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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47화 (147/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47화>

초인이 될 수 있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일본 전역에 있던 이들이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도쿄.

숙소가 다 찬 것은 기본이고, 길가에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차량을 움직이는 것마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들에게 아크 엔젤은.

정말로 ‘기적’을 펼쳤다.

“나 아크 엔젤이 너를 구원하노라.”

하루에도 수천, 수만의 초인들이 등장했다.

박기혁이 표현하길 ‘유통 기한 1년짜리’ 힘이지만 상관없다. 지금 만드는 이 ‘파이어 볼’이, ‘물의 채찍’이 마나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력, 수명이었지만 이 또한 상관없다.

이들은 현실을 전혀 몰랐으니까.

무지한 자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이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는데, 놀랍게도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의 종들이여. 너희는 이제 자유다. 이제 너희를 속박하고 있는 모든 족쇄를 벗어던져라.”

‘기적’을 받은 자들은 아크 엔젤을 열렬히 추종하기 시작.

아크 엔젤의 말씀을 진리처럼 여기게 된다.

“아크 엔젤 님이 말씀하신 족쇄가 뭘까?”

“몰라서 물어! 화족들이잖아.”

“아니야, 더 넓게 봐. 아크 엔젤 님은 ‘모든’ 족쇄를 떨쳐 버리라고 했어.”

“그렇다면…….”

“맞아. 초인들이야. 그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었어.”

초인들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 부와 명예를 가졌다.

봐라. 그들의 SNS를 보면 좋은 집, 좋은 차, 온갖 명품들로 가득하잖나. 우리 같은 서민들은 평생을 일해도 사기 힘든 것들을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누린다.

선망과 시기는 한 끗 차이고, 초인들이 저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음에도 그냥 미워졌다.

억압되어 있던 대중의 분노가 화족을 넘어 초인 전체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죽여라!”

“사, 살려 줘.”

“아크 엔젤 님의 말씀대로 족쇄를 끊어라!!”

“끄아아악!!”

대학살.

그렇게 도쿄는 광기로 물들었다.

이 광기는 자연스레 ‘광신’으로 이어지며.

“나의 종들이여. 나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 가라.”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니.”

도쿄의 꼭대기, 아크 엔젤이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   *   *

옵티멈 대표실.

김연희가 화상으로 이뤄진 연합군 회의를 마치고서 소파에 쓰러졌다.

“하아…… 피곤해…….”

사흘? 나흘? 아니, 일주일인가?

잠을 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김연희는 저도 모르게 커피를 마시다 진절머리를 쳤다. 혈관에 혈액 대신 카페인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김연희가 이런 방면으로 초인이어도 이렇게까지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피곤하다. 아니, 피곤을 넘어 몸에 문제가 생길 거다.

그럼에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일을 쳐 내는 것은.

며칠 전 박기혁의 이야기 때문이다.

“유통 기한 1년짜리 힘…….”

그 1년이 지나면 빈 깡통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박기혁이다. 그녀의 막둥이가 허언을 할 리 없다.

더욱이 그녀의 막둥이가 덧붙였던 말이 심히 불길했다.

“엄마, 제가 계속 고민해 봤거든요. 대체 쟤들이 왜 이런 짓을 할까 싶어서요. 이거 아무리 봐도 이상하잖아요. 지나치게 극단적이에요.”

맞다.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돌아가는 형세만 보면 거의 사활을 건 것 같아.”

김연희도 계속 궁금한 게 이 부분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셀루티스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나? 이미 수뇌부를 장악한 것 같은데, 막말로 조금만 여유롭게 해도 상관없잖나?

그들을 조급하게 만든 게 무엇일까.

“혹시 인간의 믿음이 힘을 가진다는 거 아세요?”

인간이 가진 믿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가진다.

거짓된 경전이라도, 이름 없는 무(無)의 존재라도 인간이 간절히 믿는다면, 믿음은 실체화된다.

“제가 보기에 저 아크 엔젤이란 녀석, ‘신격’을 가지려 하는 것 같아요.”

기적을 보여 줬다.

유통 기한 1년짜리 힘을 줬다.

이들은 아크 엔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

광신(狂信).

거짓된 믿음을 제물 삼아.

신격을 얻는다.

이름만 수호령이 아닌 진짜 수호령 말이다.

김연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막아야 해.”

작게는 한 나라의 몰살이며.

크게는 세계 질서의 붕괴다.

김연희는 한 나라의 몰살 앞에 ‘작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머리가 띵하지만, 어쩌겠나. 그녀 앞에 놓인 현실인데.

이건 도의적인 것을 떠나 같은 인간이라면, 이 세계에서 함께 숨을 쉬는 인간이라면 막아야 했다.

그럼에도 지지부진한 연합군들, 아직 일정은커녕 어디서 집결할지조차 정하지 않았다.

이 속도라면 최소한 3개월, 길면 반년은 훌쩍 넘어갈 거다.

이걸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어.”

결국 고심 끝에 김연희가 전화를 들었다.

그날 밤.

영국과 미국, 러시아와 이집트에서 비행기가 떴다. 모두 ‘파이브 시스터즈’의 전용기였다.

그리고.

“허락 떨어졌어.”

전화기를 내려놓은 박수혁이 빙그레 미소 지었고, 박민지는 천으로 닦던 검을 불빛에 비추며 답했다.

“마음대로 해도 돼?”

“허락 떨어졌다니까.”

“그렇다는데, 기혁아.”

둘의 시선이 박기혁에게 향했고, 박기혁은 입술을 핥으며 거구를 일으켰다.

“갑시다.”

방금 김연희가 일본에 검호를 풀었다.

그것도 세 마리나.

*   *   *

사실 하나.

나는 옛날에 비하면 많이 유해졌다.

과거, 그러니까 내가 마왕으로 불리던 시절. 모두가 알다시피 난 거칠 게 없었다.

원하는 것을 쟁취했고, 내 앞을 가로 막는 것을 모조리 부숴 버렸다.

타인의 평가 따위?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이 기우는 대로 살아갔다.

워낙에 꼴리는 대로 살았던 터라 거칠다는 영감조차도 학을 뗄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폼 나는 삶’이라 생각했고, 충실히 그에 따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삶에서의 난 달랐다.

가족들이 생겼다.

지킬 것이 생겼다.

이전처럼 막 나갈 수 없다. 나름대로 눈치도 보고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여전히 타인의 평가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같다.

저들이 나를 보고 뭐라 수군거리든 관심조차 없다. 하나, 내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이 평가받는 게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 가끔 나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내가 눈치를 본다고?

또 웃긴 게, 이게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는 거다.

조금 손해 보면 어떤가. 불편해면 또 어때.

가족이잖나.

이렇듯 두 번째 삶, 나는 가족을 비롯해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많이 유해졌다.

그래, 그런데…….

여기서 사실 둘.

이처럼 많이 유해졌지만.

정작 나는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내 본성은 거칠고 흉폭하다.

긴 말 필요 없고.

이제부터 보여 줄게.

“막……!”

촤륵-!!

마귀가 머리를 날려 버린다. 툭툭, 바닥으로 머리통이 구르고 있다.

“허억!!”

“주, 죽였어. 진짜 죽였다…… 커헉!!”

내가 던진 마귀가 호들갑 떠는 적의 몸통을 뚫고서 벽에 박혔다. 마귀가 적의 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곧이어 앙상하게 미라가 된 시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으아아아아아악!!”

“도망쳐어어!!”

눈 깜짝할 새 쓰러진 동료에 패닉에 빠진 적들.

전부 내게서 도망갔다. 어떻게든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쿵?!

열리지 않는다. 막혀 있다.

“이이익!!”

“부숴!”

마나, 아니, 생명력을 이용해 마법을 써 본다.

기본적인 ‘파이어 볼’부터 ‘플레임 버스터’, ‘체인 라이트닝’.

그나마 마법을 배운 놈은 벽을 향해 ‘브로큰 쇼크’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어.”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 탈출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

완전히 ‘격리’된 공간.

이곳이 너희 무덤이다.

그러니.

“닥치고 조용히 죽어.”

무심한 눈으로 마귀를 휘둘렀다.

한 번의 출수, 하나의 목숨.

살려 달라는 애원, 원망하는 증오. 마지막으로…… 의미 없는 단말마.

“어, 어째서…… 이제껏 죽이지 않았잖아.”

“아아, 그랬지.”

어쨌든 구출 작전이다. 적당히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을 습격하려는 타천사들을 막는 정도로 끝났다.

하지만 수동적인 대응은 어저께까지.

“오늘부터 달라지려고.”

보다 적극적으로.

아니, 마음 내키는 대로.

푸쉭!

뒷걸음질 치는 적의 명치에 마귀를 꽂아 넣었다.

고개를 들자, 내 시야는 온통 피 칠갑이다. 수십 구의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정리해 볼까.”

딱, 손가락을 튕기고.

그 순간.

흑마법 소환

아귀

餓鬼

공간을 비집고 굴러 나온 동글동글한 머리통이 이빨을 드러내고.

키야아아아앙-!

으득으득, 시체를 먹어치운다. 피를 핥아 먹었다.

잠시 뒤, 피 칠갑이 된 건물은 말끔하게 정리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   *   *

잠입 작전.

아무도 모르게 존재를 숨기고 숨어드는 작전.

하지만 검호의 잠입 작전은 조금 다르다.

경로에 있는 모든 적을 지운다. 목격자가 없으면 드러날 일도 없으니까.

섬광이 사람 사이를 휘저었다.

흔한 비명도 없다.

적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신의 신체를 확인하는데.

“…….”

섬광이 끝나는 자리에서 박민지가 검을 허공에 터는 순간.

푸쉬이이익-!

피분수가 솟구쳤다.

털썩털썩, 쓰러지는 시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 전부 어깨 위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때맞춰 이상함을 감지한 적들이 들어오고.

“허억!”

“우욱!”

토하는 놈, 경기를 일으키는 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놈.

골고루 한다.

박민지는 한심한 듯 바라보다 사제복을 입은 적이랑 눈을 마주쳤다.

“너, 너는……?”

“너, 셀루티스?”

“말도 안 돼. 너는 후쿠오카에…….”

박수혁, 박민지, 박기혁.

검호가의 자식들이 일본에 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셀루티스의 수뇌부들도 이 셋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을 정도. 그래서 후쿠오카 근방으로 타천사 부대를 보내어 저 셋의 움직임을 제한시킨 것이었다.

다행히 이 작전은 지금껏 잘 먹혀, 현재까지도 저들은 ‘후쿠오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게 오늘 아침에 형제들에게서 들었던 정보였는데.

“어째서 네년이 여기 ‘히로시마’에 있는 거냐!!”

“…….”

박민지는 흥분한 사제를 물끄러미 보다, 무시한다.

말할 가치 없다. 어차피 죽일 적.

말없이 검을 뽑았고.

그 순간, 단숨에 거리를 도약해 사제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까앙-!!

막혔네?

“호오?”

회색 빛 역십자가 실드처럼 검을 막아 내고 있다.

“나는 아크 엔젤 님의 신실한 종! 그분의 허락 없이는 죽지 않는다!”

사제는 한때 대사제 후보에도 오를 만큼의 실력자였고, 신성력을 줄기줄기 뽑아내며 박민지의 공격에 대응해 나갔다.

회색 빛 역십자들이 사제의 주위로 회전하며 퍼져 나갔다.

박민지의 속도를 눈으로 쫓는 것은 불가능.

아예 일정 공간을 통째로 막는다.

실로 현명한 방법이었고, 그러는 사이, 지하에서 다른 셀루티스 사제들이 올라왔다.

아직도 저기 한쪽 구석에서 토악질을 하는 ‘기적’이란 이름의 인스턴트 초인이 아닌, 진짜 셀루티스의 정예 사제들.

“형제님들!!”

“형제님, 도와 드리겠습니다!”

“저 간악한 불신자에게 천벌을!”

제법 여유로웠던 공간이 사제들이 들어서며 좁아졌다.

박민지는 극한의 속도를 추구하는 쾌검사다. 그녀의 입장에서 공간이 줄어드는 건 달갑지 않은 소식.

그렇다고 벽을 뚫을 수도 없다. 이미 진입 전에 박기혁이 ‘격리’시켰던 공간. 이건 박민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번거롭네.”

박민지가 본능을 각성한다. 머리칼이 백색으로 빛나고 이제는 검의 궤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몇몇의 팔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잘려 나간 본인들조차 믿기지 않는지, 잘려 나간 팔을 멍청하게 보다 한참이 지나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정면으로 대항하지 마십시오! 공간을 막으셔야 합니다. 저 불신자를 쫓으면 막지 못합니다!”

“구석으로 몰면 우리가 이깁니다!”

“거리를 유지하세요!”

사제들은 끈질기게 박민지를 몰아세웠다. 몇몇은 자신의 생명력까지 버려 가며 신성력을 뽑아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이 싸움, 승산 없다는 거.

그러는 가운데 탈출을 시도하다 포기한 이들까지 이곳으로 왔고, 어느새 이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적들이 이 층에 모였다.

“형제님들, 빨리 지원을……!”

가장 선두에 선 사제가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를 지르는데.

그 순간, 여태껏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박민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드러난다.

“드디어 다 왔네.”

“……?!”

이 순간을 기다렸다.

하나씩 찾아가기 귀찮았거든.

박민지가 입술을 핥는다. 입술 끝에 송곳니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처음으로 꺼내는 거야.”

그러니 영광으로 알아라.

“마룡기…….”

빛의 신발이 번쩍였다. 순백의 실선들이 날개처럼 돋아났다.

마룡기

탈라리아(Talaria)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전령이었던 헤르메스의 신발.

현존하는 아티팩트 중, 인간이 도달할 수 없다는 ‘공간’이란 영역을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무구.

박민지가 발을 내딛는다.

사라지는 박민지.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홀의 정중앙.

검호류 신속

만월(滿月)

박민지를 중심으로 보름달이 떠오른다.

하얀 보름달이 홀을 가득 메우고.

잠시 뒤, 허리가 양단된 시체들이 홀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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