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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30화 (13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30화>

“이게 뭐야?”

볼일을 보고 왔던 유해련이 집안 꼴을 보고 경악했다.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채들과 햄, 참치…… 저건 뭐지? 돈가스는 또 뭐야? 그 옆으로 있는 검고 널찍한 사각형의 무언가는…… 김이었다.

“김밥 싼다더니, 얘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야, 진유리. 진유리!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긴, 김밥 싸는 거지.”

부엌에서 나오는 진유리. 그녀의 옆으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소쿠리가 떠 있었다.

“저건.”

“밥. 밥을 안 해 놨지 뭐야.”

“밥 많잖아! 엄마가 나갈 때 분명히 봤는데.”

“엄마.”

진유리가 짜게 식은 눈으로 유해련을 본다.

“그건 우리 먹는 밥이고, 이건 다르다고.”

오늘을 위해 당일 도정했다는 쌀을 받아 왔다. 야채도 전부 유기농이다. 우리 사랑 만땅 봄이와, 처음으로 같이 여행을 가는 ‘어머님’의 입에 들어가는 것.

“1그램의 인공물도 허락하지 않겠어요~! 룰루룰루루~.”

“허…….”

“이 햄도 어제 특별 주문했다니까. 화학조미료가 전혀 안 들어갔대. 짜지도 않다?”

“하…… 하…….”

“돈가스 다 식었나? 음, 괜찮네. 맛은? 좋아. 엄마도 먹어 봐. 맛있어. 봄이가 돈가스 김밥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

“…….”

허탈하게 웃던 유해련은 기억을 더듬어 봤다.

내가 생전 이놈의 가스나에게 생일상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없다.

비상한 기억을 탈탈 털어 봐도 생일상은커녕 밥상에서 지 손으로 밥을 뜬 적도 없다.

솔직히 아까 전화로 ‘엄마, 김밥 쌀 건데~.’라고 물을 때만 해도 그냥 사서 갈 줄 알았다. 아니면 진룡산에 가득 살고 있는 고모와 이모들에게 부탁하거나.

그런데 요리를 하네?

유해련은 이놈의 가스나가 요리할 줄 아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의심이 간다. 쟤가 내 딸이 맞나?

유해련은 당장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야, 진유리.”

“응?”

“진유리.”

“왜 엄마?”

“진유리.”

“아, 진짜! 바쁜데 왜 계속 불러!”

맞다.

진룡가의 망나니로 유명한 진유리가 맞다. 이 유해련이 배 아파 낳은 딸 진유리가 확실하다.

그런데 김밥을 말고 있네? 우리 딸이?

“딸내미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다더니.”

“응? 엄마, 어디 가?”

“샤워할 거야.”

쟤 하는 꼴을 보니 배알이 꼴려서 물이라도 끼얹어야겠다.

샤워기 물을 틀었다.

아주 차가운 냉수였다.

내가 저 망할 것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허무한 유해련이었다.

……

그래도 어쩌겠나. 미우나 고우나 딸인데.

냉수로 열을 식힌 유해련이 진유리 옆에서 같이 김밥을 말고 있다.

“음? 유기농 햄이라더니, 진짜 맛있네. 이 햄 어디서 구했어?”

“메르헴이 가르쳐 주더라고. 저기 전화번호 받아 놨어.”

“잘했네. 좀 사야겠다.”

“전부 수제로 만든대. 그래서 팔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아, 엄마아! 꼬다리 먹지 말라니까. 봄이가 꼬다리 좋아한단 말야!”

“나도 좋아한다 꼬다리! 음, 맛있네.”

모녀가 사이좋게 김밥을 우물거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근데 너, 대체 몇 줄을 쌀 셈이야? 이거 다 먹을 수 있어?”

“원래 우리 집안이 대식가야. 김밥 정도는 앉은 자리에서 20줄은 먹을걸.”

“그래, 검호가 대식가란 건 알아. 근데 넌 연희하고 봄이랑 여행 가잖아.”

“엄마, 생각해 봐.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소풍 하면 김밥 맞지?”

“그렇지.”

“만약 김밥을 쌌다고 치면 가족들 아침을 뭘로 해?”

“김밥?”

“그렇지!”

진유리가 김밥을 입에 넣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내가 싸고 있는 건, 내일 우리 집안의 아침이란 소리지.”

“……그러니까 이 지랄을 하는 게, 남의 집 아침이다?”

“지랄이라니. 신성한 김밥에. 이거 먹어 봐. 맛있어.”

“하…… 기도 안 차서…… 우물우물. 맛은 있네.”

“그치?”

“하나 더 줘 봐.”

진유리가 유해련의 입에 김밥을 넣어 준다.

우물우물.

맛은 있네. 얘가 안 해서 그렇지 솜씨는 있다니까.

“근데 딸아. 혹시 잊었나 본데, 너 아직 진룡이란다. 진도하 딸. 검호 식구가 아니야.”

“아닌데? 내 혈관에는 호랑이의 피가 흐르는데?”

어흥!

바보처럼 짖는 진유리를 유해련이 한심하게 바라본다.

“말하는 거 봐라. 누가 보면 이미 결혼한 줄 알겠네?”

“거의 다 왔지.”

“얼씨구? 아주 김칫국 거하게 마셨네요, 진유리 씨.”

“흥, 두고 봐. 나 진유리. 이번 여행으로 제대로 인정받을 테니까. 혹시 알아? 입국과 동시에 식장으로 직행할지도?”

“푸흡. 엄마는 결혼식장 잡아 놓으면 되겠네?”

“최고로 좋은 곳으로 잡아 줘. 쪼잔하게 축의금 받지 말고. 밥도 맛있는 곳으로.”

“네, 네. 제발 데리고만 오세요. 뭔들 못 해 드립니까.”

“약속했다?”

“걱정 마세요.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요란을 떨 사람은 많으니까. 너희 아빠부터도 가만있지 않을걸. 너, 니네 아빠 춤추는 거 봤어?”

“아니.”

“너 결혼하면 볼 수 있을걸. 기쁨의 탭 댄스. 기대되지 않니?”

“킥. 아빠가?”

마룡기 프로젝트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진도하와 박기혁.

나이를 떠나,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서로의 마법적 견해와 지식을 교류하는 좋은 친우가 된 두 사람이었다.

“너희 아빠, 박 서방 편지만 오면 좋아 죽는다. 가끔은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응? 편지?! 나도 못 받아봤는데? 언제 보냈대?”

“자주 보냈는데? 그저께도 받았어. 마룡기 연구서인 것 같던데?”

“아, 그게 그거야? 어제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말하더니…… 생각해 보니까 좀 섭섭하네. 기혁이가 편지를 썼으면 나랑 같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것아, 한 이불 덮는 엄마한테도 안 가르쳐 준다. 재미있는 거 말해 줄까? 너희 아빠 박 서방 편지 어떻게 받아 오는 줄 알아?”

“어떻게 받아 오는데?”

“도민이 삼촌이 직접 가.”

“도민이 삼촌이 직접?”

“응, 직접.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가서.”

진도민.

진도하의 동생이자, 진룡가 최후의 무력으로 평가받는 운룡대의 수장.

“도민이 삼촌이랑 운룡대 몇 명만 가서 은밀하게 받아 와. 분위기는 얼마나 살벌한지, 너도 보면 놀랄걸.”

“……도민이 삼촌이면 충분히 그럴 만해.”

“진룡가의 운명을 바꿀 프로젝트라던가? 그저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법 써서 날아왔잖아. 엄마가 그거 수습하느라 오늘 아침부터 집행부 갔다 온 거잖아. 진짜 목숨이라도 걸 기세라니까.”

“아빠가 계속 연구실에 있는 것도 그거 때문이야?”

“응, 이번에는 기간트가 가르쳐 준 거 정리했다던데. 양이 많아.”

연구실에 들어간 진도하가 며칠째 안 나와서 궁금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풀리는 진유리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 줄 한 줄 말다 보니, 어느새 김밥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이토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얼마 만인가.

유해련은 새삼 진유리가 컸다는 게 느껴졌다. 이 철없는 것이랑 대화가 통할 줄 누가 알았겠나.

가슴 한편에 잔잔한 감동이 흘렀다.

“너도 크긴 컸구나.”

“응? 어떻게 알았어? 나 이제 169야!”

“그거 말…… 됐다. 아, 맞다. 미국에서 돌아오면 시간 내 봐. 너희 오빠 휴가 나온다니까.”

“엄마 아들? 파견 복귀했나 보네?”

“그렇다네. 혹시 모르니까 박 서방한테도 물어봐. 너희 오빠가 너 남자 생겼다니까, 엄마 안쓰럽게 보더라.”

“응? 안쓰럽게? 왜?”

“병원 가라던데? 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헛것이 보이는 거래.”

“하…… 죽일까?”

“남의 아들 죽일 생각하지 말고, 박 서방한테 잘 말해 봐. 얼굴 좀 보여 주게.”

“알았어.”

“얼추 다 싼 것 같으니, 일어나자.”

“어디 가게?”

“옷 보러. 너 또 이상한 거 입을 거잖아. 희땡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또 있거든. 엄마가 골라 줄게.”

“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노려야 하는 법이야. 박 서방 효자인 거 알지? 희땡이만 잡으면 끝이야.”

“오오오!!”

물개 박수를 치는 진유리.

“엄마, 달라 보여.”

“이제 알았으면 됐어. 따라와.”

거실을 정리하고 두 여자가 함께 걸어간다.

졸졸졸, 차분한 걸음걸이. 뒷모습도 걸음걸이도 판에 박은 듯 닮은 두 사람이었다.

아, 참…….

“엄마, 근데 아까부터 박 서방, 박 서방 하는데.”

“얘는, 박 서방을 박 서방이라 하지. 왜?”

“……아니야.”

김칫국 마시는 것도.

*   *   *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고 나온 난, 공항으로 향했다.

“길 알지?”

“걱정 마라.”

운전대를 잡고 있는 건 노예 1호기 윌리엄.

참고로 2호기 로자리아는 조수석에서 자고 있는 중이다. 윌리엄도 눈을 보니 잠을 못 이룬 모양.

하긴 마법사로서, 내가 던져 준 연구 자료를 보고도 잠을 이룰 수 있다면 그건 마법사 실격이다.

“너 며칠 동안 밤새웠지. 운전할 수 있겠어?”

“괜찮다.”

“고생하네. 어디까지 봤냐?”

“두 번째 단락.”

“두 번째면, ‘인공 정령의 신체 구성’이네. 오늘 시간 비워. 갔다 와서 한번 봐줄게.”

“……!!”

모든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필요한 거 아니겠나.

느닷없는 포상에 놀란 윌리엄. 헤실헤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보니 퍽 기쁜가 보다.

기간트의 수업을 마치고 나온 나를 기다리던 윌리엄과 로자리아.

솔직히 당시의 난 까먹고 있었다.

얘들은 여기서 뭐 하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근데 거의 한 달간 기다렸다더라.

자신이 집 지키는 개도 아니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윌리엄이나, 아무 말 없이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로자리아나.

괜히 미안한 거 있지.

그래서 양심상 몇 개 던져 줬다. 기간트랑 연구했던 자료 중 일부를.

그때 얘들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한순간에 태도가 달라지더라. 자료를 받자마자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 있던 얼굴이 환희로 변하는데…….

그 결과, 이렇게 노예를 자청하며 내 수발을 드는 것이다.

아, 생각해 보니 한 명 더 기다리고 있었지.

“걔는 어디 갔냐.”

“누구?”

“걔, 아이스 쉬프트 쓰는 애. 그, 이름이 뭐더라?”

“챈들러 제니? 그녀야 목적을 다했으니 챈들러가로 돌아갔을 거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나를 보더니 같이 좀 가 달라고 애원하더라. 다 큰 처자가 무릎을 꿇고는 바짓가랑이를 잡는데, 꽤 난감했다.

만약 때맞춰 어머니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적당히 기절시키고 내뺄 생각까지 했었다.

“아들, 엄마 LA 갈 일이 생겼지 뭐야. 한국 말고 LA로 넘어와. 엄마랑 같이 귀국하자.”

감히 어떻게 거역하겠는가.

연락받은 당일, 바로 LA행 비행기를 탔다.

표를 끊을 필요는 없었다. 챈들러 가문 전용기라는데, 나를 모셔 가려고 대기 중이었다나?

그렇게 일찌감치 LA에 도착한 난.

잤다.

기간트의 수업을 듣느라 못 잤던 잠을 한꺼번에 모아서 잤다.

중간에 진도하의 동생이 와서 편지와 자료를 전해 준 것을 빼면, 정말 호텔 스위트룸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잠만 잔 것 같다.

얼마나 잤으면 윌리엄 저 녀석이 ‘겨울잠 자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더라.

달리던 차량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LA 시내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차창으로 공항이 보이는데.

꼬톡-!

때맞춰 울리는 폰.

“응?”

문자를 보니 어머니가 이미 도착하셨단다. 30분 일찍 나왔는데도 본의 아니게 늦어 버렸네.

빨리 가야겠다.

“먼저 간다.”

“응?”

차에서 내려 달렸다.

공항 주차장까지 정체되어 있던 구간을 단번에 돌파, 곧바로 입구로 들어섰다.

문벅스에서 기다린다고 하셨으니까.

“문벅스, 문벅스.”

달 모양 간판을 찾다 보니, 2층. 저기에 있다.

성큼성큼 올라가 입구를 열고 들어섰다. 저 멀리 익숙한 뒤태가 보인다. 어머니다.

빙그레 미소 지으며 어머니에게 걸어가는데.

발을 내딛는 순간.

와락!

내 허리에 안기는 누군가.

누구지? 라는 생각보다 이상하게 입꼬리가 꿈틀댄다.

익숙한 체취, 향긋한 봄 내음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설마, 설마…… 내가 설마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이미 반쯤 돌렸을 때 내 입가엔 가득 미소가 번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아빠아아!”

봄이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화사한 내 딸내미.

“봄아!”

*   *   *

하이 캐슬 정상에 위치한 게이트 ‘드래곤 레어’.

레드 드래곤이 와인 잔을 돌리며 거울에 떠오른 영상을 주시하고 있다.

- 아빠아아!

- 봄아!

- 아하하하하!!

공항 한가운데서 서로를 잡고 뱅뱅 돌고 있는 부녀.

주위의 시선이 모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볼을 부비는 중이다.

레드 드래곤의 눈이 낮게 가라앉는다.

“대체 뭘까…….”

저 나사 빠진 웃음을 짓고 있는 인간이, 대체 무엇 때문에 기간트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어차피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먹이다. 이미 들어온 이상 나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리.

와인을 단숨에 털어 넣고 일어서는 레드 드래곤.

뒤돌아서는 그의 뒤로 거울 속 영상이 서서히 닫혀 가는데.

그때, 거울이 닫히기 직전, 영상의 저편에서 박기혁의 시선이 정확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상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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