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49화>
검호 3남매는 파죽지세로 도쿄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숨어 있는 타천사 처리했…… 음? 이 냄새는?”
“순대국밥 데워 놨어. 앉아. 깍두기는 저기 있고, 수저는 옆에 있어.”
“근데 나 뒷정리 안 했는데.”
“괜찮아. 그럴 줄 알고 아귀들 잔뜩 풀어 놨으니까.”
“그러면…… 하아~ 국물 좋다. 오빠는…… 저기 오네.”
“늦었지? 애들이 많더라고. 오~ 뭐야? 국밥이네! 출출했는데 잘됐다.”
“달리기 시작하면 밥 먹을 시간 없잖아. 자, 여기.”
도쿄로 향하는 최단 거리로 달려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직접 두 발로.
전 세계의 수많은 혈족들, 그중에서 육체 능력만큼은 탑 티어에 꼽히는 검호였다.
일단 달리기 시작한 검호는 웬만한 차량보다 빨랐다. 지형지물에서 자유롭다는 점까지 생각한다면 뻥 뚫린 고속 도로를 달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후아~ 시원하다. 오랜만에 원 없이 달리네. 속이 뻥 뚫려. 인간 내비게이션 박민지 씨. 잘 가고 있는 거 맞습니까?”
“……몰라. 가라는 데로 가는 거지.”
“설마, 누나 삐졌어?”
“까득-!”
“에이~ 기혁이 넌 말을 해도. 민지가 아무리 속이 쥐똥만큼 좁아도 그깟 가위바위보에서 진 걸로 삐지진 않아.”
“까드득-!
“그치? 내비 좀 들었다고 삐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엄.”
“즉등히 흐라.(적당히 해라.).”
“에이, 웃자고 한 소리지…… 전방에 한 녀서ㄱ…….”
쉬이익-!!
서걱!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그만 놀려야겠다.”
“……그러자.”
최단 거리의 경로로.
모든 적을 지우며 전진한다.
이 상식을 벗어난 검호식 잠입 작전에 가장 당황한 건, 셀루티스의 수뇌부였다.
“교토에 파견됐던 사제 전원이 실종됐습니다. 급히 조사대를 보냈지만, 조사대가 도착했을 때 남겨진 정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시체는커녕 부서진 건물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핏자국 같은 기본적인 흔적조차 지워졌습니다.”
“형제님들, 이게 말이 된다고 봅니까? 교토에 파견된 인원만 해도 거의 이천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실종됐는데 흔적이 남지 않다니요?”
“저희도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드러난 사실이 그러합니다.”
교토만 2천이지, 여태껏 투자됐던 인원은 그 두 배는 될 거다.
이처럼 셀루티스는 의문의 습격자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실종, 실종, 실종…….
보다 못한 수뇌부들이 정예 요원들을 보내 봤지만.
역시나 실종.
이쯤 되자, 실종된 지역을 취합해 습격자의 경로를 예측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 인원을 분산시키면 습격자에게 대항조차 불가능할 겁니다. 희생은 줄이려면…….”
“자매님, 상황을 직시하십시오. 희생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견습 사제’들이 충원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희생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들 또한 ‘아크 엔젤’ 님을 섬기는 종. 은혜에 보답하길 원할 겁니다.”
“맞아요. 중요한 건 정보죠. 습격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에요.”
“그래도 목적은 분명합니다. 의문의 습격자가 이곳 도쿄, 아크 엔젤 님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말입니다.”
셀루티스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층 더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하려 한다.
그들은 ‘기적’의 횟수를 대폭 증가하여 더 많은 견습 사제들을 추가, 방어선에 파견했다. 도쿄 인접 도시의 거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도시의 건물들을 이용해 진지를 구축했다.
이처럼 물리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며, 동시에 외교적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의원님, 이번 일만 잘 처리해 주시면…….”
“생각해 보십시오. 일본이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괜히 아국의 아까운 병력이…….”
“우리 솔직해져 보죠. 중국 입장에서 한국, 거슬리잖습니까. 셀루티스한테 일본 주고 한국을 견제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
각종 로비를 통해 연합군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데 성공.
현재까지 연합군은 집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의미 없는 회의만 계속하고 있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추후 견습 사제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전투력이 궤도에 올라선다면, 각국은 리스크를 생각해서라도 일본을 버릴 겁니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우리는 낙원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셀루티스는 자신의 신과 함께하는 찬란한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대, 대사제님!! 파이브 시스터즈가!”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꿈인 법.
김연희의 안배가 지금 이 시간, 도착했다.
* * *
한밤의 해군 기지.
어둠 속에서 길게 늘어진 전함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항구에서, 한 사내가 걷고 있다.
“…….”
철컥, 철컥.
길게 늘어진 음영으로 사내의 강철 장화가 빛난다.
과거, 세계의 중심이 유럽 열강이었던 때가 있었다.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심지어 기사도와 마법학까지도 유럽이 모든 학문을 선도하며 전성기를 누린 영광의 시대.
당시만 해도 영국은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었으며, 프랑스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현재.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도 이제는 저물어 가는 태양이 돼 버린 EU 연합.
이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로 유럽 명문 귀족들이 뜻을 함께하게 되는데.
로열 쉬벌리(Royal Chivalry).
파이브 시스터즈의 일원으로, EU를 대표하는 에이전트였다.
철컥. 철컥. 철컥…….
사내의 곁으로 사람들이 따라붙는다.
중세 기사가 입을 법한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인원들. 그들의 가슴에서 ‘백합’ 엠블럼이 반짝인다.
로열 쉬벌리의 대표 무력, 백합기사단이었다.
백합기사단이 무장 해제된 인원들 앞에 멈췄다.
여기 해군 기지를 지키던 군인들.
비록 백합기사단에 의해 15분 만에 전원 무장 해제됐지만, 이들은 엄연한 정규군이었다. 전원 초인으로 이뤄진 정규군 말이다.
군인들은 무릎이 꿇린 채 혼이 빠진 얼굴로 백합기사단을 올려다보고, 곧이어 사내의 차가운 눈을 마주하게 된다.
“조국을 광신도에게 바친 죄,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숙하도록.”
로열 쉬벌리.
일곱 번째 검.
명예의 기사. 루이 플로렌시.
합류.
* * *
또 다른 지역의 해안 경비대.
여인이 쓰러진 해안 경비대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멘다. 아담한 체구의 여인과, 일반 남성의 평균 신장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경비대원.
그럼에도 여인은 경비대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짊어졌다.
툭.
넓은 공터에 경비대원을 버리는데…….
공터 가득 쌓여 있는 경비대원들.
이곳에 있는 전원이 모두 이 여자의 손에 무력화된 인원들이었다.
“치우는 게 더 일이다. 쩝.”
시가에 불을 붙이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여자.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기동 2전단 단장.
지나이다 이바노프
합류.
* * *
한편 미사와 공군 기지.
활주로에 검은 늑대 머리 가면을 쓴 인원들이 시립해 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양손을 가슴에 올려 둔 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인영들.
이집트 신화에서 죽음의 신으로 알려진 아누비스의 가면이었다.
“‘우리’는 생각한다. 당신들 또한 피해자라고.”
“너희는 무죄다. ‘우리’는 그렇게 판결 내렸다.”
“얌전히 있는다면 다치지 않는다. ‘우리’가 보증한다.”
야누비스의 사자(使者).
합류.
* * *
“여기 일본에 캡틴 타이거 있는 거 맞지?”
“어.”
“캡틴 타이거 있는 거 맞지?”
“그렇다고!”
“캡틴 타이거 있는 거 맞지?”
“하-!”
듣다 못한 거구의 남자가 삿대질을 하며 광분했다.
“귓구멍에 X 박았어! 대체 몇 번을 말해!”
“아니, 그냥, 나는 궁금해서어…….”
친구의 다그침에 남자가 움츠러든다.
큰 안경, 왜소한 체구, 깡마른 몸매, 전형적인 ‘너드’의 모습을 한 남자. 안 그래도 왜소한 남자인데 기까지 죽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껏 쪼그라들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미식축구 선수처럼 보이는 친구랑은 사뭇 비교되는 남자였다.
하지만 외형으로 사람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불쌍한 척하지 마! 이 괴물 딱지가.”
“괴물이라니, 친구한테…… 나 상처받아.”
“상처는 쟤들이 받은 게 상처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군대 하나가 통째로 게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스타 히어로.
3팀장. 캐슬 로드.
블랙 스미스.
합류.
“근데 캡틴 타이거 있는 거 맞지?”
“크아아아악!”
* * *
5대 에이전트, 속칭 파이브 시스터즈가 일본에 개입하자 전황이 급격히 변했다.
“여러분이 참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일본의 자위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위치만 고수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 옵티멈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김연희의 요청대로 파이브 시스터즈는 도착 즉시 항구와 군부대를 장악한다.
현재 일본을 지키는 자위대는 ‘아크 엔젤’을 따르는 파와 그렇지 않은 파, 그리고 중립. 이렇게 세 세력이 혼란스럽게 대립하는 구도였고.
그 틈을 노리며 어렵지 않게 파고든 파이브 시스터즈가 ‘중립’에 힘을 실어 주며 자위대는 전원 정지 상태가 된다.
모두 김연희의 계획대로였다.
“만약 여기까지 성공한다면 셀루티스는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본거지인 도쿄로 돌아가겠죠.”
실제로 셀루티스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흘렀다.
안 그렇겠나. 세계를 대표하는 5대 에이전트 중 넷이 머리 위에 대기 중이다.
아무리 수천, 수만의 ‘견습 사제’를 찍어 댄다 해도 감히 저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였다.
사실상 대항은 불가능.
남은 방법은 하나다.
방어(防禦).
셀루티스는 일본 전역에 퍼트린 사제들을 도쿄로 불러 모았다.
“절대로 도쿄만은 내줘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에, 마지막. 마지막 한 명까지도 싸워야 합니다.”
“모두 순교를 각오하십시오.”
옥쇄의 의지로 인의 장벽을 세운 셀루티스.
그리고 그 시각, 김연희의 비수가 도쿄의 턱 끝, 요코하마항에 도착하는데.
* * *
수송기 안.
넓은 수송기 안에 사람은 둘이다.
한 명은 김연희의 남편이자 당대 검호, 그리고 한창 저 아래에서 날뛰고 있는 세 검호의 아버지인 박건.
그리고 박건과 의미 없는 눈싸움 중인 또 다른 한 명은 당대 진룡 가주, 진도하.
“……너는 왜 왔냐.”
“백년손님 마중 나가는 중이다.”
“백년손님? 허! 이 도마뱀 자식이.”
백년손님이라면 사위 아닌가?
사위? 사위라고?
“도마뱀 자식이 누구 마음대로!!”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마라, 고양아.”
“이게, 내가 한 번은 말하려고 했어. 누가 우리 아들이 네 사위…….”
“잠깐.”
진도하가 제지하는 순간, 안내 방송이 들렸다.
- 작전 구역 도착. 작전 구역 도착. 현재 시각 02시 37분. 요코하마 상공. 지금 해치 오픈합니다.
덜컥, 해치가 오픈된다.
두 사람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이야기는 나중에.”
“그러자.”
현재는 작전 상황. 사담은 이제 끝이다.
둘은 시선을 교차하며 해치를 향해 달려 나가 하늘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아래로 추락하는 두 사람.
둘의 주위로 다른 수송기에서 강하한 운룡대가 뒤따른다.
구름을 돌파해 아래 요코하마항이 보이고.
“도마뱀!!”
박건의 신호에 진도하가 파초선을 활짝 펼쳤다.
마룡기
용(龍)
핏빛의 붉은 마나가 꿈틀대며 형상을 이룬다.
악어의 주둥이, 뱀의 눈, 사슴의 뿔…… 그리고 요요하게 빛나는 붉은 비늘까지.
전설 속, 신령한 존재로 호풍환우를 다룬다는 용이.
지금, 이곳에 강림했다.
구름을 뚫고 나오는 용.
진도하와 박건을 태운 용이 구름을 벗어나고…… 그 순간.
운룡대의 용들이 구름을 뚫고 등장했다.
고오오오-!
검호 박건.
진룡 진도하.
운룡대 전원.
합류.
* * *
도쿄 인근, 나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녀석들.
“귀찮게 막는 놈들이 없다고 하더니.”
한동안 통 안 보이더니 저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피난민들도 많다 했더니만 저기에서 살던 사람들을 쫓아낸 모양이다.
‘매직 아이’를 소환해 시야를 확장해 봤다.
진지 구축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음…….”
얘들이 바보는 아니네.
나름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있는가 보다. 내 예상 이상으로 정교하게 구축되고 있다.
완성되면 살짝 골치가 아플 정도.
“지금 들이치는 게 최고 같은데.”
잠깐 생각해 본다.
누나하고 형이 피난민들 때문에 잠시 빠진 상황. 원래라면 내버려 두지만 현재 이곳의 마나 파장이 수상하다.
뭐랄까, 전에 ‘레드 게이트’를 깨울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만약에 맞다면 피난민 전체가 위험하니, 형은 피난민을 인도하고 누나는 레드 게이트가 있는지 수색하고 있었다.
결론은 지금 나 혼자라는 거지.
혼자.
혼자라…….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마 만에 혼자냐.”
저거 전부 내 거란 말이잖아.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가.
고민할 거 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저 멀리서 나를 확인한 녀석들이 소리친다. 통역기를 깜빡해서 잘 모르겠지만 바케모노? 괴물이란 뜻인 것 같다.
“괴물이라…….”
문득 옛 추억에 잠긴다. 제국 시절, 마왕으로 불리기 전에 많이도 불렸던 별칭이다.
“오랜만에 추억을 깨워 볼까.”
안 그래도 마침 딱 맞는 게 있다.
마룡기.
예전에도 말했듯, 거인의 힘을 가진 내게 아티팩트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신체 능력을 올려 주는 것? 필요 없다. 검호에, 거인까지 있다. 이미 상한치를 아득히 넘었다.
마법 능력을 올려 주는 것? 더더욱 필요 없다.
나는 마왕이다. 도구의 힘을 빌릴 수준은 지났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내게 어울리는 마룡기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서 나왔다.
봄이, 나의 분신.
이건 봄이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마룡기.”
손을 펼치자 심연의 망토가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