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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58화 (158/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58화>

모두가 알다시피 수호령의 숫자는 여덟이다.

자연스레 수호령의 가르침에서 소외된 국가들이 나타나게 되고, 이렇게 소외된 국가들은 두 가지로 반응한다.

수호령이 있는 국가로 가르침을 받으러 떠나거나, 아니면 자신들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해 나가거나.

여기서 일본은 후자였다.

일본인들은 자신들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녹여 각종 기술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검도, 주술, 법술, 음양술, 소환술 등.

당시의 화족 동맹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재물과 정보를 내놓았다.

지금의 화족 동맹을 생각하면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과거의 화족 동맹은 정말 솔선수범해 아낌없이 조국의 초인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국민들 또한 인접한 한국에 유학을 가는 손쉬운 선택을 하기보다는 기꺼이 조국을 믿으며 함께 발전해 나가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 결과 꽤 그럴듯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천재 검사 ‘야마모토 히데’ 스타 히어로 드래프트 2순위!

전원 일본인으로 이뤄진 공략대 최초로 7레벨 게이트 공략 성공 ‘자랑스럽다!’

이제 우리도 메이조(Major) 레벨이다!

일본은 준(準)메이저 지역이라 불리며, 수호령이 없는 국가가 어떻게 초인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는지 모범 사례로 불리게 된다.

그래.

딱.

거기까진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에 취하기 시작한다.

한 잔.

유럽이 감탄한 일본 초인의 모습 31가지

주영 대사관 “일본의 검도 기술에 감탄한다.”

한 잔.

문화 선진국 일본, 게이트 뒷정리도 철저히. 외신들 감탄하다.

“수호령 따위에게 의지할 필요 없다.” 일본의 신성 검객 ‘야마모토 히데, 세계에 증명하다!

또 한 잔.

진룡? 이제는 오니다! 아시아 마법을 이끌다.

이 시대의 마지막 사무라이 엔도 상이 입을 열다. “검도는 ‘호랑이’가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하는 거다.” 한국의 검호 겨냥?!

한 잔, 한 잔…… 국뽕에 젖어 들수록 일본의 자신감은 드높아졌고, 반대로 현실 감각은 수직 낙하하게 된다.

그렇게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본이 소위 말하는 ‘메이저 레벨’, 수호령이 있는 나라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줄로만 안다.

심지어 한술 더 떠, 화족의 자제들은 자신들이 당장 세계에서도 통할 수준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진유리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착각하지 말라고.

“…….”

화르르르르륵-!!

불길이 춤을 춘다. 대기가 달아오르고, 끔찍한 열기가 좌중을 뒤덮는다.

일대의 마나가 모두 진유리의 색으로 채워졌다.

‘용의 눈’에 보이는 무수히 흩날리는 마나 선들…… 색색의 선들이 도화선처럼 타오르는 가운데, 정작 진유리는 품 안에서 앙앙 울고 있는 봄이의 등을 토닥이고만 있었다.

반면 갑자기 코앞에서 불꽃이 솟구친 화족의 자제들은 당황했는데.

“뭐…… 뭐야!”

“X같은 년이 미쳤나.”

“퉤! 잘됐어. 안 그래도 스트레스 쌓였는데 본때를 보여 줘야지.”

“킥, 마법이라는 게 규모만 크면 다인 줄 아나.”

화족 동맹의 자제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들었다.

이유야 어쨌든 공격당한 것 아닌가. 명분은 이쪽에 있다. 정당방위라 생각하며 이제껏 참아 왔던 분노를 모조리 터트릴 생각이었다.

몇몇 이들이 눈빛을 교차하더니 진유리 주위를 포위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들이 자랑하는 검을 쥐었다.

공공연히 국민 무기라 칭할 만큼 일본의 검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도검 제작과 같은, 검과 관련된 기술들이 발전해 왔고 그중에는 자연히 검술도 포함됐다.

“죽이지는 않으마.”

“월광의 춤.”

“받아랏!!”

이곳저곳에서 번쩍이는 검광. 일본 특유의, 일점 필살의 검기가 쏘아지고 있었다.

한편, 뒤에 있던 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짤랑-

종소리와 함께 마나가 떠오른다. 사이하고 음습한 검은빛의 마나가 꿈틀대더니 그림으로 그려지고, 이상한 문자가 완성됐을 때.

쇄애애액-!

뱀들이 쏟아졌다.

그 옆으로 토끼, 쥐…… 심지어 날벌레를 비롯한 곤충까지 소환돼 자리를 채워 나갔다.

곧이어 속성이 입혀지는 소환물들.

뱀에는 초록빛 독의 기운이 물들고, 토끼는 대지의 마나를 품은 채 땅 아래로 숨어들며, 곤충들은 빠르게 유영하더니 기묘한 문양으로 변해 대형 마법진을 펼쳤다.

그러고는.

폭격을 쏟아 낸다.

우르르르르륵!!

콰직콰직!

이 또한 일본의 특징이다. 소환술을 베이스로 한 법술과 주술 말이다.

검술과 마법.

일본식 표현으로는 검도와 법술.

사방에서 공세가 몰아친다.

뇌전이 내려치고, 땅이 솟구치고, 또 다른 색의 불길이 불길을 잡아먹으며, 빈틈으로는 형형색색의 검광이 쇄도했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모든 게 무의미했다.

여전히 봄이를 품고 있던 진유리가 무심하게 시선을 주는 순간.

불길이 재차 타오르고.

화르르르륵-!

모든 공격이 무(無)로 돌아갔다.

“…….”

“……허…….”

“……마…… 말도 안 돼.”

이래서 착각이라고 말한 거다.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연합.

수호령이 있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 지역과 수호령이 없는 지역 간의 격차는 존재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못해도 이건 엄연한 사실이었고.

진유리의 날개, ‘용익’이 활짝 펼쳐졌다.

내려치는 뇌전. 마치 핏빛을 닮은 붉은빛 뇌전이 하늘에서 줄기줄기 떨어져 화염과 결합해 나갔다.

그 옆으로 대지의 탑이 솟아오르고, 이를 중심으로 바람과 물방울이 회전했다.

오른쪽으로는 뇌전과 불꽃이, 왼쪽으로는 바람과 물, 대지가.

마나의 기류가 회전, 점점 결합되며 색을 입혀 간다. 뇌전과 불꽃은 새빨간 적색으로…… 바람, 물, 대지는 시원한 청색으로.

솟아오르는 용오름처럼 결합되는 마나들.

그리고.

잠시 뒤, 그 자리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그르르르-!

용(龍).

두 마리의 용이었다.

마룡기로 만들어진 가공된 용이 아닌.

진짜.

실재하는 신수(神獸).

신수 적룡(赤龍)

신수 청룡(靑龍)

강림

두 마리의 용 앞에서 아이들은 대항할 의지도 잊은 채, 털썩 자리에 주저앉는다. 소동에 뒤따른 어른들도 전부 넋을 놓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실수의 연속으로 일어난 사고로 벌어진 결과는.

“계속 까불어 봐.”

힘의 격차였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진유리의 폭주는 내 손에서 적당히 마무리 됐다. 남들이 보기에는 신수까지 불러내고 눈이 뒤집힌 것 같아 보여도, 내가 보기에는 그냥 위력 시위일 뿐이었다.

그 증거로 숲은 태워 먹지 않았잖아.

뭐, 덕분에 내 입장에서는 편하게 됐다.

어머니가 부탁했거든. 화족 동맹 걔들, 기를 좀 꺾어 놓으라고.

“넌 모르겠지만, 걔들 진짜 왕처럼 군림하고 살았어, 그런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어. 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잃은 것도 아니지만 걔들은 진짜 심각하거든. 그래서 왠지 불안해. 뭐라도 사고 칠 것 같아. 기혁이, 네가 경고 좀 해 줘.”

“하하. 경고라면 제 전문 분야죠. 걱정 마세…….”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누굴 때리거나, 피 보는 거 말하는 거 아니야. 그냥 경고야, 경고.”

“……쩝.”

“아쉬워하지 마, 이것아.”

어쨌거나 피는 안 봤으니 이만하면 훌륭한 경고가 아니겠나.

물론 진유리가 흥분한 이유를 들은 순간, 경고가 아니라 사망 신고를 해 줄까 고민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기서 사고 또 치면 어디로 출장 갈지 모른다.

그러면 봄이랑 또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우리 딸 슬퍼하는 꼴을 어떻게 보나.

그나저나 신수라니, 못 본 사이에 진유리도 제법이었다.

진도하와 운룡대가 사용하는 마룡기로 만든 용이랑은 질적으로 다른 진짜 신수.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이에 대해 진유리에게 물어보니.

“에헴! 나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고. 너 가고 나서 수련했지. 그치, 봄이야?”

“응! 응! 봄이도 딸기 언니랑 같이했어!”

“맞아. 봄이도 같이 했어. 우리끼리 얼마나 재미있었다구. 봄이, 그때 재미있었지?”

“엉! 엉! 봄이도 딸기 언니랑 같이 재미있었어!”

“꺄아아악! 어쩜 이렇게 말도 이쁘게 할까. 뽀뽀 백 번 할 꼬야!”

“나두 나두.”

답을 하다 말고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깨를 볶는 봄이와 유리.

……뭐지, 뭘까? 이 복잡한 감정은.

두 사람이 친해져서 좋긴 좋은데, 뭔가 소외된 것 같고 배도 살살 아픈 게……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질투?

젠장, 이제부터 봄이 놔두고 어디 가면 안 되겠다.

나는 이렇게 일본의 일을 마무리하고 난 뒤, 때마침 메리의 전화를 받은 게 그쯤인 것 같다.

만나자는 전화였고, 나는 곧바로 한준우랑 메리를 만날 수 있었다.

한데 자주 가는 카폐에서 두 사람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충격에 빠지는데, 진유리의 신수들을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었다.

“야, 메리. 너 배에 그거…… 설마 임신했어?”

메리의 배에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작고 소중한 생명이 말이다.

“하, 역시 기혁이라고 할까요.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보통은 제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 무슨, 축하한다. 둘…… 아니, 셋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고마워요.”

“고맙다.”

“그럼, 결혼은 언제할 거야?”

“졸업하면 바로 하려고요.”

“졸업이면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식장은 잡았어?”

“식은 나중에 올리기로 했어요.”

“왜? 뭐가 모자라. 내가 도와줄까?”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메리 집안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뭐든, 잘됐네. 잘됐어. 진짜 잘됐다.”

엉덩이가 매력이다 뭐다 할 때 부터 그럴 것 같더니. 진짜 둘이 결혼한다고.

세삼 어린 친구들을 바라봤다.

둘의 나이 22살.

요즘처럼 결혼을 빨리하는 추세를 감안해도 빠른 두 사람이었지만, 걱정은 하나도 안 된다.

어련히 잘 살까. 못 살면 내가 도와주면 된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처음으로 가진 친구다운 친구인데 이런 것 하나 못해 줄까.

실제로 뭐든지 해 준다고 약속했다.

그랬는데, 의외의 제안이 날아왔다.

“진짜예요? 진짜 뭐든 해 주겠다는 거예요?”

“깜짝이야. 왜 그렇게 흥분해?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냐.”

“없어요. 기혁은 제게 거짓말하지 않아요. 그러면 그 부탁 지금 바로 쓸게요.”

“뭐든지 말해 봐.”

메리가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길.

“……저희 집에 같이 가 주세요.”

“집에 가 달라니? 뭐, 집이라도 사 달라고? 아니면 둘이 사는 집에서 집들이한다는 말이야?”

“아니요. 저희 집안, 왕궁, 사우디아라비아요.”

이어지는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왕실의 모든 행사는 왕에 의해 결정된다. 공주인 메리의 결혼도 당연한 말. 그런데 우리의 메리 공주님. 이렇게 사고를 치셨고, 결혼을 하길 바란다.

그러면 왕인 아버지를 설득해야 하는데, 준우만으로는 무리란다.

“저는 우리 그이를 믿지만요. 아무래도 그이의 집안이 아무도 없잖아요. 아버지는 틀림없이 반대할 거예요. 기혁이 함께 가 주세요. 이 나라를 대표하는 혈족인 검호가 후견인으로 있으면 아버지도 뭐라 하지 않을 거예요. 부탁할게요.”

“부탁한다.”

“음…….”

잠시 고민했다.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봄이랑 또 떨어져야 하는 게 그래서 그렇지.

“혹시 봄이도 함께 가도 되냐?”

“물론이에요.”

“그러면 갈게. 우리 사이에 못 해 줄 거 있냐?”

“고마워요. 정말.”

“고맙다.”

그렇게 나와 봄이의 방학 여행이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한편, 꽃가람 유치원.

박봄은 심각한 얼굴로 학 종이를 접고 있었다.

“아래로, 위로, 여기서 쪼끔…….”

봄이가 앙증맞은 손가락을 야무지게 놀리더니 드디어 학 완성!

“히히.”

웃으며 유리병에 넣었다. 이제 반쯤 쌓인 종이 학.

이게 뭐냐면, 봄이의 선물이다!

맨날 아빠한테 받기만 했잖아.

인형에, 대검에, 블록에, 포실이에, 날개에.

“이번에는 내가 줄 거지롱~.”

봄이도 선물을 줄 거야. 마음먹고 고민했는데,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때 어린이집 수업에서 선생님이 학 종이를 접지 않던가.

그러며 덧붙이길.

“선생님이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요. 글쎄, 종이학 1000마리를 접고,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져요. 정말이라니까요.”

봄이의 옆 옆에 있던 민호는 ‘에이~ 선생님. 뻥치시네.’라며 야유했지만, 봄이의 생각은 달랐다.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반면 민호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선생님은 착하고, 민호는 나쁘다.

고로 선생님이 맞다!

학 1000마리는 소원을 들어줄 거야!

‘맙소사! 소원을 이뤄 준다니!’

봄이의 순수 회로가 터무니없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지만, 봄이도 처음에는 자기 소원을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봄이의 소원은 이미 이뤄졌다. 며칠 전에 아빠가 돌아왔잖아. 봄이는 아빠만 있으면 되는걸.

그래서 봄이는 아빠에게 ‘소원’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또 한 마리를 접은 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유리병을 바라봤다.

벌써 절반 이상 찼다. 할머니가 봄이를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던데, 봄이도 유리병을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흥흥. 유치원 마치면 딸기 언니네 가서 ‘예쁜이 할머니’랑 접어야지.”

봄이의 오동통한 손가락이 학 종이를 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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