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51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 것처럼,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수반된다.
만약 누군가가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도저히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일단 목적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 목적 역시 굉장히 극단적인 확률이 높으니까.
여기 테이블에 놓인 ‘이것’처럼.
“신기하네.”
역십자 형태의 엠블럼.
보기에는 별거 없지만 엄연히 아티팩트다. 그것도 꽤 수준 높은 아티팩트 말이다.
광신도들의 머리, 뇌 정중앙에 박혀 있던 아티팩트.
처음에 이걸 봤을 땐 흔한 광신도처럼 ‘세뇌’ 혹은 ‘암시’ 같은, 정신 지배 용도인 줄만 알았다. 영혼에서 기억 추출도 안 되는 것을 보고 확신했었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여기 대사제의 두개골 안에서 나온 역십자 엠블럼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믿음’을 추출하는 아티팩트라…….”
예전에 한 번 말한 적 있다.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녔고, 인간의 믿음은 이름 없는 존재를 신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대사제의 역십자는 하위 사제의 역십자와 연결돼 있고, 이 역십자는 하위 사제들의 믿음을 추출, 저장한다.
어떠한 동의 없이 강제로.
“이야…… 이제 좀 알겠네. 왜 ‘기적’이란 시답지 않은 짓거리를 하나 했더니, 골수까지 뽑아 먹겠다는 거였구나.”
‘기적’이란 말 같지도 않은 짓으로 이능을 사용하게 해 준다.
자신의 수명이 줄어드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이능을 사용하는 인간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생체 에너지원이 되어 믿음을 추출당한다. 그것도 가장 순도 높은 ‘생명력을 태운 믿음’을 말이다.
밑에 있는 놈들이 죽으면 죽을수록 더 많은 믿음을 회수할 수 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처음부터 아크 엔젤에게 일본은 차지할 대상이 아니다. 제물이었다. 본인의 ‘신격’을 위한 제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고로 놈은.
“다 죽일 셈이구나.”
도쿄에 있는 인간을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다.
……
…
그런데 말이야.
아까부터 느낀 건데.
“왜 여기서 ‘기간트’ 냄새가 나지?”
* * *
도쿄도 청사 최상층.
아크 엔젤과 셀루티스 교황이 함께한 자리에서 가토가 현 전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해안 기지를 따라 개입한 파이브 시스터즈로 인해, 사실상 자위대는 무력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습격자로 인해 방어선의 4할이 소실됐으며, 이는 현재도 계속해서 진행 중으로…….”
“습격자의 정체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한국의 옵티멈이 제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점과 진룡과 검호가 최전선에 배치됐다는 점에서, 습격자가 검호 가문의…….”
“일련의 사태로 현재까지 집계된 순교자는…….”
가토의 브리핑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크 엔젤은 역십자 넥클리스를 바라보고 있다.
한결같이 무료한 얼굴.
교황 역시도 그딴 것에는 관심 없다는 것처럼 책을 보고 있다.
사실 말하고 있는 가토도 둘과 다를 바 없다. 지나치게 건조하다. 순교자들을 입에 올리며 ‘안타깝게’라는 단어를 언급하는데, 정작 어떠한 감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지고 보면 혼란의 주역들.
그들에 의해 죽은 인원들이건만, 셋은 마치 딴 세상 이야기처럼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크 엔젤의 신경을 건드는 건 따로 있다.
아크 엔젤의 눈동자에 비친 역십자 넥클리스. 바로 이 믿음, 믿음이 부족하다.
“가토.”
“네, 아크 엔젤 님.”
“저기 아래.”
통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쿄, 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글바글, 개미 때처럼 움직이는 인파들.
아크 엔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많아.”
“죄송합니다. 그것이…….”
“조용.”
저들은 죽음으로 연료가 되는 존재들. 계획대로라면 저 중 절반 이상이 벌써 ‘순교’됐어야 할 운명이다.
그런데 왜 멀쩡히 살아 있는 건가.
이에 아크 엔젤은 긴말하지 않았다.
“줄여.”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저 아래에 보이는 인간이 얼마나 죽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죽은 목숨이니까. 자신의 생명력을 태워 아크 엔젤의 연료가 될 인간 배터리들.
‘기적’을 받은 시점에서 그들의 죽음은 예정된 사실이었다.
허리를 굽히며 문을 나서는 가토.
잠시 뒤, 대규모 인원이 도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 * *
이제 셀루티스의 목적이 분명해졌다.
신격. 그들은 아크 엔젤에게 ‘신격’을 부여할 생각이다. 일본이란 나라를 통째로 제물 삼아 말이다.
역대급 스케일의 학살.
여유가 없어졌다. 빨리 아크 엔젤이란 놈을 해치워야 한다. 박기혁과 일행들이 발 빠르게 셀루티스의 방어진을 해체해 나갔다.
“부탁해, 형.”
“걱정 마.”
포메이션은 간단했다.
박수혁이 선봉에서 달려가고, 박기혁과 마룡기 ‘전우’를 착용한 스켈레톤 군단이 뒤를 따랐다.
자연히 선봉에 온갖 공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선봉에 서 있는 건 박수혁. 무결점의 검사인 그다.
여기에 마룡기 ‘크라운’까지 갖춰진 현재.
극단적으로 말해 박수혁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의 마법에 절대 피격당하지 않는다.
“비틀려라.”
이른바 왕의 권역 아래에 있는 모든 법칙을 정하는 사기적인 능력. 마룡기 ‘크라운’을 쓴 박수혁으로 인해 모든 마법과 함정들이 무력화됐다.
한편 박수혁이 온갖 어그로를 끄는 사이, 박기혁과 스켈레톤 군단은 세워진 방어벽을 향해 돌진, 온갖 마법진으로 강화된 마법 합금 벽을 향해 몸을 부딪쳤다.
그 모습이 마치 검은 파도와 같았는데.
“부숴!”
쾅!
“뚫어!”
콰앙-!
“밀어!”
콰아- 앙-!!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첫 번째에 마법진을 벗겨 내고, 두 번째에 마법 합금은 금이 갔고, 세 번째 어깨 빵에 결국 방어벽이 부서졌다.
이처럼 압도적인 파괴력과 물량으로 셀루티스의 방어선을 무력화시키는 가운데, 박민지는 특유의 신속으로 그녀에게 꼭 맞는 임무를 맡는데.
바로 지휘부 무력화.
“손들어. 허튼 짓하면 벤다.”
“……그부ㄴ…… 커헉!”
“다음은 오른팔이야.”
마룡기 ‘탈라리아’ 덕에 공간을 점하게 된 그녀는 재빨리 방어진의 지휘부를 납치 및 제거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지금 셀루티스, 그러니까 아크 엔젤은 여기 견습 사제들을 모조리 ‘순교’시킬 생각이다. 그들의 죽음이야말로 ‘신격’ 완성에 가장 좋은 재료가 되니까.
즉 다시 말해, 여기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는 건, 오히려 아크 엔젤을 도와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지휘부를 납치 및 제거하며 혼란을 야기해, 그들의 지휘를 받는 ‘견습 사제’들을 무력화시킨다.
“여러분을 다치게 할 생각 없습니다. 모두 무기를 버리세요.”
“살고 싶은 놈 꿇어라.”
“한 번만 말할게. 움직이지 마.”
수만의 인파가 겨우 세 사람에게 무력화됐고, 이들은 곧 급파된 옵티멈 요원들에게 인계된다.
여기에 박기혁은 하나 더 준비했는데.
“이게 아크 엔젤과의 ‘연결’을 차단할 마법진이란 거죠?”
“연결이 차단된다면 쟤들이 말하는 ‘기적’도 사라지는 건가요?”
“네, 평범하게 돌아갈 거예요. 그 가운데 몇몇 과도하게 생명력을 남용한 자들은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당황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쉽게 만들었으니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어때요. 가능하겠습니까?”
“일단 보기에는 충분히 할 수 있어 보이는군요. 짧은 시간에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사용하나요. 주문서? 아티팩트?”
“그럴 시간 없어요. 그냥 몸에 새겨요.”
“……!!”
“……몸에 말입니까?!”
“네, 문신처럼요.”
“……거부감이 상당할 건데요.”
“제가 알 바인가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일종의 주홍 글씨군요. 독합니다.”
“훗. 독하긴요. 살려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닌가요.”
대사제의 머리에서 추출한 역십자 아티팩트를 분해해 ‘연결’을 차단시키는 방법을 구현해 낸다.
물론 영구적인 건 아니다. 어림잡아 한 달짜리 차단 마법진.
근본적인 원흉인 ‘역십자’를 적출해 내지 않는 이상 연결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관있나.
박기혁을 비롯해 박수혁, 박민지……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이들은 한 달 이상 이 사태를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
“아빠.”
“푸하하하하하! 내 새끼들, 이 아빠가 왔도다!”
“도하 아저씨, 도민 아저씨. 전부 오셨네요.”
“기혁 님이 고생하고 있다는데 지기인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제 저희 운룡대도 거들겠습니다.”
검호 박건과 진룡 진도하.
그리고 진도민을 비롯한 운룡대까지.
사실상 최정상급 전력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셀루티스의 방어선은 속수무책으로 뚫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방어선을 견고히 쌓으면 뭘 하나.
그 안의 내용물은 실력이고 나발이고 유통 기한 1년짜리 초인인 것을.
“저거, 저거, 검은 파도가…….”
“요, 용이다! 용이야!!”
“도…… 도망가야 해. 이건 개죽음이야!”
“정신 차려! 모두 배운 대로 성가를 불러라! 아크 엔젤 님이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지원 병력이 올 것이다! 조금만 막아…… 커흑!!”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거의 도쿄 주변의 방어선을 싹 걷어 낼 동안, 정예 병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저들이 바보도 아니고, 견습 사제로 만든 방어선으로 이 전력을 막을 수 있다 생각한 건가?
이런 의문이 들 때쯤.
박기혁과 일행들은 충격적인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데.
“허…….”
“미친.”
“……대체 무슨 짓을.”
시산혈해(屍山血海).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는 끔찍한 현장.
피를 머금고 요요하게 빛나고 있는 마나의 문.
레드 게이트(Red Gate).
그 속에서 차가운 냉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건.
트윈 예티.
짐승형 몬스터이자 중형 몬스터인 ‘트윈 예티’가 빙하의 숨결을 내뱉는다.
우- 우! 우우-!!
셀루티스가 계획한 최후의 방어벽, 레드 게이트가 몬스터를 토해 내고 있었다.
* * *
쏟아지는 트윈 예티를 막는 가운데, 나는 급히 몸을 빼서 다른 지역으로 날아갔다.
이미 뒤를 생각하지 않는 놈들이다. 겨우 하나로 끝날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얼마 안 가 적중했다.
“이 미친놈들이.”
아까는 시체의 산을 쌓아 놓더니, 이번에는 역십자에 시체를 묶어 놓고 세워 놨다.
악마도 혀를 내두를 만큼 잔인한 광경. 그리고 여기에도 어김없이 레드 게이트가 요요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토해 내는 몬스터는 중형 몬스터인 미노타우르스.
콧김을 뱉어 내며 나온 그들은 근처의 시체들을 보더니, 으적으적 맛있게 먹었다.
“……사탄도 울고 가겠구만.”
이걸로 끝이면 다행이겠건만, 아직 내 감각에 걸리는 마법 파장이 하나 더 남았다.
다시 날아간다.
마법진이 내 몸을 감싸고 소닉 붐을 일으키며 단숨에 허공을 쇄도했고, 곧이어 내 눈에 비친 화염 줄기.
끔찍한 시체는 없다. 다만 불타고 있다.
파이어 버그.
길이 3미터짜리 불꽃 파리들이 사방으로 불꽃을 옮겼고, 땅 아래는 화염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자식들.”
세 개의 레드 게이트.
쏟아지는 몬스터.
이들은 본능적으로 인간이 많은 곳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 근처에서 가장 인간이 많은 곳은.
도쿄.
녀석들, 도쿄를 통째로 무덤으로 만들 셈이다.
“……선 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