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29화>
영감이 항상 강조한 말이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재능? 노력? 까놓고 말하마. 너나 나를 포함해, 우리 같은 타고난 족속들, 저 밖에 사람들이 천재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재능과 노력은 상수다.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거란 말이야.”
숨 쉬는 것처럼.
영감이 많이 했던 표현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을 의식하고 쉬는가? 아니다. 영감은 천재의 노력이 바로 이 숨 쉬는 거랑 같다고 했다.
의식 없이 그냥 자연스레 행동하는 게, 그게 노력이란 것이다.
“천재의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은 만족이다.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하며 이보다 나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확정지었을 때.”
“천재는 멈춘다. 멈춘 것은 썩어 가고. 썩은 것은 결국 추하게 끝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제자야. 항상 배움을 쫓아라. 영원히 찬란하기 위해서라도.”
영감의 가르침을 받은 난, 배움에서 만큼은 항상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려 했다.
설령 어린아이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기꺼이 고개를 숙였고, 어린아이들의 장난에도 배움이 보인다면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내가 기간트의 수업에 진지하게 따라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과연 인외의 존재, 수호령의 지식은 방대했고 난 오랜만에 진심으로 익혔다.
“버, 벌써 시각을 깨우쳤…… 기, 기대 이상인걸. 뭐, 뭐?! 우쭐해하지 마! 최, 최적화는 절대 쉽지 않을 거야!”
허튼 말이 아니었다.
쉽지 않았다. 최적화 작업은 진심으로 어려웠다.
초대형 워 아머를 부위별로 소환해 하나의 ‘기술’로 만든다.
기간트의 정수가 담긴 기술이었고, 아무리 나라도 쉽게 배우기에는 무리였다.
당연히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했으니…….
잠을 반으로 줄였다.
“마, 말도 안…… 호, 혹시 워 아머 만들어 봤어? 알파 기어 알지? 개인적으로 ‘알파 기어’란 단어를 싫어하지만, 들어는 봤을 거야. 이거 어떻게 만드냐면.”
워 아머. 알파 기어.
기간트 마도 공학의 꽃.
내가 만들고 있는 ‘마룡기’를 위해서라도 이 부분에서는 특히나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결심했지.
이 타이밍에서 잠을 포기하기로.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 커피가 대신 자 주는 게 잠 아닌가?
맹렬히 달려들었다. 오늘 완성하지 못하면 내일은 오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익혔다.
“벌써 만들었다고? 아냐, 그럴 리 없…… 지, 진짜네? 진짜 만들었네? 말도 안 돼.”
“나한테만 말해 봐. 너 인간 아니지?”
배울 것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의미가 없는 이야기라도 흘려듣지 않는다.
“그, 그…… 오늘은 ‘알파 기어’에 대해 말해 볼까. 난 이 ‘알파 기어’란 단어를 싫어해, 알파 기어의 ‘알파’는 내가 가장 처음 만든 워 아머 ‘알파’에서부터 따온 거거든. 녀석은 나를 배신…….”
진지하게.
“내가 호문클루스를 왜 만드냐! 이것을 설명하려면 일단 우리 수호령의 생리부터 알아야 해, 수호령은 허락된 ‘영역’을 벗어나면 안 돼…….”
항상 진지하게.
“짜잔, 이게 ‘망토’야. 어때, 멋지지? 이렇게 두르면 나 기간트가 완성! 어때? 응? 성물 아니라니? 네가 뭘 알아! 엥? 안다고…… 정말?”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했고.
이제 알았다.
“너 더 가르칠 거 없지?”
“아악! 들켰다아아아!!”
* * *
마귀를 늘어뜨린 채 달리는 박기혁.
이미 검호의 본능을 깨운 터라 온몸에는 마법진이 검은 갈기처럼 그려져 있고, 마왕의 힘을 머금은 두 눈도 육망성을 띠고 있다.
완전 각성 상태.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려든다.
“수호령은 기본적으로 마법 저항력이 아주아주 높아. 거기서도 난 거의 면역 수준이거든. 에헴! 다시 말해 짜잘한 마법 따윈 통하지 않는다아~ 이 말이지. 차라리 그 마나를 아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그게 더 효과적이야.”
기간트가 가르쳐 준 사실이었고, 박기혁은 배운 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박기혁의 마귀가 허공을 벤다.
워 아머로 무장한 기간트가 마주 보며 달려오는데, 주변을 에워싸는 육망성.
“잉?”
반응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아포칼립스
Apocalypse
아포칼립스가 곧바로 전개.
하늘을 향해 불길이 치솟았다.
검고 탁한 불길…… 세상의 불길함을 모두 끌어안은 것만 같은 불길이 한 자루의 창이 되어 하늘이 치솟았다.
멸망.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길이다.
단언컨대, 현존하는 어떤 화염 마법보다도 강력하리라.
하지만 박기혁은 곧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섰다.
“아 참. 덧붙이자면, 우리 수호령은 자신의 영역에서 무적에 가까워. 쓸데없는 소모전은 절대 피해야 해. 이거 명심해. 별표 세 개야!”
영역 내에서 즉각적으로 마나를 공급받는 수호령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규격 외의 재생력까지 공급받는다. 창조주인 신이 내려 준 선물. 때문에 수호령들은 죽지 않는다.
설령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기간트를 무력화시키려면.
‘어쭙잖은 공격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늘어트렸던 마귀를 다시 휘두른다. ‘달빛 베기’가 지면을 감싸기 무섭게 다시 마귀를 휘두르고, 또 다른 ‘달빛 베기’가 만들어진다.
베고, 또 베고…… 회전하면서 베고, 전진하면서 베고.
아포칼립스가 만든 틈을 조금이라도 넓히려 계속해서 ‘달빛 베기’를 쏘아 댔다. 동시에 또 두 번째 아포칼립스를 발현.
이번에는 전과는 정반대다.
아까가 불꽃이었다면 이번에는 물. 아까가 아래에서 치솟았다면, 이번에는 하늘에서 내리꽂힌다.
푸악!
막대한 수압이 기간트를 덮쳤다.
막 ‘달빛 베기’를 쳐 내던 기간트의 무릎이 굽혀지고, 자세가 무너지며, 뒤따라온 ‘달빛 베기’가 연달아 기간트의 워 아머를 때렸다.
“야아! 진짜! 정신없어!!”
정신없다면 성공이다. 어차피 이 정도로 무너지리라 생각도 안 했다.
사실 기간트는 인간이 이기라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만들어질 때부터 인간의 상위 격인 존재. 무언가 이 세계의 균형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자연 재해 같은 존재였다.
만약 박기혁이 ‘거인’ 즉, 질서를 부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과거 마왕이었을 때의 마법, 순수한 인간으로서 도달한 경지만으로 도전했다면.
이 싸움은 박기혁이 패배했을 거다.
인간의 무력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현재 박기혁 안에 든 힘은 하나같이 규칙을 벗어난 힘.
‘달빛 베기’가 연속해서 펼쳐지다, 이제는 하늘 위로 십자 모양의 검기까지 둘러싸더니, 폭격을 가한다. 동시에 ‘산사태’를 이용해 주변의 지형을 찰흙 주무르듯 바꾸고.
이런 혼란 속에서 ‘아포칼립스’를 작렬. 기간트를 궁지에 몰았다.
‘계속.’
더 몰아야 한다!
쾅-!
발을 크게 굴러 땅을 찍자 대지가 파도치듯 울컥대길 잠시…… 화산처럼 터져 올랐다.
검호류 ‘산사태’와 아포칼립스를 결합한 공격.
동시에.
검호류 파괴
블랙홀
블랙홀로 기간트의 반격을 막아 내며 동시에 아포칼립스를 추가해 블랙홀을 강화, 폭파시켰다.
블랙홀 & 아포칼립스
연계기
빅뱅(Bigbang)
블랙홀과는 다르다.
그냥 흔적 자체를 지운다.
세상이라는 그림을 지우개로 지우듯, 초월적인 섬광은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소멸해 나갔다.
“으아아아아악!”
위험하다. 제아무리 수호령이라도 저기에 휩쓸리면 감당 못 한다.
“끝내준다!!”
……물론 그딴 거를 신경 쓸 기간트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스승이었다. 계속해서 밀리는 것은 기간트로서도 자존심이 상했으니.
“나 안 봐줄 거야!”
허공 위로 태엽이 만들어지고, 그 태엽 중앙에서 거대한 기계 거인의 주먹이 떨어졌다.
그리고 기계 거인의 주먹이 ‘빅뱅’의 정중앙에 다다랐을 때.
푸쉭-!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사라졌다.
워 아머가 아니다.
알파 기어도 아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그녀, 균형자 기간트의 본체였던 것.
즉, 그녀도 이 싸움에 진심이란 말이다.
다시 주먹이 쏘아졌다. 이번에는 박기혁 정면으로.
잽싸게 바닥을 구르는 박기혁.
콰아아아아앙!!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기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똑똑해. 마법으로 막았으면 다쳤을 건데.”
“…….”
기간트는 마법을 허락받지 못한 수호령. 대신 모든 마법에 면역이며, 모든 마법을 무시한다.
그래서 수호령들 중에서 유독 까다로운 것이었고.
만약 박기혁이 실드를 통해 주먹을 막았다면, 박기혁은 기간트의 주먹에 휩쓸려 저 크레이터 끝에서 쓰러져 있으리라.
“헤에, 걱정 마. 다치면 붙여 줄게. 어? 그럼 더 놀 수 있으려나?”
오히려 좋을지도, 히히히!
기간트가 특유의 광기 어린 웃음을 짓더니 양쪽에서 팔을 생성한다.
하나, 둘…… 한 짝의 팔이 사방을 점하며 박기혁을 압박했다.
허공에도 이미 한 짝의 발이 대기 중. 언제라도 상대를 찍어 버릴 수 있게 태엽이 박기혁을 조준하고 있었다.
“보여 줘.”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 달라.
기간트의 말에, 박기혁이 응답하듯 몸을 일으켰다.
짧은 순간, 기간트의 가르침이 스쳐 간다.
“완벽하지 않으면 어때. 원래 기계란 건 일단 작동시켜놓고 보는 거야. 나중에 고치면 되잖아? 너 마법 처음 썼을 때부터 완벽했어? 아니잖아.”
“세상에 완벽한 설계도는 없어. 일단 만드는 거야. 기동하고 움직이게만 하면 돼. 이후에 있을 문제? 그건 다시 개선하면 그만이야.”
“명심해. 처음이 완벽할 수는 없어. 그건 신도 불가능하다구.”
그래.
놓치고 있었다.
마법이란 분야만큼은 끝을 보았던 박기혁이기에, 이 거인이란 힘도 빠르게 정복하리라 여겼다.
오만이었다.
때로는 막 사용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맞거늘.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써. 마구마구 쓰다 보면 늘어.”
간단한 진리를 다시금 배웠다.
마구마구 사용하자.
박기혁은 봉인을 풀었다.
쿠우웅-!
박기혁의 머리 위로 그림자의 팔이 나왔다.
한 짝의 팔.
기간트의 기계 팔보다는 한 치수 작지만, 더 단단하고 날렵해 보이는 팔이었다.
곧이어.
“아포칼립스.”
박기혁의 앞으로 육망성 마법진이 어지럽게 겹쳐지더니 만들어지는 것은, 거대한 검. 집채만 한 대검. 마귀를 똑 닮은 심연의 대검이었다.
박기혁이 마귀를 다시금 잡는다. 거인의 팔이 대검을 잡는다.
박기혁이 마귀를 빙그르르 돌리자, 거인의 팔도 대검을 빙그르르 돌렸다.
비로소 하나가 됐다.
거인(巨人)으로 만들어 낸 팔로.
마왕(魔王)으로 만들어진 검을 들고.
검호(劍虎)의 기술을 사용한다.
박기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공격 형태.
그 모습을 본 기간트의 눈이 몽롱해진다.
환상적이야. 어쩜 저렇게 완벽하지?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저 모습에 자신의 지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간트였다.
그녀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준비됐지이?!”
끄덕이는 박기혁.
“간다아아아!”
충돌하는 거인.
갈라지는 하늘.
부서지는 대지.
초월적인 존재의 싸움에 세계가 무너졌고.
기간트의 수업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됐다.
* * *
한편, 같은 시각.
바다 건너 옵티멈 본사.
김연희는 보고서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음.”
보고서의 내용은 별거 없다. 흔한 ‘거래 제안서’.
인공 정령석을 거래하고 싶다는 내용이고, 이런 제안서는 하루에도 몇 통씩 보는 김연희였다.
그런데 왜? 지금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제안서에 적힌 이름 때문이다.
“레드 드래곤이 왜 직접 인공 정령석을 구하는 거지?”
레드 드래곤.
미 서부의 수호령이 직접 사인을 해서 이쪽에 요청서를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청서 뒤편에는 유려한 필기체로 써진 장문의 편지가 있었는데, 내용이 너무 길어 간단히 요약하자면. ‘중요한 거래가 있다. 너와 대화하길 원한다.’였다.
“거만하기로 유명한 레드 드래곤이 썼다고는 믿기지가 않네요.”
무슨 꿍꿍이일까.
한참 고민하던 와중, 조사차 나갔던 비서실장이 급히 들어왔다.
“일단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레드 드래곤이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말입니다.”
“흠? 그쪽이랑 저희랑 무슨 연관이 있죠. 레드 드래곤이라면 하이 캐슬인데, 저희가 하이 캐슬과는 별달리 인연이 없잖아요. 기어스 스쿨이면 몰라도.”
“그게…… 아무래도 도련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도련ㄴ…….”
찰나의 스침.
“아~.”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네.
“기혁이를 보고 싶은 거네요?”
“현재 기간트와 접촉하고 있다는 정보가 레드 드래곤에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둘은.”
“앙숙이죠.”
사실 앙숙이란 말도 모자라긴 하다.
철천지원수? 주적?
“물론 그뿐만은 아닙니다.”
“또 있어요?”
“네, 챈들러 가문에서 박기혁 군을 보고 싶어 하는가 봅니다.”
김연희의 미간에 골이 파인다.
“갑자기 왜요? 그 머저리 복수라도 하게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과를 하고 싶어 한다는데.”
“사과는 전에 준 보상으로 끝낸 거 아닌가요.”
아직도 그때 받았던 빙정(氷精)이 옵티멈 창고에 있지 않는가. 안 그래도 막둥이가 귀국하면 봄이 뭐 만들어 준다고 벼르고 있던데.
“일단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더군요.”
고민을 해 본다.
미국 서부.
레드 드래곤.
챈들러 가문.
“음…….”
한창 고민하고 있던 그때.
꼬톡-!
때맞춰 울리는 알림음.
폰을 보자, 봄이와 진유리가 찍은 사진이 와있다.
어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저희는 밥 먹고 있어요.(곰이 웃는 이모티콘)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귀엽다.
애교도 있고, 싹싹하고. 무뚝뚝한 민지랑 부대끼다가 이런 진유리의 애교를 보고 있자니, 제법 정이 갔다.
그래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즉흥적으로 말이 튀어나온다.
“고생했는데 함께 여행이나 갔다 올까?”
박기혁의 마지막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