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60화>
정확히 내가 내린 견적대로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을, 흔히들 천재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봄이는 천재였다.
“잘 모르겠는데에…… 해 볼게.”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어? 됐어!”
“어려워. 근데 알 것 같아. 봄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막 할 수 있을 것 같구 그래.”
사실 이미 예상한 결과다.
나의 분신이다.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진짜 나의 ‘일부’를 가졌단 말이다.
마왕이라는 규격 외의 마법적 재능. 검호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육체적 재능.
사실상 ‘거인’을 제외한 내 모든 힘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봄이가 할 수 있다는 거다.
“정말? 봄이, 아빠가 하는 거 다 할 수 있어?”
“헤에~ 봄이도 크면 아빠처럼 될 수 있는 거네! 신나아!”
“그럼 봄이도 뭉게뭉게 불러낼 수 있어? 아…… 그건 안 돼에? 히잉…….”
여기서 봄이가 말하는 ‘뭉게뭉게’는 내 거인이다. 흐릿하게 보여 구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쨌든, 아빠처럼 다할 수 있다고 신나 하던 봄이가 거인을 소환해 내지 못한다고 하자 급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난 봄이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줬다.
“아빠한테 ‘거인’이 있듯이, 봄이에게는 ‘혈족들’이 있으니까.”
감각을 비트는 ‘무희’와 발차기와 민첩을 비롯한 각력(脚力)의 ‘악묘’, 만드는 음식에 버프를 주는 ‘숙수’ 등을 비롯한 16종의 혈족들.
더해서 마룡기 ‘박포실’ 덕에 실시간으로 흡수 중인 일본의 혈족들.
이 모든 혈족들이 봄이의 ‘검호’에 녹아들며, 봄이의 검호는 기존의 검호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뿐인가.
“봄이한테는 ‘버찌’도 있고, ‘포실이’도 있어. ‘인형’도 다룰 줄 알고, 이번에 아빠가 준 ‘날개’도 있지.”
“우와…… 봄이 부자네?”
“맞아. 봄이는 부자야. 재능 부자.”
재능으로 꽉꽉 차 있는 봄이.
봄이에게 더 이상의 재능은 필요 없다. 이제는 가진 재능을 조합해 자신만의 형태를 찾으면 된다. 내가 거인을 각성하며 전투 형태를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송새벽은 조금 다르다.
얘도 천재는 천재다. 타고난 것이 많다.
다만 자기가 타고난 것에 대한 정보나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
까놓고.
“너, 기본기가 하나도 안 돼 있어.”
“기…… 기본기 말입니까?”
“그래.”
무기의 혼을 끌어내는 ‘신장’과 마법을 흡수하는 ‘오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니까 자기가 가진 것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한다.
장기로 치면 차와 포를 떼고 앉은 거나 마찬가지.
이해는 된다. 환경이 그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도 다행이라면 나만큼이나 괜찮은 육체를 타고난 덕에 그릇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점과, ‘신장’과 ‘오니’가 충돌하지 않고 균형을 이뤘다는 점.
무엇보다, 성장이 멈추기 전에 나를 만났다는 거다.
“내가 살펴본 결과, 새벽이 너의 발전은 ‘오니’부터 시작해야 해. ‘신장’은 가만히 놔둬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오니’는 교육 없이 제대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거든.”
“오니는 눈, 다시 말해 시각이랑 연관돼 있어.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감각이야.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뇌를 차지하는 비중도 그만큼 크지.”
흡수-분해-발현.
요안을 통해 마법을 흡수.
마법에서 마나를 분해.
다시 요안으로 발현.
이게 혈족 ‘오니’의 대략적인 메커니즘이다. 형질계 혈족 중 수위를 다투는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자료에 보면 오니 가문에서는 흡수한 마나를 전부 써야 한다고 기록돼 있어. ‘잔여 마나’가 남으면 요안에 부담이 가고, 시력이 떨어지게 된다고들 하는데…….”
“근데 내가 보기에 이건 너무 단조롭단 말이지.”
‘오니’ 가문 자료를 읽으며 든 생각.
얘들은 왜 연구를 하지 않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았다.
의심과 고민이 없으니 도전이 어디 있고 연구가 어디 있겠나.
극단적으로 말해 100년 전의 오니나 현재의 오니나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발전이란 게 전혀 없는 것이다.
“얘들은 이걸 ‘전통’이라며 퉁치는데, 진짜 미련한 말이야. 아니, 말이 돼?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는 말이잖아. 마법사라는 것들이 생각이란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난 말이야, 인간은 항상 발전해야 한다고 봐.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비단 과학이나 기술, 문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법도, 혈족도 마찬가지야.”
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오니’를 발전시킬까. 더불어 ‘신장’이라는 또 다른 혈족과 조화로이 사용하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 답은.
송새벽의 몸을 칼로 째는 것이었다.
“스승님! 카, 칼, 칼은 놓고.”
“쉬잇, 괜찮아. 나 믿지?”
“자, 잠시만.
“아프진 않을 거야.”
그렇게 봄이의 수업과 새벽이의 개조를 하는 가운데, 어느덧 아카데미 졸업식이 다가왔다.
* * *
대망의 졸업식 날.
한국 아카데미 대강당으로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든다.
졸업생과 졸업생 부모님들부터.
“엄마, 여기예요. 전에 말한 애 있지? 동준이. 얘가 동준이야. 동준아, 여기는 우리 어머니.”
“어디로 갈 거야? 미라클? 거기로 가기로 했어? 잘됐네. 나는 모르겠어. 생각 좀 더 해 보려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우리 연주랑 잘 지냈다면서. 고맙다. 혹시 졸업식 끝나고 시간 있니? 아저씨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하, 옵티멈은 떨어진 것 같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떨어지니까 기분이 좀 그래. 끝나고 술 한잔?”
여기에 선배의 졸업을 축하해 줄 후배들이며.
“연주야아!! 여기 여기. 어? 너 꽃 사 왔네? 나도 꽃 살까 고민했는데. 어디서 팔아?”
“드디어 4학년 재앙이 졸업하는구나. 이제 교내 랭킹전에 나갈 만하겠다.”
“동아리 ‘대마도사’는 여기로 모이세요! 동아리 ‘대마도사’는 여기로 모여 주세요!!”
또한 졸업생들이 활동할 에이전트 관계자까지.
“오오, 이게 얼마만이야 김씨. P.S.H에서 나왔다는 소문은 들었어. 뭐 하고 지냈어.”
“나 미라클 소속이잖아. 그래, 연수지 있는 거기. 대우야 괜찮지. 안 그랬으면 옮겼을까.”
“이번에도 옵티멈은 없지? 하긴, 콧대 높은 놈들이 이런 자리에 나올 리가 없지.”
“옵티멈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자리에 오겠어. 이미 알맹이는 다 빼갔는데.”
“검호 박기혁에, 진룡 진유리에, 무희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한준우, 메르헴. 알멩이는 다 채갔어.”
순식간에 대강당이 인파로 넘쳐 나고, 단상 위에 앉아 있는 천수만 학장은 감회 어린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드디어…….’
반듯하게 도열해 있는 4학년들.
‘드디어……!’
그들 중 모난 돌처럼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
‘드디어어……!!’
박기혁.
‘저놈한테서 해방이다!’
천수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 4년, 박기혁에게 얼마나 끌려 다녔던가. 돌이켜 보면 입학시험 때부터 심상치 않았었다.
‘1조를 진유리에게 넘기고 20조를 맡겠다고 했을 때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 줄 알았는데.’
이런 천수만의 기대는 곧바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전부 껴.”
“지금부터 너희랑 나는 싸운다. 룰은 간단하다. 마법 사용해라. 무기 괜찮다. 최선을 다해 날 쓰러트려라. 대신 지린 놈은 전부 뒤로 빠진다. 이해했나?”
“최선을 다해 보여 봐.”
동기들을 시험한다는 이유로 무참히 줘 패고.
이것도 모자라, 교수에게까지 손을 댔다.
“……감히 교수를 기만하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요.”
“건방진!”
이렇게 총원 3명, 아카데미 역사상 최소 인원의 조가 탄생하게 됐다.
이때 천수만은 깨달았어야 했다. 박기혁이란 인간이 진짜배기 또라이란 걸.
그러나 당시의 천수만은 반짝이는, 약간 재능 있는 초인, 딱 그 정도로 봤다. 어쩌면 박기혁이 ‘마나 허무증’을 앓았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서였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박기혁의 능력을 제대로 오판했고, 곧이어 박기혁의 동아리 ‘출구 없는 지옥’의 지도 교수 자리에 ‘위그드라실’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를 보게 된다.
뒤늦게 중재에 나서 보지만.
“박기혁 학생, 현재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교수들이 박기혁 학생에게 다소 날을 세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기분 나빴겠죠. 이해합니다.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위그드라실이라니요.”
“담당 교수,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편의도 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건은 여기서 멈추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땐 이미 늦었지.
“괜찮습니다.”
천수만은 뒤늦게 깨닫는다.
아, 이 자식은 또라이구나.
왜, 있잖나. 사람들이 정한 상식은 개나 줘 버리고, 오직 마이 웨이를 걸어가는, 아예 사고 회로 자체가 다른 또라이.
문제는 이 또라이가 넘치는 힘을 가졌고, 아득한 배경까지 지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
어쩌면 중간고사의 참사는 예견된 사고였을 거다.
<속보> 의문의 마법진과 아카데미 폭파 사건!!
(단독 보도) 올해 1학년 중간고사 10개 조가 사라졌다?!
아카데미로 찾아가는 학부모들의 행렬 <사진> 그중에는 대한초인협회 부회장도 있어…… <사진>
피해 학부모 대표 “자세한 사정을 물어봤지만 답변을 회피했다.” 법적 조치 불사하겠다!
천수만이 오판에 오판을 거듭할 동안, 박기혁은 아포칼립스라는 신개념 마법 체계를 보여 줬고, 그때부터 박기혁은 천수만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게 되었다.
그때부터 박기혁은 사실상 아카데미의 언터처블이 되어 4년을 보냈다.
끝내 박기혁은 지난 4년간 무수한 업적을 쌓았지만, 아카데미는 그에 대한 지분을 하나도 주장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아마 처음부터였을 거다. 만약 처음부터 박기혁이란 인간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비굴할지언정 끈질기게 달라붙어 유대를 쌓았을 건데.
의외로 자기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베푸는 박기혁이라 일단 유대를 쌓았다면 떡고물이라도 얻었을 수도…….
“아니, 아니지.”
천수만은 퍼뜩 고개를 저었다.
저런 특출한 인간과 엮이면 명성은 얻을지언정 죽도록 고생하는 법이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신조인 천수만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인물.
조속히 아카데미에서 내보내야 한다.
암, 그렇고말고.
“학장님, 지ㄱ…….”
“알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는 천수만의 발걸음이 유독 빨랐다.
그날의 졸업식은 역대 최단 시간에 끝났다는 후문이…….
* * *
아카데미 졸업식은 싱거울 정도로 빨리 끝났다. 이럴 거면 왜 귀찮게 모이라고 했는지 진심으로 궁금할 정도였다.
“이게 끝이야?”
“그러게요. 빨리 끝나긴 했어요.”
“빨리 끝나니 좋다.”
“천수만 학장님 무슨 좋은 일 있나 봐. 안색이 밝아.”
이쯤 되니 나도 의심이 든다.
“설마, 우리가 가서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맞아요, 기혁. 아무리 그래도 학장님인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 그치? 밥 먹으러 가자. 고깃집 예약해 놨어.”
어째 졸업식보다 고깃집 회식이 더 기억나는 하루였던 것 같다.
이후로는 뭐 별다를 거 있나. 아침에 봄이 유치원 데려다주고, 점심에는 송새벽이 개조하고, 저녁에는 개인 연구를 하던 나날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는데!
나의 졸업식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중요한 날!!
꽃가람 유치원 졸업식의 날이 밝았다.
“흑. 여러분, 잘 가요. 선생님은 여러분을 잊지 못할 거예요.”
“흐어어어엉! 선생니이이임!!”
“으아아앙!! 나 안 갈래!”
“엄마아아아아!”
선생님의 눈물이 신호탄이었다. 전부 다 도미노처럼 눈물을 쏟아 내는 아이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봄이는 의젓하게 울지 않았다는 거랄까.
“현지야, 우리 정말 초등학교 같이 가는 거야?”
“응응! 엄마한테 말하니까 같이 갈 수 있대.”
“히히히. 다행이다. 떨어질까 걱정했어.”
“다 봄이 덕분이지, 봄이가 나한테 마나 쓰는 ㅂ…… 읍!”
“쉿, 현지야. ‘비밀’. 비, 밀이야. 그거.”
“아…….”
“웃어.”
“헤…… 헤헤헤헤.”
“헤헤헤.”
뭔가 꼬맹이들이 귀여운 음모를 꾸미는 것 같았는데, 그냥 넘어갔다. 이제 곧 있으면 초등학생인데 비밀 하나쯤은 있어야 될 나이 아니겠나.
이 밖에도 특별한 일이라면…….
아……!
용준이.
권용준.
행복 보육원의 용준이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형…….”
“어깨 펴. 사내자식이 구부정하게 있는 거 아니야. 당당하게, 긴장하지 말고.”
“후우, 후우.”
“너한테만 가르쳐 주는데, 형이 보기에 저기서 너보다 잘난 놈 몇 없어. 그니까 형한테 배운 대로만 하면 돼. 알았지? 자, 가 봐.”
“네!”
결국 입학시험에서 용준이는 차석을 했다.
수석은 공교롭게도 ‘신장’ 가문의 딸이란다. 참나,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신이 고약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렇게 대망의 조장 발표.
당연히 차석인 용준이도 조장이 됐고, 나도 그 자리에 봄이랑 참여했는데…… 나랑 눈을 마주친 천수만이 화들짝 놀라더라.
“안녕하세요.”
“음, 누ㄱ……!! 깜짝이야!! 네, 네가 왜?!”
……날 보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어쨌든 용준이 이야기를 하며 잘 부탁한다고, 몇 번이고 부탁했다. 이상한 건 내가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왜 안색이 나빠지는지…… 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다.
내가 이렇게 굵직굵직한 일을 쳐 내며, 봄이와의 시간을 즐기던 사이,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점심에 메리에게서 연락이 오는데.
“약속 잊지 않았죠?”
“아…….”
전화를 끊고는 봄이에 말했다.
“여행이다!”
“여행!!”
우리 부녀의 첫 번째 해외여행.
우리는 사우디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