 해일처럼 내려쳤다.
“제엔장.”
“으아아아악!!”
공격을 펼치던 놈들이 마나의 격류에 밀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불쌍하게 바닥을 뒹굴며 몸을 일으킨 놈들이, 굉장히 불순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괴, 괴물.”
“……못 막아.”
“개년이, 우리를 속였어.”
개년은 아마도 반 리밍이라는 년을 말하는 것일 테지. 그년이 이번 일의 대가리라고 하더라고. 물론 본 건 아니다. 기억을 빼내면서 알게 된 이름이다.
몸을 일으키려는 녀석들.
싸움을 질질 끄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다.
앞서 말했지만, 얘들의 가치는 호기심을 해결한 순간 없어졌다.
나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한 놈의 턱을 걷어찼다.
일반 초인이라면 당장에 두개골이 부서질 위력. 근데 이 녀석들은.
“허억!”
“으아아악!!”
“끄아아아!!”
버텨 낸다. 괴로워하지만 버텨 낸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내 발 아래서 벌레처럼 꿈틀대는 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상대로네. ‘커넥션’이잖아.”
커넥션(Connection).
단어 그대로 연결한다는 의미로, 마법에서는 독립된 물질을 한데 묶는 거다.
이 쓰레기들을 예로 들면, 생명을 연결해 서로 생명력을 공유하는 것이다.
즉, 이 녀석들은 한 명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놈들.
나는 단번에 이놈들의 용도를 알아챘다.
“네놈들, 왕위 계승 전용이구나.”
“……!!”
1:1로 붙는 왕위 계승전.
쟤들이 나가면 상대는 3:1로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왕위 계승전을 위한 비장의 한 수란 말인데……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올렸다. 이런 걸 변발이라고 해야 하나? 손잡이처럼 잡기 좋았다.
우드득!
녀석의 머리카락이 두피째로 뜯겨 나왔다.
“끄아아아!!”
저 멀리 쓰러져 있는 놈들도 머리를 잡고서 괴로워한다.
내 예상보다 커넥션이 강한가 보다. 단순히 생명뿐만 아니라 감각까지 공유하는가 보네. 이 정도 커넥션은 제국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다.
“자세한 건 ‘해부’해 보지.”
내가 수도를 세워 녀석의 목을 날리려 할 때, 저쪽에서 쓰러져 있던 놈이 다급히 소리쳤다.
“박기혁! 거, 거래를 제안하겠소!”
“거래……?”
거래 같은 소리 하네.
무시하고 사지 하나를 잘라 냈다.
“끄아아악!”
잘려진 부분이 바닥으로 나뒹굴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신기해서 놀아 주니까, 맞먹으려고 드네.”
다시 반대편 부위를 잘라 내고,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나머지 부분까지 뜯어낸 다음, 뒤로 무심하게 내던져 버렸다.
허공을 한 바퀴 돈 몸뚱이가 향한 곳에는, 어보미네이션이 한창 강시를 뜯어먹고 있었다.
캬륵……?!
잽싸게 잡아채는 어보미네이션. 강아지가 간식을 받고 좋아하듯 어보미네이션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얼굴들이 일시에 헤벌쭉 웃었다.
“사, 살려 줘!!”
사지가 잘려 반항조차 못하는 몸.
그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향해 어보미네이션이 이를 박아 넣었다.
“아우야!!”
“안 돼…… 커흑!!”
먹히는 동료를 보며 비명을 지르던 쓰레기가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가슴을 본다.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온 뼈의 팔.
나의 스켈레톤이었다.
그러게 어디서 한눈을 팔아.
“손질해서 쟤한테 넘겨.”
선고가 내려졌다.
스켈레톤이 고개를 끄덕이고, 허공에 뼈의 대검들이 완성되는 순간.
집행.
파악!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럼.”
이제 마지막.
머리를 잡으러 가자.
망토가 나를 감쌌다.
* * *
독일행 비행기 안.
“죄송한데, 잠시만 지나갈게요.”
“무…… 아, 네…….”
짜증을 내려던 남자가 급히 표정을 고쳤다. 짜증을 내기에 눈앞의 여자는 너무 아름다웠고,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리를 오므렸다.
“감사해요.”
“아, 아닙니다.”
눈웃음을 짓던 여자의 눈이 서늘해진다.
그렇다. 여자의 정체는 반 리밍.
그녀는 섬서삼귀를 박기혁에게 던져 놓고선 혼자만 몰래 몸을 빼내고 있던 것이다.
‘이미 가망은 없어.’
겪어 보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다. 박기혁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냐, 내심 얕보기도 했다.
하지만 까놓고 보니, 아뿔싸!
이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괴물이었다!
거의 몇 달에 걸쳐 사우디 곳곳에 뿌리를 내린 삼합회를 하루…… 아니, 채 하루가 안 되는 시간에 뽑아냈다.
반 리밍은 아직도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우디를 취할 줄 알고 왔다면.’
일련의 모든 사건이 계획된 대응이란 거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의미. 정보의 우위가 확실한 상황에서 무력까지 밀린다면 이미 싸우기 전에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단순히 감정적인 보복이라면.’
이건 이것대로 문제다.
이 말인즉, 지금 벌어지는 참사가 박기혁, 온전히 그 혼자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란 말이니까.
일단은 불가침 영역이라는 공간을 다루는 게 확실해지고, 삼합회의 행동대 하나는 무리 없이 지울 만큼의 무력도 입증됐다.
‘전자든 후자든 박기혁과 충돌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
충돌이 아니라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삼십육계 줄행랑.
손자의 말처럼, 무릇 지혜로운 자일수록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아야 하는 법.
‘만약 ‘쓰리(Three)’랑 연락이 됐으면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을 수도 있겠지만.’
쓰리는 언제나 그랬듯 허상처럼 사라진 뒤다.
그렇다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맞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됐는데 몸을 빼는 게 쉬울 리 없잖아.’
하루 만에 사우디에 숨어 있는 삼합회를 괴멸시킨 능력자다. 대표적인 도주로인 공항을 주시하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섬서삼귀를 바쳤다.
오로지 박기혁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또한 아직도 그녀를 따르던 부하들도 모조리 버렸다. 혹시나 꼬리가 잡힐까 싶어서.
‘너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명이 살아야만 한다면 능력 있는 내가 사는 게 낫지 않겠어?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본회로 돌아가 당할 문책인데, 이건 어쩔 수 없다. 이유야 어쨌든 실패했으니까.
수단과 방법을 모두 사용해도 성공만 하면 모든 게 정상 참작되는 게 삼합회다.
대신 실패에 대한 문책만큼은 어느 조직보다 강했고, 지금 반 리밍이 저지른 실패면 목을 내놓아야 할 정도다.
하지만 이건 보통의 경우고, 여기 반 리밍은 다르다.
반 리밍의 뒤에는 아버지가 있으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삼합회의 이인자. 이런 아버지가 뒤를 봐주는데, 체면상이라도 외동딸인 자신을 모질게 처벌하지는 못할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네.
불안했던 마음이 지워지고, 마침내 반 리밍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무언가를 내민다.
“저기, 저기…… 이거 좀 드실래요.”
내밀어진 건 초코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음식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 서비스해 주기로 했다.
“어머, 감사해요. 좋아하는 건데.”
반 리밍은 매력적인 눈웃음을 흘렸고, 남자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그렇게 초코바를 잡으려 손을 내밀던 그 순간.
푹-!
“윽!”
화끈한 고통에 급히 옆을 돌아본다.
그리고 반 리밍의 눈이 화들짝 놀라는데.
“너, 너는…….”
거기에는, 이제껏 자신을 지켰던 직속 부하가 있었으니까.
“왜 날 버렸지.”
“뭐, 뭐…….”
그때.
푹!
다시 화끈한 통증이 느껴진다.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고 아래를 보니 검날이 배를 뚫고 나와 있다.
의자 뒤편에서 기괴한 각도로 꺾인 목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왜 우리를 버렸지.”
이번에는 그녀의 친위대장이었다.
무려 10년을 곁에서 지켜 줬던 사내.
푹!
다시 검이 찔러 온다.
이번에는 친위대 중 한 명이었다. 친위대장 다음으로 그녀를 곁에서 보필하던 여인.
푹!
검이 목을 뚫고 나온다.
이번에는 전령으로 쓰던 부하. 능력에 비해 충성심이 높아 곁에 놔뒀던 자였다.
“왜 나를 버렸나.”
“왜 우리를 버렸나.”
“나도 살고 싶다.”
“나도 살려 달라.”
죽어 나간 부하들이 전부 검을 박아 넣는다.
아파. 너무 아프다.
몸에 박힌 검을 빼내려 다급하게 손을 놀려 보지만 손마저 검에 뚫려 의자에 박힌다.
“살려 주세요!!”
살려 줘. 제발 누구라도 도와줘.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데.
그 순간 반 리밍은 비명을 질렀다.
왜냐하면 돌아본 얼굴은 모두, 전부 그녀가 버린 부하였으니까.
그들이 일제히 칼을 들었다.
서늘한 칼날에 반 리밍의 눈이 절망에 물든다.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애타게 빌고, 발버둥 쳐 보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사, 살려……! 커흑!”
푹푹푹푹…….
칼에 벌집이 되어 가는 반 리밍.
피부가 도륙된다.
뼈가 부서진다.
몸 안까지 드러나고, 드러난 곳에 다시 칼이 꽂히고.
폐가 찢어지며 목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살려 줘! 살려 줘!! 살려 줘!!!’
라는 바람이.
‘죽여 줘…… 제발 죽여 줘…….’
로 바뀌기까지.
반 리밍은 고통 속에서 죽여 달라 소리쳤다. 하지만 칼이 꽂히면 꽂힐수록 정신은 또렷해지고 고통은 뚜렷해졌다.
그렇게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시간.
이제 넝마가 된 반 리밍의 몸에 더 이상 칼이 박힐 곳도 없을 즈음.
“…….”
초코바를 건네주던 사내의 얼굴이 바뀐다.
백인이었던 피부가 짙어지고, 왜소했던 골격이 커지고, 갈색 빛 머리칼은 흑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모든 게 변했을 때.
박기혁은 초코바를 먹고 있었다.
“달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