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34화>
기간트 팩토리.
기계 엔진들이 연기를 내뿜는, 이 회백색 기계만이 가득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생기를 내뿜는 여인이 앉아 있다.
“후, 그러니까. 기간트, 당신은 레드 드래곤이 기혁 군을 노린다는 걸 알았다는 거군요.”
“응!”
“그런데도 기혁 군을 서부로 보냈고요?”
“Spot on(정확해)!”
“그렇다면 레드 드래곤과 기혁 군은 높은 확률로 충돌하겠군요.”
“놉!”
콸콸, 기간트가 에너지 드링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특유의 악동 같은 웃음을 짓는다.
“확정이야. 확률은 필요 없어. 음흉한 드래곤 놈은 무조건 기혁이를 찌를 거야. 이렇게 푸쉭푸쉭.”
몽키 스패너가 칼이라도 된 양 허공을 마구 찌르는 기간트.
“지금쯤 붙었을까? 붙었겠지? 궁금해! 보고 싶어! 엄청 재미있겠지! 으으으~ 흥분돼. 소름 돋아.”
“그게 수호령으로서 할 말인가요.”
“뭐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기간트, 당신은 정말…….”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 봐. 위드도 궁금하지? 기혁이가 어떻게 싸울지 막 상상되고 그렇잖아.”
“허…….”
위그드라실은 그 모습에 억장이 무너져 가슴을 푹푹 쳤다.
대체 그녀는 수호령이라는 자각이 있는 걸까.
“기간트, 기혁은 인간이에요. 이 공간에서 영생을 약속받은 우리랑은 달리, 유한의 시간을 걷는 필멸자예요.”
“알아.”
“아는데 레드 드래곤 앞에 던져 주나요? 그가 얼마나 기혁을 탐내는 줄 알면서도요? 설마 당신…… 우리의 ‘의무’를 잊은 건 아니죠?”
수호령만의 비밀이자, 이 세계의 비밀.
수호령의 존재 의의.
“우리는 ‘인간계의 존속’을 위해 이 땅에 다시 태어난 거예요. 인간을 수호할 의무가 있단 말이에요!”
그렇다.
왜 수호령이 스스로를 수호령이라 부르는가.
그들은 인간계의 존속, 인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계에 정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인간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행위 전반에 걸쳐 페널티를 받는 것이다.
수호령이 초월적인 힘을 지녔음에도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 비밀이었다.
“알아, 나도 안다구.”
“아는 사람이 기혁을.”
“모르는 건 너야. 네가 기혁이에 대해서 뭘 알아!”
“……!”
유한의 시간을 걷는 필멸자?
왜 한쪽만 보는가. 왜 무한의 가능성은 보지 않는 건데?
“너 기혁이랑 안 싸워 봤지?”
“…….”
“히히. 멍청이 위드으~. 인간도, 인간 나름이야아~.”
“무슨 말인가요.”
위그드라실은 레드 드래곤의 손아귀에 들어간 박기혁의 안위를 걱정했지만.
“왜 기혁이가 진다고 생각해!”
“……!”
“전제가 잘못됐단 말이지요오~.”
기간트는 눈이 뒤집힌 레드 드래곤과 싸워 봤다. 거인을 완성한 박기혁과도 싸워 봤다.
박기혁이 인간이라서? 레드 드래곤이 수호령이라서?
승패에 이딴 조건들은 필요 없다.
결국.
“센 놈이 이기니까!”
그리고 기간트가 보기에 센 놈은 확실하다.
“음흉한 놈은 처맞아야 제맛이지. 히히히히-!”
* * *
주먹을 맞고 날아간 레드 드래곤이 절벽에 박혔다. 충격에 무너져 내리는 절벽.
‘콰앙!’ 굉음과 함께 균열의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
그러나 레드 드래곤은 침착하게 ‘128중첩 실드’를 전개.
까아앙-!
이후에 있을 박기혁의 일격을 막아 냈고.
그 찰나의 순간 이미 반격을 완성해 냈다.
어스 풀(Earth pool)
익스플로젼(Explosion)
샌드 스파이크(Sand Spike)
스트라이킹(Striking)
박기혁이 레드 드래곤의 실드를 가격하며 떨어지는 순간, 풀썩 밟은 땅이 진흙을 밟은 것처럼 움푹 들어가더니.
콰아앙-!!
폭발했다.
폭발음과 동시에 터져 나가는 진흙 더미들. 액체화된 흙덩이들이 박기혁의 사방팔방으로 비산하고.
그 순간, 비산하던 흙덩이들이 가시로 변환.
쏘아졌다.
그것도 ‘스트라이킹’으로 강화된 채로.
“하~.”
쏘아지는 가시들.
피할 곳은 없다. 막아야 한다.
박기혁의 주위를 맴돌던 왼팔, ‘아수라’의 머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눈을 빛내자.
앱솔루트 실드(改)
철옹성(鐵甕城)
박기혁의 주위로 떠오르는 육망성들.
마치 성벽처럼 그를 감싸더니, 레드 드래곤의 가시들을 모조리 막아 냈다.
곧바로 반격.
역시나 박기혁의 주위를 맴돌던 오른팔, ‘바포메트’의 머리가 안광을 토해 냈고.
푸쉬이-!
박기혁을 중심으로 안개가 퍼져 나간다.
뿌연 안개 더미가 단숨에 영역을 삼키고 축축한 습기가 레드 드래곤의 피부에 닿을 때쯤.
번개 다발이.
내리쳤다.
우르르르- 콰아아앙-!!
일점 타격에 특화된 번개 마법.
때문에 범위기로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안개’로 이를 상쇄한다.
축축했던 안개 내부가 번개로 튀겨졌다.
가득 머금은 습기를 먹이 삼아 몸집을 부풀리는 뇌격들. 시간이 갈수록 그 파괴력은 급상승한다.
이 안에 있는 것은 미친 짓.
레드 드래곤이 미끄러지듯 스파크가 튀는 안개를 벗어나는데.
“어딜 가려고!”
“……!”
그곳에서 기다리는 박기혁. 마귀를 내려친다.
번쩍, ‘달빛 베기’가 쇄도했지만.
까앙-!
붉은 실드에 막히는 달빛 베기.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바람 마법 ‘윈드 버스트’가 후방을 덮치고, 몰아치는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 박기혁의 마귀에 불꽃 마법 ‘플레어’가 덮인다.
화르르륵-!
불꽃을 한가득 품은 박기혁의 마귀가 레드 드래곤을 몰아붙였다.
마법과 검술이 조합된 박기혁의 공세.
근접전에는 젬병인 레드 드래곤에게 이 거리는 불리하다.
레드 드래곤이 몸을 빼기 위해 마법을 전개.
그의 뒤로 붉은빛 ‘글자’들이 떠오른다. 마법의 창시 언어라 불리는 ‘룬어’다.
이에 응답하듯 박기혁의 등 뒤로도 육망성 마법진들이 빼곡하게 생성되고.
마나의 파동이 소용돌이치길 잠시.
“놀아 보자.”
마법이.
충돌한다.
콰아아아아앙-!!
쏟아지는 마법 세례.
여기저기서 불꽃이 일렁이고, 얼음이 냉기를 뿜으며 결빙한다. 대지는 자아를 가진 것처럼 허공으로 손을 뻗었고, 바람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밀도로 물리력을 행세한다.
클래스를 찾는 것은 불가능. 종류도 의미가 없다.
본디 마법이란 극의를 이루면 그 형태는 단순해지는 법.
기초로 불리는 ‘파이어 애로우’나 최고위 마법으로 불리는 ‘인페르노’나 위력에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불꽃’이다.
인페르노의 불꽃으로 파이어 애로우를 만들지 못할까?
파이어 애로우를 중첩해 인페르노의 파괴력을 내지 못할까?
다 가능하다.
그게 무엇이든.
마법에 불가능은 없다.
끝이 없는 뫼비우스처럼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녔으니까.
만약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마법사 스스로 만든 ‘한계’일 것이다.
그러니 자유롭게 상상하라.
그게 곧 마법이다.
“하하하하하하!!”
왼팔, 아수라에게 ‘방어’를 맡긴다.
수십 개의 육망성들이 아수라의 눈빛에 맞춰 고속 이동, 접근하는 마법을 지워 간다.
왼발 펜릴은 ‘보조’. 갖가지 버프를 유지, 상대의 디버프를 해제, 동시에 적의 버프를 해제하며 디버프를 입력한다.
오른발, 키메라는 마나 드레인을 이용한 배터리 역할.
- 먹는다. 마나! 먹는다. 마나!
보다시피 지능이 가장 떨어지는 키메라이기에 최대한 단순한 임무만 줘야 했다.
반대로 같이한 세월만큼이나 지능도 뛰어난 오른팔 바포메트는, 선두에서 ‘공격’용 마법진들을 진두지휘 중.
그렇다면 ‘신체’들이 싸울 동안 박기혁은 무엇을 하나.
레드 드래곤의 ‘마나’를 회수하고 있었다.
콰직!
코앞까지 쏘아졌던 ‘번개의 탄환’이 육망성 마법진에 막히고, 부서진 마법이 마지막 마나를 토해 내며 아스라이 사라질 때.
그 순간, 박기혁이 손을 움켜진다.
회수.
이런 식으로 눈앞에 펼쳐진 현란하게 타오르는 마법의 전장에서, 레드 드래곤의 마나만을 쏙쏙 회수했다.
일격을 날리기 위해.
‘수호령은 자신의 영역 내에서 무한의 마나를 공급받는다.’
현재, 이곳 ‘드래곤 레어’에서 마나를 공급받는 레드 드래곤.
‘고로 녀석은 틀림없이 이 치열한 소모전 양상을 반길 것이다.’
박기혁의 예상이었고, 정답이었다.
룬어에 뒤덮인 레드 드래곤의 입은 어느 때보다 활짝 웃고 있었다.
‘의심 많은 녀석은 생각할 거야. 설마 마나를 공급받는 것을 모르나?’
이 또한 정답.
분명히 낙관적인 상황임에도 레드 드래곤의 머리는 복잡했다. 기간트가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가르쳐 줬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보다는 안도할 거야. 왜냐하면,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마법이잖아.’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마법전’이라면 어떠한 변수가 등장해도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마법의 지배자인 드래곤으로서 당연한 자신감일 것이다.
“그 자신감이, 네 약점이다.”
박기혁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는 손을 뻗는다. 모아 뒀던 레드 드래곤의 마나들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순간.
“제물 써!”
키메라가 이제껏 가둬 뒀던 영혼들 중 절반을 깡그리 집어 삼켰다.
심연처럼 검게 물드는 박기혁의 눈.
곧바로 세계에 접촉한다.
두뇌를 풀 회전, 레드 드래곤의 마나를 역추적, 근원에 접촉하고…… 그 순간, 빛을 잃었던 룬어들이 다시 떠오른다.
이를 다시 이용해 붉은빛 룬어들로 이뤄진 마나를 유도,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육망성을 완성하면.
아포칼립스
Apocalypse
이제 완벽히 제어권이 넘어온다.
레드 드래곤의 마나를 썼음에도 박기혁의 진리가 투영된 마법.
마지막으로 형태를 잡는다.
‘창, 창이 좋겠다.’
저 현란한 전장을 비집고 들이닥쳐, 레드 드래곤의 오만을 꿰뚫을 창.
검붉은빛 창이 생성되는 순간, 박기혁은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창을 잡아 던졌다.
검붉은 창이 날아간다.
인페르노와 블리자드가 충돌하는 곳을 비켜 가며, 허리케인과 어스퀘이크를 지나 다크 웹, 앱솔루트 실드, 안티 매직 쉘, 방어 마법까지 벗겨 낸다.
이때까지도 레드 드래곤은 이 창의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인식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창.
이유는 하나다. 이 마법은 본디 레드 드래곤 그 자신의 마나였으니까.
현란하게 빛나는 마법의 전장.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개의 마법이 발현되고 충돌하는 중.
당연히 마나의 격류는 소용돌이치고, 이 격류 속에서 타인의 마나도 읽기 바쁜데, 굳이 ‘자신’의 마나까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는 게 일반적인 마법사의 시각이었고.
마왕을 상대함에 이런 일반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
푹-!
“커흑!!”
레드 드래곤의 등을 꿰뚫고 나온 검붉은 창.
레드 드래곤이 품은 오만을 정확히 적중한 것이다.
다행히 초인적인 반응으로 몸을 틀어 심장은 빗나갔지만, 치명타임에는 틀림없었고, 주변을 잠식하던 룬어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길 잃은 마법들이 사라지고.
팽팽하던 전장에서 한쪽이 물러나면?
전장이 기울어지는 게 당연지사.
피를 흘리는 레드 드래곤의 머리 위로 마법 폭격이 내리꽂혔다.
푸아앙-!
우르르!
콰아아아앙-!!
속성, 급수, 규모…… 제각각 다른 수십 발의 마법이 섞이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눈이 멀 듯한 섬광을 내뿜으며 지형들이 ‘소멸’하고 있었다.
이 정도 파괴력이면 제아무리 레드 드래곤이라도 위험한 수준.
사실상 ‘인간’으로서는 박기혁에게 졌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기에는 레드 드래곤의 프라이드가 너무 높았고.
결국, 그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폭발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몸을 일으킨다.
육중한 두 다리와 기다란 몸통,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손, 뱀과 악어를 닮은 대가리.
산을 통째로 옮겨 놓은 크기의 파충류.
마법의 종주.
마법의 근원.
마법의 지배자.
드래곤(Dragon).
드래곤이 마침내 이 자리에 강림했다.
위용을 과시하듯 날개를 활짝 펼치는 레드 드래곤.
쿠아아아아아아-!!
본신을 깨운 이상, 이 승부는 무조건 자신의 승리다.
확신의 포효를 외치는데.
그는 알까.
이 모든 게 박기혁의 의도란 걸.
먼지 속에서 웃고 있는 박기혁.
드디어 변신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시작해.”
이제껏 각자의 역할을 하던 ‘신체’들이 전부 미친 듯이 제물들을 흡수한다.
“잘 들어. 네가 완성한 ‘거인’이란 힘은, 본래 인간을 상대로 사용하는 힘이 아니야.”
“더 크고 규격을 벗어난…… 됐다! 그냥 간단하게 말할래.”
“거인은 말이야. ‘신’을 죽이는 힘이야.”
힘을 깨운다.
검은 갈기들이 생겨나며 ‘검호’가 눈을 뜨고.
육망성 마법진이 생겨나며 ‘마왕’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마지막, 박기혁의 그림자를 찢으며 ‘거인’이 강림한다.
하체는 없이 상체만 출현한 그림자 거인.
아포칼립스 위로 심연의 대검이 떠오른다.
이를 부여잡는 거인의 팔.
그 순간, 박기혁이 마귀를 부여잡고 자세를 취한다.
거인도 따라서 자세를 취하고.
박기혁이 마귀를 내려쳤다.
검호류 파괴
신살(神殺)
갈라지는 태양.
세계가 절반으로 쪼개졌다.
신살.
신을 죽이는 힘이.
레드 드래곤을 절단했다.
푸쉬익-!!
* * *
뚜벅뚜벅.
나는 쓰러진 레드 드래곤의 근처로 걸어갔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땅에 쓰러진 채 잘려진 손과 날갯죽지를 지켜보는 레드 드래곤.
“어이.”
움찔!
내가 마귀로 주둥이와 몸통을 쿡쿡 찌르자, 화들짝 놀라는 레드 드래곤.
녀석, 겁은 많아 가지고.
“내기 알지?
드래곤 본 두 개, 날갯죽지 하나, 손톱 발톱 전부. 거기에 비늘 1톤.
“제대로 포장해 놔라.”
손으로 까칠한 비늘을 툭툭 두드리며 뒤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