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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66화 (16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66화>

터번을 쓴 암살자, 어쌔신들이 벽을 밟고 달려간다.

빈민가 출생의 아이들을 거둬 입히고 먹이고 재우며, 이름까지 친히 내려 준 얄타 가문을 지키는 수호 부대였다.

‘목표는.’

‘주인님을 위협하는 적.’

‘목숨을 바쳐 지킨다.’

모퉁이를 꺾자, 목표를 확인한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박기혁.

선두에 선 어쌔신이 박기혁과 눈을 마주친다.

“…….”

“……!”

인간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감정들이 없는 눈. 세상을 관조하는 신이 있다면 저런 눈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신과 싸우고 있는 건가.

어쌔신의 본능이 맹렬하게 경종을 울렸다.

잘못됐다.

싸우면 안 된다.

죽음의 향기가 물씬 풍겨 왔다.

하나, 인간이란 동물은 때론 신의에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이들이 그랬다.

‘주인님을 위해.’

‘얄타 가문을 위해.

각오를 다진 어쌔신들이 벼락처럼 쇄도했다.

이리저리 양쪽 벽을 오가며 목표를 향해 접근. 중력을 벗어난 것처럼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 줬다.

하지만 지금 이런 현란한 움직임이 암살자로서 맞느냐 묻는다면, 아니다.

암살자란 그림자에 숨어 사는 존재들. 이런 암살자들이 정면으로 달려들고 있다.

이건 미친 짓이다.

당연히 그 대가는.

확실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불꽃.

여지저기서 주인 잃은 팔다리가 비산한다. 그리고 이들이 바친 피가 박기혁의 시야를 가리는 순간.

콰다당!

벽이 부서진다.

오른쪽? 왼쪽?

아니, 바닥. 박기혁이 서 있는 바닥을 부수며 솟구치는 어쌔신들.

동료의 희생으로 만들어 낸 빈틈이다. 기필코 눈앞의 적을 제거해야 한다. 터번 사이로 보이는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모두 간결하게 검을 뽑는다.

1열에는 단검과 장검.

2열에는 투척용 비도.

이 검에는 한 방울에 코끼리도 죽인다는 ‘바실리스크의 독’까지 발려져 있다.

쇄액-!

번쩍이는 칼날이 사방에서 조여 온다.

마법을 사용하기에도 애매한 거리.

실로 아름다운 합격이다. 상대가 평범한 마법사라면 이 검 중 일부는 자신의 목적을 다하며 적의 몸통에 꽂힐 수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상대는 박기혁이다.

깡-!!

“……?!”

박기혁을 감싸고 있는 거인의 그림자가 일순간 물리력을 머금으니 들이닥치는 검날이 허무하게 막혔다.

부서지는 검날.

닿지 않는 독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당황한 어쌔신들의 몸이 눈에 띄게 굳는다. 기습을 실패한 어쌔신의 운명은 정해진 법.

콰아아앙!!

어쌔신들이 폭발에 휩싸였다.

……

콰아아앙-!!

얄타 성의 내부.

CCTV로 수호 부대의 죽음을 확인한 경호대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인가.

‘알라시여.’

느닷없이 찾아온 의문의 습격자.

찾아온 목적을 묻는 경비에게, 그가 뱉은 말은 간단했다.

“정확히 5분 준다.”

“여기 주인 불러와.”

이때쯤 경호 대장도 알았다.

그가 파티마 왕비의 둘째, 셰이드 메르헴의 손님으로 온 박기혁이란 것을.

박기혁이 누구인가.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히는 검호 가문의 막내 아닌가.

상대가 상대라 무시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경비 대장은 주인에게 상세히 고했다.

그런데.

“무, 무조건 막아!”

소스라치게 놀라는 얄타 가주.

가주는 뭐에 홀린 듯 가족들과 귀중품을 챙겼다. 누가 봐도 도주 전의 행동이었고, 비밀 통로로 사라지는 가주의 뒷모습을 보며 경비 대장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고.

경비 대장은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자신은 경호대장이다. 그도 수호 부대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얄타 가문의 은혜를 받고 자란 몸. 비록 가주의 실수더라도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

절대로 막아야 한다.

“시간을 벌어라! 주인님이 몸을 피할 동안만이라도!”

경비 대장은 부하를 독려하면서도 바쁘게 다리를 놀렸다.

그가 향한 곳은 성의 심처. ‘알라의 방벽’이라는 대주술진의 핵이 자리한 곳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며 핵의 중심부에 마석을 끼워 넣었다.

7레벨 게이트의 보스가 뱉은 상급 마석. 그 출력은 대규모 공장을 돌릴 정도였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주술진이 빛을 발한다.

대주술

알라의 방벽

반구형 방벽이 세워진다.

공성용 방어진인 알라의 방벽.

전시 상황에서 상대의 폭격을 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주술답게, 절대 방어라 칭할 만큼 출중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

툭툭.

박기혁이 손가락으로 알라의 방벽을 눌렀다.

찌릿-

신성력의 매콤한 전류가 손끝으로 전해 온다. 표면에 떠 있는 저 문자들이 신성 문자인가 보다.

“생각보다 괜찮네.”

감상은 끝.

박기혁의 거인이 손을 말아 쥐었다.

거대한 그림자 손으로 마나가 뭉쳐진다.

근처에 있던 마나를 모조리 흡수하는 것도 모자라, 점점 영역을 넓혀 가며 마나를 흡수하는 구체.

과도한 마나가 모여들며, 대기가 일순간 얼어붙는다.

마나 드레인(Mana Drain)현상이다.

거인의 손에서 휘몰아치는 구체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몸을 부풀리고, 어느 순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더니.

고오오오-

단숨에 중심부로 마나를 집중.

거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뿌옇던 거인의 손이 짙어지고, 그 위로 문신처럼 그려진 육망성 마법진이 드러났을 때.

거인은 주먹을 내려쳤다.

까득-!

처음은 작은 소음.

드드드드득-!

이후는 진동.

콰징- 콰징- 콰징-

균열에 이르고.

쨍그랑!

알라의 방벽이 부서졌다. 마치 허공에서 퍼진 유리 조각처럼 알갱이들이 빛에 반짝였다.

경비 대장을 비롯한 경비대는 허공에서 반짝이는 방벽의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게 된다.

건물의 천장을 부수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림자 거인.

박기혁의 거인을.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거인의 손이 세워 놨던 방어벽을 간단하게 가르더니 그 가운데로 박기혁이 유유히, 처음의 그 속도로 걸어와 경비대장 앞에 섰다.

“여기 주인 어디 있어.”

*   *   *

당연한 말이지만 난 살인귀가 아니다.

피 보면서 즐거워하는 변태도 아니고,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건 나도 썩 유쾌하지 않다.

물론 직접적인 가담자인 삼합회 쓰레기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보미네이션행이다. 걔들은 지옥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내가 곧 지옥이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과 연관 없는 놈들은 최대한 살려 두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여기까지 오는데 내 앞을 막았던 어쌔신들이나 경비대들.

걔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나를 막아선 죄밖에 없다.

얘들이 알아야 얼마나 알겠나. 이런 애들 죽여 봤자 찝찝하기만 하다. 그래서 적당히 팔이나 다리 하나씩 날리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위의 두 예시는 쉽다.

일단 확실하잖나. 가담한 놈은 유죄, 관련 없는 놈은 무죄.

“문제는 너희들인데…….”

나는 내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콧수염 아저씨들을 내려다봤다.

“우, 우리는 살만 왕자님을 지원한 것밖에 없습니다.”

“삼합회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저 4왕비님이 조력자라고 데려왔기에 숨겨 줬을 뿐입니다.”

“저희가 미쳤다고 댁의 따님을 노렸겠습니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데. 믿어 주십시오. 저희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 나라의 귀족 가문들.

공통점이라면 4왕비와 살만파를 지원한 것이다.

아, 여기서 얄타 가주는 제외다.

걔는 적극 가담자란 게 밝혀졌다. 그래서 저기 내 뒤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는 어보미네이션의 허벅지에 붙어 있는 것이고.

이밖에도 얄타 가주를 도와 우리의 동선을 가르쳐 준 뭐시기 귀족은 저기 엉덩이에 붙어 있고, 삼합회를 봄이에게 데려다준 귀족 놈도 어보미네이션의 발치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고로 여기서 내게 손이 닳도록 빌고 있는 놈들은, 저기 적극 가담자들의 머리 뚜껑을 열고 빼낸 기억을 토대로 교차 검증해서 남은 얘들이란 말이다.

“직접 관련자는 아닌데…… 그렇다고 아예 연관 없다고도 못 한다.”

시간도 없는데, 얘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내 차가운 눈빛에 잔뜩 움츠러드는 녀석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협상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내어 드리겠습니다!”

“마, 맞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희는 아주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선 귀족들이 어보미네이션에게 소화되는 모습을 봐서일까.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확실히, 어보미네이션과 한 몸이 되는 모습은 끔찍하긴 하지.

때마침 신호가 온다.

마룡기 ‘전우’로 느껴지는 울림. 스켈레톤이 또 무언가를 발견했나 보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결정해야겠다.

“웬만하면 살려 주겠는데.”

녀석들의 얼굴이 순간 희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어질 내 말에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적당히 봐주기에는 내가 너무 화났거든.”

아포칼립스가 전개되며 검은 안개가 녀석들의 주위를 감쌌다.

그리고.

모든 구멍을 통해 안개가 ‘들어’간다.

“윽!”

“커억!!”

흑마법 저주

100번째 죽음

“이제 너희는 잠들 때마다 죽음을 겪을 것이다.”

잠들 때마다 죽음을 겪고 서로 다른 100번의 죽음을 보여 주는 저주.

이 100번의 죽음 속에서 망가지지 않는다면 살 것이고 망가지면…… 그땐 뭐, 죽는 거지.

“죽이지는 않으마.”

대신 살아남아라.

너희 스스로.

웃고 있는 내 주위로 망토가 휘몰아치더니.

사라졌다.

다음 타깃을 향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   *

호텔, 스위트룸.

진유리의 품에 앉아 있는 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봄이.

진유리가 상냥하게 웃으며 봄이의 미간을 펴 줬다.

“우리 봄이, 왜 인상을 쓰고 있을까.”

“그냐앙…….”

“왜? 아직도 생각이 많아?”

“응…….”

봄이에게 이번 사건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언니, 봄이가 잘못한 거 같아.”

봄이의 말에 귤을 까고 있던 진유리가 귤을 떨어트렸다.

고민하던 게 이런 거였어?

봄이가 이번 일을 마음에 담고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심각한 고민을 품었을 줄은 몰랐던 진유리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무, 무슨 말이야. 우리 봄이가 무슨 잘못이야.”

“아빠가 화났잖아.”

“그거야 봄이가 위험했으니까.”

“그것 봐. 봄이가 위험해서 화난 거잖아.”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전부 나쁜 어른들 때문이잖아. 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아냐, 봄이는 막을 수 있었어.”

나쁜 어른들이 봄이를 때리려고 했다.

물론 봄이한테는 동생 버찌가 있었다. 포실이도 있었고, 아빠가 선물해 준 캡틴 타이거도 있고,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날개도 있었다.

솔직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냥 버찌가 시켜서 숨은 것뿐이다.

하지만 조금 후회된다.

아빠는 화났잖아.

이게 다 내가 약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봐. 아빠한테는 아무도 덤비지 않는데, 봄이만 노렸어. 봄이가 만만한 거야. 그런 거야.”

나는 언니인데.

언니인 내가 만만하게 보였다.

동생들도 만만하게 보인 거나 다름없다.

나 때문에 다 만만해졌어!

봄이는 봄이한테 실망했다.

봄이가 속상한 듯 볼을 부풀렸고, 이 말을 듣던 진유리는 생각했다.

‘어떻게 부녀 둘 다 사고회로가 저렇게 돌아가지?’

제 편할 대로 생각하는 건 박기혁이 전문인 줄 알았는데, 박봄도 싹이 보인다.

내심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 당신은 무슨 싸움을 했던 겁니까.

“안 되겠어, 언니!”

“으, 응?”

“봄이, 결심했어!”

박봄이 초롱초롱한 얼굴로 진유리를 보며 말했다.

“이제 나 강해질 거야.”

진심으로!

방년 8세, 박봄이 각성한 순간이었다.

*   *   *

한편, 박봄과 마찬가지로 각성한 이가 있었는데.

이스마일이 굳은 얼굴로 걸음을 옮긴다.

‘난 아무것도 못 했어.’

왕자면 뭐하나. 사랑받으면 뭐하나. 습격 앞에서 자신은 무기력했다.

‘처음 사귄 친구였어.’

겨우 사귄 친구였다. 그런데 보호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보호받았다.

‘지켜 주지 못했어.’

언어, 수학, 과학, 제왕학 등등.

어렸을 때부터 칭찬받던 수많은 지식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칼날 앞에서 자신은 한없이 무기력했고, 가치 없었다.

‘나를 지키는 것은 나인 것을.’

문 앞에 선 이스마일이 결의를 다지며 문고리를 잡고.

“이제 나도 지킬 거야.”

힘차게 문을 연다.

끼익-!

문을 연 이스마일의 앞에 있는 것은.

검.

한 자루의 검이었다.

검을 보고 있는 이스마일의 이마에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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