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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52화 (15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52화>

절차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미 사태는 벌어졌고,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다.

핸드폰을 본다.

역시나 먹통이다. 레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는 증거다.

통신도 제대로 되지 않는 현재, 이것저것 주고받다가는 이미 늦는다.

마법 통신구를 들었다.

- 기혁아……?

“형,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설명은 최대한 간단히.

도쿄를 중심으로 세 곳에 레드 게이트가 생성.

저쪽에 있는 예티와 미노타우르스, 파이어 버그.

이들의 목표는 다름 아닌 도쿄였다. 안 그래도 ‘기적’이다 뭐다 해서 인간들로 가득 차 있는 도쿄 말이다.

“……난 곧바로 도쿄로 향할 거야.”

- 곧바로?

“계획 세우면 늦어. 일단 가서 생각해야 돼.”

- 안 돼, 기혁아. 아무리 너라도 혼자는 벅찰 거다.

“시간 없다니까.”

- 그러니까. 이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는데 굳이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난 우리가 이미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형, 지금 내가 동정심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분명히 말할게. 난 지금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야.”

까놓고 말하겠다.

저들의 죽음?

조금은 불쌍하다.

초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눈이 멀었고 힘을 찾았으며, 그 결과 농락당한 후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만으로는 손가락질할 필요 없다고 본다. 속인 놈이 잘못이지 속은 사람에게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잖나.

이미 저들은 농락당하고 있고, 굳이 내가 뭐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죗값을 받을 것이다.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의 몸으로.

물론 힘에 취해 미친 짓을 한 놈들도 있지만…… 지금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짐승 새끼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쨌든 불쌍하다.

이해도 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내가 얼굴도 보지 못한 인간에게 보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선이었다.

그리고 난 기본적으로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 아니다. 지금 나를 움직이는 건 냉철한 이성이었다.

“몬스터에게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영양원이야.”

몬스터가 괜히 본능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겠나?

펄떡펄떡 뛰는 장어를 보며 우리가 보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끝없는 잠재력을 지닌 인간은 몬스터에게 지상 최고의 명약이다.

“근데 이 아크 엔젤이란 놈은 인간을, 그것도 거의 수천만 인간을 꿀꺽하려는 중이야.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전생에 나도 최대로 많이 본 게 십만 명이다. 어느 소국의 왕이 훼까닥 해서 미친 짓을 벌였고, 그 결과로 대악마가 출현한 것이 한 나라의 멸망을 불렀다.

십만이 이 정도인데 백만도 아니고 천만. 이 정도 단위까지 오면 숫자로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나로써도 가늠이 되지 않으니까.

“형, 난 말이야. 변수가 싫어.”

통제되지 않는 변수는 불안이다. 난 이 세계에서조차 불안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이미 난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봄이, 그리고 내 어린 친구들…….

“내가 좀 피곤하더라도, 없애야겠어.”

- ……

형은 잠시 침묵하더니.

- 알았다. 내가 뭘 도와줘야 하지?

“그게…….”

통신이 끊긴 뒤, 타는 듯한 열기에 뒤를 돌아본다.

불길이 다가오고 있다. 파이어 버그가 일으키는 파멸의 불꽃길이.

시간이 없다.

나는 파공성을 일으키며 하늘을 꿰뚫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박기혁의 시야에 도쿄가 비친다.

“…….”

일단 도시 외곽을 따라 비행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다. 아무리 급해도 정찰을 빼놓을 수 없다.

‘대(對)마법 방어진 베이스…… 감시 마법도 깔려 있고, 신성 보호막도 역시나 있고…….’

첫 감상은, 방어 수준이 상당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했던가. 아크 엔젤이란 놈, 아예 맹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박기혁이었다.

주요 길목마다 떨어지는 스켈레톤들.

이들의 역할은 주변 정찰 및 만약을 위한 퇴로 확보였다.

박기혁의 머릿속에 스켈레톤들이 보내 준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면 완성.

이것으로 정찰은 끝났다.

“그러면.”

박기혁의 눈이 차갑게 도쿄를 향한다.

점심이 조금 넘은 시간. 태양은 따사롭고 날씨는 좋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모습.

저들에게 어떻게 위험을 알릴까?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서 파이어 버그가 불길을 머금으며 몰려오고 있다. 또 반대편에서는 집채만 한 미노타우로스 무리가 군침을 삼키며 달려오고 있다.

심지어 이 재앙의 원흉은 너희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수호령이란 존재며, 수호령은 너희들을 죽이려고 한다.

과연 대화로 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박기혁은 이에 대해 고민해 봤고.

결론은 ‘턱도 없다’였다.

‘그 정도로 이성적이었으면 이런 사태가 벌어졌게.’

그래서 생각한 것은 다소 과격한 방법.

세 살배기 꼬마도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게, 아주 직접적인 경고를 해 주기로 했다.

육망성 마법진이 떠오른다.

이제는 박기혁의 상징이 된 아포칼립스.

조준, 도쿄 상공.

위력은, 최대한 요란하게.

대마법 방어진? 신성 보호막?

모조리 부숴 버린다.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아포칼립스를 장전했다.

우―

고요한 울음과 함께 아포칼립스의 출력이 솟구치며 마나 드레인이 발생, 일대의 마나가 모조리 마법진으로 흡수된다.

일어나는 돌풍, 주변의 풍경이 색을 잃는다.

마치 흑백 사진의 풍경처럼, 생기가 담긴 모든 생명들이 마나를 빼앗겨 시들어 버렸다.

그렇게 주변의 마나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며 크기를 키워 가던 아포칼립스가 압축, 휘몰아치며 박기혁의 손에 안착하고.

“후웁!”

발현, 쏘아졌다.

아포칼립스

(Apocalypse)

충격적인 폭발도 없었다.

이렇다 할 굉음도 없었다.

그저 도쿄에서 하늘이 사라졌을 뿐이다.

검은 섬광이 터지며 어둠이 증식하듯 번져 갔고, 도쿄의 태양을 빼앗아 버렸다.

도시 곳곳에 경보가 울린다. 비상사태를 울리는 경보. 이와 함께 거리를 배회하던 사제들이 눈을 빛내더니, 날개를 펼쳤다.

촤르르륵.

약속한 듯 날아오르는 타천사들.

날개를 펼치자, 어둠에서 빛이 반짝인다. 어둠으로 물든 도시가 일순간 다시 빛을 찾을 정도로 타천사의 숫자는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긁어모은 거야.”

이에 쫄 박기혁이 아니다.

냅다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렬한 환영에 답하듯 맨주먹으로 가장 선두에 선 타천사를 터뜨려 버렸다.

퍼엉-!!

추락하는 육편, 흘러내리는 핏줄기. 비릿한 혈향을 마시며 박기혁이 섬뜩하게 웃는다.

그 순간 마치 갈기처럼 온몸에 돋아나는 마법진들.

어느새 손에 쥐어진 마귀.

“여기서 끝을 보자.”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 개시.

*   *   *

도쿄의 하늘을 삼킨 어둠.

타천사가 날아오르고, 이에 습격자 박기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쿄의 하늘이 전쟁터로 변하자 시민들은 이 소란에 화들짝 놀라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때를 맞춰 박기혁의 육망성이 다시 하늘을 메운다.

비축해 놨던 ‘제물’을 아낌없이 사용해 가며 만든 대규모 마법진이 빛을 토해 내는 순간.

흑마법 소환

위스퍼(Whisper)

흐릿한 안개 뭉치가 등장한다.

접촉한 상대에게 ‘속삭임’으로 암시를 거는 마수, 위스퍼였다.

도쿄 시내로 위스퍼 떼가 우수수 쏟아졌다.

마치 소나기처럼 추적추적 내린 위스퍼는 싸움을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접촉,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심층 정신을 자극했다

“아크 엔젤, 기적, 사기, 기망, 수명 단축, 이능, 생명…….”

“현재, 도쿄, 위험, 몬스터 군단 습격, 위험, 도망…….”

지금 당장 ‘너희들은 속고 있다!’라고 말한다 한들 이 사람들이 ‘그렇군요!’라고 순순히 동의할 리 없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정신계 마수인 ‘위스퍼’다.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머리에 때려 박아 주마.

하늘에서 위스퍼가 끝없이 내려온다. 시민들은 정신에 박히는 진실에 머리를 잡고 괴로워하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셀루티스의 사제들이 급히 나서 보는데.

“그러면 안 돼지.”

박기혁이 이를 두고 보지만 않았다.

귀를 막고.

흑마법 저주

앵그리(Angry:분노)

눈을 멀게 하며.

흑마법 주술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혼란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흑마법 저주

컨퓨즈(Confuse:혼란)

“으아아아아악!!”

“살려 줘어어어!!”

시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달려간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시민들.

사실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다.

저주 ‘앵그리’로 가슴은 이미 쿵쾅거리며 도저히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여기에 ‘할루시네이션’이 보여 준 환각에서는 미노타우로스가 도시를 부수고, 파이어 버그가 사람들을 불태우고 있다.

이미 이 상태로도 혼란스러운데 여기에 ‘컨퓨즈’로 혼란을 가속하자, 위스퍼의 축축한 음성이 마치 신의 계시처럼 들려오는 거다.

셀루티스의 사제들이 말려 보지만 폭주하는 시민들을 막기에는 명백히 역부족.

“진정하십시오, 형ㅈ…….”

“비켜어어!!”

설상가상 저주의 전염으로 인해 그나마 견디던 견습 사제들이 하나둘 혼란 상태에 빠지자, 도시 전체가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박기혁이 원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

저주를 활용해 멋지게 시민들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걱정도 하지 않은 전투에서 박기혁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바로 여기, 이 세 사람 때문에.

풀 플레이트 아머와 타워 실드, 메이스를 든 대사제 요한나와.

“불신자여, 회개하라!”

셀루티스의 성물을 든 채 끔찍한 회복력을 보여 주는 대사제 아미트.

“구원만이 자유리라.”

그리고 마지막, 셀루티스 일본 지부장이자, 이번 사태의 실질적인 원흉.

대사제 가토.

“관심을 끄셨다면 좋았을 것을.”

이 세 명의 대사제가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기혁의 상대는 타천사와 네임드 타천사인 ‘구원자’였다.

그들은 몬스터 특유의 질긴 재생력을 바탕으로 육탄 돌격했고, 이런 가운데 섭취한 혈족을 발현해 박기혁에게 치명상을 노렸다.

알아도 충분히 위협적인 패턴.

그러나 아무리 인간을 섭취해 지능을 얻었다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다. 본능에 충실하고 공격의 수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무엇보다 박기혁은 타천사를 지겹게 상대해 본 몇 안 되는 인간.

검술과 마법, 거인의 힘으로 착실히 숫자를 줄여 가고 있었다.

그때, 순조로운 전장에 세 명의 대사제가 나타난다.

중무장한 대사제 요한나가 온몸에 성갑을 두른 채 몸을 들이밀었다. 둔한 상대, 당연히 박기혁의 마귀가 요한나를 베었지만.

깡-!

막혔다.

처음으로 마귀가 막혔다.

“그냥 갑옷이 아니다! 아크 엔젤 님의 은혜! 아크 엔젤 님의 사랑!!”

신성을 두른 것도 모자라, 약간의 ‘신격’까지 갖춘 진짜 ‘성갑’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그녀의 메이스 또한 신성이 담긴 성물.

박기혁이 내려치는 메이스를 막아 냈는데, 불가사의한 힘에 뒤로 튕겨 나간다.

넉백(Knock-back).

신성으로 구현된 넉백이다.

귀찮은 능력으로 무장한 요한나. 직접적인 타격은 없지만 일대 다수에서는 오히려 저런 귀찮은 부류가 훨씬 까다로운 법이다.

이를 잘 아는 박기혁은 거인의 힘으로 이 귀찮은 적을 단숨에 찌그러트리려 했는데.

여기서 또 다른 대사제 아미트가 성물을 꺼냈다.

“시간의 자유!”

시간 제어.

박기혁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 거인의 주먹이 닿기 전 요한나가 마치 ‘블링크’를 쓴 듯 사라졌다. 절대 녀석이 낼 수 없는 속도였다.

이것이 아미트의 성물. 일정 영역 내의 시간을 조작해, 아군을 돕거나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

그나마 박기혁이 거인의 힘을 지녀 본체의 시간까지 조작하지는 못해서 망정이지, 만약 일반적인 초인이었다면 조작된 시간에 당황하다 전황이 역전됐을 거다.

그러나.

여기까지 나왔을 때만 해도 박기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얘들도 명색이 3대 빌런인데 이런 한 수 정도는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요한나가 아무리 귀찮아도 그 옛날 제국 시절 야만전사 녀석들보다 못하고, 아미트의 시간 조작이 사기적이라도 박기혁은 이미 그 상위 격인 성녀의 ‘현실 조작’도 겪어 본 사람.

당하는 건 한 번이었다. 곧바로 대처에 나섰다.

그런데 마지막 가토. 이 가토가 문제였다.

녀석의 힘은 가장 직관적이며, 단순하다.

불꽃.

외형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불꽃이랑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박기혁도 이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팔로 막아 냈고.

이내 후회하게 된다.

“……!!”

쿠웅-!

아찔한 화기가 엄습하더니 뒤로 나가떨어진 것.

“저의 신앙을 담은 ‘성화’입니다.”

성화(聖火).

방어 불가. 확정 피해.

트루 대미지를 지닌 불꽃.

하나, 박기혁은 이 성화의 정체를 곧바로 파악했다.

“개자식아, 인간을 태워?”

“어차피 인간은 죽습니다. 아크 엔젤 님을 위한 거름으로 사용된다면 이 또한 축복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성화’는 인간의 생명력을 태워 만든 불꽃.

말 그대로 방금 일으킨 ‘성화’ 한 번에 인간이 제물로 바쳐진 것이었다.

성갑, 성물, 성화…… 여기에 타천사와 구원자.

게다가 시간이 지나고, 전투가 지속될수록 셀루티스의 정예 사제들이 합류해 왔다.

하늘에는 타천사와 구원자.

땅에는 정예 사제단.

정면에는 세 명의 대사제.

도시 전체가 박기혁 한 명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심연의 망토, 마룡기 ‘전우’가 박기혁에 둘러지는 순간.

하늘에 다시 검은 파도가 몰아쳤고, 곧이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치는 것은.

스켈레톤.

망토를 두른 스켈레톤 군단이었다.

“진흙탕 싸움은 이쪽 전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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