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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44화 (144/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44화>

어린 시절, 가토의 집은 작은 두부 가게를 했다.

아버지에, 아버지, 그 아버지부터.

가토의 집은 365일 매일 같이 두부를 만들었고…… 매일 새벽,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가게의 문을 열었다.

500년을 내려온 집안의 두부 가게는 마을의 명물이었으며, 가게의 셔터를 열 때면 언제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어린 가토에게 이 줄을 선 사람들은 일종의 자부심이었다. 부모님이 만든 두부가 이토록 사랑받는다는 게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자랑스러웠다.

“아버지, 저도 커서 두부를 만들 거예요. 세계 최고의 두부를요!”

어린 가토의 말에 아버지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칭찬을 받은 날이면 10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두부를 만들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궁리는 배움으로 이어지고, 배움은 시야를 넓힌다.

그리고 시야가 넓어지면 인간은 욕심을 가진다.

비록 시작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두부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명제로 시작했지만, 이게 눈 덮인 산에서 눈덩이가 몸을 굴리며 몸집을 불리듯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결국 어렸을 적, 자그마한 두부 가게는.

가토가 교복을 입을 때쯤에는 두부 공장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됐다.

“가토 상 되십니까? □□은행에서 나왔습니다. 대출 상환 관련으로 문의드릴 게 있어서.”

느닷없이 은행의 압박이 들어왔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웃던 은행 직원들인데,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돌변해 가토의 아버지를 조여 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 가족이 그렇게 질이 나쁘다면서요.”

“글쎄, 저 공장도 사기 쳐서 올렸다는 소문이 돈다니까요.”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 없던 가토의 어머니는 어느새 희대의 사기꾼이 되어 있었다.

가토라고 괜찮을까.

“야, 쟤가 걔지? 사기꾼 아들내미. 키킥.”

“야, 야. 말 걸지 마. 괜히 엮이면 너도 찍힐 수 있어.”

이지메.

집단 따돌림.

모두가 가토를 무시했다.

학생은 물론이고, 학생을 지켜 줘야 할 선생까지도. 심지어 어렸을 적 항상 함께 보냈던 친구들도 가토 곁을 떠나갔다.

그렇게 가토의 집안은 지옥으로 떨어졌고, 이후는 대부분이 생각하듯 파국이었다.

40대 부부, 생활고 못 이기고 목매달아

“…….”

가토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장례식장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이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그냥 좋은 두부를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당연했다. 가토의 나이는 고작 14살. 중학교에 겨우 들어갈 나이였으니까.

그러던 차에 가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답을 알게 되는데.

“야, 걔 이야기 들었어? 걔 부모님 자살했다던데?”

“조금 불쌍한 듯. 하필 ‘텐구 가문’한테 찍혀서.”

“응? 텐구가? 텐구가라면 화족이잖아. 무슨 말이야? 나도 알아듣게 설명 좀 해 주라.”

“이건, 나도 친구한테 들었던 건데. 걔 아빠가 ‘텐구가’한테 찍혔대. 공장 세우는 데 인사 안 했다나 뭐라나. 뭐, 밉보인 거지.”

“에에엑? 겨우? 그런 이유로? 그건 그냥 화풀이잖아.”

“뭐, 화족이 변덕스러운 건 유명하잖아. 걔들 마음먹으면 사람 한둘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너희도 조심해. 괜히 불쌍하다고 친한 척하지 마.”

사람들이 없는 뒷골목에 숨어 있다가 엿들은 사실.

정말이었다.

놀랍게도 텐구 가문이 가토의 집안을 무너트린 이유는 ‘인사를 하지 않아서’라는, 이 하찮은 이유뿐이었다.

이 소름 끼치는 사실은 가토의 사고를 산산이 부서뜨렸다.

그렇구나. 너희는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거구나.

그렇다면, 나도 너희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겠다.

너희는 악이다.

이제 내가 너희를 징벌하겠다.

“그분의 이름으로 악을 멸하소서.”

세계 최고의 두부를 만들겠다던 꿈이 부서진 자리.

광신도가 눈을 뜬 것이다.

*   *   *

“대사제님. 가토 대사제님.”

과거를 회상하던 가토의 눈이 다시 초점을 맞췄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커흐음, 회의에 집중해 주세요.”

회의실 내에 있던 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내각의 주요 인물들 몇몇만이 초대받은 회의. 이 회의에서 일본의 운명이 정해진다.

다섯도 안 되는 인간들이 1억에 가까운 국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로 현실이었다.

“전국에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의도한 결과지만, 이건 도를 넘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죠. 과격하고요.”

“지금은 저들의 분노를 조절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통제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에잉,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닌 말로, 시민들이 주권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나 됩니까?”

“의원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너무 과격한 발언은 자제하시는 게…….”

“큼! 내가 없는 말하는 것도 아니잖수. 그들이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요. 이건 국가적 후퇴예요. 후퇴! 쯧!”

“그런데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토’ 가문이 멸족됐다고 하던데…….”

“저도 비슷한 소문을 들었어요. ‘고니시’ 가문이 누군가에게 습격받아 멸문했다는 소문이요.”

“헹,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화족들이 멸족이라니요. 그 바퀴벌레 같은 자식들이 그렇게 쉽게 죽겠습니까. 다 저희를 방심시키려는 수작입니다.”

“자, 자. 조용! 회의의 논점을 흐리는 말은 삼가도록 하세요. 우리는 ‘계엄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혼란.

현재 일본의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였다.

일본의 정치는 전통적으로 중앙의 내각과 지방의 화족들의 대립하며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실상은 압도적으로 화족들의 우세였다.

내각은 단 한 번도 우위에 서 본 적이 없었다.

내각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권력을 쟁취할 기회를.

가토는 이를 노렸다. 저들이 갈구하는 기회, 욕망…… 내각의 권력욕을 부추겼다.

동시에 세계에서 회수한 ‘구원’들을 일본에 집중. 무력을 갖춘 순간, 삼합회와 여타의 조직들에서 구입한 ‘제물’들을 옮겨 왔다.

그리고 이 제물들로 ‘그분’의 강림에 맞춰.

뻥-!

터트린 것이다.

이후는 드러난 대로다.

그분은 수호령 ‘아크 엔젤’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내각은 이를 인정했다.

화족들은 뜬금없이 등장한 수호령에 대응하지 못했고, 이로써 내각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계엄령.

명분은 ‘화족들의 집단 반란’.

문서상에 ‘화족’이란 두 글자를 처음으로 명시한, 그야말로 선전 포고였다.

하지만 화족들이 괜히 화족들이겠나.

그들은 짧게는 500년, 길게는 1000년 이상 가문 대대로 한 지역에 뿌리를 박고 군림했다. 세월이 구축한 파벌은 대나무 뿌리처럼 뻗어 나가 한 지역의 경제 및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야말로 다이묘(일본어:大名).

화족들은 한 지역의 영주이자 군주였다.

화족들의 저항이 거세졌다. 자위대와 대립하며 동시에 내각에 압박을 가했다. 내각도 질 수 없다는 듯 여론을 선동, 국민들에게 화족들의 만행을 알렸다.

이에 도시 곳곳에서 국민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모른다.

내각도, 화족도, 국민도 모두 가토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각의 비리 장부를 화족에게 넘겨 막다른 길로 몬 것도.

일부 화족들을 멸문시켜 물러설 길을 차단한 것도.

혁명을 꿈꾸는 자들을 부추겨 국민들을 선동한 것도.

모두 가토의 기획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계엄령을 유지하는 것은 저희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맞아요. 제가 요 며칠간 받은 기업 총수들의 전화가 몇 통인지 셀 수 없을 지경이에요.”

“총리님, 엄밀히 말해서 저희의 처음 구상에 ‘계엄령’은 없었잖습니까. 그저 화족들의 커넥션을 흔들고 중앙 집권 정치를 강화하려는 의도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버렸습니다.”

“확인된 바로는 전국의 화족들이 후쿠오카와 홋카이도로 나누어 결집하고 있습니다. 도쿄를 중심으로 최대한 멀리, 양 극단으로 찢어지는 걸로 보입니다.”

“몇몇 지방에서는 자위대가 무력으로 제지하려 했지만, 화족들이 이에 불응하며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충돌이 문제가 아니에요. 홋카이도 지사와 후쿠오카 지사가 공식적으로 화족을 지지하고 나섰어요.”

“저도 봤어요. 중앙 정부의 과도한 참견을 물고 늘어지더군요. 사실상 반기를 든 셈이에요, 총리님.”

“저쪽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내각의 공식적인 사과와 ‘화족’의 권리 명시. 마지막으로 수호령 ‘아크 엔젤’의 신병 인도.”

이어지는 말에 총리가 끝내 한숨을 뱉어 냈다.

너무 커졌다. 내각에서 컨트롤하기 벅찰 정도로 상황이 복잡해졌다.

아니, 벌써 손을 떠났을지도…….

총리는 약간은 원망 섞인 눈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가토 대사제님, 오늘따라 조용하십니다. 계엄령 때만 해도 적극 찬성하셨던 분이 가토 대사제님 아니십니까.”

가토를 콕 집어서 묻는 질문.

너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이 많지 않나?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일본식 수사법이었다.

가토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히 저희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계엄령을 선포하면 저 악적들이 조금은 수그릴 줄 알았는데, 이 나라에는 그들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게, 촘촘히 박혀 있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가토는 비상계엄으로 얻을 건 다 얻었다. 당초의 목표대로 화족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잖나.

이걸로 계엄령은 의미를 다했다.

“인정만 하면 다입니까!”

“상황이 이렇게 악화됐어요.”

“당신과 수호령을 믿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결과가 이렇게 됐네요.”

“여러분의 말대로 과도한 진압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가토의 사과에 저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다.

혹시라도 이번 사태가 잘못된다면 쏙 빠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얄팍한 모습에 가토는 속으로 비웃었다.

사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명분,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책임, 얼마든지 질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마라.

사과를 해도, 명문을 쌓아도, 책임이 없어도.

‘너희도 공범이란 사실을.’

이미 배는 출항했고, 아무도 이 배에서 내릴 수 없다.

이 배의 키는 방금 전 부서졌다.

그 시각, 복면을 쓴 인영들이 도쿄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아이스 스피어 다발이 하늘을 가리며 내리쳤다.

총을 쏘던 오니 요시나오가 마법의 궤적을 파악했고, 곧바로 노인과 아이들을 노린다는 것을 눈치챈다.

막아야 한다!

오니 요시나오의 눈이 검게 물든다.

가뜩이나 검은자밖에 없는 눈이건만, 눈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그 깊이를 더해 갔고.

오니의 술 1장

흡기의 술

시야 내에 있던 ‘마법’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마법을 마나로 치환.

그 상태로 곧바로 수인을 맺는 오니 요시나오.

삼라만상

풍벽(風壁)

곳곳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려 폭풍의 장벽으로 돌변했다.

이게 오니가의 자랑, 요안이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마법을 ‘흡수’, 그 즉시 마법을 ‘분해’, 마나를 흡수해 다시 ‘발현’하는, 괴랄한 성능의 형질계 혈족.

곳곳에서 마법들이 솟아올랐지만, 오니 가문의 일원들이 모조리 마법을 흡수해 다시 습격자에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습격자들의 공격을 막고 있는 와중에도 오니 요시나오의 표정은 가히 좋지 않았는데.

“……적의 숫자는 어떤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나?”

“죄송합니다…….”

“후우.”

적의 숫자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전황.

눈앞에 보이는 저것들은 일부일 뿐이다. 적들은 퇴로를 막으며 사방에서 조여 오고 있다.

오니 요시나오는 척후대를 보내어 길을 틀 생각이었지만.

“척후대는? 아직도 소식이 없나?”

“네.”

이 꼴이 났다.

“젠장…….”

화족과 내각의 대립은 내각이 바로 어제 계엄령을 풀며 일단락되는 듯했다.

결국 승자는 이번에도 화족이다. 화족 동맹은 승리를 자축하며 축배를 들었더랬다.

오늘 아침, 협상장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수호령의 하인들이라 칭하는 이들이 협상을 시도했고, 가주들을 비롯한 주요 인원 몇몇이 협상장에 출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일한 행동이었다. 충돌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수뇌부 전체가 적진으로 가다니.

근데 당시에는 이상할 정도로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화족과 내각이 서로 날을 세운 게 하루 이틀인가. 물론 이번 충돌은 정도 이상으로 극단적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역사를 따져 보면 이것보다 훨씬 심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충돌에도 현재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서로 끝까지 가지는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복된 역사는 사람을 무뎌지게 했고, 수뇌부는 이번에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푹!!

수뇌부들의 몰살.

그와 동시에 수호령의 하인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했다.

선전 포고도 없었다. 어떠한 대화도 없이 다짜고짜 칼날을 들이밀었다.

진짜 죽고 죽이는 전장이 펼쳐진 것이다.

“소가주님, 전황이 어지럽습니다. 소가주님이라도 몸을 피하시는 게…….”

“다른 가문의 주요 인물들도 피하고 있습니다. 소가주님도 빠르게…….”

오니 요시나오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저들이 순수한 충의로 도망을 권했을까. 아니다. 주인인 자신이 몸을 빼는 김에 같이 도망가려는 거다.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화족들의 고질적인 문제, 실전 경험의 절대적 부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곧 옵티멈의 지원이 올 겁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터서 하카타항까지.”

“소가주님…….”

“그동안…….”

“조용!! 이미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떠들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막으세요. 당장!!”

소가주의 호통에 일족들이 부리나케 흩어졌다.

미련이 남는지 돌아보는 이도 있다.

요시나오가 그 마음 모르겠나. 자신도 살고 싶다. 누구보다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갈까?

하늘은 마법의 폭격으로 가려져 있고, 땅에는 적들이 사방에서 조여 오고 있다.

도망칠 곳이 전혀 없다.

여기에 적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범위 마법을 펼쳤다. 민간인 희생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죽일 셈이냐.”

하지만 그는 몰랐다.

요시나오의 이런 상념 자체가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을.

전투 상황에 전투 이외의 것을 생각하다니.

만약 박기혁이 이 모습을 봤다면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때렸을 거다.

그리고 이 미숙한 정신 상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데…….

한 무더기의 ‘아이스 스피어’가 하늘 저편에서 날아오는 중.

아까와 똑같다.

다른 거라면 숫자의 차이 정도.

2배…… 아니, 3배. 그 이상으로 많다. 잠깐이지만 대지를 가릴 만큼의 숫자였고, 오니 요시나오는 전과 마찬가지로 마법을 지우기 위해 ‘요안’을 개방했다.

그런데, 개방했는데.

지워지는 것은 겨우 절반?

마법인 아이스 스피어 사이에 혈족 ‘아이스 쉬프트’로 만들어진 얼음 창을 숨긴 것이다.

“모두 방어 주술!!”

다급히 말해 봤지만, 한발 늦었다.

얼음 창들이 땅으로 내리쳐졌고.

“커헉!”

“크악!!”

“내 팔!”

“엄마, 엄마아!!”

일족들이 땅에 쓰러진다.

오니 요시나오는 꿰뚫린 어깨를 애써 막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바닥으로 빛이 내리쪼인다. 일순간 몸이 따스해질 정도로 강렬한 빛. 정상적이지 않은 빛에 요시나오가 침을 꿀꺽 삼키며 하늘을 보는데.

그 순간, 요시나오의 몸이 얼어붙는다.

“……!!”

빛의 창.

구름 사이로 거대한 빛의 창 수십 자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목표는 두말할 거 없이 이쪽.

창들이 마치 조준하듯 화족들을 향해 겨냥되고.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쏘아졌다.

이쪽으로 빛살처럼 쏘아지는 창들을 보며 요시나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 꿈만 같다.

영광스럽던 화족이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된 현실도.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해 본 채 죽음을 앞둔 이 상황도.

‘꿈이야. 맞아. 꿈이야.’

요시나오는 흐릿하게 웃으며 눈을 감는다.

죽음을 앞두고 체념한 게 아니다.

그냥 꿈일 거라 믿는 거다. 깨고 나면 다시 집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현실에서 도망친 거였다.

그리고 이건, 여기 이 남자가 가장 혐오하는 행동이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콰아아아앙-!!

굉음이 들려온다.

지축이 흔들린다.

희뿌연 거인이 상반신을 일으키는 순간, 빛의 창날이 부서져 갔다.

곧이어 허공으로 황금빛 검이 생성된다. 별빛을 닮은 검기는 이미 바닥을 헤집었고, 저편으로 길이 나기 시작했다.

옵티멈.

그들이 도착한 것이다.

“넌 나중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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