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21화>
“그래서 로자리아 씨. 왜 절 찾아오셨습니까?”
“우리 인사도 하지 않은 거 알아?”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우리가 살갑게 인사나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
“기분 나빠. 너 방금 전 통화할 때랑 달라졌어. 이건 불공평해! 나한테도 잘해 줘. 내가 빅터 설계도도 줬잖아.”
“설계도를 줘?”
“나 때문에 너도 알파 기어 만들잖아. 나 아니었으면 네가 그런 생각했겠어?”
“너 혹시 기억을 상실했냐? 내가 달라고 했냐? 네가 수작 부리다 나한테 뺏긴 거잖아.”
“그게 중요해?”
“허…….”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게 무슨 선택적 기억 상실증 뭐, 그런 건가. 말할 가치가 없다.
“야, 본론.”
“나 할 말 많아. 나도 충분히 네게…….”
“시끄럽고.”
난 커피를 홀짝이고는, 딱 잘라 말했다.
“본. 론.”
“……넌, 나쁜 새끼야.”
“할 말 없구나. 나 간다.”
“잠깐! 잠깐만.”
로자리아가 일어서려는 나를 붙잡는다. 그러고는 대뜸 한숨을 쉬더니.
“부탁할 게 있어.”
“부탁? 거래가 아니라?”
“Please. 그리고 이건 내 개인의 부탁이 아니야.”
“아, 진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야! 미국 놈들은 원래 이렇게 빙빙 돌려? 그냥 말해. 부탁이든 거래든 일단 말을 하라고!”
꿀꺽, 침을 삼킨 로자리아가 결심한 듯 말했다.
“기간트 님께서 널 보고 싶어 하셔.”
“보고 있잖아?”
“무슨 말이야?”
“너 몰라? 아…… 모르는구나.”
“장난하지 마. 나 심각해.”
“음, 쏘리. 그래서, 기간트가 날 보고 싶다? 참나, 고작 이거 말하려고 뜸을 들인 거야?”
“뭐? 제정신이야? 기간트 님의 말이야. 기간트 님의 말이라고! 이게 얼마나 큰일인 줄 알아?”
로자리아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너는 몰라. 기간트 님이 얼마나 무서우신 분인지. 너는 몰라.’라고 편집증 환자처럼 중얼거린다.
이 나사 빠진 애가 이 정도로 두려워할 정도라니.
급 궁금해진다. 그 기간트란 놈, 대체 애들을 얼마나 쥐 잡듯 잡았으면 이 꼴이지?
“좋아, 이제 좀 흥미가 돋네. 안 그래도 그 기간트란 놈에 대해 궁금했거든.”
“놈이라니! 수호령이야. 존경을 표해.”
“존경은 무슨 존경. 변태처럼 남 엿보는 취미를 가진 관음증 환자한테. 아, 이 경우에는 몬스터인가? 어쨌든.”
두 번째 커피 잔을 들며 눈짓했다.
“너 기간트에 대해 많이 알아?”
“아마도.”
“좋아, 내가 이제부터 물을 테니까 너는 답하는 거야.”
“답하면, 나랑 기간트 님 만나러 가 줄 거야?”
“흥미가 커지면?”
“어디 해 봐. 질문이란 거.”
“좋아.”
손가락을 튕긴다.
허공에 육망성이 떠오르고…… 공간을 뚫고 등장한 건.
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
알파 기어, 로즈 나이트였다.
“첫 번째 질문. 이거, ‘알파 기어’라는 거. 기간트가 만든 게 확실해?”
* * *
이른 저녁.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
지평선 너머로 노을이 진다.
로자리아는 호텔 욕조에 몸을 누인 채, 노을을 보며 오늘 아침에 있었던 박기혁과의 대화를 회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질문부터 황당했다.
“기간트 님이 알파 기어를 만든 게 확실하냐니.”
초등학교(Elementary school)만 들어가도 알 수 있는 질문이다. 당장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 봐도 얻을 수 있는 답을 들으려고 박기혁이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질문의 저의를 물었는데.
뜬금없이.
“음,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네.”
“그러면 바로 두 번째 질문. 이거 ‘왜’ 만들었는지는 알아?”
아니, 어째서 질문이 왜(Why)로 바뀌는 걸까? 대체 왜?!
이 부분에서 로자리아는 인내심이 끊어졌다. 뭔가 농락당하는 기분이 불쾌했다.
그래서 그냥 아는 대로 말했다.
동서 내전 이후 미국을 지탱하는 경제 질서가 붕괴되며 세계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이에 수호령들은 ‘세계 균형 조약’을 세우게 됐고, 동시에 동서 내전의 원인을 제공했던 ‘레드 드래곤’과 ‘기간트’는 속죄의 의미로 자신들이 입혔던 피해를 적극 복구하게 된다.
이때 전해진 기술이 후일 ‘알파 기어’와 ‘인공 정령’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렇듯 로자리아는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설명해 줬건만.
정작 박기혁의 반응은.
“너…… 진짜 모르잖아.”
개자식!(M*ther Fu**!!)
답을 말해도 지랄인데?!
화가 나는 한편, 내심 의문도 들었다.
대체 박기혁의 질문에 담긴 진의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답을 듣고도 답이 아니라고 할까.
혹시 무슨 비밀이라도 있을까? 내가 모르던 세계의 비밀.
로자리아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어진 질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확신했다.
이 개자식은 나를 놀리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 질문. 너 기간트가 마법 쓰는 거 본 적 있어?”
“장난해?”
마법 쓰는 거 본 적 있냐고?
당연하지! 아니, 저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 설마 기간트 님이 마법을 못 쓴다는 건가?
“정말이야? 진짜로?”
로자리아는 기어스 스쿨의 수석 디자이너다.
당연히 기간트 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현재 그녀를 상징하는 빅터도 기간트 님한테 받은 거 아닌가.
“마법도 배웠다고? 진짜?”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마법은 스승인 메카닉 마스터가 가르쳐 줬지 기간트 님이 아닌 것 같기도…….
그 이후로도 이해 안 될 이야기는 계속됐다.
“후, 아는 게 있어야지 뭘 묻지. 그럼…… 야, 너 ‘브로치’ 그거 뭔데? 루비 박힌 거. 아카데미 징표? 기어스 스쿨 다니는 애들은 다 차고 있겠네? 허…… 이거 수호령이 아니라 변태 새끼잖아.”
“됐어. 이제 가 봐. 응? 왜 내가 너랑 가. 답해 준 거? 그게 답이냐? 아는 것도 없으면서. 머리가 있으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가 봐.”
낱말도 중구난방, 내용도 뒤죽박죽. 혼잣말은 왜 이렇게 많이 해.
몇 번을 돌이켜 봐도 정리가 안 된다.
아무리 로자리아의 혈족이 ‘분해’와 ‘조립’이라도, 이 정도로 엉망인 내용은 조립하지 못한다.
“몰라. 머리 아파.”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을 포기한 로자리아의 머리가 물로 쏙 빠진다.
구루루루-
물 위로 공허한 공기 방울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내리깔린 어둠의 뒤편에서는 한 무리의 인영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 * *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거리.
한 남자가 주위를 살핀다.
청소부 복장의 남자.
이미 피곤에 찌든 얼굴이다. 내일이라도 이 X같은 일을 때려치우고 싶지만,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이다.
청소부 남자는 쓰레기통을 보고는 침을 뱉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반대편 골목에서는 곱슬머리의 여인이 벽에 기대어 서 있다. 집적대는 남자에게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들 정도로 강인한 여자.
여자의 얼굴에서도 당당함이 물씬 풍겨 온다.
여자는 담배를 물고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오늘 하루가 힘들었는지 잔뜩 술에 취해 비틀비틀 위태롭게 골목으로 들어갔다.
선정적인 옷을 입은 여자는 무슨 전화를 받더니, 화장을 고치며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한창 여심을 유혹하던 바텐더는 문을 나서는 여자에게 눈을 찡긋하며 배웅하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담배를 물고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렇듯, 뉴욕의 어느 뒷골목으로 사람들이 들어선다.
뉴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숙자, 수상한 몸짓의 남자,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
수많은 사람들이 골목 안, 짙은 어둠 속에 삼켜지고 있었다.
어둠을 걷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골목에 깊게 들어설수록, 얼굴에 음영이 짙게 깔릴수록.
점차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당장 쓰러질 것만 같던 청소부의 얼굴에서는 피로가.
당당하게 웃던 여자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여심을 흔들던 남자의 얼굴에서는 매력이.
인간이면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들이 사라져 간다. 점차 인형이 되어 간다.
아니, 처음부터 인간이었을까 의문이 든다.
이제는 완전히 인형처럼 변해 버린 사람들.
그들은 뒷골목 어딘가에서 멈췄다.
그들의 앞에 있는 건 노숙자. 죽은 듯이 자고 있던 노숙자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이불을 걷고 맨홀 뚜껑을 열었다.
곧이어 아래로 사라지는 인간들.
잠시 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새턴 호텔’ 지하.
세탁물 관리실로 들어온 인간들은 전부 준비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청소부는 신사가 되고, 당당했던 여인은 청소부가 된다. 바텐더는 벨보이가 된다.
한순간에 호텔 직원이 된 인간들. 계단을 통해 걸어간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박기혁.
오늘 ‘그녀’를 이곳에 부른 인간이다.
마침내 박기혁의 객실에 도착한 인간들.
띠띠띠- 띵-!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전자식 잠금장치가 열렸다. 열린 문으로 일사불란하게 뛰어 들어가는 인간들.
그들이 준비했던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죽일 생각은 없지만, 건방지게 말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
지직, 방망이 손잡이 위에 선명한 손자국이 생길 정도로 꽉 잡고는, 침대 위 불룩하게 튀어나온 이불을 향해 내려쳤다.
푸식~
푸시익-!
“……?!”
찢어지는 이불 위로 깃털들이 날아오르고.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더럽게 느리네. 언제 오나 했다.”
“……?”
인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그들의 눈동자에 맺힌 인간.
팔짱을 낀 채 창틀에 걸터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
그들의 목표물. 박기혁이었다.
박기혁은 한심한 듯 혀를 쯧쯧 차더니.
“기간트, 아니, 아니야.”
고개를 젓고는 비릿하게 웃으며.
“변태 새끼, 너한테는 이게 어울려.”
‘기간트의 인형’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 *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왜 호문클루스가 금기시되는가.
제국 시절, 신성 공국은 이 호문클루스를 신의 신성을 침범하는 배교 행위로 봤다.
엘프들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실패작’이라 말했고, 드워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불렀다.
그런데 생각해 봐라.
이론적으로 보면 호문클루스. 즉, 만들어진 인간은 생각 이상으로 유용하다.
하나만 꼽자면 인간이 하기 힘든, 혹은 하기 싫은 노동을 대신해 주잖나.
자동화 기계들이 들어선 여기 현대인들이라면 이해하기 쉬운 이득일 거다.
그럼에도 왜 호문클루스가 금기시됐냐면.
이 호문클루스가 절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안 해 봤겠나? 호문클루스.
예전에도 말했지만, 제국의 인권은 여기보다 한참은 낮다. 여기는 그럴듯한 교도소 같은 곳이 있지만, 제국에서 교도소라고 해 봤자 건물 몇 개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그럼 그 많은 죄수들은 어떻게 될까?
특히 구제할 길도 없는 쓰레기 같은 흉악범들은.
마탑으로 보내진다.
연구 명목으로.
특히나 내가 있을 당시 황제는 ‘영생’에 미쳐 있다 보니 심할 정도로 보냈었다.
괜히 내가 마왕임에도 ‘인체 실험 규제 법안’을 건의한 게 아니라니까.
어쨌든, 이러한 환경에서 난 수많은 케이스들을 봤다.
영혼을 지운 인간에 다른 영혼을 집어넣은 경우, 완벽한 육체를 만들어 살아 있는 영혼을 집어넣는 경우 등등.
정말 모든 경우의 수를 보고 나름대로 연구 끝에, 난 결론을 냈다.
이건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다.
나를 비롯한 제국 7마탑 전체의 마법사들이 전부 같은 결론을 냈다면 안 되는 게 맞다.
근데 봐라. 이 결과를 알아낼 동안 얼마나 죽어 나갔나?
내가 본 것만 해도 셀 수 없다.
이토록 피해가 극심한 연구다. 엄청나게 죽어 나가고 정작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
더 골 때리는 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단 거다.
왜 그런 거 있잖나. 나는 다를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명성에 눈이 먼 마법사들.
이 호문클루스는 이런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마치 악마의 목소리처럼, 너는 신이 될 수 있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다.
마법사는 무릇 마도의 길에서 진리를 찾는 존재다.
그런데 진리는커녕 아무것도 없는 막다른 골목. 게다가 세상을 병들게 하는 길로 간다면, 그건 이미 마법사가 아니다.
학살자지.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경험적으로나 지식으로 전달받아 알거나, 학습을 한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금기’로 지정한 것이다.
내 허리를 잡고 있는 인간, 아니, ‘인형’을 무릎으로 걷어찼다.
콰직-!
부서지는 인형.
엉망이 된 방 안으로 산산조각 난 인형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난 그중 비교적 멀쩡한 얼굴을 머리째 잡아들었다.
“변태 새끼. 나와.”
삐걱-
기괴한 소리를 내며 눈동자가 돌아간다.
우우우웅-
마나가 진동하며 떠오르는 잔해들.
손과 발, 뼛조각과 어느 부품의 태엽으로 보이는 물건까지 떠오르길 잠시.
내가 잡고 있던 머리의 입이 기형적으로 움직였다.
“너, 신기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뭉친다.
꾸덕꾸덕, 찰흙들이 뭉치는 것처럼 합쳐지며 제자리를 찾아가더니.
손이 생기고, 발이 생기고, 몸이 만들어지고, 옷이 생긴다.
그렇게 생겨난 신체가 뚜벅뚜벅 걸어와, 내 손에 들린 얼굴을 뺏어 자신의 머리에 끼웠다.
곧이어 변화하는 머리.
짧았던 머리는 치렁치렁한 긴 곱슬머리가 되고.
하얗던 피부는 진갈색의 건강한 피부가 된다.
그렇게 완성된 존재가.
마침내 내 앞에 앉았다.
“안녕? 난 기간트. 만나서 반가워!”
수호령, 기간트(Gigant).
이 세계의 균형자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