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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37화 (137/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37화>

버찌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요상한 물체가 비친다.

대체 이건 뭘까. 언니는 내 새로운 ‘동생’이라고 하는데…….

버찌가 용기를 내어 눌러 본다.

꾸- 욱?

버찌의 발바닥이 한 움큼 들어갔다가, 탄력에 의해 ‘포실!’ 튀어나온다.

“하아악―!”(기분 나빠!)

학을 떼는 버찌.

차갑고,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빠!

집어넣었던 발을 핥는다.

뭐가 묻은 거 아니지? 몇 번이고 살펴봤다.

이게 내 동생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아무리 언니라도 이건 안 돼! 못 해!

박봄이 동생을 데려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저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캡틴 타이거’ 인형들이나, 침대에 놓여 있는 ‘엔젤 드래곤’ 인형들도 전부 버찌의 동생들이다.

박봄 품에 안겨 이 방문을 통과한 인형들은 버찌의 동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근데 이건 안 되겠어, 언니.

버찌의 넓은 가슴으로 품기에, 이놈은 너무 불쾌하다.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눌러 본다.

뀨- 욱?

“햐아아악―!!”

못 참겠다!

참지 못한 버찌가 앞발로 후려친다. 근데 튕겨나가기는커녕 ‘포실~.’ 출렁대는 녀석.

열 받네? 다시 쳤다. 또 포실…… 출렁댄다.

“샤아악?”(이게?)

다다다다다다다-!

버찌가 발톱을 세우고 필살 ‘다다다다!’를 시전했다. 이불쯤은 단숨에 찢겨지는 무서운 기술이다.

한데.

퐁퐁퐁퐁-!

아무렇지도 않다. 긁힌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출렁거리며 다시 형태를 찾는 녀석.

버찌는 열 받았다. 마치 ‘그것밖에 안 돼? 더 해 봐!’라며 약 올리는 것 같았다.

버찌는 참을 수 없었다.

건방진 녀석.

감히 막내 주제에 나에게 대들어?

버찌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불길하게 물들었다.

언젠가부터 박기혁은 봄이에게 ‘신체’들을 붙이지 않는다. 대신 버찌에게 봄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버찌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어엿한 한 마리 ‘마수’이기 때문이다.

마나를 조립해 바람의 망치를 만든다. 부수면 안 되니까 적당히 적당히, 힘 조절해서 혼만 내 줄 정도로 얄팍하게.

‘혼나 봐라.’

바람의 망치가 내려쳐지는데.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리고.

“버찌야, 언니 왔어!!”

방금 전 소란은 무색하게도 평온한 방.

“어? 버찌, 벌써 ‘포실’이랑 친해졌구나!”

“냐아아앙-.”

버찌는 세상 순진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넌 나중에 두고 보자.

*   *   *

박봄의 마룡기, 이른바 ‘박포실’은 슬라임 형태다.

슬라임이 무엇인가. 몬스터 중 최약체로 맹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몬스터 아닌가.

그래서인가, 처음 박봄의 마룡기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다른 것에 비해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기혁만큼은 달랐는데.

“우리 딸, 대단한 걸 얻었네.”

사람들은 잘 모른다.

현존하는 몬스터의 절반 이상이 이 슬라임에서 진화했다는 것을.

몬스터의 근원. 이것이 바로 슬라임이었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변형’ 가능했고.

“아빠! 아빠, 봐봐! 짜잔, 인형!! 봄이가 해냈어!”

“우와! 그러네!”

“헤헤. 더 신기한 거 보여 줄게. 요렇게 덩어리를 떼서, 짜잔! 하나 더 나왔지롱!”

“오오오오!! 이제 인형 놀이 혼자 할 수 있겠네! 봄이 대단해!”

“헤헤헤헤. 봄이는 대단해!!”

무엇이든 담을 수도 있다.

“아빠! 이거랑 이거, 뭐가 틀리게~.”

“응…… 어? 봄이, 여기에 ‘혈족’ 넣었어?”

“헤헤헤! 딩동댕! 얘는 ‘악묘’고 얘는 ‘숙수’야!”

“우와아……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아빠 궁금해.”

“응응! 봄이가 보여 줄게. 잠시만.”

박봄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혈족들을 컨트롤할 수 있음과 동시에, 끝없는 상상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태.

마룡기는 이처럼 사용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변해 있었다.

*   *   *

불길이 치솟는다.

뇌전이 내려친다.

내려치는 마법의 폭격 속에서 한준우와 메르헴이 눈빛을 교차하더니, 양쪽으로 갈라졌다. 메르헴은 주술을 펼치며 한준우를 보조, 한준우 주위의 마법이 일순간 ‘정지’됐다.

행동이 자유로워진 한준우가 검술을 펼쳤다.

검에 빛이 일렁이길 잠시, 보이지 않는 속도로 쏘아지는 쾌검. 정확히 상대의 목덜미를 노린 공격이었다.

하지만.

챙-!

허무하게 막히는 공격.

한준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검이 막힌 것에 놀라서? 아니다. 자신이 박기혁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공격이 다 적중하겠나.

더군다나 상대가 진유리라면 오히려 이거에 당하는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런데 왜 한준우가 놀랬을까.

바로 그 막은 ‘방법’ 때문이다.

한준우의 검을 막고 있는 건, 대검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대검 말이다.

“어때? 내 ‘검술’도 쓸 만하지?”

“이게 마룡기…….”

진유리가 잘하는 것이라면 ‘마법’이다.

진유리가 필요한 것이라면 ‘강인한 육체’다.

진유리가 원하는 것이라면 ‘박기혁’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룡기 ‘드래고니안.’

사용자의 ‘마나’에 비례해 체력 및 물리력을 증가시키고, ‘검술’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괴물 딱지 같은 성능의 마룡기였다.

챙! 챙-!

한준우의 검이 춤을 춘다. 진유리의 대검도 춤을 춘다.

현란한 공방이 이어졌다.

검과 검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음악이 두 사람의 심장을 때려 댔다.

‘진유리와 검을 나눌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대등하게…… 한준우로써서 상상도 못 한 상황이다.

예전의 진유리였다면 검을 쫓는 방법 대신 실드를 펼친 뒤 마법으로 반격해 왔을 거다. 워 아머를 착용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워 아머는 방어에 중점을 둔, 다소 둔탁한 풀 플레이트 아머를 닮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봐라.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거의 타이즈에 가깝다. 검붉은 비늘로 둘러싼 타이즈는 굉장히 날렵해 보였다.

과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진유리는 한준우와 근접전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면, 지금의 진유리는 한준우의 검을 쫓아갈 힘도, 능력도 충분했다.

더욱이 기술마저도.

“검호류…….”

검호류 쾌검술

별똥별

검의 선이 광채를 내뿜는다. 핏빛 선혈을 닮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한준우가 몸을 뒤로 젖히는데.

“……!”

뒤쪽에 있던 숲이 일거에 싹둑 반토막 나고 있었다.

“……그 검술?”

“헤헤. 어때? ‘별똥별’인데 괜찮아? ‘상상’만으로 쓰는 거라 아직 좀 그렇지?”

“……미쳤군.”

“헤헤. 칭찬 고마워.”

진유리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던 때.

느닷없이 그녀의 꼬리가 쏘아지고, 은폐 주술을 쓴 채 뒤를 노리던 메르헴의 메이스를 막아 냈다.

메르헴이 땅에 안착하며 쯧, 혀를 찾다.

어떻게 막았지? 고위 주술을 덕지덕지 묻힌 한 방이었다. 박기혁이야 그 특유의 ‘본능’으로 알아챈다지만, 마법사들의 감지 마법으로는 절대 찾지 못하는 공격이었다.

실제로 진유리는 ‘몰랐다’.

진유리의 마스크가 벗겨지며 메르헴을 쳐다본다.

“와, 메리 실력 많이 늘었네. 감쪽같이 당할 뻔했잖아.”

“……장난해요, 유리? 막아 놓고 당할 뻔했다니요.”

“아아, 그게. 이게 설명이 복잡한데.”

설마 진유리가 검술을 익혔겠나? 절대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진유리가 천재라도 물리적인 시간이나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나는 상상을 하고, 얘는 내 상상에 맞춰 움직이는 거야.”

“모르겠군.”

“……전혀 모르겠어요, 유리.”

“그냥 ‘드래고니안’이 혼자 움직인다고 생각해. 이건 쉽지?”

“…….”

“…….”

둘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진유리는 즐겁다는 듯 깔깔댔다.

사실 모르는 건 그녀도 매한가지.

마룡기라는 게 불과 며칠 전에 탄생한 따끈따끈한 신병기 아닌가. 성능도, 한계도, 아무것도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조금만 더 부탁해. 아직 나도 마룡기에 대해 잘 모르거든.”

방긋, 해맑게 웃으며 덮이는 마스크.

땅에 박혀 있던 대검이 들린다. 검붉은 꼬리가 떠오른다. 붉은 마나들이 뭉치며, 마나의 구들이 사방을 포위했다.

검과 마법의 향연.

검도.

마법도.

어느 부분에도 모자람을 찾아볼 수 없다.

완벽한 전투 병기.

두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의 진유리는 누군가 떠올리게 했다.

“박기혁이군.”

“기혁이네요.”

마룡기라고 했던가.

뭔지 모르겠지만…….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냈다.

*   *   *

응? 누가 내 욕하나.

귀가 가렵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긁고 싶은데, 지금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여기 김하니 후배님이 충심 어린 표정으로 간언 중인데 귀를 긁으면 그건 좀 예의가 없잖나.

“……4학년인 선배님이 바쁜 건 잘 알겠어요. 원래 능력이 좋으면 부르는 사람도 많고, 당연히 바쁜 게 맞겠죠. 하지만 책임이란 게 있는 거잖아요. 선배님이 동아리의 책임자인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방치하시면 되나요. 기혁 선배님, 제 말 듣고 있죠?”

“아, 응. 듣고 있지.”

듣고 있다.

요약하자면 동아리 때문이다.

우리 동아리 ‘출구 없는 지옥’.

어디에 속하기 싫은 내가 1학년 때 만든 이 동아리가 해체되기 직전이란다.

이에 흥분한 김하니가 마룡기 테스트하러 가던 날 붙잡아 앉힌 거고, 나는 애들 노는 데 끼지 못한 채 여기서 김하니의 충심 어린 잔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규정상 동아리는 자유로워요. 일단 창설 자체는 누구라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엄연히 최소 정원은 존재해요. 학생회 권한으로 10명이 되지 않는 동아리는 임의로 ‘해체 신청’을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다섯인데?”

“……다섯이죠. 맞아요. 다섯. 그런데도 해체가 안 된 것은 순전히 기혁 선배님 덕분이에요. 워낙에 선배님이 어마어마하니까 학생회에서 ‘해체 신청’을 할 생각도 못 한 거예요.”

“……아아아. 나한테 쫄았다는 거네.”

“정확한 표현이세요. 그러면 이후에 있을 문제도 아시겠어요?”

“내가 나가면 문제구나.”

“선배님은 4학년. 졸업반이시고 올해면 아카데미를 떠나시겠죠. 그럼 이후에 우리 동아리는 어떻게 될까요? 저 혼자 남는데요?”

“내가 없으니까 당연히 학생회가 해체 신청을 하겠고.”

“아카데미는 옳다구나, 이를 받아들이겠죠. 이로써 동아리는 우리의 추억 속에 남겨진 채, 사라지는 거네요.”

“흠, 하나 묻자.”

“말씀하세요.”

“너는 남는다며. 네가 신입생을 영입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 영입하면 되죠.”

“근데?”

“근데, 그걸 학생회에서 봐줄까요?”

“……응?”

“선배님, 잊으셨어요? 저희 동아리 찍혔잖아요. 학생회하고 아카데미한테.”

“아아아…….”

완전히 이해했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터라 잊고 있었는데, 이미 우리 동아리는 시작부터 학생회 및 아카데미와 척을 진 상황.

나라는 방패가 아카데미에서 사라지는 순간, 저들의 입장에서 탐탁지 않았던 동아리를 해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가.

“솔직히 사라져도 상관없긴 한데.”

“네?”

김하니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난 태연하게 커피 잔을 비웠다.

“어차피 남 밑에 들어가기 싫어서 만든 거거든. 딱히 없어져도 상관없어.”

큰 의미로 만든 게 아니다.

그냥 누가 내 머리 위에 서 있는 게 싫어서 만든 거다. 속된 말로, 꼴리는 대로 움직이고 싶어서 만든 것.

내게 동아리는, 4년 편하게 지냈으면 그 용도를 충실히 다한 거였다.

내 말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김하니.

“그, 그러면 우, 우리의 추억은요……! 동아리실 꾸밀 때 메리 선배가 엄청 공들였다고 알고 있어요.”

“메리한테 그거 돈도 아니야. 정 뭐하면 내가 줘도 되고.”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선배는 우리의 뜨거웠던 청춘을 버리시겠다는 거잖아요. 저는, 저는…… 동아리의 멤버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너 보기보다 감상적이구나. 사진 있잖아. 사진 봐. 그래도 정 보고 싶으면 만나면 되지. 너 내 개인 번호 몰라?”

“알죠…….”

“유리 번호도 알고, 메리 번호도 알고, 준우 번호도 아는데, 뭐가 문제야.”

내 입장에서는 이 또한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다.

굳이 복잡하게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는가. 그것도 저쪽에서 탐탁지 않아 하는데.

“소소한 거에 너무 그렇게 의미 두지 말자.”

내 입장은 이랬다.

그러나 곧 일행들이 도착하며 나는 무수한 질타를 받게 됐다.

“미쳤어요, 기혁? 혹시 미국 갔다 오더니 감정이 비즈니스적으로 메마르기라도 한 건가요?”

“맞죠! 메리 선배?!”

“기혁아, 이건 아니야. 동아리를 해체하게 내버려 둔다고? 내가 아무리 네 편을 들어 주고 싶어도 이건 TMI가 맞는 것 같아.”

“유리 언니, 언니 맘이 제 맘이에요.”

“난 중립ㅇ…….”

“준우, 눈치.”

“……네가 잘못했다. 하니에게 사과해라.”

“보셨죠! 전부 그렇다잖아요!!”

김하니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봤고, 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새삼 얘들이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내가 진짜 잘못 생각한 건가, 하는 기분도 들었고.

아, 진짜…… 사람 복잡하게 만드네.

“좋아, 그래서 너희들이 원하는 게 뭔데.”

모두 한마음으로 “동아리 유지!!”를 외쳤다.

“알았어. 너희들이 원한다는데. 김하니, 방법은 강구해 뒀겠지?”

“물론입니다!”

활짝 웃으며 내게 설명해 주는 김하니.

하지만 김하니의 표정이 밝아질수록 나의 표정은 어두워져만 갔다.

다음 날, 난 학생회실로 가서 한 장의 서류를 제출하게 되는데.

축제 참가서

동아리 : 출구 없는 지옥

그렇게 난, 축제의 꽃. ‘영입 시장’에 뛰어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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