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23화 (12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23화>

스타 히어로 본사.

불빛이 사라진 회의실. 모두의 시선이 정면에 표시된 사진들로 향했다.

“모두 여기를 봐 주시길 바랍니다.”

컨테이너 박스에 잔뜩 채워진 가루 뭉치.

분홍색에, 달콤할 것만 같은 연기를 피워 내는 유리병.

술집 밀실에 널브러진 한 무리의 사람들과, 유리병에 남겨진 의문의 잔해,

“이 가루는 요즘 뉴욕 신흥 갱단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던 마약입니다. 이름은 ‘스타폰’, ‘헤카스’, ‘드림 게이트’를 비롯해 조사된 것만 14가지입니다.”

이름을 특정 지을 수 없다.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자기 멋대로 이름을 지었으니까.

흔한 일이다.

갱단이 사고 친 것도.

마약 이름이 제각각인 것도.

이런 마약이 굴러들어 온 것도.

모두 미국에서는 흔한 일.

여기 모인 사람들이 ‘겨우 마약 건으로 회의를 해?’라고 의문을 표한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거다.

“그런데…….”

하지만 이어진 말에서 그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 마약이 처음 확인된 곳이 있었습니다. ‘Korea’입니다. 한국의 불법 조직을 중심으로 이 마약이 유통됐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약을 ‘솔 드러그’라고 불렀으며, ‘1급 정신계 마약’으로 지정했습니다.”

“허……?”

정신계 마약이란 말에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러면 말이 다르지.

미국이라는 땅덩어리에 아무리 마약이 흔하다고는 해도, 정신계 마약은 결이 다르다.

이건 단지 한 사람 개인의 일탈 정도가 아니라 주변에 피해를 주고, 심각하면 미국이 가장 혐오하는 범죄인 ‘테러’에 악용될 수도 있다.

자신들이 맡은 관할 구역에서 테러라도 일어났다가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모든 걸 주도한 곳이 ‘삼합회’라는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뭐? 삼합회? BullS*it!”

“F**k!! 걔들이 왜! 젠장!!”

곳곳에서 욕이 터져 나온다.

정신계 마약에 삼합회?

이 무슨 기가 막힌 조합인가.

모두의 머리에서 경종이 울려 댔다.

이건 심각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발표자는 그에 부흥하듯 결연한 표정으로 한 자, 한 자, 똑똑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럼, ‘솔 드러그’라고 임의로 부르겠습니다. 이 솔 드러그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부터 보겠습니다. 솔 드러그는 이렇듯, 밀폐된 공간에서 가열하…….”

……

회의가 끝난 텅 빈 회의실.

오늘도 카우보이모자를 쓴 존 C. 타일러가 시가에 불을 붙였다.

“후우~ 에브리헴.”

그의 부름에 에브리헴이 수첩을 꺼내 들고선 휘리릭, 넘겼다.

“박기혁 상담. 김연희 대화. 삼합회 조사. 솔 드러그 조사. 성분 분석…….”

상담, 대화, 조사, 확보, 분석…….

주르르륵, 정보들을 나열하더니.

“결론. 위기 등급 3급. 대응 등급 3급.”

“3급?”

3급이라면 ‘수사’ 혹은 ‘색출’ 같은 적극적인 대응이 아닌, 경계를 강화하고 관할 담당자가 재량껏 조사하는 정도.

“최소 2급은 될 줄 알았는데, 왜야?”

“정신계 마약이 위험 요소인 건 사실. 삼합회가 연관된 이상 위험 등급 상향 조정 필요. 단, 더 큰 위험 요소가 없다면. 안건 추가.”

에브리헴이 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낸다.

짓이겨진 시체들과 낭자한 피. 끔찍한 사진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다.

“전투광?”

“TA 활동 재개 가능성 포착.”

TA(The top of Arena).

진화단, 셀루티스와 더불어 세계 3대 빌런 중 한 곳인 TA.

이들은 다른 빌런들과는 태생부터가 다른 종자다.

진화단이 인류의 진화를 부르짖으며 온갖 악질적인 연구를 하고, 셀루티스는 초인으로부터의 구원을 원하며 초인을 적대한다.

그렇다면 TA는?

얘들은 그딴 거 없다. 그냥 힘! ‘오직 더 압도적인 힘!!’을 부르짖는 전투광이다.

이 대책 없는 전투광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매번 강자를 찾아다니고, 강자와의 싸움에 목숨을 건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는 죽는 데스 매치를 벌인다.

일각에서는 민간인을 건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TA를 빌런으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라는 말이 나온다는데…… 그건 모르는 말이다.

쟤들은 민간인을 건들지 않는 게 아니다. 민간인, 정확히는 약한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을 뿐이었다.

필요하다면 학살? 그딴 건 우습게 저지를 놈들이 바로 TA다.

만약 이 호전적인 전투광 놈들이 미쳐 날뛰기라도 하는 날에는…….

타일러가 인상을 찌푸리며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골치 아픈 것들이 또 기어 나왔군.”

“이미 ‘백악관’과 계약된 내용. 스타 히어로는 TA에 집중한다. 반면 삼합회와 솔 드러그. 계약 내용 없음.”

“요컨대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거야?”

“객관적인 판단. TA와 삼합회. TA가 월등히 위험.”

“그렇긴 하지.”

타일러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시가 끝을 질겅질겅 씹는다.

에브리헴의 말이 틀린 건 없는데 그래도 뉴욕 한복판에서 정신계 마약이, 그것도 삼합회 따위의 추잡한 손때가 묻은 마약이 나도는 건 아무래도 찝찝하다.

“대응 등급 3급으로 유지하는 대신, 지원금 좀 늘려 주는 게 어때? 현상금도 두둑이 붙여서 일 좀 하게.”

“괜찮은 부분.”

“동시에 기관에 전화 좀 돌려.”

“FBI?”

“아니, CIA. 중국 쪽에서 간첩 넘어왔다고 신고해 버려.”

“적절한 대응.”

이쯤이면 삼합회 떨거지들도 자기들이 노출된 줄 알고 알아서 길 거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주인공은 뭐하고 있대?”

“박기혁?”

“이 사태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니 주인공이지. 흠~ 쓸 만한 것 같은데, 아직도 해안 경비대랑 협조 중인가?”

그 순간, 에브리헴에게서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나온다.

“아…….”

“응? 방금 뭐 했어?”

“…….”

허? 냉철의 화신인 에브리헴이 탄식을? 감정 소모가 싫어 문장도 제대로 완성 안 하는 쟤가?

“박기혁. 자진해서 솔 드러그 추적 중.”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조금 전 그 반응 뭐야.”

“……박기혁. 이상한 부탁.”

“이상한 부탁?”

“그것이…….”

이어진 에브리헴의 말에 타일러가 잠깐 멈칫하더니, 회의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푸하하하하핳핳!!”

뭐, 뭐가 어째? 뭘 준비해 달라고?

“하하!! 와,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아주 끝내주는 집안이야.”

검호가 또라이인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번에 온 검호는 진짜배기 또라이가 확실해 보였다.

*   *   *

어둠이 내리깔린 골목.

깜빡이는 네온사인 아래, 두 남자가 하품을 하며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지직, 지직…….

그때, 저 멀리서 어둠을 뚫고 인영이 다가온다.

어둠 속에서도 나타나는 거구의 인영. 아직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흐릿한 형체만으로도 느껴지는 위압감.

두 남자가 품에서 총을 잡으며 경계했다.

“손님입니까?”

“…….”

둘의 물음에도 인영은 멈추지 않고 걸어온다.

이제는 아예 총을 꺼내어 겨누며 묻는 두 남자.

“멈춰.”

“누구냐.”

“…….”

깜빡이는 네온사인으로 설핏 비치는 인영.

그런데, 머리카락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건.

“마스…… 크?”

고글에 입과 코가 막혀 있고, 뭔가  문양이 그려진.

어렸을 때 용사 놀이할 때 한 번쯤 껴 본, 붉은색 마스크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몸이 있어야 할 곳에는 쫄쫄이 타이즈가 있고, 그 뒤로는 망토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들은 몰랐다.

이게 저 바다 건너 한국에서 방영되는, 특촬물 만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란 것을.

“……!!”

“미친!”

이건 진짜 미친놈이다! 진짜 정신 나간 새끼다!

경악과 두려움에 휩쓸린 두 남자가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그에 맞춰서 달려드는 거구의 남자.

총이 격발했다.

탕! 탕-!

쏘아진 총알.

붉은 마스크를 썼으며.

붉은! 쫄쫄이 타이즈를 입었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는 남자는 총알을 맨몸으로 막아 내며 둘에게 쇄도했다.

“초…… 커흑!!”

곧바로 둘의 어깨에 단검을 박아 넣고는 아래로 달려간다. 붉은 망토가 휘날리며 계단을 내려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십여 개의 총구들.

“쏴!!”

타다다다다다당-!!

격발하는 총, 빗발치는 총탄 세례 속으로.

남자는 몸을 던진다.

그리고 양손에 단검을 쥐고는.

썬다. 모조리 썰어 버린다.

사사삭, 샤샤샤삭~

과일을 깎듯 총알을 절단하며 전진. 기어코 총까지 자르고, 나중에는 총을 쏘던 조직원까지 무력화시켰다.

개중에 몇 명은 도망쳤지만, 그는 한달음에 따라잡아.

“커헉!”

무릎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단숨에 지하 1층을 정리, 지하 2층으로 내려간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에서 조직원들이 나온다.

“젠장, 죽여!”

“개자식, 죽어라!!”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덩치 하는 조직원들. 하지만 여기 이 남자가 더 크다. 머리 하나 이상의 차이. 조직원들이 아이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조직원들.

마스크 남자가 가볍게 주먹을 막아…….

콰직!

……막는 것도 모자라 부숴 버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먹을 쓰는 놈은 주먹을 부수고, 발을 차는 놈은 발을 토막 냈다. 검을 들고 나온 놈은 손을 절단해 버리고, 마법을 쓰는 놈은.

“커헉!”

마나 홀을 부숴 버린다.

그가 망설이지 않고 지하 3층으로 향했다.

고작 한 층 차이인데도 분위기가 다르다. 마치 이제부터 본 게임이라는 듯, 조명들이 음산하게 비춘다.

붉은 타이즈가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인다. 광택 재질이라 더 그렇다.

3층에 내려서자, 이제까지 닥치는 대로 공격하던 놈들과는 달리 그를 지켜보며 침착하게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다.

“어디서 왔지. 졸린이 보냈나?”

“…….”

“아니면 알푸치노?”

“…….”

“복장부터 범상치 않더니, 역시 프로인가…….”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의 손짓에 달려드는 조직원들.

역시 전과는 달랐다. 버프 물약을 먹었는지, 움직임부터가 빠르고 강했다.

침착하게 남자를 에워싸는 조직원들.

허접들처럼 무턱대고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에 움직임을 들킬 수 있으니.

절제된 움직임, 그 속에 숨겨진 치명적인 칼날.

전열에 선 조직원들이 검기를 내뿜으며 마스크 남자를 몰아붙였다. 후열에 선 조직원들은 온갖 디버프로 마스크 남자를 묶어 뒀다.

협공에 밀리는 마스크 남자.

손을 휘저으며 공격을 막아 보지만, 끝내 뒷걸음질 친다. 이제껏 파죽지세로 몰아치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

통한다!

조직원들의 공격이 한층 더 가볍게 달려든다.

하지만 이곳을 담당하는 중간 보스는, 뭔가 찝찝했고.

“아!!”

곧 찝찝한 감정을 알아냈다.

가장 가까운 방의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약을 하고 있는 방.

그런데.

끼- 끼긱!

문이 안 열린다!

아예 부서지지도 않는다.

“이 자식이! 우릴 가지고 놀았어?!”

그 순간.

쿵! 쿠웅!

뼈의 문이 저 멀리서부터 솟아오른다.

비상구에 하나씩, 정면 퇴로에 하나씩, 복도 중간에 몇 개가.

마치 사신의 발소리처럼 뼈의 문이 하나씩 세워지며 조직원들의 숨통을 조였고.

퇴로가 완전히 막혔을 때, 마스크 남자가 검을 빼 든다. 붉은색의 날개 장식이 담긴 장검.

삐그덕, 급조한 터라 한쪽 날개가 떨어졌다.

괜찮다.

사소한 연출 실수지만, 어차피 이 실수를 본 사람들은 곧 쓰러질 테니까.

가로로 한 번, 세로로 또 한 번, 검을 긋자.

격렬히 부딪치던 조직원들이 몸에 십자 검상이 새겨졌다.

커억!

피를 뿜어내며 일제히 바닥으로 꼬꾸라지는 조직원.

사망자 0명. 조직원 전원 생포.

상황 종료.

잠시 뒤.

경찰차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현장을 정리하러 온 경찰들이 아래로 내려가고, 마스크 남자는 유유히 위로 올라오는데.

그런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경찰관.

“팍. 이번에도 수고…….”

마스크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아니라고. 나는 팍이 아니라고.

난.

“I am Captain Tiger.”

망토를 펄럭이며 사라지는 박기…… 아니, 캡틴 타이거.

경찰관은 사라지는 그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또라이 자식…….

*   *   *

사건의 시작은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날도 새벽부터 일어난 난, 내 사랑 봄이와의 통화를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봄아!”

- 아빠아…….

그런데 우리 딸내미, 오늘따라 목소리에 기운이 없잖나.

“뭐야, 우리 딸. 무슨 일 있어?”

- 아니야…… 봄이 괜찮아…….

근래에 본 얼굴 중에서 가장 어두운 얼굴.

갑자기 머리가 싸해졌다.

왜, 무슨 일 있냐고, 누가 뭐라 했냐고, 조용히 말했지만 이미 내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온갖 경우의 수가 생각났다. 설마 친구랑 싸웠나? 부터 누가 협박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삼합회? 그 개자식들이?

이성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원래 딸은 이성으로 키우는 게 아니다. 감성으로 품는 거지.

역시나 우리 착한 딸. 내 물음에 거짓말은 못 하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 흐끅, 아쁘아. 진현이가. 흐끅, 진현이가아아! 다이노소어가 더 쎄대!! 으아아아앙-!

“다이노소어?”

- 봄아, 이리 와. 울지 말고. 뚝.

- 언니이이이!!

- 옳지, 옳지. 괜찮아.

“뭔데 진유리. 나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거든?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

- 아, 그게…….

우는 봄이를 안고 설명하는 진유리.

유치원에 간 박봄 양. 오늘도 그녀의 취향에 맞춰 캡틴 타이거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진현이란 아이가 요즘 유행하는 매직 레인저 다이노소어(Dinosaur) 인형을 가져오게 된다.

전통의 캡틴 타이거, 신흥 세력 다이노소어가 만났다.

충돌은 필연적.

캡틴 타이거 VS 매직 레인저 다이노소어.

누가 세냐, 누가 더 멋지냐를 가지고 붙었는데.

결과는……

졌단다.

“왜?”

- 애들이 캡틴 타이거를 모른대.

- 이제 안 해에에에! 캡틴 타이거 죽었대에에에!! 흐아아앙!!

- ……들었지? 캡틴 타이거 TV에서 안 한 지 좀 됐거든. 애들 유행이 좀 빨라? 벌써 잊힌 거지. 봄아, 언니 옷에 코 풀어. 흥!

“하…….”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아이들 시장에서, 더 이상 봄이의 캡틴 타이거는 시장성이 없는 것.

너무도 당연한 경제 원리라 내가 뭐라 말해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살짝, 다이노소어로 바꿔 봐라. 아주 아주 살짝 말했는데.

- 아빠도 미워어어어어!!

갔다.

미움받았다.

- 야, 넌 진짜 말을 해도. 하…… 걔들은 총을 쏜단 말이야! 봄이는 아빠가 검을 쓰니까 죽어도 캡틴 타이거 좋아하는 거라고. 진짜 얘는…….

“아니, 난…….”

- 몰라. 끊어. 봄아! 봄아아아!!

그, 그렇구나.

나중에 알아보니 매직 레인저 다이노소어는 다섯 명 모두 총을 주 무기로 쓴단다.

아니, 앞에 매직이 붙었으면 마법사 아니야? 마법사가 자존심도 없냐? 총을 왜 써!

여튼.

캡틴 타이거가 밀린단 말이지.

검이 총한테 밀린다는 말이며, 봄이가 진현이란 아이한테 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안 되지.”

끌어오르는 혈기를 꾹꾹 누르며 엄마한테 전화부터 했다.

“엄마, 나 사고 칠 것 같은데요.”

박봄, 울지 마라.

아빠가 해결해 준다.

*   *   *

도시의 옥상. 난간을 밟으며 달린다.

목표는 저 앞에서 도망치는 두 놈.

추레하게 생긴 것에 비해 꽤 하는 놈들이다.

“헉, 헉! 저 새끼 아직도 쫓아와!”

“M***er F*ck!! 꺼져, 변태 새끼야!!”

하늘에서 불벼락이 내려친다.

범위 마법 ‘파이어 레인’.

봐라.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줄 아는 놈이잖나.

나는 거침없이 파이어 레인으로 몸을 던졌다. 불길이 망토에 달라붙는다.

라텍스라서 그렇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이 망토가 다 타기 전에.

잡으면 되니까.

검호류……

‘아니, 아니지.’

타이거 소드 3단계

섬광 꿰뚫기

쇄액-!

나를 둘러싼 공간이 점멸한다.

순식간에 바뀌는 풍경들.

두 줄기 섬광이 파이어 레인을 뚫고 녀석들의 어깨를 꿰뚫었고.

“커헉!”

“끄아아아악!!”

섬광이 사라진 자리에서, 내가 서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녀석의 아공간 주머니를 뜯어 챙긴다. 꿈틀대며 나를 노려보는 쓰레기 놈.

“……아, 안 돼.”

돼.

콰직!

답 대신 죽빵을 선물해 줬다.

강냉이 몇 개가 튀어나와 바닥에 나뒹군다.

저 멀리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경찰들.

몇몇이 나를 찾는다. 드문드문 기자들도 보였다.

이때가 중요하다. 여기서 괜히 주절주절 말하면 모양 빠지는 짓.

진정 폼이 나려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돌아서서.

엄지를 치켜세워 주고.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주인공의 퇴장이란 무릇, 바람처럼 사라져야 하는 법.

완. 벽.

“……훗.”

존나 멋졌어.

이러니까 봄이가 아빠 아빠 하지.

캡틴 타이거가 시장성이 없다고?

그러면 그 시장성, 내가 만들어 주마.

난 타다 만 망토를 휘날리며 다음 적을 향해 고독하게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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