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19화>
오랜만에 영감탱이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내가 영감의 마법을 파훼하며 죽빵을 날렸던 그날.
“어이쿠, 턱이야. 때리라고 해서 진짜 때리냐? 이것은 존경심이 없어요, 존경심이. 쯧.”
“마나의 배열을 부수는 게 아니라, 비튼다. 그럭저럭 괜찮은 발상이었다. 뭐어? 칭찬은 제대로 하라고? 크헐헐! 그래그래, 훌륭했다, 짜식아.”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마법으로 영감을 이겼을 때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영감이 나를 위해 일부러 져 준 것 같지만 말이다.
여튼, 영감은 첫 쭉빵 기념으로 내게 선물을 줬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으니, 너도 ‘영혼’을 배워 보자꾸나.”
영혼(靈魂).
인간의 근원.
육체와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육체가 그릇이라면 영혼은 내용물이다.”
“육체가 본능과 욕구를 관장한다면, 영혼은 이성과 감정을 관장한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인형’이고.
육체가 없는 영혼은 ‘유령’일 뿐이다.
“육체와 영혼.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흑마법의 정수다. ‘제물’ 따위나 쓰는 게 아니라, 인간을 다루는 것이란 말이다.”
“다만 생명이 ‘탄생’하는 잉태의 과정은 길고 지난한 반면, 생명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도 쉽고 간단하기에. 이를 악용해 강제로 죽음을, 대량의 죽음을 만드는 ‘제물’이란 개념이 생겨난 것이지.”
죽음과 어둠을 주 속성으로 둔 흑마법.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흑마법은 절대 ‘악’이 아니다. 죽음과 어둠을 고찰하고, 탐구하며, ‘진리’에 다다르는…… 엄연한 마법의 한 계통인 것이다.
“자, 그럼 영혼을 어떻게 배우는가. 간단하다. 네가 육체를 어떻게 배웠지?”
“맞아. 골방에 틀어박혀서, 온종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육체에 익숙해졌지? 마찬가지다. 영혼을 배우는 법? 일단 영혼을 많이 보고, 느끼고, 접촉하면 돼. 어때, 별거 없지?”
영혼을 배우려면 많은 영혼과 접촉해야 한다.
이걸 말이라고 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반문하기까지 했다.
‘그럼 화염 마법애 익숙해지려면 불로 지지면 되겠네요.’ ‘물 마법 배우려면 물에 빠트리면 되겠고요.’ 라고.
이에 영감은 물개 박수를 치며.
“완전히 이해했구나. 독립해도 되겠어.”
사실 돌이켜 보면 영감의 말이 옳았다.
배움이란 게 별거 있나?
보다 많이 보고, 익히고, 접하는 것. 그래서 이해하고 나만의 생각으로 터득하는 것.
이건 비단 마법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움의 기본이 아닌가.
그날부터 난 영혼을 찾아다녔다.
병원, 묘지, 화장터…… 심지어 전쟁터까지.
영혼을 이해하며 탐구해 나갔다.
나중에는 굳이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나한테 무슨 악 속성 도발 페로몬이 있는 건지 세상의 못된 놈들은 전부 찾아오더라.
흑마법도 아닌 흑마법을 쓰는 저질들이나, 신에 미쳐 자식을 파는 광신도, 권력에 미쳐 눈이 돌아간 귀족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악취 나는 영혼들을 많이 봤다. 마왕도 이때쯤 됐으니,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가늠이 될 거다.
그렇게 의식해야만 보이는 영혼들이 나중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보이더라.
‘마안(魔眼)’ 혹은 ‘신안(神眼)’이라 불리는, 영혼에 통달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한 가지는 자신할 수 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나보다 영혼에 능통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왜냐하면, 나보다 많이 사람을 죽인 자는 없을 테니까.
* * *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로즈 나이트’의 투구를 요리조리 살펴보는데.
“이걸 ‘영혼’이라고 봐야 하나…….”
한창 투구에 집중하던 그때.
떨어지는 화염 마법.
플레임 엔트가 쏘아낸 불꽃이었고, 나는 ‘한 손’으로 움켜쥐어 가볍게 꺼트려 버렸다.
여기서 손은 내 손이 아니다. 알파 기어 ‘로즈 나이트’의 건틀릿이었다.
화르륵, 허공에 불꽃이 타오르더니 이번에는 화염의 창날이 나를 겨눈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플레임 스피어’.
하지만 난 여전히 투구에 집중하던 상태로.
“방어해.”
한마디.
단 한마디에.
허공에서 갑옷들이 튀어나왔다. 중세 기사들이 입을 법한 풀 플레이트 아머, ‘로즈 나이트’였다.
부위별로 펼쳐진 로즈 나이트가 ‘플레임 스피어’를 막아 냈다. 흉갑이 움직여 내 정면을 막고, 한 짝의 장갑이 사이좋게 불꽃을 터트려 버린다.
이어지는 ‘파이어 레인’도 완벽하게 방어.
땅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불길 ‘파이어 월’조차 강철 장화가 짓밟아 꺼트려 버렸다.
계속되는 플레임 엔트의 공세에도 내게 닿는 불꽃은 전혀 없다. 모조리 로즈 나이트에 의해 지워지기 때문이다.
이 중 내가 컨트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방어해.’ 한 마디에 모두 로즈 나이트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 행동이었다.
“스스로 판단한다.”
판단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뜻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나와 너, 즉 주체와 객체를 구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이런 걸 보면 ‘자아’가 있긴 한데.”
또 완벽하게 자아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이 로즈 나이트의 의지가 너무 약하다.
“야, 아무 말이나 해 봐.”
“…….”
반응이 없는 로즈 나이트의 투구.
봐라. 이게 어딜 봐서 자아가 있다고 말하겠나.
물론 윌리엄의 말대로라면 이 ‘로즈 나이트’는 양산형 개체로, 알파 기어 축에서도 최하급이라는 말은 들었다.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이런 게 전부라던가?
급이 낮기에 자아가 불완전할 수도 있다.
아무렴, 이놈이 전에 봤던 로자리아의 ‘빅터’랑 비슷하겠나. 급의 차이는 나도 인정하는 바다.
다만 아무리 최하급이라도 이 로즈 나이트 역시 알파 기어는 알파 기어. 만약 다른 알파 기어랑 베이스가 같다고 한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자.”
알파 기어도 종류가 있다.
빅터처럼 밖에서 조종하는 ‘조종형’이 있는가 하면 진유리의 드래고니안처럼 착용하는 ‘장착형’이 있다. 뭐, 탑승형 등 여러 종류가 더 있긴 한데, 내가 본 것은 이 두 개.
다행히 이 로즈 나이트도 내게 익숙한 ‘장착형’이다.
그러니 한번 입어 보기로 한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바쁘게 불꽃을 막아 내던 로즈 나이트 부위들이 무지개 색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자연스레 들이닥치는 플레임 엔트의 공세.
불꽃이 나를 향해 들이닥친다.
콰아아아앙-!!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난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불꽃을 뚫고 나온 내 몸에는 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 ‘로즈 나이트’가 착용된 상태.
현재 난 로즈 나이트를 착용한 채 플레임 엔트의 공세를 온전히 모두 받아 내며 걷고 있었다.
“음…….”
솔직히 거추장스럽고 별로다.
‘거인’의 육체 때문인가. 뭔가 주렁주렁 다는 게 거북하다. 오히려 몸이 둔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야, 뭐라도 해 봐.”
명령하자, 로즈 나이트가 빛을 발하며 돌진했다.
자연스레 뛰고 있는 나.
분명히 말하겠는데,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이 녀석이 ‘스스로’ 뛰는 탓에 장착한 나는 강제로 뛰고 있는 거다.
동시에 내게 의지가 전해져 오는데.
“소드? 실드? 이걸 뭐?”
굉장히 작고 희미한 의지다. 라디오 볼륨을 최소로 맞추고 주파수조차 제대로 안 맞아 지지직- 거리는 느낌?
어째 알파 기어란 놈이 내 스켈레톤보다도 더 의지가 희미하냐.
그래도 들어주자. 지금은 실험하는 중이니까.
아공간에서 방패와 롱소드 하나를 들었다.
원하는 무장을 갖추자, 로즈 나이트는 더 맹렬히 빛나더니 가까운 플레임 엔트에게 냅다 숄더 차지를 가했다.
흔들리는 엔트…… 여기에 방패가 날아들고, 롱소드로 찌르기.
“와…….”
이거 딱 제국 시절 기사단이 쓰던 집단전 교본인데?
중갑의 무게를 이용한 차지. 방패로 시야를 가리며, 소드로 찌르기. 반격이 오면 다시 방패로 거리를 좁히고, 반복해서 소드 어택.
기본 중의 기본이다.
멍하니 로즈 나이트가 싸우는 걸 지켜본다.
원래 내 몸을 누군가 통제한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이게 실험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로즈 나이트의 전투를 경험했고, 막 7마리째의 플레임 엔트가 쓰러졌을 때.
비로소 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이거 영혼 없네.”
알파 기어에는 영혼이 없다.
학습된 자아만 있을 뿐이다.
영혼이 없는데 자아가 있다? 내가 말해도 어색한데, 사실이 그러한걸.
‘해체.’
의지를 전하자 로즈 나이트가 벗겨졌다.
날아오는 불꽃을 방패로 쳐 내고는 손에 들린 롱소드를 냅다 던졌다.
눈에 롱소드가 박힌 엔트가 커컥, 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늘 높이 불꽃을 내뿜으며 지랄 발광하는 플레임 엔트. 그런 가운데 난 아공간에서 마귀를 꺼내 들었다.
보이는 족족 플레임 엔트를 제거해 나간다.
스켈레톤 군단까지 부르고 일대를 청소하며 전진.
슬슬 몸이 풀어질 때쯤, 불꽃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 놈은 무시하고, 쟤부터 없애.”
윌리엄 놈의 목소리다. 얘는 한참 전에 엘리트 좀 잡으라고 보내 놨더니 아직도 싸우고 앉아 있다.
“하여튼 마음에 안 든다니까.”
그래도 ‘알파 기어’를 비롯해 이것저것 구해 주는 대가로 훈련을 봐주기로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했다.
대충 전장을 정리하고는 자리를 잡는다.
전장이 한눈에 보이는 나무 위에 앉아 윌리엄이 싸우는 걸 구경했다.
바람의 정령을 동원해 공중에 떠서, 물의 정령 부대로 공격.
아주 정석적인 공략법이다.
하늘에 가득 펼쳐진 하급 물의 정령들이 ‘워터 애로우’와 ‘워터 볼’을 비롯한 기본 물 마법을 폭격하고, 간간이 섞여 있는 중급 정령으로 날카로운 공격을 가한다.
그리고 진짜 치명적인 일격은 저기 윌리엄 근처에 있는 물로 만들어진 말, 물의 상급 정령으로 적을 제거해 나간다.
“확실히 발상이 자유로워서인가. 정령 모양도 다양하다니까.”
제국에서도 정령이 있었다. 엘프가 있는데 정령이 없겠나.
하지만 엘프에게서 파생된 정령술은 굉장히 정형화돼 있고, 때문에 소환한 정령들은 다들 비슷한 형태였다.
일례로 물의 정령을 예로 들자면 하급은 운디네, 중급 운다인, 상급 엔다이론 등등처럼 말이다.
한데 이 세계의 정령술은 굉장히 자유롭다.
윌리엄이 불러낸 물의 하급 정령은 ‘새’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참새. 중급 정령은 여기서 더 커진, 독수리 정도? 상급은 보다시피 말(馬)이다.
개인적으로 좋다고 본다. 제국보다 훨씬 더. 이런 자유로운 발상이 있어야만 발전하는 법 아니겠나.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발상도, 저 귀여운 존재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쟤가 가장 특별하지.”
이등신의 귀여운 용 형태의 정령.
윌리엄이 자신의 성을 붙일 정도로 아낀다는 분신.
인공 정령 ‘크리스’.
“봄이 만들어 주면 좋아라 하겠네.”
미국 궁전 정령술의 총아라는 ‘인공 정령.’
정령의 고질적인 핸디캡인 명령 전달 체계를 인공 정령이란 컨트롤 타워를 세워 극복한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발상이었다.
지금도 보면 크리스가 ‘끼야아아.’ 하고 귀엽게 울 때마다 전황이 일사불란하게 조정되고 있다.
물안개를 전장에 퍼트려 화염 마법을 약화.
불과 물이 만나면 나오는 수증기를 다시 액체화시켜 물안개에 더하기도 하고, 아니면 상급 정령을 컨트롤해 약해 보이는 플레임 엔트를 죽이기도 했다.
아무리 윌리엄이 명령을 했다고 해도 저걸 저렇게 상세히 주문했을 리는 없으니, 저 인공 정령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다는 뜻.
한참 동안이나 전장을 본다. 정확히는 인공 정령 크리스를 통해 변하는 전장에 집중해 봤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 마법에 플레임 엔트들이 연기를 일으키며 죽어 나가고, 하위 개체가 사라짐에 따라 엘리트 플레임 엔트의 힘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전장에 남은 건 엘리트 한 마리뿐.
사실상 승부는 결정 난 상황이었고, 물보라가 휘몰아치며 엘리트 플레임 엔트를 감쌌다.
엘리트 플레임 엔트는 불꽃을 사방팔방으로 뿜어내며 발악해 보지만, 물보라는 끈질기게 녀석을 가두며 끝내 고사시켰다.
마지막으로, 자신 스스로 불태우며 바스러지는 엘리트 플레임 엔트.
정확히 예상대로의 승리였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
“공교롭네.”
‘알파 기어’가 ‘영혼’이 빠진 인형이라면.
‘인공 정령’은 ‘육체’가 없는 유령이었다.
영혼과 육체.
양쪽이 극한으로 발전한 결과물.
그리고 영혼과 육체, 이 두 개가 합쳐지면?
“이론적으로 인간이 되지.”
그래, 마법의 금기라 불리는 창조의 영역.
인체 연성. ‘호문클루스’가 탄생하게 된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나의 시선이 로즈 나이트의 투구와 크리스를 반복적으로 보고 있었다.
* * *
기어스 스쿨 최심처에 있는 게이트.
오직 ‘기간트’만을 위한 공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마나 엔진이 빛을 내뿜으며 세차게 출력을 높이고, 움직이는 레일을 따라 기계 팔들이 신속하게 부품을 만들고 있다.
찍혀 나오는 부위를 마법으로 가공하고, 마법진을 새겨 넣는다.
마치 박기혁이 스켈레톤의 ‘단련’을 위해 뼈를 세공하듯, 세심하게 마법진으로 빼곡히 채워 넣고는 조립했다.
핵을 중심으로 몸통을 붙이고, 팔과 다리를 붙이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붙이면.
골렘이 완성된다.
그야말로 공장 같은 모습.
때문에 이 게이트의 이름도 ‘기간트 팩토리’다.
로자리아는 기간트 팩토리의 모습을 황홀하게 쳐다보다 다가온 기간트의 모습에 인사했다.
“왔어?”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궁금한 게 있어서!”
“……!!”
반갑게 웃는 기간트.
반면 로자리아는 바짝 얼어 버린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궁금하다고 했으니까.
저 존재는 기간트다.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는, 탐구욕의 화신.
그런 존재가 궁금하다며 묻고 있다.
직접적으로, 로자리아를 콕 집어서.
즉, 로자리아는 무슨 수를 쓰든 이 ‘호기심’을 해소해 줘야 한단 말이다.
“너 박기혁이란 애 알지? 나 걔 보고 싶어. 걔 좀 데려와.”
기간트가 명한다.
박기혁을 데려오라.
이제 로자리아는 박기혁을 데려와야 한다.
만약 이를 실패할 시에는, 그때는 불량품으로 낙인찍히리라.
기간트가 명했으니, 로자리아는 이제 자신의 힘이 닿는 한 박기혁을 데려와야 했다.
로자리아는 고개를 넙죽 숙이고는 게이트를 벗어났다.