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22화>
같은 수호령 사이에서도 기간트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힘을 중시하는 황룡은 기간트를 ‘괴짜인데 쓸데없이 강한 괴짜’라 평했고, 조화를 중시하는 위그드라실은 ‘탐구욕의 화신’이라 평한다.
기간트(Gigant).
이 기계의 수호령은 오직 한 가지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호기심.
모르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
새롭고 신기한 것에 관심을 쏟는 행동.
흥미로운가, 아닌가.
새로운가, 아닌가.
신기한가, 아닌가.
기간트는 이 단순한 사고로 움직이고 행동한다.
흥미로우면 갖고 아껴 준다. 아니면 버리고 내팽개친다. 새로우면 애정을 쏟고, 새롭지 않으면 외면했다.
때문에 기간트에게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주지 못하는 존재는 무가치하다. 시야에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인지를 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호기심을 충족해 주는 존재는 세상 어떤 보물보다 값어치가 있다. 아껴 주고 보호해야 할 보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기간트가 마주한 ‘박기혁’은.
“Lovely!”
너무너무 사랑스럽잖아!
분명히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였다. 그 얌전한 위그드라실이 싸고도는 애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애가 날 한눈에 알아보네?
“기간트 님께서 널 보고 싶어 하셔.”
“보고 있잖아?”
“무슨 말이야?”
“너 몰라? 아…… 모르는구나.”
그때, ‘기간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하던 박기혁.
“정말 섹시했어.”
무엇보다 기간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 눈빛이다. 모든 걸 다 꿰뚫고 있다는 그 오만한 눈빛!
더군다나 그는 정말로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첫 번째 질문. 이거, ‘알파 기어’라는 거. 기간트가 만든 게 확실해?”
이건 확인이다.
알파 기어와 기간트의 연관성을 알고, 이어질 ‘의도’가 자신의 추측과 맞아떨어지는지 교차 검증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박기혁은 알파 기어의 ‘용도’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설마? 혹시?! 내 ‘본체’에 대해도 아는 걸까? 히야~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려.”
“두 번째 질문. 이거 ‘왜’ 만들었는지는 알아?”
기간트의 의도를 묻는 질문.
이 부분에서 기간트는, 박기혁이 알파 기어가 인조인간 ‘호문클루스’로 향하는 길이란 걸 안다고 확신했다.
“근데 저 표정에 담긴 적의는 잘 모르겠어. 흐응…… 쟤는 호문클루스가 싫은가?”
“마지막 질문. 너 기간트가 마법 쓰는 거 본 적 있어?”
그리고 이 질문. 이 마지막 질문에서.
솔직히 기간트는.
“우와아!!”
‘반했다.’
저 박기혁이란 인간에게 진심으로 반했다.
설마설마했는데, 나에게 ‘마법’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잖아?!
이것은 수호령 ‘기간트’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신(God), 그 Asshole(개자식)을 알고 있다는 말이야!”
기간트는 흥분했다.
세상에, 인간이 신을 안다고?! 그 빌어먹은 년이 얼마나 치사하고, 쪼잔하며, 더러운 년인지 안단 말이야?!
기간트의 투명한 동공에 박기혁이 가득 찼다.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가지고 싶다. 가져와서 박제하고 싶다. 평생 소유할 수 있게.
이미 마음을 먹은 기간트는 거칠 게 없었다.
뉴욕 전역에 퍼져 있는 ‘기간트의 눈’들을 동원해 박기혁을 찾아갔다.
찾아서 데려올 생각이었다. 다리 정도는 부러뜨려도 되겠지.
“그래도 ‘변태 새끼’는 심했어. 벌받는 거야. 깨끗하게 붙여 줄게.”
그런데 웬걸?
박기혁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거다!
방 한구석에서 달빛을 받으며,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박기혁의 눈은 정말.
기간트의 입에서 주르륵 침이 흐른다.
“기간트, 아니, 아니야.”
“변태 새끼, 너한테는 이게 어울려.”
네! 변태할게요!
이제부터 전 변태예요!
이제는 박기혁의 입에서 나온 ‘변태’라는 단어까지 마음에 드는 기간트였다.
저 사람과 대화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엄청 재미있을 거야!
그래서 웬만하면 하지 않는 ‘하프 링크(Half Link)’까지 써 가며 박기혁과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박기혁은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응? 희한하네. 갑자기 존재감이 이렇게 늘어난다고? ‘화신’인가? 아닌데…… 마법이 아닌데 마법 같고.”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더니, 너 정말 재미있는 방식으로 강하구나?”
기간트와 박기혁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중에는 기간트가 처음으로 입에 올린 이야기도 있었다.
기간트와 레드 드래곤 간의 ‘망토’와 ‘날개’를 둘러싼 악연. 이어진 동서 내전의 이유. 그가 그토록 물어보던 ‘호문클루스’를 만드는 이유까지.
기간트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박기혁에게 많은 것을 털어놨다.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그깟 비밀 따위보다 박기혁과의 토론이 훨씬 재미있었다. ‘진리’를 두고 나누는 다양한 견해와 시각 차이.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었다.
이 대화를 영원히 지속할 수만 있다면, 기간트는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하프 링크’의 지속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안 돼에!! 큰일 났어! 나 이제 가야 돼!!”
“그래,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 했다. 잘 가.”
“나 찾아올 거지? 꼭 와야 해!”
“생각해 보고.”
“무조건! 진짜! 확실히! 와야 돼!! 오면 내가 너 원하는 거 다 줄게. 빅터 줄까? 그거랑 비슷한 모델 많아!”
“하…… 난 왜 근처에 이런 또라이들만 꼬이는 걸까…….”
“오면! 내가 마지막 질문에 답해 줄게.”
“마지막이라면…… 너 ‘마법’ 못 쓰는 거?”
“정확히는…….”
정말 깊은 결심을 하고서 뱉은 말.
“신이 ‘우리’를 만든 이유.”
수호령의 존재 의의.
이 세계의 비밀이었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치, ‘얘들아?’”
기간트의 뒤편으로 신장처럼 서 있는 기계 거인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 * *
첫 번째 일정을 끝낸 난, 곧바로 두 번째 일정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이번에 내가 맡은 지원 임무는 게이트가 아닌 일반 구역에서 하는 거다.
항구에서 밀수나 밀입국을 잡는 일들.
대기하다 해안 경비대와 함께 출동하면 끝. 전에 내가 배웠던 ‘나이트’의 업무와 비슷한 거였다.
다만 규모의 차이는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초인들이 함께했던 것.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왜 이토록 많은 초인들이 함께하는 걸까.
그런데 첫 출동에서 알 수 있었다.
“천조국 천조국 하더니, 스케일이 다르네.”
왜 밀수범 따위가 전원 초인이야?
해안 경비대가 쏜 총탄이 무용지물이 되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배를 박차며 뛰어내렸다.
날아오는 바람의 칼날 ‘윈드 커터’를 쳐 내고는, 달린다.
바다 위를.
목표는 저기 마법을 쏘는 놈이 있는 밀수선.
그 순간, 수면이 꿈틀대며 물의 족쇄들이 뻗어 나온다. 마법적 관점으로 바다에서 물 마법을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
옛날이었으면 실드를 쓰거나, 하늘로 대피했을 테지만.
지금의 난 다르다.
“이젠 익숙해졌다고.”
달려드는 족쇄를 손으로 ‘부쉈다’.
슬슬 익숙해지는 거인의 육체.
마법들을 ‘무효화’시켜 나간다. 물의 족쇄를 끊고, 뇌전 마법을 무시한다.
그리고 수면 위를 달려, 배를 향해.
숄더 차지.
꽈아아앙-!!
함선이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갑판 위에서 욕설들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 물 좀 먹었다고 F와 S로 시작하는 욕설이 이제는 꽤 익숙했다.
“으차.”
단번에 갑판 위로 오르자.
나를 포위하는 조직들.
총구가 내 머리를 겨누고, 서슬 퍼런 칼날이 번쩍인다. 도끼, 창, 화살, 스태프…… 어쭈, 쟤는 마법도 쓰네.
각양각색의 무기가 나를 겨누고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세상은 넓고 나쁜 놈들은 끝없이 나온다.
문득 며칠 전, 기간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아. 이거 호문클루스야. 내가 만들었어.”
“너희는 모를 거야. 너희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너희가 가진 ‘무한의 가능성’. 온갖 족쇄에 묶여 있는 우리랑은 달라.”
“인간을 싫어해? 전혀! 내가 너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음흉한 놈’한테서 너희를 지킨 것도, 인간이 좋아서야.”
“내가 좀 빨리 질리긴 해. 인정. 그래도 ‘음흉한 놈’처럼 망가트리진 않는다고. 호문클루스도 ‘기계’로만 만들잖아? 이만하면 인간 친화적이라고. 에헴!”
“난 너희가 좋아. 너희가 가진 가능성이 부러워. 그래서 알고 싶고, 그래서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하고, 그래서 만들고 있어. 이런 내가…… 잘못된, 거야?”
인간은 축복받았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다.
식물이나 동물 따위에 비하면 낫다는 건가? 솔직히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난 좀 다르다.
다른 지성체가 있던 곳에 살아 봤으니까.
엘프, 드워프, 난쟁이, 여러 종의 수인…… 수많은 종족들을 만난 내가 볼 때.
기간트가 맞다.
확실히 인간은 신의 축복을 받은 종족이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도 힘을 주잖아?”
“죽여-!!”
선두에 선 놈의 외침에 모두가 달려든다.
쏟아지는 마법들. 살기를 띤 병기들.
그러나.
난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별다른 대응도 하지 않는다.
굳이 내가 손쓸 필요가 없거든.
이딴 저열한 놈들은 내 상대가 아니다.
“일해라, 노예들아.”
본인들도 인정했으니까 이제는 거칠 게 없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윌리엄이 내 곁을 지킨다.
“크리스.”
크리스가 작음 몸으로 울음을 토해 내자, 허공이 출렁이더니 윌리엄의 정령 군단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때, 하늘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빅터, 부수…….”
“야! 부수긴 뭘 부숴!”
“……적당히 해.”
쿠아아앙!
마나가 요동치며 허공에 원이 그려진다.
밤의 어둠 속에서 거대하게 반짝이는 링.
곧이어 링 안이 색색으로 반짝이더니, 링을 뚫고 기계 거인의 팔이 떨어진다!
콰직!
배에 박히는 기계 거인, 빅터의 팔이었다.
불꽃이 튄다. 번개가 내려친다. 파도가 배를 덮치고, 나무들이 일어선다.
이런 혼란 속에서 기계 팔은 무자비하게 적을 터트려 간다.
정령과 기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적을 분쇄하고 있었다.
“배고프다. 빨리 정리해라.”
* * *
선박이 항구에 정박되고, 수갑을 찬 사람들이 줄지어 내려온다.
경찰들이 부지런히 밀수범들을 인도받는 사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한 경찰관.
내게 배정된 경찰관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규모가 큰 갱단이라 걱정했는데, 역시 팍입니다. 단번에 해결하셨네요.”
“어쩐지 생각한 것보다 많더라니. 꽤 유명한 조직이었나 보죠?”
“‘갓 메이커’라고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신생 갱단입니다. 워낙 빠르게 성장한 터라 위쪽에서도 의심하고 있죠.”
“누가 뒤를 봐줬다거나, 그런 걸로요?”
“지금은 잠잠하지만 본래 뉴욕 바닥의 마약은 멕시코 마피아가 독점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타천사’ 사건이 있었잖습니까. 그때 스타 히어로가 거의 뉴욕 바닥을 뒤집어 놨죠. 셀루티스 검거한다고요.”
“허…….”
내 입에서 기어코 탄식이 나온다.
그 사건이 여기까지…… 나비 효과 한번 끝내주네.
“그래서 한동안 멕시코 애들이 잠잠했고, 이틈을 노린 햇병아리 갱단들이 생겨난 거죠. ‘갓 메이커’는 그중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리는 곳이고요.”
“그랬군요.”
솔직히 그다지 흥미는 없다.
그저 예의상 묻고 묻는 대화.
조직이 사라지고 생기고가 뭐가 중요하나. 바퀴벌레보다 질긴 놈들이다. 어차피 이런 해충 같은 족속들은 끊임없이 나오는 법.
너무 신경 쓰면 오히려 나만 손해였다.
막말로 내 나라도 아니잖나. 맡은 바 임무만 수행하면 된다. 딱 어머니 얼굴에 먹칠만 안 할 정도로…….
밥이나 먹으러 갈 생각으로 둘을 찾았다.
나의 귀염둥이 노예들.
내게 마법을 배우는 조건으로 수발을 드는 윌리엄과, 존경하는 수호령의 명령으로 나를 보필해야 하는 로자리아였다.
“배고픈데 이것들이 어디 있어?”
때맞춰 저 멀리서 날아오는 두 놈.
컨테이너 박스를 옮기느라 늦은 모양.
나 대신 고생이다. 봐줘야겠다 생각하며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데.
쿵!
내린 컨테이너 박스가 열리며.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
“응?”
달짝지근한 설탕 같으면서도…… 간간이 톡 쏘는 매콤한…… 굉장히 최근에 맡은 향.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익숙한 물건.
“와, 여기까지 발을 뻗었네?”
영혼 추출제.
유리병에 담긴 ‘영혼 추출제’가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 한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