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25화>
검이 충돌한다.
순백의 검기를 두른 박민지의 검과.
황금의 검기를 두른 박수혁의 검이.
챙! 챙-!
채채채채채앵-!
두 검호 간의 맞대결.
이미 본능은 일깨운 상태.
박민지는 자신의 검기를 닮은 백색 머리를 흩날리며 한 줄기 섬광으로 변했다.
검호류 쾌검술
섬광 꿰뚫기
섬광이 모든 빛을 잡아먹는다.
주변의 빛을 모두 흡수한 섬광은 더욱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박기혁이 ‘캡틴 타이거’ 놀이할 때의 그 섬광 꿰뚫기랑은 차원이 다른 위력.
본디 쾌검은 속도의 검.
박민지의 본능 ‘신속’과는 궁합이 잘 맞고, 때문에 그 위력은 차원이 다르게 증가한다. 마치 박기혁이 ‘검호류 강검술’과 상성이 잘 맞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박수혁의 완벽은? 그는 본능 그대로 모든 검술을 완벽하게 다룬다.
하지만 그래도 꼭 하나만 꼽자면, ‘유검’.
호전적인 검호류 검술 중 유일한 방어용 검술이다.
박수혁이 지면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는 기수식을 취한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칼끝은 목에 맞춘다.
시선은 정면, 상대를 본다.
그리고 박수혁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검호류 유검술
태극
박수혁을 중심으로 펼쳐진 태극.
흑과 백으로 이뤄진 선이 태극을 이루며 회전하는 순간, 박민지의 섬광이 태극 위를 난타했다.
콰과가가가가각-!!
빛이 번쩍인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자리에 불꽃이 튄다. 격류에 휘말린 마나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요동치고 있었다.
호각지세(互角之勢).
속도의 박민지.
기술의 박수혁.
섬광은 태극을 뚫지 못하고.
태극은 섬광을 멈추지 못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 약속이나 한 듯 다음 수를 준비한다.
박민지는 ‘섬광 꿰뚫기’의 가속도를 이용해, 박수혁은 ‘태극’으로 만들어진 영역을 이용해.
검호류 신속
흑점(黑點)
VS
검호류 군왕
결사보국(決死報國)
콰아아아아앙-!!!!
……
…
대련이 끝나고.
박수혁과 박민지는 게이트를 벗어나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둘의 출현에 카페가 소란스러워졌다.
“박수혁이야, 박수혁! 어쩜, 조각 같아.”
“민지 언니…… 가죽 재킷…… 찰떡. 완전 쩔어.”
“쉿. 조용해, 멍청아. 감상 중이잖아!”
“근데 뭐가 저렇게 많아. 종류별로 다 갖다 놨네. 다 먹고 갈 건가.”
“에이, 아니겠지. 저걸 어떻게 다 먹어.”
“검호 가문 단골집이라고 듣긴 들었는데, 보는 건 처음이야. 와…… 눈 호강한다.”
정확히는 검호 가문이 아니라, 박기혁이 단골로 오는 카페였다.
그래서인지 커피만큼이나 디저트가 괜찮은 곳이고, 지금 두 사람 앞에도 클럽샌드위치를 비롯해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가 몽땅 준비돼 있었다.
박수혁이 샌드위치를 딱 세 입 만에 털어먹고는 입을 열었다.
“요즘 시끄럽더라.”
역시나 박민지도 조각 케이크를 딱 세 입 만에 털어먹고는 말했다.
“난 아니야.”
“누가 너랬어? 기혁이 말하는 거야. 걔 미국 가서 재미있는 짓을 하던데.”
“아, 캡틴 타이거?”
“응.”
키킥.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실소를 흘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캡틴 타이거 = 박기혁’으로 생각한다.
가족뿐만이 아니다. 박기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전부 다.
왜냐고?
일단 사이즈가 말도 안 되잖아! 저 태평양 같은 대흉근이나, 살인적인 광배근, 기립근. 특히나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허벅지까지.
쫄쫄이가 죽여 달라더라.
박수혁은 그 모습을 생각하고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흠, 기혁이는 설마 자기 몸뚱이가 그딴 천 쪼가리로 가린다 해서 가려질 거라 생각했던 걸까.”
“냅둬. 봄이 때문이잖아.”
“아빠의 힘인가?”
“아빠의 힘이지.”
결과적으로 박봄이 죽고 못 사는 ‘캡틴 타이거’도 방영되기로 했으니, 모두가 해피한 결과이긴 하다.
하나, 웬일인지 이 순간, 박수혁의 표정은 조금 심각해졌다.
“왜?”
“어, 응. 아니야.”
“아닌데 왜 심각해.”
“쓰읍.”
박수혁이 메론 주스 한 잔을 원샷하고는 말했다.
“기혁이, 아무래도 너무 주목받는 것 같아서.”
“왜? 그러려고 저러는 거잖아.”
“뉴욕이니까.”
“그게…….”
말을 잇던 박민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무언가 생각난 모양.
“설마, TA?”
“어, 나랑 악연이 있는 놈이 있어서.”
“악연?”
“그게…….”
몇 년 전. 박기혁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눈을 뜬 그 시기에, 박수혁은 아버지 박건과 함께 7레벨 게이트 미들 시티 건설 지원차 미국에 있었다.
“……당시에 나한테 도전하던 놈이 있었거든. 제법 괜찮았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온몸에 불꽃을 일으키며 들러붙던 붉은 머리의 사내.
‘마법을 태우는 불꽃’과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
불꽃같던 사내였다.
꽤 싸울 맛이 있었지…… 박수혁이 추억하듯 미소를 짓자, 박민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빌런이 빌런이지. 여튼, 그 전투광이 왜?”
“아, 그 자식 집착이 심하더라고. 나한테 맞은 걸 기혁이한테 화풀이하려는 거 아닌지 걱정돼서.”
“엥? 살려 뒀어?”
“잘 도망가더라.”
허……? 오빠에게서 도망을 갔다고? 저 괴물딱지한테?
박민지가 궁금해 묻는다.
“번호가 몇 번인데.”
“몇 번이더라…… 17번이던가.”
TA는 조직원한테 번호를 부여한다. 이 번호는 그들의 근원인 강함. 강함의 순위였다.
다시 말해, 17번이란 말은 17번째로 강하다는 말이다.
“꽤 하네…….”
“응.”
그래서.
“오른팔밖에 못 잘랐지 뭐야.”
팔을 잘랐다는 말을 해맑게 웃으며 하는 박수혁이나,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케이크를 먹는 박민지나.
이놈의 집구석. 정상이 없다.
김연희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 * *
드디어 목표를 이뤘다.
뉴욕발 역주행! ‘캡틴 타이거’ 전격 제작
캡틴 타이거 제작사 픽쳐스 “N플릭스 독점으로 방영될 예정.”
캡틴 타이거 전격 제작!
봄이가 아주 좋아 죽더라. 모니터 너머로 기쁨의 춤을 둠칫둠칫 추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그간의 고생이 싹 날아갔다.
이제 됐다. 이 미소 봤으면 성공이다.
이제 뉴욕의 정의를 지키던 캡틴 타이거도 퇴장해야 할 타이밍인 것이다.
“영웅 놀이의 핵심은 퇴장 타이밍이지.”
마침 시기도 적당하다.
한 2주 요란하게 떠들어 댔고, 한창 인기가 절정을 찍었을 때.
바로 지금이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말이 괜히 생겼겠나. 내가 보기에 지금이야말로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조금만 길어지면, 의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니까.”
결심이 섰으니 움직인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일단 뜯어낸 재산 중 절반을 근처 보육원에 기부했다.
한밤중에 몰래 보육원 앞에 산더미만큼의 지원 물품을 쌓아 놨다. 이른바 깜짝선물!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좋아하는 보육원 식구들.
누가 보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캡틴 타이거’의 장비가 들어간 세트. 아이들은 유려한 필체로 쓰인 ‘I am Captain Tiger’ 사인에 모두 환호하며 방방 뛰었다.
멋졌다, 박기혁.
폼이 난다. 정말.
물론 이 과정에서 노예 2호 로자리아가 좀 바빴다.
“캡틴 타이거를 만들라고요? 이봐요, 당신. 말이면 단 줄 알아요?!”
“못 하겠어? 그러면 기간트한테 말해 봐야겠다.”
“Bullshit…… 넌 개자식이야.”
워싱턴 가문이 그렇게 능력 좋다더니, 정말이더라.
공장을 섭외해 생전 보지도 못한 캡틴 타이거 장난감을 마구 찍어 냈다.
단 사흘 만에.
그렇게 난, 캡틴 타이거의 완벽한 퇴장을 위해, 뉴욕의 모든 보육원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돌아다녔는데.
화르르륵!!
“……!”
불꽃과 함께 내 앞을 가로막는 한 놈.
“헤이, 캡틴 타이거. 멈춰 봐.”
흑인, 붉은 드레드 머리, 문신으로 도배한 상반신, 오른팔에는 의수.
얘는 뭐지? 생각하고 있었을 때.
“너 검호지?”
“……!”
……경계심이 들었다.
눈치가 보통이 아닌 놈이다.
“큭크큭. 복수의 시간이다.”
맛도 간 것 같고.
“하하하하하!!”
실성한 것처럼도 보였다.
“…….”
화르르륵.
일대가 불꽃에 휩싸였다. 흥분한 남자를 따라 너울대는 불꽃들.
차량들이 불탄다. 경보와 비명이 한데 섞여 순식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그 순간, 생각을 정리했다.
“넌 방화범이다.”
불꽃의 해일이 덮쳐 오고 있었다.
* * *
브루클린 브리지.
번지는 불꽃 사이로 캡틴 타이거 복장을 한 박기혁이 튕겨나가고 있다. 그리고 죽일 듯이 따라붙는 드레드 머리의 남자.
박기혁에게 ‘방화범’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전투광 집단 TA의 17번.
‘백 쇼커’였다.
“터져라! 타올라라!!”
팡팡-!
백 쇼커가 폭발을 일으키며 쏘아진다. 화염 마법과 근접 체술을 합친 백 쇼커만의 특기, ‘플레임 어빌리티’였다.
폭발의 반발력을 이용해 가공할 속도로 공간을 돌파, 박기혁을 덮쳤다.
주먹을 들어 막는 박기혁.
그리고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 순간, 백 쇼커의 입에서 웃음이 번진다.
콰아앙-!!
불꽃이 터졌다.
폭발이 일어났다.
백 쇼커가 자신의 신체를 ‘발화제’로 써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폭발에 휘말려 뒤로 나동그라지는 박기혁. 정차된 차를 부수고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데.
눈을 마주친 건.
“……!”
“……!!”
아이? 네가 왜 여기 있니?
눈을 마주친 아이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급기야 눈물을 터트리는 아이. 저 멀리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소리치며 달려온다.
“죽어라!”
……젠장!
반격할 타이밍을 놓친 박기혁.
아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내려쳐지는 불길을 온전히 감당했다.
화르르르르륵-!!
열기부터 막자.
실드 대신 품 안으로 얼음 마법을 발현하는 박기혁이었다.
“아저씨이.”
“……꼬맹이, 괜찮아. 아저씨 존나 튼튼해.”
고통 때문인가, 아니면 아이를 봐서인가.
박기혁은 정신이 번쩍 든다. 그의 시야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보였다.
저 방화범 놈을 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저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는 놈도 있지만, 녀석이 끼어들어도 상관없다.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 본격적으로 날뛰게 되면?
과연 저기 소리치며 도망치는 이들이, 여기 품 안에 있는 이 아이 같은 꼬맹이들이 무사할까? 휩쓸리지 않을까?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여기서 싸우면 저 사람들이 휘말린다!
그 순간, 박기혁은 반격을 포기하고 일단 맞기로 했다.
콰앙!!
짜릿한 화염이 신체를 가격했다. 타격 부위에 불꽃이 붙으며 튕겨져 나가는 박기혁.
내장이 울리는 충격.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에 박기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대로 백 쇼커는 그 모습을 보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일방적으로 박기혁이 당하는 상황.
조금만 더, 시간을 벌면 된다. 그때 이 수모를 단번에 갚아주겠다, 라고 생각하며 박기혁은 공격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는데.
“너, 이 자식. 제대로 안 싸워?”
“……!”
“하, 설마? 시간 버는 거냐? 저 버러지들 도망치게 하려고?”
“…….”
이쪽도 이전에 싸웠던 갱단의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빌런이다.
박기혁의 수를 알아챈 것.
빅 쇼커가 인상을 찌푸리며 흥분했다.
“이러면 재미없지! 이러면 재미없다고!!”
얼마나 기대했던 싸움인데, 감히 미적지근하게 만들어?
안 되지. 그럼, 안 되고말고.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 복수의 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아직도 박수혁에게 당한 날이 생생하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저랬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가로막으며 빅 쇼커의 앞에 선 박수혁. ‘당신은 지나가지 못합니다.’라고 오만하게 말하며 그의 오른팔을 끊었더랬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며 이 손이 불타는 것 같아. 근데 넌 저딴 버러지들한테 신경 쓰느라 내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장난해? 저딴 버러지들 때문에?!”
그렇다면.
없애 주마.
다 죽여 없애서, 오로지 내게만 집중하도록 해 주겠다.
백 쇼커의 눈이 도망치는 인간들을 바라본다. 자신의 싸움을 망친 해충을 박멸하겠다는 의지가 깃들고.
그 순간.
요동치는 마나. 전율하는 파동.
심상치 않은 공기가 퍼졌다.
“……!”
박기혁은 다급히 마법을 발동했다. 그의 중심으로 확장되는 마법진.
방어 마법, ‘안티 매직쉘’을 역으로 전개.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네 마음대로는 안 돼.”
“……!!”
씨익 웃는 백 쇼커의 눈을 보자, 박기혁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콰아아아앙-!!
또다시 자신을 발화제 삼아 폭발하는 백 쇼커.
폭발이 사방으로 뻗어 간다. 그런데 이 폭발, 이상하다. 박기혁이 펼쳐 놓은 마나를 통과한다?
백 쇼커의 다른 이명, ‘스펠 브레이커’.
마법을 ‘무시’하는 불꽃을 만들어냄으로써, 모든 마법사의 재앙으로 불리게 만든 능력.
혈족과 비슷하지만 이어지지 않기에 ‘특성’ 혹은 ‘기프트’로 취급받는 능력이었다.
불꽃이 ‘안티 매직쉘’을 통과하고 해일처럼 치솟았다.
곧이어 내려치는 불꽃의 해일. 다리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지글지글, 시시각각 타고 있는 다리. 정차됐던 자동차들은 검게 그을려 연기를 내뿜었고, 뉴욕 하늘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모두 빅 쇼커가 만든 참상.
하지만 정작 빅 쇼커의 얼굴은 많이 좋지 못했는데.
“……너 어떻게.”
어떻게 내 ‘스펠 브레이커’를 막았지?
원래라면 저 멀리 도망가는 놈들 모두가 잿더미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봐라. 겨우 다리의 중간 부분만 태우고 있다.
뚫은 줄만 알았던 ‘안티 매직쉘’이 작동한 것.
어떻게 스펠 브레이커가 깨졌지?
빅 쇼커의 눈에 충격이 깃든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방금 뭐 한 거야. 어떻게 내 불꽃을 마법으로 막아 내!!”
울부짖는 빅 쇼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마치 떼를 쓰는 아이처럼 박기혁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을 묵묵히 보다.
“적당히 까불어라.”
“개자식이-!”
“X발. 못 해 먹겠네.”
박기혁이 ‘캡틴 타이거’를 해체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거인의 육체를 지닌 박기혁에게 ‘알파 기어’는 거추장스러운 족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족쇄를 풀고서 자유로워진 박기혁.
“봐주니까 신나게 놀더라?”
“어떻게 내 불꽃을 막았지! 그거부터 말- 해!!”
‘말해’라는 말과 함께 달려드는 불꽃. 마치 불의 파도처럼 박기혁의 정면을 가렸다.
하지만.
“간단해.”
정면을 가리는 육망성 마법진.
불꽃은 육망성 마법진 앞에서 순식간에 소멸됐다.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거든.”
어떤 식인지는 몰라도 ‘진리’의 편린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진짜 진리인 아포칼립스 앞에서는 한낱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솔직히 좀 흥미롭긴 했어.”
그러니 가져야겠다.
박기혁의 눈이 환하게 웃는 순간.
그를 중심으로 퍼지는 어둠. 잠식되는 공간에서 빅 쇼커가 불꽃을 내뿜으며 도망가려 했지만.
철썩, 촉수들이 달라붙는다.
“어딜 가. 나랑 놀자.”
아무데도 못 가.
박기혁이 웃으며 어둠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잠시 뒤.
콰아아아앙-!!
촉수 더미들이 브루클린 브리지를 뒤덮고 있었다.
* * *
전투에서 한참 떨어진 곳. 캡 모자를 쓴 남자가 다리 위를 바라본다.
“Yo~.”
불꽃을 먹는 촉수라…….
“졸라 퍽킹 쿨해.”
남자가 신이 난 얼굴로 전화를 든다. 신호가 흐르고, 폰 위로 ‘1’이란 숫자가 떠올랐다.
“헤이, 원~. 나야. 에잇틴(18:eighteen).”
다시 다리 위를 본다. 여전히 꿈틀대는 촉수들.
불꽃들을 점점 자취를 잃다, 이제는 연기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저기서 살아 돌아올 수는 없을 테니.
“이제부터 내가 세븐틴(17:seventeen)이야~.”
남자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박기혁이랬지. 조금…… 무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