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50화>
“봄이가 만들어 줬어!”
박봄이 앙증맞은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턱을 치켜세웠다.
나름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지은 것인데, 어쩜 이리 하찮…… 아니, 귀여운지.
진유리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오구오구, 그래쪄요. 우리 봄이가 아빠 마룡기 만들어 줘써요.”
“응! 아빠가 고민하기에 봄이가 해결해 줬지! 에헴!”
“우와아, 대단해에!”
솔직히 박기혁의 마룡기에 대해서는 진유리도 모른다. 그날, 모두가 만들 때가 아닌, 나중에 혼자 만들었으니까.
딱히 만들 게 없다 했던가. 자신은 이미 완벽하다고.
재수 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리를 하며 어머님 거나 만들어 드릴까…… 한참을 고민했던 박기혁이었다.
‘어머님이 한사코 거절하지 않으셨다면 진짜 만들어 드렸을걸.’
진유리가 곁에서 지켜본 박기혁은 이미 강함에 초탈했다.
특히나 미국을 갔다 오며 그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 기간트랑 뭘 하고 놀았는지,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설마 레드 드래곤이 줬다는 재료, 줘 패서 뺏은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간이 어떻게 수호령을 이겨.
어쨌든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해진 박기혁.
그래서 진유리는 궁금했다.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과연 기혁이의 마룡기는 어떤 형태일까.
잘하는 것.
필요한 것.
원하는 것.
마룡기를 만들 때 던진 질문들이다.
‘기혁이가 잘하는 것? 다 잘하지.’
‘필요한 것? 없어. 다 잘하는데.’
‘원하는 것? 없어. 원하면 당장 가질 수 있잖아.’
도저히 예측이 안 된다.
그러던 중 혹시나 해서 봄이에게 물어봤는데, 봄이가 자기가 만들었다며 이렇게 우쭐해하고 있는 거다.
“아빠가 봄이 안고 그랬어. 이미 ‘완성’돼서 필요한 게 없다구!”
“그래서?”
“그래서 봄이가 말했어! 아빠는 봄이가 필요한걸? 아빠도 봄이가 필요하다고 하며 뽀뽀해 줬어.”
“허업~! 언니도 해 줄고야. 100번 해 줄고야.”
“히히히. 뽀뽀.”
쪽쪽쪽-
“이렇게 아빠랑 뽀뽀하는데 갑자기 궁금한 거야!”
“뭐가?”
“완성이 뭔지.”
“아하! 봄이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겠네.”
“나도 이제 알아. ‘가득 찼다’는 뜻이야!”
“음?”
“컵에 물이 가득 차면 완성이라 했어.”
“어, 비유라면 비슷한데.”
“아빠라는 그릇에 물이 가득 차서 더 부으면 넘칠 거라 했어.”
이미 박기혁의 그릇은 가득 찼다. 이제 그의 발전은 시간의 영역이다. 그릇을 성장시키는 것뿐이다. 영약이나 기물, 무구 같은 외부의 요소로 성장할 시기는 일찌감치 지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던 박봄은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해 준다.
“나눠 주라고.”
“……!”
아빠는 이미 많잖아!
나눠 주면 되지!
봄이가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이 그랬어. ‘친구’는 서로 나누는 거야!”
* * *
“마룡기.”
마룡기
전우(戰友)
솨아악-
심연의 망토가 증식한다.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열이 되고, 스물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고.
나의 뒤로 심연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그리고 심연 속에서 번뜩이는 귀기.
스켈레톤.
마왕의 군세이자.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킨 충실한 종이자.
친구.
‘전우’였다.
마룡기 ‘전우’를 두른 스켈레톤이 몸을 일으켰다.
우드득, 뼛조각이 재조립된다. 본래 스켈레톤의 사이즈보다 한층 더 커지더니, 종국에는 나와 비슷해졌다.
그러고는 ‘말’한다.
“명령을.”
사념이 아니다. 진짜 말이다.
진실로 의지를 담은 ‘언령’.
마룡기 ‘전우’.
나의 일부를 나눠 작은 ‘나’를 만드는 무구였다.
“모조리 부숴.”
명령이 떨어졌다.
스켈레톤의 눈에서 푸른 귀기가 한층 더 깊이 타오르고.
쿵-!
스켈레톤들이 땅을 박차고 돌진, 검은 망토들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기존의 스켈레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 아니, 이제는 ‘스켈레톤’이라 부르는 게 맞을까 싶다.
뼛조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외형, 신체 스펙, 마나량 어느 것도 기존의 스켈레톤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저걸 스켈레톤이라고 명명해야 할지도 헷갈린다. 이건 나보다 적으로 마주한 저 녀석들이 더 실감할 거다.
“스켈레톤 워리어다!!”
“막아-!”
“전부 실드 발동해!!”
“함정팀! 함정팀! 여기로 모여!!”
건물로 만들어 놨던 방어벽 위로 마법진이 빛나며, 실드가 덧입혀졌다. 이어서 주변으로 확장되는 마법진. 마치 거미줄처럼 방어 진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더니…….
마법 함정들이 발동됐다.
한쪽에서 땅이 솟구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땅이 푹 꺼진다.
뇌전의 감옥이 세워지고, 활짝 핀 얼음 꽃이 냉기를 전염시켰다.
하지만.
“뭐…… 뭐야, 저거!”
“죽지 않아!!”
“스, 스켈레톤 워리어 아니었어?!”
스켈레톤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솟구친 땅을 어깨로 부숴 버린다.
푹 꺼진 땅? 한달음에 날아올랐다.
뇌전의 감옥은 맨몸으로 뚫고 나오고, 얼음 꽃이 피운 냉기 역시 견뎌 내며 통과해 버렸다.
“마법 저항력인가. 멋지네.”
내 ‘마법 면역’의 일부를 나눠 받아서인지 마법 저항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저 정도는 그냥 스켈레톤도 할 수 있으니까.
단숨에 함정들을 무용지물로 만든 스켈레톤은 이제 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던지는데, 어깨를 들이미네?
쿠우웅-!!
괴력에 방어벽이 흔들린다.
그 진동에 벽 위에 있던 녀석들이 새파랗게 질린다. 녀석들의 떨리는 눈동자가 바쁘게 주위를 훑었다
딱 봐도 생각이 읽힌다.
겨우 한 마리가 이런데, 저 뒤에서 달려오는 수없이 많은 스켈레톤들을 보니 답이 없어 보일 거다.
정답이다.
너희들은 X됐다.
스켈레톤들이 망토를 휘날리며 돌진. 약속이나 한 듯 어깨를 들이미는 순간.
쿵! 쿠웅-! 쿠우웅! 쿠구구구궁-!!
콰르르르르릉-!!
벽이 무너진다.
실드로 겹겹이 둘러싼 방어벽이 두부처럼 으깨지고 있었다.
“……아…….”
“허…….”
“……끝났어.”
나름대로 며칠을 힘써서 만든 결과물이 한순간에 무너져서일까? 벽 뒤에 숨어 있던 녀석들 모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개중에는 벌써부터 도망가려는 생각에 신체가 뒤로 쏠려 있는 녀석들도 보였다.
“하찮다. 정말.”
하긴, 저 중 절반 이상이 ‘기적’이란 개소리에 홀려 가담한 놈들이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도 제대로 모르는 머저리들.
쟤들이 제대로 된 전쟁을 해 봤겠나. 대충 충성심, 믿음…… 뭐 이딴 사특한 고리로 엮어 놓은 것 같은데.
충성심? 믿음?
아득한 공포 앞에 그딴 게 보일까.
“어디 시험해 보자고.”
내가 마귀를 빼 들고 앞장서자, 스켈레톤들이 저마다 망토에 손을 넣어 대검을 뽑아 들었다.
2미터가 넘는 키의 스켈레톤들이, 망토로 한껏 몸집을 부풀리며, 자기 키만 한 대검을 들고서 성큼성큼 걸어온다.
이런 스켈레톤의 숫자가 대충 봐도 천이 넘는데, 저들 입장에서는 뼈의 성벽이 걸어오는 듯 보일 거다.
한데, 저 되다 만 허접들이 이 위압감을 견딜 수 있을까?
내기해도 좋다.
못 견딘다.
“사, 살려 줘…….”
“도망가야 해!!”
봐.
그렇지?
피식 웃으며 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얘들아, 밀자~.”
검은 파도가 도시를 덮쳤다.
* * *
에드워드 대사제는 밀려드는 검은 파도를 바라보다, 허망한 표정으로 신을 찾았다.
“그분이시여…….”
비록 완성되지 않은 방어선이었지만 신성력에 마법, 각종 주술 등, 나름 최선을 다해 구축했던 방어선이었다.
그런 방어선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무너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이쪽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저것을 막을 수 있을까.’
박기혁과 스켈레톤 군단의 압도적인 위용에 대사제인 에드워드의 믿음마저 흔들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이들은 셀루티스의 정예 사제단. ‘구원 성가대’의 부단장이었다.
“대사제님!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형제님, 저는 아직 그분에게 받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애초에 전투 능력보다는 마주한 상대의 생각을 읽는 ‘독심술’에 특화된 에드워드 대사제다. 대신 이 독심술에도 조건이 있는데, 대상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
원래 그의 임무는 방어진의 구축보다는 습격자의 생각을 읽어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황은 이런 셀루티스의 의도를 비웃듯 급박하게 변했다.
적이 등장하는 순간, 대화할 겨를도 없이 검은 파도가 몰아쳤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는 의문의 스켈레톤 군단
의문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는 것은 도시를 반 이상 잡아먹고 있음에도 저 스켈레톤이 대체 무슨 종류의 소환물인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해서였다.
워리어인지, 나이트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저 당하기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한가하게 눈을 마주칠 겨를이 있겠나.
“대사제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사제님이 저 아수라장에서불신자의 마음을 읽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의 지원을 받아도 말입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저 스켈레톤 군단은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구원 성가대의 주 무기는 독과 암기다.
독은 스켈레톤에게 무효하고, 암기도 날려 봤자다.
“그렇다면 ‘신성 구원자’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신성 구원자.
기존의 날개 한 쌍을 가진 타천사에서 한층 더 강화되어, 두 쌍의 날개를 가진 네임드 타천사 ‘구원자’를 말하는 거였다.
“신성 구원자는…… 최후의, 모든 방법이 사라졌을 때 선택해야 할 최후의 수단입니다.”
“최후라…… 글쎄요.”
에드워드 대사제는 냉소하며 전장을 바라봤다.
이미 검은 파도는 도시의 반절을 넘어 코앞까지 왔다.
“이미 최후인 것 같습니다만.”
잠시 뒤.
도시 곳곳에서 날개들이 일어났다.
셀루티스는 ‘구원’이라 부르는 타천사 떼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런 타천사들 가운데, 유난히 빛나는 존재들.
기존의 타천사보다 한층 더 커다란 날개를 네 장이나 달고 있는 네임드 타천사, ‘구원자’였다.
그들이 전장으로 날아들었다.
검은 파도와 하얀 안개의 충돌.
본래라면 타천사와 스켈레톤의 스펙 차이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스켈레톤은 모든 소환물 중에서도 가장 밑줄에 있는 놈이고, 타천사는 신성을 비롯해 육체 능력도 트롤을 상회한다, 게다가 섭취를 통해 한계를 돌파할 수도 있으니, 몬스터 등급상으로는 타천사가 월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
원래부터 박기혁의 스켈레톤은 남달랐는데, 이 스켈레톤이 마룡기로 인해 주인 박기혁의 힘까지 나눠 받자.
백중지세(伯仲之勢).
까앙-!
타천사의 창날을 막아선 스켈레톤.
스켈레톤이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차서 시야를 가린다. 잠깐 주춤하는 타천사. 그 틈을 노리고 날아드는 스켈레톤의 대검.
이에 섭취한 혈족 능력을 활용해 위기에서 벗어나는 타천사.
곧이어 반격에 나서는데.
하얀 창이 꿈틀대며 검으로 바뀌고, 그 순간.
마사무네류.
벚꽃 유희(遊戱)
흡사 벚꽃을 닮은 검기들이 스켈레톤 주위로 휘몰아쳤다.
그러자 스켈레톤도 기수식을 취하는데.
주인의 일부를 나눠 받았다. 당연히 주인의 능력 일부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혼자는 불가능.
심연의 망토 ‘전우’가 휘날리며 확장, 근처의 스켈레톤들을 흡수했고.
스켈레톤의 눈에 귀기가 맹렬히 날뛰더니.
검호류 발검술
달빛 베기
검은 달빛이 주변을 베었다.
전봇대도, 건물도, 철조망도…….
그리고, 타천사도.
“끼악!!”
질척질척, 아스팔트를 타고 흘러내리는 타천사의 피를 밟으며 전진한 스켈레톤이 무심한 듯 대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곧이어 망토 ‘전우’가 타천사를 삼키며 몸집을 부풀리고, 스켈레톤은 다시 적을 찾아 걸어갔다.
길을 걷는 스켈레톤 옆으로 타천사들이 다른 스켈레톤에게 흡수됐다.
하얀 안개가 서서히 걷혀 간다. 반대로, 검은 파도는 그 크기를 부풀려 갔고.
그런데 구원자는? 네임드 타천사이며 최후의 수단이라는 그들은 어떻게 됐냐고?
어떻게 되긴.
“이야! 너 오랜만이다?!”
박기혁의 거인에게 잡혀, 이렇다 할 반항도 못 해 보고.
콰직!
공중에서 사지가 부서졌다.
피와 내장이 허공을 수놓았고, 그 모습을 본 구원 성가대와 에드워드 대사제는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누가 보내 준대?”
……
…
몰살당한 구원 성가대의 시체 속에서, 에드워드 대사제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너는. 너는…….”
앞에 있는 것은 스켈레톤이었다.
뼈로 이뤄진 병사. 검은 파도의 일부.
근데.
연기가 일어나며 스켈레톤이 변한다.
살점이 붙고, 근육이 이어지며, 순식간에 인간의 모습을 갖춰 갔다.
아니,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진짜 인간이다.
에드워드 대사제의 ‘독심술’이 가동하고 있다는 말은, 이 존재가 완전한 인간이란 말.
“박, 박기혁?”
“응? 내 이름 어떻게 알아? 아……!”
그래, 눈앞에 보이는 인간은 박기혁. 스켈레톤을 이용해 ‘공간’을 뛰어넘은 진짜 박기혁 본체였다.
“네가 형이 말했던 걔구나? 독심술 쓰는 대사제!”
박기혁이 해맑게 웃으며 거대한 손바닥을 에드워드에게 들이밀었다.
“월척이네.”
* * *
잠시 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박수혁과 박민지.
“……잘못 보고 있나.”
“아닐걸.”
“여기, 도시였잖아.”
“그치.”
눈을 씻고 봐도 폐허뿐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도시 하나를 밀어 버린 것이다.
그들의 동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