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63화 (16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63화>

셰이드 왕궁에는 이런 말이 돈다.

“셰이드 왕가의 그날 분위기를 알고 싶으면 ‘이스마일’ 왕자가 웃고 있는지 보면 된다.”

“철혈의 왕비라 불리는 파티마를 녹일 수 있는 불꽃은 이스마일의 미소뿐이리라.”

“왕을 움직이려면 ‘이스마일’ 왕자에게 선물하라.”

왕의 총애를 듬뿍 받는 파티마 왕비.

그런 파티마 왕비가 늦둥이를 가졌다.

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왕비가 이스마일을 임신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기뻐 맨발로 왕비의 궁까지 달려갔을 정도다.

이런 왕의 사랑은 이스마일이 세상에 나왔을 때도 계속됐다.

이스마일의 출생을 기념하며 ‘이스마일 탄생 특별 사면’이 이뤄졌으며, 첫 생일날에는 각종 세금들이 감면됐다.

이때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다섯 번째 생일 때 이야기다. 이 다섯 번째 생일 이야기는 유명한 미담으로 각종 매체에서 다뤄지는데.

원래 왕은 이스마일의 다섯 번째 생일에 맞춰 ‘엘 타워’를 완공하려고 했다.

여기서 엘은 이스마일의 애칭인 ‘엘’이다.

그러다, 일이 터진다.

어느 날 이스마일이 구슬프게 울며 왕에게 안긴다.

“흑흑. 아바마마…….”

“오, 나의 보물 엘. 무슨 일이냐. 무슨 이유로, 왜 우는 것이야.”

“흑흑. 아바마마, 아픙 칭구가 넘 불쌍해요.”

이후에 왕이 알아보니 TV에서 아픈 아이를 본 것이었다. 왜, 기부 단체에서 내는 후원 광고 같은 거 말이다.

“아바마마, 아픈 칭구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 일화로 엘 타워는 ‘셰이드 엘 왕실 병원’이 되었고, 희귀난치성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거듭난다.

이밖에도 파티마 왕비가 가산을 털어 이스마일과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의 모든 학비를 지원한 것이나, 형인 무함마드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스마일을 위해 도금한 롤스로이스를 선물한 것이나.

이처럼 왕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가는 이스마일.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고, 하고픈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스마일에게도 딱 하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친구.

그렇다. 이스마일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이스마일에게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간 큰 아이가 있을 리 만무했고, 설령 이스마일이 먼저 다가가더라도 왕자라는 신분에 어색한 사이가 되기 일쑤였다.

슬펐다.

외로웠다.

왜 전부 나를 피할까.

이에 이스마일은 울며불며 형인 무함마드에게 매달려 봤지만, 형은 씁쓸하게 ‘왕가의 숙명이란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나는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는데…….

그렇게 이스마일은 모든 것을 가진 축복받은 환경에서 태어남과 동시에, 그만큼의 반대급부도 가진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아이가 나타났다.

“누나 해 봐.”

“누…… 나……?”

“좋아, 좋아.”

흡족하다는 듯 입이 세모꼴로 변하는 아이.

박봄이었다.

*   *   *

박봄이 씩씩대며 차에서 내렸다.

“3일째야! 3일째라구!! 어떻게 3일이나 돌아다녔는데 떡볶이 파는 데가 없지?”

이건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엘, 누나는 도대체 모르겠어. 시장은 다 있어야 하잖아. 든데 왜 떡볶이 가게가 없어!?”

“그…….”

이스마일이 ‘그야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까.’라고 말하려다 박봄의 표정에 비친 노기를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대체 떡볶이가 뭐기에 저럴까.

사진으로 보기에는 온통 빨간 게, 지옥 밑바닥에서 끓는 용암 같은 맛일 것 같은데…….

이스마일은 당최 박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엘, 누나는 실망했어.”

“실망까지?”

“떡볶이는 그냥 음식이 아니야! 영혼이 담긴 완, 완…… 완 뭐더라. 그래, 완전식품!!”

영혼이 담겨 있으면 소울 푸드 아닌가.

이스마일은 이번에도 말을 삼켰다. 과연 성운을 담은 아이, 실로 지혜로웠다.

“떡볶이 없이 살아가다니, 끔찍해…… 우리나라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배달 온다구!”

“배달시켜 줄까?”

“그래, 배달 시키ㅈ…… 응?”

봄이가 동그란 눈으로 엘을 본다.

“배달돼?”

“못 할 게 어디 있어.”

“이상하다…… 가게가 없는데 배달이 어떻게 돼.”

“여기 왕궁이야. 뭐든 돼.”

이스마일도 개인적으로 알아봤다.

박봄이 이토록 떡볶이, 떡볶이 노래를 부르는데 어쩌겠나…… 알아봐야지.

한국인의 대표적인 간식이란다.

또한 여기에서는 파는 곳이 없다는 것도.

그래서 왕실 주방장에게 레시피를 주며 말했다. 인터넷에서 본 이대로 만들어 달라고.

다만 여기서 이스마일이 실수한 점은, 한국에는 떡볶이 종류가 아주 많고 그만큼 매움의 정도도 가지각색인데, 하필이면 그중에서도 가장 매운 떡볶이를 선택한 것.

그렇게 탄생한 건 진짜 지옥의 유황불처럼 끔찍한 떡볶이었다.

“우와아아아. 떡볶이야!! 먹자. 먹자.”

“……이거 너무 빨게.”

“원래 떡볶이는 빨간 법이야.”

“너무 빨갛잖아. 이거 먹으면 틀림없이 탈 날 거야.”

“걱정 마. 아빠가 사람은 쉽게 안 죽는댔어.”

봄이가 야무지게 팔을 걷고는 포크를 들었다.

이스마일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해 봤지만, 이어지는 봄이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포크를 들어야만 했다.

“이거 먹으면 우리는 이제 진짜 ‘친구’야.”

“……알았어.”

이스마일이 결연한 표정으로 지옥을 삼켰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외로웠던 이스마일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 봄이란 친구가 생겼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이스마일은 확신이 없었다.

이 정도로 접근한 아이는 많았으니까. 자신의 배경을 이용하려고 흑심을 숨기며 영악하게 접근하는 아이들.

혹시 봄이가 그중 하나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봄이는 이런 걱정을 비웃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스마일을 대했다.

어렸을 때부터 차를 좋아했던 이스마일.

그만큼 이스마일의 차고에는 형이 선물한 금박 롤스로이스를 비롯해 수십 억이 넘는 하이퍼 카로 가득했는데, 봄이는 이를 둘러보더니.

“이게 다 네 차야?”

“응, 어때. 예쁘지.”

“헤에~ 많긴 한데, 다 별로야. 장난감 같잖아.”

“뭐어?”

“다 작아. 차는 크고 튼튼한 게 최고야!”

봄이에게 1순위는 언제나 아빠다. 따라서 기준은 박기혁.

박기혁이 타도 여유가 있는 차가 아니면 봄이의 기준에서는 차도 아니다.

이스마일은 황당해하다가 이내 웃었다.

확실히 특이하다.

보통은 이런 모습을 보여 주면 기가 죽거나, 욕심을 드러낼 텐데 박봄은 그런 게 없다. 그냥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아참! 엘, 여기 너희 집이잖아.”

“그렇지.”

“그러면 부모님한테 인사드려야지! 아줌마는 저번에 인사했으니까, 아저씨도 인사드려야 해!”

“응……? 아바마마한테?”

“그래! 안내해!”

“괘, 괜찮아.”

괜찮다는데도 굳이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봄이.

기어코 이스마일의 아빠인 왕을 찾아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엘 친구 봄이에요.”

“허허허. 반갑구나.”

왕 앞에서 배꼽 인사를 하는 봄이의 모습에 왕도 흐뭇하게 웃었다.

이스마일은 이때 의심했다. 얘가 우리 아빠가 왕인지 모르나? 아니면 왕이 뭔지 잘 모르는 건가?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봄이는 잘 알고 있었다.

“아저씨, 진짜 왕이에요?”

“그렇구나. 아저씨가 왕이란다.”

“우와아, 그러면 아저씨 부자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엄 봄이 부탁하나만 들어 주세요.”

“뭐든 말하거라, 왕자의 친구라면 우리 왕가의 식구, 무엇이든 들어주마.”

이스마일은 왕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왕이 뱉은 말에는 허언이 없으니까.

무엇이든 들어 주마.

이 말을 일반 사람이 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지만, 왕이 했다면 그건 백지 수표다.

정말 무엇을 원하든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스마일은 꿀꺽 침을 삼키며 봄이를 바라봤다.

이건 시험이다. 왕의 시험. 네가 아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왕이 직접 시험하는 거였다.

그런데 박봄은 이런 시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헤헷!’ 귀엽게 웃으며 부탁하기를.

“떡볶이 가게 좀 만들어 주세요.”

“호오오, 떡볶이?”

“네, 떡볶이. 여기 떡볶이 가게 없어요. 아저씨, 우리는요. 친구끼리는 하루에 한 번씩 먹어야 해요. 그게 룰이에요!”

“룰이라…… 룰이라. 하하하하하. 그렇구나. ‘아저씨’가 알아서 해 주마.”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스마일은 그제야 알았다.

여기 봄이에게 왕은, 왕이 아니라 이스마일의 아빠였던 거다.

감격스러웠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가 드디어, 드디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봄이 입장에서는 이게 당연한 거였다.

돈이라면 할머니도 많다. 할머니가 항상 말씀하시잖나.

“아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소소한 일이야. 진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야. 우리 봄이는 가치 있는 것을 쫓으렴.”

할머니만 말했나? 아빠도 그랬다.

“응? 저 사람보다 세냐고? 그러엄, 저 사람만이 아니야. 세상 누구를 데려와도 아빠가 다 이겨.”

“봄이 아빠는 최강이거든.”

항상 당당해라.

봄이 뒤에는 아빠가 있다.

박기혁을 보고 자란 봄이에게 이스마일은 조금 특별한 재능을 지닌 아이이고, 왕은 그냥 돈 좀 많은 아저씨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며칠 뒤, 리야드 중심가에는 낯선 언어가 적힌 가게가 등장했다.

한 입 먹으면 천국의 조상님을 뵙고 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천국 떡볶이.

“우와아! 떡볶이 가게야아! 버찌야, 봐봐. 떡볶이! 천. 국. 떡. 볶. 이! 대단해. 아저씨가 약속 지켰어!”

“미야옹~.”

“엘, 가자. 오늘은 로제 떡볶이를 먹는 거야!”

“또 먹어?”

“1일 1떡볶이. 가즈아아!”

봄이가 엘의 손을 잡고 달렸고, 엘은 못 이기는 척 봄이를 따라 떡볶이 가게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박기혁은 끝내…….

빠직.

차 문을 부숴 버리고 있었다.

*   *   *

부서진 차 문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쿠당탕~!

“……저 자식.”

“야, 문 떨어졌잖아. 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얘가 힘이 세서.”

진유리가 왕가의 수행원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데, 지금 내게는 이딴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봄이를, 내 봄이를……!

“까득. 저걸 어쩌지.”

“뭘 어째. 애들이 친구 먹은 건데.”

“친구면 친구답게 행동해야지! 손을 왜 잡아!”

“얘는 왜 오바야. 봄이가 먼저 손잡았거든? 그리고 손잡는 게 뭐 어때서. 저 나이 때 애들은 다 저래.”

“이…… 이익!”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빨리 자리 옮기자. 애들 노는데 방해하지 말고.”

“젠장.”

차 문이 떨어진 차에 올라탔다.

뻥 뚫린 문으로 바람이 불어오지만, 뚜껑이 열린 내 머리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진유리가 피식 비웃는다.

“진짜 팔불출처럼 이럴래.”

“…….”

“자녀 교육에서 첫 번째가 시선을 맞추는 거야. 아이의 시선으로 봐야지.”

“끄응, 알았어.

“아니, 넌 몰라. 잠자코 들어.”

저 쪼꼬미가 얼마나 심심했으면 친구를 만들겠나, 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아이를 비뚤어지게 한다, 등등.

진유리의 설교가 이어진다.

자존심 상한다. 왜 요즘 얘한테 계속 설교를 당하는 걸까.

잔소리를 듣길 얼마나 지났을까. 목적지인 쇼핑몰이 등장하는데, 나는 조금 신기한 눈으로 쇼핑몰을 바라봤다.

도심 한복판,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아티펙트를 판다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한국의 ‘로얄 마켓’과는 다른 모습.

이에 왕실 수행원 중 한 명이 답한다.

“모두 전하의 뜻입니다.”

길어지는데, 풀이하자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건데 숨길 필요가 없다.’라는 거다.

초인과 민간인을 엄격히 분리하는 보통의 지도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조사한 대로라면 현재 왕은 성격은 좋아도 능력은 그저 그렇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야기가 잘못된 것 같다.

‘맹탕은 아닌 것 같아.’

왕도 각자 추구하는 덕목이 있다. 권위를 휘두르는 패왕이 있다면, 자비로 품는 성군도 있다.

내가 보기에 여기 왕도 의도적으로 방임하는 것 같단 말이지.

‘뭐, 내가 신경 쓸 필요 있나.’

남의 집안싸움인데, 메리와 준우의 문제가 아니고서야 웬만하면 참견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무함마드의 대리인 요청도 완곡히 거절한 것이고.

“근데, 기혁아.”

“말해.”

“무함마드 대리인, 그거 안 도와줘도 돼? 심각해 보이던데.”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달리 보면, 겨우 이런 문제도 해결 못 하면 왕의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정 안 되면 준우가 나서면 돼. ‘마룡기’를 든 준우 정도면 웬만한 놈들도 씹어 먹을걸.”

“하긴…… 다행이야. 네가 여기 오기 전에 선물해 줘서.”

“뭐, 어쩌다 보니 일이 잘 풀렸네.”

내가 참여해서 깽판 치는 것보다야, 준우가 나서서 도와주는 게 여러모로 그림이 좋다.

그래서 나와 진유리는 일부러 쇼핑 겸, 아울렛으로 나온 것이다. 자리를 의도적으로 피해 주기 위해.

한데…….

“계속 알짱거리네.”

가끔 그런 애들이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처먹어 봐야 아는 놈들. 바라건대, 제발 생각이 있는 놈들이길 바란다.

나는 인파를 훑어보다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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