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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65화 (16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65화>

모든 일에는 ‘선’이 있다.

점과 점을 잇는 선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 말이다.

힘을 가질수록 이 선은 점점 뚜렷해진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만들어 낸 여파가 터무니없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지형을 바꿀 수 있고, 손짓 한 번으로 목숨을 거둘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되면, 확실히 보인다. 마치 사슬처럼 자신을 옥죄고 있는 선이 말이다.

이조차도 뛰어넘어, 나 정도의 절대자가 되면 이 선을 보는 것을 넘어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강자의 책임? 아니다.

바름과 틀림? 아니다.

신이 내린 사명? 아니다.

이 선은 말이야.

인간을 벗어난 내가 그나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이다.

사회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평범한 삶을 누리기 위해, 나는 기쁘게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세계라는 울타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거였다.

너희는 방금 이 선을 넘었다.

*   *   *

“…….”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내가 손을 까딱이자 눈치를 보던 쓰레기들이 행동에 나섰다.

“만방진 전개!”

검진이다 뭐다 해서 내 주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쓰레기들.

평소라면 재롱이라고 생각하며 구경했겠지만, 지금의 난 놀아 줄 기분이 아니다.

내 위로 떠 있던 거인이 주먹을 내려쳤다.

쿵-!

지면이 울컥, 먼지를 토해 냄과 동시에 육망성 마법진이 주변으로 떠오르고.

어스 퀘이크

Earthquake

지진이 일어난다.

요동치는 지축에 복면을 쓴 삼합회 단원들이 발이 멈췄고…… 이 찰나가 삼합회에게는 공포의 순간이었으며, 절대 피할 수 없는 징벌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콰직!!

무언가 눈에 잡히지 않는 속도로 그들을 스쳐 갔고.

“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약속한 것처럼 시선이 향하고.

거기에는 동료가 산 채로 먹히고 있다.

“살려ㅈ……!!”

고대 시대 어느 절대자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운다.

거부할 수 없는 섭리이자 선인 ‘시간’을 넘으면 인간은 영생을 살고, 더 나아가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으레 그렇듯 인간을 이루는 그릇, 육체에서 연구가 막혔고, 절대자는 살아 있는 타인의 신체와 영혼을 강제로 ‘이식’하는 기행을 벌인다.

그 결과 인간에 인간을 붙인 최악의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데.

흑마법 소환

어보미네이션

Abomination

어보미네이션의 몸 곳곳에서 드러난 얼굴들이 잡힌 먹이를 뜯어먹는다.

고통에 버둥대는 쓰레기.

팔이 사라지고, 다리가 사라지고, 얼굴마저 먹혀 가는데.

신체가 모두 사라질 동안 죽지 않는다. 아니,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다.

왜? 죽이는 게 아니니까.

이 모든 게 어보미네이션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었으니까.

보는 것처럼 어보미네이션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 이런 먹이가 모여야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데 왜 죽이겠나.

얼핏 보면 허무 심연충이랑 비슷하다. 대상을 죽이지 않고 영원히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것은.

하지만 허무 심연충과 어보미네이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망각(忘却).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 한다.

어보미네이션은 이 신의 축복을 앗아 간다.

허무 심연충의 경우 결국 인간임을 잊고 심연충이 된다면, 어보미네이션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고 지성이 있는 상태로 괴물로 살아가는 것이다.

즉, 저기 먹혀 왼쪽 어깨에 드러난 얼굴은…… 그 옆으로 수없이 드러난 수십 구의 얼굴 모두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확신컨대, 저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을 거고, 영원히 이어질 거다.

영원히 죽지 않으니까.

아니, 못 하니까.

끄어어억…….

컥…… 커억…….

동료의 비참한 말로를 본 쓰레기들이 이를 질끈 깨물었다. 쟤들도 아는 거다. 이제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강시들 풀어!”

관이 세워지며 강시들이 풀려난다.

백여 마리의 강시들이 일시에 사기를 뿜어내며, 유형화된 사기가 공간을 가득 채워 나갔다.

그리고 난 웃었다.

같잖아서.

시체를 먹는 어보미네이션을 보고 강시를 소환해?

강시처럼 조잡한 물건을 가지고 놀 때부터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이 쓰레기 녀석들은 흑마법을 수박 겉핥기로만 배웠다.

“진법 전개해!”

대가리로 보이는 놈의 외침에 저마다 강시들을 조작하지만.

“…….”

요지부동(搖之不動).

강시들이 꼼짝하지 않는다.

“……?!”

“뭐 해? 움직여!!”

“움…… 움직이지 않아?!”

놀랄 필요 없다. 당연한 결과니까.

내가 괜히 허무 심연충이 아닌 어보미네이션을 사용했는 줄 아나.

저들이 자랑하는 강시. 저거, 큰 틀에서 보면 시체로 만들어진 소환물이다.

반면 어보미네이션은 육신을 주식으로 하는 소환물.

한마디로 천적 관계였고, 처음부터 이 싸움은 성립되지 않았다.

어보미네이션이 가장 가까운 강시의 머리를 물어뜯는다.

콰직!

철강시의 두꺼운 피부가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어보미네이션의 ‘먹는다’라는 행위는 그냥 보여 주는 거다. 실제로는 제어권을 뺏는 것.

인간과 다르게 이성과 본능이 거세된 강시는 좋은 먹이일 뿐이다.

이때쯤, 쓰레기들 중 한 명이 외친다.

“다 말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말할 테니…….”

주절주절 자신이 아는 걸 두서없이 말하는 녀석. 두려움에 짓눌려 정신이 붕괴된 거다.

한 명이 포문을 열자, 저마다 무기를 버리고는 무릎을 꿇는다.

“아는 것을 말하겠습니다!”

“제발 그냥 죽여 주십시오!”

문득 옛날 봄이 납치 사건 때 봤던 양아치들이 생각난다. 걔들은 끝까지 살려 달라고 했는데, 얘들은 그래도 죽여 달라잖나? 꼴에 격조 있는 빌런들이다 보니 눈치가 있었다.

근데 어쩌지?

“난 너희들에게 궁금한 게 없어.”

안타깝게도 이렇다.

광신도처럼 머리에 뭐가 달린 것도 아니고, 어차피 기억 뽑아내면 그뿐인데, 내가 왜 얘들을 살려 두나?

아닌 말로, 삼합회라는 것도 이전에 만난 무리에서 얻은 정보다.

걔들은 다 ‘먹어’놓고, 얘들만 죽이면 저기 어보미네이션의 일부가 돼서 구슬프게 울고 있는 쟤들은 얼마나 억울한가.

“그냥, 잔말 말고 먹혀. 귀찮게 발버둥 치지 말고.”

난 분명히 말했다.

지금부터 감당해야 할 것은 오롯이 너희가 만든 결과이니,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꿈틀대던 어보미네이션이 몸집을 부풀린다.

인간의 형체를 버리고 거대한 살덩이가 돼 버린 어보미네이션.

살덩이가 도망치는 쓰레기들을 흡수한다.

하나, 하나, 천천히.

“여기는 정리됐고.”

딱.

손가락을 튕기자.

마룡기 전우가 휘날리며 내 몸을 감싼다.

시야가 점멸하며 공간을 뛰어넘고, 스켈레톤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곳은 폐공장.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삼합회.

재활용 불가의 쓰레기들이었다.

“너희는 왜 꼭 이런 어두침침한 데만 돌아다니냐.”

먼저 선을 넘은 것은 너희다.

그러니 선을 넘은 나를 감당하는 것도 너희다.

너희는 내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쿵-!

문이 닫혔다.

*   *   *

“살만!”

“놔, 놔라.”

“살만!!”

“커헉!”

무함마드는 거칠게 살만의 멱살을 움켜졌다. 머리 하나 작은 살만이 무함마드에게 매달려 버둥거렸다.

“동생아, 나는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유언비어로 자신을 욕했을 때도, 대리인을 암살했을 때도.

무함마드는 단 한 번도 살만을 개인적으로 찾지 않았다. 이 또한 왕위 계승전의 일부이고, 강한 왕이 되기 위한 시련이라 생각하며 감내했었다.

그러나, 동생은 선을 넘었다.

넘어도 아득히 넘었다.

“넌 왕위 계승과는 전혀 연관 없는 이스마일을 죽이려 했다. 이스마일은 네게도 동생인 아이다.”

“난 이스마일을 죽일 생각이 없었…… 커헉!!”

“입 벌리지 마라. 잔말 말고 들어!”

왕이 아닌 그 누구도 같은 왕족을 건들 수는 없다.

왕족을 벌할 수 있는 것은 왕뿐이다.

더군다나 전하가 이스마일을 얼마나 총애하던가? 이건 왕의 권위를 욕보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함마드도 살만이 이스마일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살만이 탐욕스럽고 모자라지만 머리가 없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쪽이 더 머리가 아프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박기혁을 건드렸나.”

“그야…… 너의 대리인이었으니까…….”

“그의 딸은 왜?”

“그건 모른다. 나는 대리인만.”

“하아…….”

이제는 숨기지 않고 술술 말하는 살만.

무함마드는 숨이 턱턱 막힌다. 멱살을 잡을 기운조차 빠져 스르륵, 풀고는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박기혁이 검호라는 거 모르나?”

“……검호가 무엇인가.”

“코리아 몰라? 대외 정세를 공부하지 않았나?”

“그…… 그건 모두 어머니가…….”

미치겠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이 모자란 놈에게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 줘야 이 상황을 이해하겠나. 이 정도로 모자란 놈과 왕위를 다퉜다는 게 수치스러워졌다.

한편으로는 이놈을 중심으로 세력을 만든 4왕비의 능력에 깊은 감탄을 보내는 무함마드였다.

“긴말 않겠다. 너는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들었다.”

검호다.

박기혁이다.

박기혁 본인을 건드렸어도 일은 수습하기 힘든데, 박기혁이 심장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딸을 건드렸다.

한낱 미물도 새끼가 위험에 빠지면 온몸을 던지는데, 박기혁은 오죽할까.

“지금 리야드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박봄 습격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이 박기혁에게 잡혀갔다. 그들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한 일.

한 나라의 왕족으로서 타국민이 아국의 일에 간섭하는 건 굉장히 불쾌한 일이다.

크게 보면 왕의 권위가 손상되는 일.

응당 막아야 될 일이지만, 무함마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왜냐하면…… 무서웠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변명도 하지 마라. 도움도 주지 마라.

이번 일은 내 식대로 해결한다.

박봄을 안고 돌아온 박기혁은 그 길로 호텔로 향했고, 혼자서 조직을 소탕해 나갔다.

“바로 어제 옵티멈에서 공문이 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공문이었다.”

“아…… 아니.”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것이냐. 너의 어리석은 행동 한 번에 아국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고, 전하의 권위까지 손상된 것이다.”

심각한 분위기에 살만도 그제야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변명을 생각해 보는데.

“그, 그래. 나, 나 살만은 정당한 왕위 계승자로서 대리인을 제거……!”

“제거? 제거라니! 언제부터 대리인을 제거하는 게 정당한 왕위 계승자의 권한이었냐!”

“아, 아니었어?”

“하아…….”

어미인 4왕비가 해도 된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단다. 해도 되는 줄 알았다는 투로 말한다.

더욱 문제는, 변명도 제대로 된 변명이 아니란 거다.

“하아…… 그분은 대리인이 아니란 말이다. 살만, 멍청한 놈아.”

“헤에…….”

“하하, 그리고 박기혁이 나의 대리인이었다면 습격 사건도 어떻게든 무마는 되겠지. 하나 그의 딸을 습격한 것은 어떠한 말로도 변명되지 않는다.”

그때 수행원이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왕위 계승자가 2명이나 있는 방이니만큼 허락 없이 들어선 것은 중죄에 속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얄타 가문이 습격받았습니다.”

“……!!”

얄타 가문이라면 대대로 왕가의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 처리하던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이다.

그런데, 그런 얄타 가문이 습격받았다고?

“왜? 무슨 일로?”

“그게…….”

차갑게 식은 수행원의 눈이 살만을 향했다.

“……괴조직을 숨겨 주고 있었답니다.”

“아아…….”

그랬지.

얄타 가문은 4왕비의 외가였다.

“헤, 헤에……?”

무함마드는 진심으로 이 모자란 동생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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