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45화>
땅을 박차며 도약.
노인을 향해 달려드는 녀석을 차 낸다.
콰직!
땅에 발을 내딛자.
대지가 울컥 부풀어 오르며 허공을 향해 흙을 뿜어냈다.
허공에서 형상을 갖추는 것은…… 용? 아니, 뱀이다. 흙의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주변으로 불꽃과 번개로 만든 새들이 펄럭이며 날아오른다. 파지직, 화르륵, 불꽃과 번개가 뒤엉킨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 땅을 뚫고 물의 생쥐들이 몸을 일으키자, 내 주위는 온통 동물 천지였다.
일본의 마법이나 주술은 동물을 형상화해서 만드는 게 많다더니만.
뱀, 새, 쥐.
“아주 골고루 하네.”
쐐애애애액-!!
마귀를 꺼내어 흙의 뱀을 후려쳤다.
힘껏 때려서 깨질 줄 알았는데, 반쯤 부서졌던 흙들이 재구성되어 다시 날아왔다. 실력이 제법이었다.
동시에 거인의 팔을 불러내어 저 새 대가리들을 부숴 버린다. 거인의 손바닥이 움켜진 곳에서 번개와 불꽃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이제 남은 건 땅인데, 이건 마법으로 간단히…….
나를 중심으로 육망성이 증식하고.
리버스 그래비티
(Reverse Gravity)
주변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돌도, 흙도, 풀도…… 그 가운데 물의 쥐들이 맹렬히 발길질 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 마법의 목표는 내가 아니다.
저쪽이 빡대가리가 아니라면 내가 누군지 알 테고,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쯤은 진즉 깨달았을 거다.
다시 말해, 이 마법의 목표는 내 뒤에서 몸을 떨고 있는 화족들의 구성원들, 저들을 죽이려는 마법이었다.
공세가 무력화되자, 다시 마법들이 연이어 들이닥친다. 쥐에 이어 토끼가 나오고 원숭이, 개…… 각종 속성들로 만들어진 동물들이 이쪽을 향해 질주했다.
숫자가 많다.
혼자 싸우는 거였다면 문제 될 거 없다.
‘거인’을 컨트롤하는 데 성공한 나다. 극단적으로 말해, 저깟 마법 따위 맨몸으로 맞아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난, 여기 내 뒤에서 떨고 있는 저들을 지켜야 한다.
뒤를 돌아보는데, 아이랑 눈이 마주친다. 겨우 봄이 나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울고 있다.
“내 뒤로 모여!”
모여든 사람들 주위로 마나의 파편들이 얼기설기 모여 돔 형태의 ‘베리어’가 만들어졌다.
그사이 나머지 거인의 팔 한쪽을 더 불러냈다.
거인의 양팔이 주위를 감싸듯 내려앉았다.
“드루와.”
콰아아앙-!!
사정없이 대지를 두드렸다.
흩어지는 마법들, 질서를 벗어난 ‘거인’ 앞에서 마법은 모두 공평하게 사라져 갔다.
간혹 조그마한 찌끄레기들이 내 공격을 피해 살아 들어왔지만.
“어림도 없지.”
디스펠과 리버스 그래비티, 그것도 모자라 본 월까지 세우며 완벽히 접근을 차단했다.
슬슬 마나의 파장이 옅어진다.
형과 누나가 본대까지 접근한 모양. 생각보다 습격 규모가 훨씬 커서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믿음직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돌리려는데.
그때였다.
정체불명의 소리가 내 감각에 잡힌 것은.
샤아아아앙-!!
저 멀리, 아득히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
소리가 나는 곳은 하늘.
내 시선이 하늘로 향하고…… 순간, 나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와…….”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내가 감탄까지 터트린 이유.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이곳으로.
“선 세게 넘네.”
육망성이 뭉치며 만들어진 대검.
거인의 팔이 대검을 잡고는.
휘두른다.
검호류 파괴
블랙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폭발의 충격이 지상을 휩쓴다. 숲은 고통에 겨워 몸부림쳤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비명을 질렀다.
충격과 공포.
혼란만이 가득한 전장.
이 전장의 한가운데서 박민지는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전진하고 있었다.
“미친놈들.”
선을 넘었다.
전략 무기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다.
마지막의 마지막.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고, 서로 물러설 수 없을 때. 비로소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시도해 볼 법한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미사일을 쏴? 그것도 자국 영토 내로?
수많은 분쟁 지역을 다녀 본 박민지지만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빛살처럼 쏘아져, 제일 앞에 보이는 녀석의 팔을 절단했다.
“끄아악!!”
조금 전만 해도 신체를 잘라 내지 않았다. 번거롭지만 제압을 하고 포박을 해 무력화를 시켰다.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끌린 거지만.
이제는 아니다.
먼저 선을 넘은 건 저쪽이다.
미사일을 쏜 순간, 저들은 습격자가 아닌 완전한 ‘적’이다.
박민지의 검이 뻗어 나간다. 백색 섬광이 어둠 위로 새겨질 때면 어김없이 피의 꽃이 만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끄아아아악!!”
“크윽!”
종횡무진, 적들 사이를 누빈다.
추풍낙엽, 적들이 쓰러져 간다.
속도를 올린다.
“막앗- 아아아!!”
더!
“커흡!”
더!!
“ㅈㅔㄴ…….”
그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느려지는 순간.
이 땅에 일곱 개의 별이 내려앉고.
검호류 신속
북두칠성
신속의 검사, 백호 박민지.
이곳에서 그녀를 잡을 적은 존재치 않았다.
그렇게 한창 박민지가 적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한편 박수혁은 생각지도 못 한 적과 조우했는데.
* * *
“당신들은…….”
새하얀, 잡티 하나 없는 사제복을 입은 채, 박수혁을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
이건 누가 봐도.
“셀루티스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분의 종.”
사제복을 입은 무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부족하나마 대사제직을 맞고 있는 에드워드라고 합니다.”
“대사제.”
박수혁의 표정이 굳는다.
셀루티스의 대사제라고 하면 한 지역을 관리하는 이들인데…… 자신이 알기에 대사제는 그 나라의 인물을 뽑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나 해서 살짝 떠 보려는데.
“굳이 물어볼 필요 없습니다. 방금 당신의 ‘생각’은 맞아요.”
“……!!”
찰나의 정적.
박수혁은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너, 생각을 읽는구나.”
“그분이 내려 주신 기적입니다. 어떻습니까. 당신도 저희 쪽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당신 정도의 인간이 개종한다면 대사제는 물론이고 차기 ‘교황’도 노려 볼 법한데.”
“…….”
“저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이군요. 한국인은 예의범절이 뛰어나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나 보군요.”
에드워드가 떠들거나 말거나 박수혁의 두뇌는 맹렬히 가동했다.
이번 일본 사태에 ‘셀루티스’가 개입했을 수도 있다.
이건 이미 출반 전에 김연희가 말했던 터라 그다지 신기하지 않았다.
“수혁아, 일단 너만 알고 있어. 이번 일, 셀루티스가 개입했을 수도 있어. 특히 네가 찾아냈던 타천사들. 걔들을 다시 볼지도 몰라.”
그렇다면 오히려 반갑다.
타천사라면 박수혁과도 악연이 있는 놈들이니까.
한데 대사제가 보였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지역을 관리하는 대사제가 일본에 있다? 이건 이번 사태에 셀루티스가 상상 이상으로 깊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역시 무결점의 검사답네요. 상황 파악이 빨라요. 맞습니다. 일본은 저희 셀루티스가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 사실을 왜 드러내지?”
“하하? 벌써 거기까지 갑니까? 똑똑하시군요. 맞습니다. 당신의 생각처럼 ‘숨죽여 있는 게’ 현명할 수 있어요.”
한 나라를 장악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약소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숨죽여 세력을 늘린다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게 뻔한데, 왜 굳이 존재를 드러내 위험에 빠지는 건가.
박수혁의 생각을 읽은 에드워드 대사제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희는 ‘셀루티스’입니다, 불신자여.”
이익을 쫓지 않는다.
상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정의도, 윤리도, 도덕도.
“세상의 어떤 관념도 그분의 부름 앞에서는 무가치하니. 불신자여, 명심하소서.”
환희에 젖은 에드워드가 두 팔을 하늘 높이 펼쳤고.
“모든 것이 그분의 뜻대로!”
펄럭!!
날개가 펼쳐졌다.
이를 시작으로 떠오르는 날개들.
한순간에 에드워드 뒤편의 하늘이 타천사들로 가득했다.
* * *
“가토오오!!”
쿠웅-!
총리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와 가토의 멱살을 쥐었다.
“이 개자식, 나를 속였어!!”
“음, 총리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엇을 속였다고 그러십니까.”
“너, 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총리와 가토의 첫 만남은 고향의 료칸이었다.
총리가 고민이 있을 때 찾아가던 장소였고, 그곳에서 총리는 가토와 온천을 즐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총리님은 제게 ‘화족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며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화족의 권력을 회수해 주겠다.’라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이익! 이런 방식을 원한 게 아니야!!”
“저런, 흥분을 식히십시오. 제가 ‘아주 조금 과격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까?’라고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총리님은 사케를 드시며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고 하셨지요.”
“너! 너어어!!”
“저는 총리님의 소망대로 벌을 내렸습니다. 사실 제 소망이 더 컸지만, 어쨌든 공통의 적을 징치했으니 약속은 지킨 것이지요.”
“셀루티스!! 왜 네가 광신도라고 말하지 않았나!”
“물어보지 않았잖습니까?”
“그걸 말이라 해, 개새끼야!!”
이제 일본의 사태는 수습할 수 없이 커졌다.
화족들이 멸족한 것도 모자라, 협상장에서 수뇌부를 암살까지 했다.
심지어 군대를 동원해 미사일까지 쐈다.
끝났다.
이제 내각과 화족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 하나가 사라지기 전까지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지옥인데, 직접 ‘셀루티스’라는 사실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내각과 셀루티스가 한통속으로 묶인 것이다.
“이익! 이이익……!!”
이성을 잃은 총리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은 많은데 화가 목 끝까지 차서 말보다 욕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가토는 볼을 부르르 떠는 총리에게 부드럽게 웃어 줬다.
“총리님, 이런 말이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총리님께는 처음부터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뭐, 뭐엇!!”
“총리님이 무슨 선택을 했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가토가 총리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떼어 냈다.
“이미 저희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총리님이 아는 의원들 중 대부분이 저희 쪽 인물입니다.”
“……!!”
“충성스러운 당신의 보좌관 나카모토. 그분도 저희 쪽이고, 당신의 수행 비서 테츠야도 저희 쪽에서 붙인 사람입니다.”
“대, 대체…….”
가토가 말한 두 사람 다 20년 이상 총리의 곁을 지켜 준 인사들이다. 당시만 해도 총리보다는 ‘노다 타이요우’로 더 알려졌을 때.
총리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너희들…… 내가 총리가 되기 전부터…….”
“사태 파악이 되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모자라세요. 노다 씨를 총리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 것 같습니까?”
가토의 웃음이 한껏 짙어졌다.
“만약 그때 제 손을 잡지 않았다면, 총리님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
성공의 나날이었던 인생이 누군가의 인형 놀음이었다니. 총리는 이 모든 게 믿기지 않는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가토는 총리의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끝까지 총리님의 편이니까요.”
“…….”
“그래도 충격이 심하신 모양이니, 제가 총리님의 충격을 ‘없애’ 드리겠습니다.”
“……?!”
총리가 무슨 개소리냐며 돌아보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옴짝달싹 못 하게 마비된 신체.
눈이 떨린다.
이게 뭐지, 분명히 그가 알고 있는 가토는 초인이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마나 측정도 몇 번이고 했지 않나. 애초에 가토에게 마나가 있었다면 총리의 품에 있는 경보기가 진동했을 거다.
근데 어떻게.
“궁금하신 눈빛이군요. 이건 제가 모시는 분의 ‘기적’입니다. 곧 총리님도 받게 될 은총이지요.”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인영이 들어섰다.
역십자 후광이 눈부시게 비치는 여인. 가토의 주인이자 셀루티스의 그분.
가짜 수호령, ‘아크 엔젤’이었다.
“가토.”
“뜻대로 하소서.”
아크 엔젤이 가토를 지나쳐 총리의 앞에 섰다.
그리고 역십자 펜던트를 들고선, 두개골 안으로 심어 넣었다.
“웁웁웁웁!!”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
가토가 몸부림치는 총리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