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43화 (14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43화>

어둠이 깔린 도시.

남자는 몸을 움츠린 채 다급히 골목으로 들어섰다.

식당들이 즐비한 블록이지라 식당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평생을 화족의 일원으로 살아온 남자다. 분리수거는커녕 쓰레기 냄새를 맡아 본 적도 없었기에 남자는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그래도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삶에 대한 욕구가 그의 다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다.

골목을 벗어나 허름한 맨션이 보인다.

남자가 매번 근성이 없다고 놀려 대던 프리터족들이 살 법한 맨션이었다.

‘여기야.’

2층에, 4번째 방.

여기다.

남자가 열쇠를 밀어 넣는다.

그런데 열쇠가 잘 돌지 않는다.

“칙쇼! 뭐야! 뭐냐고!”

사실 열쇠는 맞았다. 다만 열쇠를 거꾸로 넣은 것.

기본적인 것이지만 현재 남자는 이 기본적인 것도 판단하기 힘들 만큼 쫓기고 있었다.

다행히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

보기만 해도 답답한 방이 보인다.

평생을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았던 남자가 보기에는 닭장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안도에 긴장이 풀린다.

닫힌 문에 기대어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았다.

이윽고, 흘러내리는 눈물.

“크흡, 흑흑흑…….”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 땅이 발전한 건 모두 우리 화족 덕분이잖아! 우리가 없었으면 이 나라는 벌써 망했다고! 그런데 이렇게 칼을 꽂아?!

서러웠다.

동시에 화가 났다.

“두고 봐라. 꼭 다시 돌아와 가문을 일으킬 거다.”

다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것을 되돌리리라.

남자가 눈물을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푸쉭-!

“커헉!”

남자의 가슴을 뚫고 나온 하얀 무언가.

그건 날개였다.

순백의 날개가 문을 뚫고서 남자의 등을 꿰뚫고 있었다.

남자가 피를 토하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날개를 본다.

죽음의 순간,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공격한 자를 보기 위해 돌아보고, 부서진 문틈으로 보이는 습격자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날, 일본의 유명 화족. ‘이토’ 가문이 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   *   *

늦은 저녁.

평소라면 봄이와 인형 놀이를 할 시간이지만, 현재 나는 처음 오는 편의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무리 때문에.

“현재 일본 전역에서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수호령’이라 부르는 괴물은 평등을 말하며 대중들을 부추기고…….”

“‘수호령의 하인’들의 주도하에 일반 시민들이 규합해 저희 화족들을 핍박했고, 저희는 생존을 위해…….”

새벽이를 ‘도련님’이라 부른 인물들.

처음에는 새벽이도 당황했다.

왜 안 그렇겠나. 생전 처음 보는 인간들이 다짜고짜 찾아와서 무릎을 꿇은 채 ‘도련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외치는데.

물론 당황은 잠시였다.

이 녀석들이 ‘오니’ 가문이랑 연결됐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송새벽의 얼굴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

당장이라도 자리를 파하고 싶어 하는 얼굴.

내가 아는 송새벽이라면 이렇게 얼굴을 맞대는 것조차 불쾌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혹여나 이 녀석들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찾아갈까 싶어서다.

전에 들었는데, 송새벽의 어머니에게 오니 가문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했다.

뿌리 깊은 상처 말이다.

부모님을 끔찍이 여기는 효자 송새벽이 어머니의 상처를 헤집어 놓을 만한 칼날을 방치할 리가 없었다.

“……결국.”

잠자코 있던 송새벽이 입을 열자, 모두가 긴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긴장은 충격으로 변한다.

“인과응보 아닙니까?”

“……!!”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둔다.

“당신들이 말하는 쿠데타라는 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죗값을 받는 것 같은데.”

“그런!”

“어떻게 그런 말씀을……!”

“억울해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겪은 당신네들은 일단 착한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

“말씀이 심하십니다!”

“호오…….”

마지막 감탄사는 나다.

우리 송새벽이, 제법 말 잘하네.

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어 봤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주절주절 길지만 저들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갑자기 일본에 괴물이 등장했다. 괴물은 자신을 ‘수호령’이라 칭했고 세력을 형성했다. 일본 내각이 수호령이라는 괴물을 인정해 버린다.

부지불식간에 ‘수호령’이 돼 버린 괴물.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일본의 수호령이 내세운 기치다.

평등, 훌륭한 가치관이다.

하지만 조금만 잘 생각해 보면, 이 평등의 칼날이 좋은 쪽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성을 가질 시 얼마나 안 좋게 휘둘러질지 예상이 가능하다.

역시나, 칼날은 기다린 것처럼 휘둘러졌다.

“화족들의 독점은 도를 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공연히 귀족이라 부르며 계급을 형성했다.”

“우리 일본이 유사 민주주의라 불리는 원인이 뭔가. 다 저 화족들 때문이다.”

수호령, 내각, 시민.

전부 화족들을 향해 칼날을 세운다.

저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때 화족들은 몸을 굽히며 협상을 하려 했단다. 억울했지만 모두가 불만을 제기하니 잘못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나, 뭐라나.

근데 이런 화족들의 노력에도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눈 깜짝할 새 고립되어 이제는 생존의 위험까지 느끼는 형편이란다.

그래서 저들은 이를 ‘쿠데타’라고 표현하고 있는 거다.

자, 여기까지가 저들의 입장인데.

여기에 중요한 맹점이 있다.

앞서 송새벽이 말한 ‘인과응보’였다.

“너희들 독점한 건 맞잖아?”

“이익! 관계자가 아니면 빠ㅈ…….”

“지랄하지 마. 너희들 나 알잖아. 내 뒤에 있는 옵티멈도 잘 알 테고. 그러니까 얘한테 구해 달라고 찾아왔지. 송새벽이 나랑 연관 있다는 거 알고 나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싶어서.”

“…….”

“설마 너희들, 새벽이가 단신으로 너희들을 도와 이 상황을 해결할 거라는, 꿈같은 상상을 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안 그래?”

“…….”

꿀 먹은 듯 조용해지는 녀석들.

“봐라. 너희가 내 말에 아무 말도 못 하잖아. 이게 왜인 줄 알아? 팩트야. 팩트로 후려 패니까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야. 지금 너희 상황이 이래.”

실제로 화족들이 일본에서 큰 부를 독점한 건 사실이다.

현대 에너지 사업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마석, ‘금력’을 독점했고 이도 모자라 에이전트 산업에까지 손을 뻗으며 ‘무력’까지 독점했다.

이런 화족의 독점 현상은 일본의 사회 및 경제를 병들게 했고, 일본이 갈라파고스화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세계사 시간에 졸았던 나도 아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현실을 잘 봐. 너희들은 쿠데타라고 말하고 있지만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야.”

쿠데타란 특정 세력이 무력으로 통치권을 장악하는 행위다.

내가 봤을 때 일본의 현재 상황은.

“이거 ‘혁명’ 같은데?”

절대 다수가 소수 화족들의 횡포에 들고 일어선 것.

이건 누가 봐도 혁명 아닌가.

“혁명이라니요! 아무리 당신이 검호가의 아들이라 해도 말이 심하십니다!!”

“터무니없는 망언입니다! 화족이 없었다면 일본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껏 저희 화족들은 일본에 헌신했습니다.”

한마디 했다고 지랄 발광하는 녀석들.

이럴 줄 알았다. 사실을 말해 줘도 이 꼬라지인데,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나.

나는 흥분한 그들을 무시하고 시계를 본다. 30분 내로 오신다 하셨으니 얼추 다 됐다.

한편 송새벽이 단호한 얼굴로 말하는데.

“그래서 저를 왜 찾아온 겁니까.”

“지금까지 저희가 한 말…….”

답답함을 토로하려던 남자를 여자가 가로막는다.

눈치가 있다. 지금 송새벽이 말하는 바는 ‘왜 이제야 찾아온 거냐.’였다.

“……하즈미 아가씨의 파문은……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가주님도 하즈미 아가씨를 파문하신 것을 후회하고 계십니다.”

“하즈미가 아닙니다. 송미주. 저희 어머니 성함은 송미주입니다.”

“아니요, 제게는 하즈미 아가씨입니다. 저는 하즈미 아가씨를 어렸을 적에 뵈었습니다. 물론 가문의 실책은 잘 압니다. 이에 대해 백번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련님. 그래도 저희는 일족입니다.”

“하…….”

여자는 어이가 없다며 웃는 송새벽을 애써 무시하고 계속해서 떠든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 사정이 있었다. 당사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후회를 되돌리려 했다 등등.

너무 뻔한 변명에 나마저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즈미 아가씨가 설령 파문을 당했다 해도, 저희 오니 가문의 혈족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도련님. 한 번만 도와주신다면…….”

개소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이건 한마디 해야겠다. 내가 마음먹고 입을 열려고 할 때.

그 순간.

“헛소리하고 있네.”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리고, 거기에는 반가운 얼굴이 서 있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애들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김연희 여사님 등장이오.

“반가워, 새벽아. 아줌마랑 처음 보지?”

“안녕하세요.”

“어쩜, 생긴 것도 복스럽게 생겼니. 울 막둥이랑 닮았어. 시간만 있으면 아줌마가 맛있는 거 사 줄 건데, 상황이 이렇다. 그치?”

“아…… 네.”

“저기.”

“조용.”

대화에 끼어들려는 녀석들을 한 손으로 제지한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새벽이 부모님들도 좋은 분이시더라.”

“저희 부모님을 어떻게…….”

“기혁이가 부탁하더라고. 너희 부모님 좀 챙겨 달라고.”

새삼스럽게 나를 보는 녀석.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조만간 꼭 보자. 빈말 아니야. 약속! 기혁이는 전에 간 별장 알지? 거기로 가면 돼.”

재차 말을 꺼내려는 녀석들. 어머니는 계속해서 녀석들을 무시한 채 웃는 얼굴로 손짓했다.

“어서 가렴. 이후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따라와. 애꿎은 애들 잡지 말고.”

모든 일에는 전문가가 있는 법이고.

말로 조지는 것은 우리 어머니가 전문이시다.

*   *   *

김연희의 거래 법칙 첫 번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앞에 있는 작자들은 선을 넘었다.

“앉아.”

“정중히 요청합니다.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

“맞습니다. 현재 저희는 비단 오니족이 아닌 일본 전체 화족을 대표해 서 있는 겁니다.”

“예의? 하하, 너희들 말 참 재미있게 한다. 나를 건너뛰고 내 새끼한테 접근한 건 어느 나라 예의야?”

“그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으로 받아 주십시오.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화족들의 운명이 위태롭습니다. 저희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변명이 늘어지려는데, 이를 두고 볼 김연희가 아니다.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만 못 박아 두자. 새벽이 어머니, 건들지 마.”

“그건, 가문의 영역입니다. 당신이 간섭할 바는…….”

“나가.”

“네?”

“너, 나가라고.”

“무슨.”

“네가 계속 여기 있으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김연희의 거래 법칙 두 번째.

주도권을 잃지 말자.

이 거래는 내가 집도한다.

남자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일어나 사라지고, 그제야 김연희가 화사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동의하는 걸로 알겠어. 본론으로 넘어갈까.”

“……저희 오니 가문은 화족들을 대표해 옵티멈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의뢰네. 흠…… 구조 의뢰는 까다로운데. 상황부터 설명해 봐.”

대표 격으로 보이는 여인이 현재 일본의 상황을 설명한다.

물론 조금 전 박기혁과 이야기할 때처럼 자기 입장에서 포장하는 내용이지만, 이를 넘어갈 김연희가 아니다.

‘대충 윤곽이 잡히네.’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정보의 창구가 막혔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중요한 정보를 떠들어 주니 김연희 입장에서는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조언해 주기로 했다.

“너희들이 이걸 쿠데타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알겠어. 다른 나라의 관심을 끌고 싶은 거겠지. 근데 이거 아무리 봐도 혁명이거든? 솔직히 너희 화족들이 그동안 좀 그랬잖아. 여튼,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말해 봤자 공감받기는 어려울 거야. 참고해.”

“…….”

“더해서. 장담컨대, 일본에 고립된 화족들을 구해 주는 국가는 아무도 없을 거야. 명분이 없잖아, 명분이. 내각을 비롯해 국민 절대 다수가 동의한 일인데, 타국이 뭐라 하겠어?”

“…….”

“이게 일본의 현 상황인 거야. 현실을 알겠어?”

금덩이 같은 조언은 여기서 끝.

본론으로 이어 간다.

“즉, 현재 너희가 의뢰한 건 구조 의뢰가 아니라 밀항이야. 불법이지. 우리 옵티멈은 불법은 행하지 않아. 비상계엄이 풀려야 움직일 수 있어.”

“비상계엄은 풀릴 겁니다. 내각에서도 말이 많은 부분입니다.”

“아예 끈이 떨어진 건 아닌가 보네. 좋아, 비상계엄이 풀린다는 전제하에 계산을 해 보자면…….”

톡톡.

김연희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치며 잠시 고민하더니.

“그래도 불가.”

“왜입니까!”

“왜긴, 너무 위험해. 너희 화족들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며. 그 정도로 위험한 곳에 우리 식구들을 보낼 수는 없잖아.”

“대가를 드리겠습니다! 위기에 걸맞은 대가를 드리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흐응…….”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드릴 테니…….”

“그 말.”

“네?”

“뭐든지 준다는 그 말.”

빙그레 웃는다.

김연희의 거래 법칙 세 번째.

한 번 뱉은 말은 지킨다.

자신이 뱉었든 타인이 뱉었든.

절대로.

“그 말,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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