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64화>
요즘 초인 관련 커뮤니티의 화두는 이거다.
- 셀루티스가 사라진 자리를 누가 차지할까?
셀루티스가 일본 사태로 사실상 괴멸당했다.
공석이 된 자리. 과연 어떤 빌런 집단이 이 자리에 오를까?
물론 이런 말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 형님들, 나 궁금해서 그러는데 셀루티스가 사라졌잖아. 근데, 왜 3대 빌런이야. 2대 빌런 아님?
└ 2대는 촌스러우니까. TA하고 진화단, 더블 빌런? 쌍두파?
└ 겁나 촌스럽……
‘3-1=2’인 것처럼 3대 빌런에서 셀루티스가 사라졌으니 2대 빌런으로 부르는 게 맞지 않나?
맞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이론적으로만 돌아가나?
└ ㅋㅋㅋㅋ 캬아- 아직도 꿈나라에 사는 인간이 있네.
└ 안 봐도 훤하다. 라이선스 잉크도 안 마른 신입이잖아.
└ ^^ 순수해서 좋네요. 그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길 바라요. 나중에는 그런 생각도 못 한답니다.ㅍㅠ
└ 무슨 말 ;; 하나도 이해 못 하겠음;;
└ ㅎㅎ 잘 들어 후배님. 그쪽 애들은 해충이야. 항상 박멸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그런 거.
TA, 셀루티스, 진화단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런 집단들이 없었을 것 같나.
빌런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해 왔다.
실제로 셀루티스가 등장하기 전에는 유럽의 광신도 ‘타락 기사단’이 있었고, TA가 3대 빌런으로 대두되기 전에는 중국발 전투광 집단인 ‘생사비무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빌런은 없어지지 않는다.
빌런이 없어진 자리에는 또 다른 빌런이 채워질 뿐.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었다.
때문에 앞서 본 아직 세태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셀루티스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빌런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곳이 있었으니.
세계적인 인프라와 방대한 커뮤니티를 소유한 집단.
특출한 무력은 없지만 강시와 독이라는 전문 분야가 있고, 일 처리 하나만큼은 잔인할 정도로 확실해,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하는 수전노 집단.
삼합회
三合會
중국발 쓰레기의 출현이었다.
* * *
“방금 박기혁이 진유리와 함께 킹덤 스퀘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가고, 홀로 남은 여자가 클래식의 볼륨을 올리며 의자 등받이에 체중을 실었다.
여자의 이름은 반 리밍.
삼합회 중동 지역 대(大)행수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본회에서 반 리밍에게 원하는 바는 명확하다.
살만을 왕으로 만들어라. 그리하여 ‘아프리카 연합’에 연결 고리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삼합회의 등장을 요란하게 알려라.
사실 일은 첫 번째가 다다.
일단 살만을 왕으로 앉히면 이것을 빌미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김을 넣을 수 있다. 또한 적당한 시기에 ‘살만을 왕으로 만든 것은 삼합회의 힘이다.’라고 소문내면 끝.
완벽한 일 처리였다.
그런데.
“박기혁이라, 박기혁이라…….”
느닷없이 박기혁이 나타났다.
박기혁이라고 하면 글로벌적으로 가장 유명한 루키다. 아니, 들리는 소문이 맞다면 루키라는 표현도 잘못됐다.
진화단에 의해 벌어진 집단 납치극에서 진화단 한국 지부를 홀로 괴멸시켰다는 소문에다, 옵티멈의 영광을 1세대는 더 지속시킬 인공 정령석을 개발한 것이 그라는 소문.
몇 년 전 한국에서 벌어진 ‘레드 게이트’ 사태가 사실은 ‘셀루티스’의 폭주였고, 이 폭주를 선두에서 막아선 사람이 그라는 소문.
그리고.
“저희랑도 엮였네요.”
삼합회의 행동대장, 반 리밍도 안면이 있는 왕차이가 그의 손에 죽었다는 것과, 이것도 모자라 미국에서 재물을 모으던 삼합회 지부가 깡그리 털렸다는 것도.
이걸 한 사람이 몇 년 사이에 해냈다고?
본회에서 보내 준 정보를 보면 과연 이게 인간이 맞나, 싶은 그녀였다.
“이 정보의 절반만 맞다고 해도 발을 빼는 게 현명해요.”
애초에 삼합회는 무력으로 유명한 집단이 아니다. 괜히 그녀가 대리인 암살에 외부인을 동원한 게 아니다.
박기혁이랑 정면 대결? 이건 생각이라는 걸 하는 머리가 있다면 절대 피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마냥 피하기에는 이쪽 사정도 여의치 않죠.”
지금 이 순간에도 반 리밍의 폰은 미친 듯이 울려 댔다. 살만 왕자의 독촉이었다. 새로운 대리인으로 보이는 박기혁과 진유리를 제거하라는 문자였다.
하나, 진짜 중요한 건 이 살만이란 주제도 모르는 왕자 새끼가 아니다.
반 리밍이 이 일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바로 악명(惡名).
말 그대로 악명이 필요해서다.
결국 이 일의 종착역은 삼합회의 화려한 등장이다. 단숨에 셀루티스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그들의 시장을 차지할 확고부동한 악명.
삼합회에게는 이게 필요했고,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 계승전에 참여한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선택지는 두 개.
치느냐, 빠지느냐.
이미 카드는 준비됐고, 반 리밍의 선택만이 남은 상황.
그때였다.
이런 그녀의 고민을 덜어 줄 전언이 도착한 게.
“대행수님, 파이살 대공파에서 전언이 도착했습니다.”
눈감아 주겠다.
그렇다면야 고민할 필요도 없죠.
박기혁을 죽이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기혁의 아킬레스건을 끊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단 말이지.
겸사겸사 싹도 미리 자르고. 나중에는 자를 생각조차 못 하게 될 테니.
반 리밍이 말했다.
“움직이세요.”
작전명 ‘새끼 호랑이 죽이기’
시작.
콰아아앙-!!
* * *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차량이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그때, 추락하는 차량의 천장을 부수며 튀어나오는 사람들.
검은 정장을 입은 왕실 수행원 둘과, 이스마일을 안고 몸을 날리는 박봄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그들.
왕실 수행원 중 한 명이 휘파람을 불자, 산들바람이 모두를 휘감으며 안전하게 땅으로 안착시켰다.
“왕자님, 아기씨.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저희 뒤로.”
“무, 무슨…….”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이스마일.
이게 보통의 반응이라면, 박봄은 달랐다.
“아저씨, 도망 못 가.”
“……!”
박봄이 단언하는 순간.
콰르르르르릉-!!
다리의 양쪽이 무너지듯 부서졌다. 천장도 무너져 내렸고, 차량들이 낙석처럼 굴러떨어졌다.
비명들이 들려온다.
비명의 주인은 모른다. 다리를 지나가는 일반 시민일 수도, 아니면 함께 오던 경호원일 수도 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미증유의 마나가 주위를 덮쳐 온다. 교란계 마법진이었다. 이제 밖에서는 이쪽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졌다.
동시에 왕실 수행원들의 감지 영역조차 대폭 축소됐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감에도 잡히지 않는다. 거의 시각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온갖 소란이 중첩된 뒤에,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모든 퇴로가 막힌 상황.
“……계획된 일.”
“경호대는 뭐 하고…….”
“위쪽에서 이미 싸우고 있어요.”
이번에도 박봄에게서 나온 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박봄을 본다. 이 꼬맹이가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그들은 본다.
호랑이처럼 갈라진 박봄의 눈을.
“시간 없어요. 와요.”
‘와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위를 막고 있던 차량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이쪽으로 떨어졌다.
넷의 주위로 실드가 세워지고, 수행원 중 한 명은 채찍을 들었다.
다가오는 적을 막겠다는 의지였는데, 박봄의 냉정한 음성이 들렸다.
“많아요. 아저씨 혼자서는 무리예요.”
그리고.
“버찌야, 아저씨 도와줘.”
박봄의 가방에서 버찌가 뛰쳐나오더니, 박봄의 머리를 밟고는 허공에 떴다.
버찌의 눈이 전황을 담는다.
조건을 살피고 해석, 곧바로 결론을 냈다.
“그르르르…… (언니는 빠져……).”
무조건 피를 봐야 한다.
언니는 아직 새끼다. 내가 지켜 줘야 한다.
“알았어.”
봄이는 굳이 고집을 피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고집을 피우는 건 버찌를 더 힘들게 하는 거다.
대신.
“포실아.”
마룡기 ‘박포실’이 허공을 찢고 등장, 박봄의 등 뒤에서 ‘포실포실’ 몸집을 부풀려 갔다.
“아빠 선물을 꺼내 줘.”
포실이의 투명한 몸이 희뿌옇게 변하며 무언가 나온다. 두 개의 다리에 두 개의 팔. 어딜 봐도 인영이었다.
과거 박기혁이 삼합회를 처리하고 모은 강시들을 결합, 개조한 후 박봄에게 선물해 줬다.
봄이가 좋아하는 ‘캡틴 타이거’의 모습을 한 강시.
강시 캡틴 타이거가 박포실의 몸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버찌가 눈을 빛내며 캡틴 타이거 강시의 제어권을 넘겨받는다. 눈을 뜨는 캡틴 타이거, 검은 고글에 붉은빛이 서렸다.
“그르릉-!(박포실).”
박포실이 몸을 부풀리며 박봄을 집어삼켰다.
“아기씨, 왕자님도.”
“포실아, 엘도.”
포실이가 꾸물거리며 이스마일까지 집어삼켰다.
박봄의 상태에 비례해 강해지는 마룡기 박포실이다. 마음먹고 방어한다면 진룡 진도하가 와도 뚫기는 쉽지 않을 것.
“버찌야, 언니 날개 펼치고 있을 테니까 안 다칠 거야!!”
“냐앙~! (걱정 마~!).”
마침내 박포실이 봄이를 다 삼키고, 버찌의 눈이 달라졌다. 이전의 고양이 같은 눈은 없었다. 진짜 맹수의 눈빛이었다.
이에 더해.
- 쓸모없는 인간들.
“……!!”
- 너희는 여기서 포실이나 지켜라.
말을 한다.
언령(言霊).
- 혹시 ‘언니’가 다치면.
그땐 너희도 죽는다.
버찌의 심연이 둘을 압도했다.
꿀꺽.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왕실 수행원 둘. 비록 수행원이라고는 하나 비상시에는 왕실 경호까지 해야 하기에 둘 다 깨나 이름을 날린 실력자였지만.
이 고양이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절대 일개 짐승이 아니었다.
바짝 몸을 움츠리는 왕실 수행원들을 뒤로하고 버찌가 적을 주시했다.
이제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다가온 적들.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은,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생명 반응이 없다. 지금 버찌 앞에 있는 캡틴 타이거 강시처럼.
버찌는 잠시 고민하다, 생각을 접는다.
어차피 먼저 공격했다.
언니가 위험하고, 나는 언니를 지키면 된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올 테니까.
나는 그때까지만 막으면 된다.
숨 막히는 대치 상황.
먼저 포문을 여는 건 적들이었다. 갑자기 주위에 늘어져 있던 차를 들더니 이쪽으로 던져 댔다.
콰아아앙!
이를 시작으로 포위하던 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일부는 돌진, 일부는 허공에서.
어지럽게 달려드는 공세에 버찌가 울음을 토해 내고.
캬릉-!
바닥에서 가라앉아 있던 어둠이 실체를 갖추더니, 적들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달려오던 적을 허공에서 조각냈다.
흑마법
쉐도우 스트라이커
Shadow Striker
곳곳에서 그림자들이 솟구쳤다.
형태는 다양했다. 꼬챙이 형태의 그림자는 적의 배를 뚫고, 칼날 형태의 그림자는 적의 신체를 절단했다.
그중 백미는 짐승 형태의 그림자. 매끈한 흑표범을 연상케 하는 검은 그림자 짐승들이, 달려드는 적들에게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캡틴 타이거 강시도 적의 대가리를 깨부쉈다.
박기혁은 기존의 기술들은 없애고 가장 효율적인 무술을 덧입혔고, 덕분에 여기 캡틴 타이거 강시는 단순하고 투박하게 적의 머리를 수집해 나갔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런 맹렬한 저항이면 적이 위축될 만도 하겠건만,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집요할 정도로 몸을 욱여넣는다.
머리가 떨어져도, 팔이 떨어져도, 계속해서 전진하는 적들. 확실한 건 인간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렇다. 적들의 정체는 강시.
삼합회의 자랑인 철강시였던 거다.
이미 죽은 철강시기에 고통을 모른다. 두려움도 없다. 그저 특유의 방어력을 앞세워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그렇게 일정 거리에 도달한 철강시는.
터진다.
시체 폭발
屍體 爆發
콰아아!!
콰아아앙-!!
스스로가 폭탄처럼 연속해서 폭발한다. 폭발에 폭발이 중첩되며 더 큰 폭발이 되고, 거기에 또 폭발이 추가돼 연쇄 폭발로 이어지며 주변이 초토화돼 갔다.
그때 멀찍이서 이를 보고 있던 삼합회 인원들이 슬슬 움직였다.
“가자.”
강시가 아닌 진짜 인간들.
이들의 임무는 확인이다.
성공했으면 시체를 회수해야 하고, 실패했으면 추적해 암살해야 한다.
절대 후환을 남겨선 안 되는 작전.
하지만 선두에 선 대장은 성공을 확신했다.
무려 129구의 철강시를 들인 작전이다. 실패하는 게 더 이상한 법이다. 그 증거로 대장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왕실 경호대의 시체들이 널려 있다.
왕실 경호대의 생존자는 0명.
모두 전멸이었다.
“한 명은 회수해서 본회에 보내.”
이렇게 보내진 시체들은 강시의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왕실 경호대가 이 정도인데, 겨우 수행원들과 꼬맹이가 있는 저쪽은 보나마나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저기서 대상은 숯덩이가 되어 있으리라.
대장은 긴장을 풀고는 부서진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쉬익-!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대장이 놀라며 검을 들어 쳐 내는데.
챙-!
퍽!
“커헉!!”
이미 뒤에서도 같은 그림자가 쏘아진 상황. 쳐 내는 순간, 대장의 등 뒤에 그림자가 박혔다.
이어서 그림자가 땅에서 돋아났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그림자 더미들. 대장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가던 부하들이 놀라며 검을 빼 들고는 방어를 했다.
그사이 대장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당했고, 결국 바닥에 내팽개쳐져 간헐적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대체 이게…….”
“왜 대장이!”
“정신 차려!”
혼란스러운 상황.
그때, 연기가 걷혀진다.
검은 연기를 뚫고 하얀 광채가 번쩍이며…… 그리고, 적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당연히 숯덩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슬라임.
하얀 날개를 펼친 채 후광을 뿜어내는 박포실이었다.
얼라이브
Alive
모든 상처들이 회복된다.
파편에 긁힌 수행원들의 생체기도, 맨몸으로 폭발을 막아 낸 캡틴 타이거 강시의 상처도.
공중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버찌도.
이제 이 공간에서 상처 입은 자들은 하나다.
적들.
“뭐, 뭐야.”
“……저게.”
“말도 안 돼.”
그때, 버찌가 하늘을 보며 ‘갸르릉’ 울어 댄다.
그리고.
“수고했다.”
한 순간.
세계가 어둠에 휩싸이며.
심연 밑바닥에서 거대한 동공이 빛을 밝혔다.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이 순간, 잠자던 마왕이 깨어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