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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57화 (157/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57화>

시간을 돌려, 이건 송새벽이 박기혁의 차에 타고 있을 때 이야기다.

“새벽아, 복수란 무엇일까?”

일반적인 화두에서 시작되는 고찰.

전형적인 박기혁의 수업이었고, 송새벽은 눈을 빛냈다.

“옛날에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야. 복수란 부질없는 것이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낳고, 악연의 칼날이 결국 모두를 파멸시킬 거라고.”

“최고는 복수할 빌미를 만들지 않는 것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용서의 미덕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해.”

인간은 시작부터가 합리적이지 않다.

박기혁은 그렇게 생각한다.

“저 내용이 맞으려면 인간은 모두 합리적이어야 돼. 자기 객관화가 분명한, 완전무결한 이성을 소유한 생명체. 하지만 인간이란 지성체는 그렇지가 않아요.”

“전쟁만 보더라도 그래. 승자도, 패자도 모두 손해만 나는 게 전쟁이야. 전쟁이야말로 불합리의 극치지. 만약 모든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돼.”

“그럼에도 전쟁은 항상 있어 왔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라는 말도 있을 정도야. 이만하면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지.”

여기서 왜?

“그렇다면 왜? 복수는 부질없다 말하는 걸까. 나는 이걸 철저히 이익 관계로 봤어.”

“복수가 부질없다. 이게 일반화되면 누가 가장 이익을 볼까?”

“위에 선 복수를 당할 대상들이지.”

복수라는 건 결국 승자가 받아들여야 할 업보다.

애초에 남을 짓밟고 올라가지 않았다면 복수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으니까.

“그럼 다시 본론으로.”

“복수란 무엇일까. 아니지. 좀 더 거창하게 말해 볼까? 가장 이상적인 복수란 무엇인가. 난 이렇게 생각해.”

당한대로 되돌려 준다.

“권력으로 짓눌렀다면 권력으로, 힘으로 억압했다면 힘으로. 당한 그대로 되돌려 주는 거야.”

그럼으로써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부정당해,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든다.

“내가 추구하는 최고의 복수지. 어때?”

*   *   *

선글라스를 벗은 송새벽의 눈이 심연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다.

“요…… 요안!!”

오니 요시나오는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다. 오니 가문의 ‘요안’이 왜 저기에 있는 건가.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박기혁을 보지만 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네.”

“메인…… 이벤트라니…….”

“어허, 나한테 집중하지 말고 저기. 네가 집중해야 할 쪽은 저쪽이야.”

요시나오와 송새벽.

두 사람의 요안이 마주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잠시 북받쳐 오는 감정을 추스른 송새벽이 다시 눈에 힘을 주고 상대를 직시하며 말을 잇는다.

“……오니 히미코의 아들. 송새벽입니다.”

“히미코, 히미코…….”

요시나오는 혼란스런 심정을 잠시 멈추고 히미코란 이름을 되뇌다…….

결론에 도달한다.

“……히미코. 오니 히미코!!”

오니 히미코.

맹인으로 태어난 그의 사촌 누이.

솔직히 누이란 표현도 민망하다. 히미코라는 이름은 가문의 오점으로 기억되며, 한참 전에 가문에서 축출되어 사라진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요안을 소유한 자식이 나왔다.

놀란 오니 요시나오의 입이 연신 ‘말도 안 돼.’를 중얼거리며 붕어처럼 벙긋거린다.

“당신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기에 저희 어머니를 버렸는지, 당신들이 말하는 힘과 명예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는지…… 정말, 정말…… 정말 궁금했습니다.”

“…….”

“…….”

불편한 침묵이 내리깔린다.

오니 요시나오는 당황스러움에 말을 못 하고, 송새벽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쳐오니 입이 고장 난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이 공간에 두 사람만이 있었다면, 둘은 지금처럼 망부석이 되어 하염없이 서로를 보기만 했으리라.

하나, 이 공간에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즐기는 시청자 겸 중재자가 있었다.

“그래서, 보니까 감상이 어때?”

박기혁의 물음에 송새벽은 힘겹게 침묵을 깨고.

“실망스럽습니다.”

“……!!”

“그치?”

“화가 납니다. 겨우 저딴 가치 때문에 저희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는…….”

“네놈, 말조심……!”

“조용히 좀 해 봐. 내 ‘제자’가 말하고 있잖아.”

“……!!”

요시나오는 ‘제자’라는 단어에 또 한번 패닉에 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기혁은 빙글빙글 웃으며 제자를 부추겼다.

“어디, 계속해 봐.”

“저는…… 대단할 줄 알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모든 게요.”

이미 그들이 말하는 긍지와 명예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다. 좀 전의 추태가 어지간히 심했어야 말이지.

힘없는 사람들을 모자라다 말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실수, 혹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며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모습.

그들이 말하는 명예는 부질없는 것이었고, 긍지라는 것도 자신들의 부정한 행위를 포장하는 편리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이제 실질적인 힘인데…….

일본에서는 진룡 가문과 오니 가문을 많이 비교하곤 한다.

일본에 오니 가문이 있다면 한국에 진룡이 있다…… 뭐, 이렇게 숙명의 라이벌처럼.

참고로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의 일방적인 관심이다. 진룡은 오니 가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두 가문의 공통점은 많았다.

진룡에 마법을 해석하는 ‘용의 눈’이 있다면, 오니는 마법을 흡수하는 ‘요안’이 있는 것이나.

둘 다 마법 명가인 것을 넘어 각자의 나라에서 마법적 뿌리를 일궈낸 가문인 것이나.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송새벽이 보기에 이건 말이 안 된다.

안 좋은 감정을 버려두고 객관적으로 봐도 말이다.

“저는…… 적어도, 이분이 진유리 선배님 정도의 위엄을 지니고 있을 거라…… 기대했었습니다.”

“풉, 걔한테 위엄이라고 하니까 웃기긴 한데.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진유리가 망나니 소리나 듣고, 다소 덤벙대지만, 그것도 박기혁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다. 송새벽이 본 진유리는 약간은 여자 박기혁? 이런 느낌이었다.

대항 불가의 재앙 같은 기분 말이다.

그에 비해 앞에 있는 오니 요시나오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익! 나를 그런 식으로 보지 마라!”

발버둥 치는 요시나오지만 그는 알까? 그 모습이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 비장했던 분위기는 많이 희석되고, 이제 두 사람 사이에 변화는 극명하다. 송새벽이 후련했다면, 요시나오는 되레 흥분해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아직 그의 시련은 시작도 안 됐는데.

잠자코 있던 박기혁은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음, 좀 더 화끈한 복수를 원했는데. 예상대로네. 새벽이 넌 너무 착해. 나 같았으면 팩트로 후려 패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을 건데.”

“박기혁, 아무리 당신이 대단하다고 한들 내게 이런 모욕을 줄 수는 없다!”

“봐봐. 네가 적당히 하니까 이렇게 길길이 날뛰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뭐 어쩌겠나. 착한 게 죄는 아니잖나.

내가 대신 해 줘야지.

피식 웃은 박기혁이 요시나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너희들 하는 꼴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셀루티스나, 얘들이나 다 나쁜 놈인데 줄 잘 타서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게 역겹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다 지워 버리고 싶다.

만약에 제국 시절 박기혁이었다면 이미 저들은 저승에 있었을 거다.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인걸. 함부로 죽이면 안 되잖아.”

그래서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이 녀석들을 응징할 수 있을까.

답은 쉬웠다.

“오니 가문이라고 했지. 너, 가문 잘 지켜야 할 거야.”

박기혁이 USB를 들었다. 그것은 ‘혈족의 정보’가 들어 있는 메모리였다.

“내가 이걸로 새벽이를 가르칠 거거든.”

낱낱이 파헤쳐서 가르쳐 줄 거다.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극대화시켜, 혈족의 피가 가리키는 가장 이상적인 형질이 완성되면…….

“그때가 되면 오니 가문이 아니라 다르게 불릴 거다. 너희가 가지고 있던 명예, 무력, 금력…… 그 모든 것을 새벽이가 가지게 될 테니까.”

“말도 안 돼…….”

“왜 안 돼.”

“네가 아무리 뛰어나도 혈족을 만든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절대로.”

“정말 불가능할 것 같아? 내가 하는데?”

박기혁의 미소가 짙어진다.

“어디, 한번 보자고.”

받은 만큼 돌려준다.

가문으로 상처 줬다면 가문으로 갚아야지.

이것이 박기혁의 복수였다.

“일어나, 송새벽. 가자.”

“네, 스승님.”

“잠깐, 잠깐만!”

급하게 뒤를 쫓는 요시나오.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일까. 그의 몸짓이 발악하듯 다급해졌고, 막 요시나오의 손이 송새벽의 옷깃에 닿으려 하는데.

“응?”

박기혁이 의문을 표하며 송새벽 앞을 가리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폭발.

부서지는 벽. 휘청거리는 건물.

폭발에 휩쓸린 요시나오가 반대쪽 벽면에 처박히는 가운데, 송새벽은 폭발 속에서 누군가를 마주하는데.

화려하게 춤추는 불길.

닿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비현실적인 불길 속에서.

아이를 안아 든 채 거대한 용의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여인.

아무리 봐도 저 사람.

“……유리 선배님?”

“봄아?”

진유리였다.

진룡 진유리.

봄이를 안아 든 채 완전히 눈이 뒤집힌 진유리였다.

*   *   *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속담이었고, 이 사고가 그러했다.

화족 동맹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은 서울 근교의 어느 별장.

별장이라고 했지만 거의 산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내서 살고 있었다.

이런 산속이다 보니 담배를 피울 만한 곳이 없다.

뜬금없이 담배는 왜?

이 담배야말로 이 사고의 근원이었다.

화족 동맹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곳은 다름 아닌 거주지 옆 공터. 사실 공터라기보다는 산속에 적당히 있는 평지였다.

“제엔장~ 우리 언제까지 시골구석에서 있어야 돼? 일본에 돌아가면 안 되는 거야?”

“지금 가면 돌 맞을걸.”

“분위기 안 좋아. 키사메 말대로 지금 가면 온갖 욕은 다 먹을 거야.”

“헹. 2등 신민 주제에 제깟 놈들이 그래 봤자지.”

그리고 그중에는 여자들, 속된 말로 박기혁과의 혼인 동맹 후보들도 있었는데.

“야, 냄새 풍기지 마.”

“지도 피고 있으면서.”

“내 건 전담(전자담배)이거든! 그런데 나 화장 잘 먹었어? 다시 봐야 하나.”

“이게 기혁 상이라 했지. 생긴 건 그저 그런데.”

“키가 2미터가 넘는데.”

“에에에~!”

“대단해에!”

“검호 가문 자제잖아. 엄청나겠지?”

“키 차이가 조금 나지만…… 노아랑 잘 어울릴 거야.”

“내가 보기에는 메이가 더 잘 어울려 보여. 일단 이목구비가 비슷하잖아.”

찌릿찌릿.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 세상 한탄을 하고,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모여 서로 띄워 줌과 동시에 견제하는 와중이었다.

이렇게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운데, 근처를 지나치던 한 아이가 우연히 장난감을 떨어트리게 되고.

“이게 뭐야?”

“피규어인데…….”

“아! 이거 나 알아. 이거 캡틴 타이거일걸. 요즘 한국에 유행한다는 전대물 주인공.”

“에에~ 이게?”

아이는 산 아래를 내려와, 담배를 피우는 무리 앞에서 겁도 없이 자신의 보물을 돌려 달라 주장했다.

“돌려주세요. 봄이 거예요.”

“헤에~ 카와이!”

“귀여워. 완전 애기애기잖아.”

“저 병아리 모자, 유치원복이지? 한국 유치원복 너무 예뻐!”

“근데 뭐라는 거야? 통역기 있는 사람.”

“돌려 달라는데? 뽀미 거래.”

“이름이 뽀미야?? 완전 귀엽잖아.”

“귀엽긴. 건방지구만.”

“맞아. 사과부터 해야지. 하여튼 조센징들 죄다 반골이라니까.”

그들은 우연히 만난 이 뽀미란 아이가 그들이 꼬드겨야 할 박기혁의 딸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다.

알았으면 저렇게 못 했지.

“자, 여기 와서 가져가 봐. 웃차.”

“돌려주세요오오!”

“잡으면 줄게! 자, 받아. 패스!”

“돌려주세요오오!”

“야아! 애 대리고 뭐 해? 킥킥.”

“그래그래, 적당히 봐주라. 좀.”

봄이를 가지고 장난치는 무리.

봄이는 인형을 잡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그들은 중앙에서 농락하듯 인형을 던져 댔다.

“그만해! 내 인형 돌려줘!”

“싫은데!”

“너희들 아주 나쁜 사람이야. 인형도 안 주고 숲에서 불장난하는 것도 다 나빠!”

“뭐래?”

“우리보고 숲에서 담배 피운다고 뭐라 하네.”

“허? 쪼끄만 게?”

원래라면 화족의 자제로서 아무리 안하무인으로 자랐다고 한들 아이에게 이 정도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말릴 새도 없이 봄이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고.

“……흐끅, 흐끅. 으아아아앙!”

결국 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순간.

“봄이야아아아!”

마치 아기 곰의 울음에 어미 곰이 등장하듯 진유리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상황을 목격하고 만다.

“딸기 언니이이이.”

“이리 와. 우리 봄이 괜찮아?”

울고 있는 봄이를 들어 살피는데.

봄이의 이마가 붉게 물들어 있는 거 아닌가. 이건 누가 봐도 맞은 거였다.

진유리의 사고 회로가 빠르게 결론을 내렸고.

봄이의 주위에 떠오르는 붉은색 문자들.

차단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3.

2.

1.

진유리 폭발.

콰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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